[단독] 위임 규정 없다더니 ‘경영책임자’ 시행령에?…고용부, 법제처 지원 요청
입력 2022.09.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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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를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법제처에 의견을 묻는 등 지원 요청도 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이는 재계가 그동안 요구해왔던 겁니다. 재계는 경영책임자의 정의 규정을 시행령에 신설하고,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안전보건최고책임자, 즉 CSO(chief safety officer)
를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또 CSO를 선임한 경우엔 기업 대표의 책임은 면해달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기업 내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처벌함으로써 일터에서 노동자가 숨지는 일을 막아보자는 입법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 고용부, '시행령에 경영책임자 명시' 법제처에 지원 요청
고용노동부는 지난주 경영책임자 정의 규정을 시행령에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법제처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원은 정부 부처가 시행령을 만들거나 고칠 때, 법제처의 자문을 받는 제도입니다.
그동안 고용부는 시행령에 경영책임자를 명시하는 것은 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밝혀왔지만, 태도를 바꾼 겁니다.
법제처 측은 고용부가 지원을 요청한 것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는 사안을 시행령에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도 법제처가 내느냐'는 질문에는 고용부에서 요청을 한 만큼 같이 고민을 하겠지만, 지금은 답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과 손경식 한국경제인총협회 회장(오른쪽)
■ 재계 "CSO 선임 시, 대표이사 책임 면해달라"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시행령에 별도로 명시하는 건 재계가 줄곧 요구해왔던 사안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2조 9호는 경영책임자에 대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여기서 '이에 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에 준하는 사람'을 "안전보건에 관한 조직, 인력, 예산 등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정의하는 규정을 시행령에 신설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최고책임자, 즉 CSO도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넣어달라는 겁니다. 나아가 "CSO가 선임돼 있으면, 사업대표의 책임은 면한다"는 규정도 추가해달라고도 했습니다.
■ 고용부, '위임 규정' 없어 안 된다더니…입장 바꿔
이런 재계 요구에 대해 고용부는 원래 불가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습니다.
우선 경영책임자의 특정에 대해, 고용부는 법 해설서에서 "중대재해법은 원칙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 즉 경영을 대표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의무와 역할을 규정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기업 내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용부 산업안전본부 관계자들은 "법 조문을 뜯어보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이라는 문장이 '이에 준하는 사람'을 수식하고 있다"며, '이에 준하는 사람'은 CSO로 보기 어렵고, 대표이사가 부재할 때 역할을 대행하는 사람 정도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법률의 정의 규정만으로도 경영책임자를 특정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고용부는 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다는 점도 강조해왔습니다. 경영책임자를 시행령에 별도로 명시하려면, 상위 법령인 법률에 위임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겁니다. 정부는 국회에서 정한 법률이 위임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시행령을 만들 수 없습니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7월 14일 새 정부 업무계획 보고 브리핑에서 '경영책임자 정의를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 규정의 모호성을 확보하는 것은 (법률의) 위임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 경영책임자에 대한 규정을 정의하는 부분은 아마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시행령에서 그것까지는 다루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용부가 입장을 바꿔, 시행령에 경영책임자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경제부처와 재계의 압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재 정부는 범부처 차원에서 경제인 형벌 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는 지난달 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10개 부처 소관 17개 법률의 32개 형벌 조항을 비범죄화하거나, 형량을 감경하는 방안을 보고한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중대재해법을 완화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검토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법이나 시행령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좀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아직 명시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실질적인 책임자를 가리겠다는 수사 기조엔 변함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용부가 종전 입장을 뒤집은 것에 대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됩니다.
노동계는 경영책임자를 시행령에 명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해왔습니다.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CSO가 포함하게 되면, 대표이사는 처벌을 면해 결과적으로 중대재해법이 유명무실해질 거란 우려가 큽니다. 또 중대재해법 시행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여전히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만큼 엄정한 법 집행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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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위임 규정 없다더니 ‘경영책임자’ 시행령에?…고용부, 법제처 지원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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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9-14 18:09:55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를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법제처에 의견을 묻는 등 지원 요청도 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이는 재계가 그동안 요구해왔던 겁니다. 재계는 경영책임자의 정의 규정을 시행령에 신설하고,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안전보건최고책임자, 즉 CSO(chief safety officer)
를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또 CSO를 선임한 경우엔 기업 대표의 책임은 면해달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기업 내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처벌함으로써 일터에서 노동자가 숨지는 일을 막아보자는 입법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 고용부, '시행령에 경영책임자 명시' 법제처에 지원 요청
고용노동부는 지난주 경영책임자 정의 규정을 시행령에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법제처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원은 정부 부처가 시행령을 만들거나 고칠 때, 법제처의 자문을 받는 제도입니다.
그동안 고용부는 시행령에 경영책임자를 명시하는 것은 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밝혀왔지만, 태도를 바꾼 겁니다.
법제처 측은 고용부가 지원을 요청한 것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는 사안을 시행령에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도 법제처가 내느냐'는 질문에는 고용부에서 요청을 한 만큼 같이 고민을 하겠지만, 지금은 답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 재계 "CSO 선임 시, 대표이사 책임 면해달라"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시행령에 별도로 명시하는 건 재계가 줄곧 요구해왔던 사안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2조 9호는 경영책임자에 대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여기서 '이에 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에 준하는 사람'을 "안전보건에 관한 조직, 인력, 예산 등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정의하는 규정을 시행령에 신설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최고책임자, 즉 CSO도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넣어달라는 겁니다. 나아가 "CSO가 선임돼 있으면, 사업대표의 책임은 면한다"는 규정도 추가해달라고도 했습니다.
■ 고용부, '위임 규정' 없어 안 된다더니…입장 바꿔
이런 재계 요구에 대해 고용부는 원래 불가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습니다.
우선 경영책임자의 특정에 대해, 고용부는 법 해설서에서 "중대재해법은 원칙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 즉 경영을 대표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의무와 역할을 규정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기업 내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용부 산업안전본부 관계자들은 "법 조문을 뜯어보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이라는 문장이 '이에 준하는 사람'을 수식하고 있다"며, '이에 준하는 사람'은 CSO로 보기 어렵고, 대표이사가 부재할 때 역할을 대행하는 사람 정도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법률의 정의 규정만으로도 경영책임자를 특정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고용부는 법률에 위임 규정이 없다는 점도 강조해왔습니다. 경영책임자를 시행령에 별도로 명시하려면, 상위 법령인 법률에 위임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겁니다. 정부는 국회에서 정한 법률이 위임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시행령을 만들 수 없습니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7월 14일 새 정부 업무계획 보고 브리핑에서 '경영책임자 정의를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 규정의 모호성을 확보하는 것은 (법률의) 위임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 경영책임자에 대한 규정을 정의하는 부분은 아마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시행령에서 그것까지는 다루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용부가 입장을 바꿔, 시행령에 경영책임자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경제부처와 재계의 압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재 정부는 범부처 차원에서 경제인 형벌 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는 지난달 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10개 부처 소관 17개 법률의 32개 형벌 조항을 비범죄화하거나, 형량을 감경하는 방안을 보고한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중대재해법을 완화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검토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법이나 시행령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좀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아직 명시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실질적인 책임자를 가리겠다는 수사 기조엔 변함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용부가 종전 입장을 뒤집은 것에 대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됩니다.
노동계는 경영책임자를 시행령에 명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해왔습니다.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CSO가 포함하게 되면, 대표이사는 처벌을 면해 결과적으로 중대재해법이 유명무실해질 거란 우려가 큽니다. 또 중대재해법 시행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여전히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만큼 엄정한 법 집행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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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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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기자 vox@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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