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공장 점거해도 책임 못 묻는다? 노란봉투법 따져보니…

입력 2022.09.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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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대한 사용자 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파업 하청노동자들에게 46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50여 명이 공동 발의했고, 두 당 모두 법안 처리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경영계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두고 앞으로 '노조가 공장을 점거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불법을 면책하는 것이다, 산업 현장이 무법천지가 될 거란 우려도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볼 수 있는지, 따져봤습니다.


1. 노조가 공장 점거해도 책임 못 묻는다?

일부 언론이 재계 관계자의 주장으로 보도한 내용입니다. 최근 파업 과정에서 시설을 점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선박 건조 시설을, 하이트진로 노동자들은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을 점거했습니다. 점거는 생산에 직접 차질을 줍니다. 경영계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노란봉투법 어디에도 점거 행위에 대해 책임을 면해준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점거뿐 아니라 '파업 수단'에 대한 내용 자체가 없습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조와 3조의 개정입니다. 2조는 노조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사용자에 관한 정의 규정이고, 3조는 손해배상 제한에 관한 규정입니다.

노조법에서 점거 행위에 관한 규정은 42조입니다. 다음과 같이 점거 행위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제42조(폭력행위등의 금지)
①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

이 조항을 위반한 파업은 정당한 파업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의 판례상 파업이 정당하다고 인정받으려면, 파업의 목적뿐 아니라 수단도 정당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쟁의행위와 관련된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더라도 42조를 위반한 경우엔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 거로 해석됩니다.

42조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제시합니다. 대법원은 점거를 파업의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고, 무조건 위법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사용자 측의 점유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조업도 방해하지 않는 부분적, 병존적 점거는 정당성이 인정됩니다. 다만, 이를 넘어서 장기간에 걸쳐 전면적 배타적으로 점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점거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이 성립하는지는, 이 기준에 따라 판단해봐야 하는 문제이지 노란봉투법으로 무조건 면책되는 게 아닙니다.

2. 불법 파업을 보호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14일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개정안은 손해배상 책임이 면해지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노조법 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노조법 1조의 목적이란 ①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과 ②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입니다.

중요한 건 개정안이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파업의 정당한 목적에 포함 시켰다는 점입니다. 파업의 목적에 대해선 노조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습니다.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그동안 '근로조건의 유지·개선'만을 정당한 목적으로 인정해왔습니다. 즉 임금과 근로시간, 복지 등을 목적으로 한 파업만 정당하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목적의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됐습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노동계는 정당한 목적의 범위가 너무 좁아 불법에 내몰린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노란봉투법으로 파업의 정당한 목적이 넓어지면 자연스레 합법 파업의 범위도 확대됩니다. 경영계 입장에선 종전에는 불법이던 파업이 합법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보니, '불법 파업을 보호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 ILO의 핵심 협약이 4월 국내에서 발효됐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핵심 협약 87호 결사의 자유는 파업할 권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ILO 결 사의 자유위원회는 파업의 목적에 대해 단체협약 사안에 제한돼선 안 된다고 봤습니다. 조합원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사항에 대해서도 노조는 불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했습니다. 노란봉투법에서 파업의 정당한 목적에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포함한 것은 이런 ILO의 기준에 부합합니다.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에 아예 면죄부를 주는 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폭력이나 파괴로 인하여 발생한 직접 손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 손해배상 책임이 면해지는 건, 어디까지 그 파업이 정당할 때에 한정됩니다. 대법원은 파업의 목적, 절차, 수단, 방법이 모두 적법한 경우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판례 2001. 6. 12, 2001도1012)
근로자의 단체행동이 형법상 정당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그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고, 둘째 그 목적이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사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하는 데에 있어야 하며, 셋째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에 대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였을 때 개시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합원의 찬성 결정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넷째 그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폭력의 행사나 제3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3. 불법파업을 조장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5일 노란봉투법에 대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측의 손해배상 범위와 액수를 제한합니다. ①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 청구를 허용하지 않고 ② 노조 규모에 따라 배상액에 상한을 두도록 했으며 ③ 법원이 배상액을 감면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이처럼 노조의 책임이 경감되는 만큼 파업 방식이 더 극단화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노동계는 파업이 극단화되는 원인을 단체교섭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경우, 1년간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했지만, 실질적 권한이 없다 보니, 원청에 대화를 요구하며 선박 점거에 나섰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행 노조법에선 원청이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습니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에게도 교섭 의무를 부과합니다. 즉,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근거가 생기는 겁니다. 원청에 교섭 의무가 생기면 대화를 요구하며 농성하는 일도 줄어들 거라는 게 노동계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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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조가 공장 점거해도 책임 못 묻는다? 노란봉투법 따져보니…
    • 입력 2022-09-16 17:03:38
    취재K

파업에 대한 사용자 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파업 하청노동자들에게 46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50여 명이 공동 발의했고, 두 당 모두 법안 처리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경영계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을 두고 앞으로 '노조가 공장을 점거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불법을 면책하는 것이다, 산업 현장이 무법천지가 될 거란 우려도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볼 수 있는지, 따져봤습니다.


1. 노조가 공장 점거해도 책임 못 묻는다?

일부 언론이 재계 관계자의 주장으로 보도한 내용입니다. 최근 파업 과정에서 시설을 점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의 선박 건조 시설을, 하이트진로 노동자들은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을 점거했습니다. 점거는 생산에 직접 차질을 줍니다. 경영계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노란봉투법 어디에도 점거 행위에 대해 책임을 면해준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점거뿐 아니라 '파업 수단'에 대한 내용 자체가 없습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2조와 3조의 개정입니다. 2조는 노조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사용자에 관한 정의 규정이고, 3조는 손해배상 제한에 관한 규정입니다.

노조법에서 점거 행위에 관한 규정은 42조입니다. 다음과 같이 점거 행위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제42조(폭력행위등의 금지)
①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

이 조항을 위반한 파업은 정당한 파업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의 판례상 파업이 정당하다고 인정받으려면, 파업의 목적뿐 아니라 수단도 정당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쟁의행위와 관련된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더라도 42조를 위반한 경우엔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 거로 해석됩니다.

42조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제시합니다. 대법원은 점거를 파업의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고, 무조건 위법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사용자 측의 점유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조업도 방해하지 않는 부분적, 병존적 점거는 정당성이 인정됩니다. 다만, 이를 넘어서 장기간에 걸쳐 전면적 배타적으로 점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점거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이 성립하는지는, 이 기준에 따라 판단해봐야 하는 문제이지 노란봉투법으로 무조건 면책되는 게 아닙니다.

2. 불법 파업을 보호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14일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개정안은 손해배상 책임이 면해지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노조법 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노조법 1조의 목적이란 ①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과 ②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입니다.

중요한 건 개정안이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파업의 정당한 목적에 포함 시켰다는 점입니다. 파업의 목적에 대해선 노조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습니다.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그동안 '근로조건의 유지·개선'만을 정당한 목적으로 인정해왔습니다. 즉 임금과 근로시간, 복지 등을 목적으로 한 파업만 정당하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목적의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됐습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노동계는 정당한 목적의 범위가 너무 좁아 불법에 내몰린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노란봉투법으로 파업의 정당한 목적이 넓어지면 자연스레 합법 파업의 범위도 확대됩니다. 경영계 입장에선 종전에는 불법이던 파업이 합법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보니, '불법 파업을 보호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 ILO의 핵심 협약이 4월 국내에서 발효됐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핵심 협약 87호 결사의 자유는 파업할 권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ILO 결 사의 자유위원회는 파업의 목적에 대해 단체협약 사안에 제한돼선 안 된다고 봤습니다. 조합원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사항에 대해서도 노조는 불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했습니다. 노란봉투법에서 파업의 정당한 목적에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포함한 것은 이런 ILO의 기준에 부합합니다.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에 아예 면죄부를 주는 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폭력이나 파괴로 인하여 발생한 직접 손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 손해배상 책임이 면해지는 건, 어디까지 그 파업이 정당할 때에 한정됩니다. 대법원은 파업의 목적, 절차, 수단, 방법이 모두 적법한 경우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판례 2001. 6. 12, 2001도1012)
근로자의 단체행동이 형법상 정당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그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고, 둘째 그 목적이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사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하는 데에 있어야 하며, 셋째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에 대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였을 때 개시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합원의 찬성 결정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넷째 그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폭력의 행사나 제3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3. 불법파업을 조장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5일 노란봉투법에 대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측의 손해배상 범위와 액수를 제한합니다. ①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 청구를 허용하지 않고 ② 노조 규모에 따라 배상액에 상한을 두도록 했으며 ③ 법원이 배상액을 감면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이처럼 노조의 책임이 경감되는 만큼 파업 방식이 더 극단화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노동계는 파업이 극단화되는 원인을 단체교섭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경우, 1년간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했지만, 실질적 권한이 없다 보니, 원청에 대화를 요구하며 선박 점거에 나섰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행 노조법에선 원청이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습니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에게도 교섭 의무를 부과합니다. 즉,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근거가 생기는 겁니다. 원청에 교섭 의무가 생기면 대화를 요구하며 농성하는 일도 줄어들 거라는 게 노동계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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