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지폐를 둘러싼 재판…경찰은 왜 영치금을 건넸나?

입력 2022.09.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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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 사범이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이 위조지폐 사범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위조지폐를 제작한 건 맞지만, 사용하려던 과정에서 잃어버렸다는 피고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겁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경찰수사관이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조서를 진술과 다르게 꾸민 점도 드러났습니다. 법원은 왜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수사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시장에서 발견된 위조지폐

2020년 4월 청주시 석교동의 육거리 시장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가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인 북한 이탈주민 33살 김 모 씨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했다는 게 수사기관의 판단입니다.


앞서 김 씨는 2018년 대전고등법원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2019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뒤이어 2020년 12월에는 대전고등법원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 55장을 만들어 13차례에 걸쳐 사용했다는 혐의로 또다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기소된 내용은 김 씨가 처벌받은 두 차례 범행 이외에 또 위조지폐를 만들어 썼다는 추가 범행에 대한 부분입니다.


■피의자 신문…그리고 영치금 3만 원

재판에 넘겨진 김 씨는 법정에서 “위조한 5만 원을 사용하려 했지만, 돈을 건네 받은 피해자가 자신을 붙잡으려 하자 도주하는 과정에서 모두 잃어버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김 씨의 법정 진술과 달리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위조지폐를 사용한 사실을 인정한 것처럼 기재된 내용이 발견됩니다.

결국, 법정에 선 김 씨. 그런데 경찰이 쓴 신문조서 내용을 갑자기 부인합니다.

김 씨는 “경찰 수사에서 위조지폐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는데 경찰수사관이 자신에게 영치금을 넣어주겠다. 이 사건은 별것 아니라고 회유하고 진술과 다르게 피의자신문조서가 기재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국선변호인은 실제로 경찰수사관이 김 씨에게 영치금 3만 원을 입금한 자료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결국, 재판부는 “위조지폐와 관련된 다른 자신의 혐의들은 모두 자백했지만, 이 사건만은 부인한다. 이는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을 높여준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의 위조지폐에서 피고 김 씨의 지문이 검출된 건 사실이지만, 또 다른 사람의 지문도 있다며 제3의 인물이 위조지폐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도 봤습니다.

■8개월 뒤 입금된 위조지폐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에선 김 씨가 위조지폐를 2020년 4월 22일 사용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고는 2020년 12월 16일에 이르러서야 청주의 한 은행 직원이 입금 과정에서 이를 발견하며 이뤄졌습니다.

그러니까 위조지폐는 사용된 지 무려 8개월이나 지난 다음에 은행 입금 과정에서 발견됐고 신고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법원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위조지폐가 은행에 입금된 경위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겁니다.

대전지방법원 제12형사부 나상훈, 최광진, 박주원 판사는 “위조지폐가 실제로 사용된 사실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오히려 누군가 위조지폐를 습득한 뒤 청주 인근에서 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피고에게 동종 전력이 있다는 점 역시 그 자체만으로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간접사실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범죄의 증명

위조지폐 사범에 대한 재판은 무죄로 끝났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단됐습니다. 판례는 이렇습니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유죄의 인정은 법관에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검찰은 항소했습니다. 지난 14일 검찰의 항소이유서가 법원에 제출됐습니다. 사건은 다시 항소심 재판부로 넘어갔습니다.

경찰이 준 영치금과 검찰이 밝히지 못한 8개월간의 공백은 앞으로 재판에서 어떻게 해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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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조지폐를 둘러싼 재판…경찰은 왜 영치금을 건넸나?
    • 입력 2022-09-17 11:00:40
    취재K

위조지폐 사범이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이 위조지폐 사범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위조지폐를 제작한 건 맞지만, 사용하려던 과정에서 잃어버렸다는 피고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겁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경찰수사관이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조서를 진술과 다르게 꾸민 점도 드러났습니다. 법원은 왜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수사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시장에서 발견된 위조지폐

2020년 4월 청주시 석교동의 육거리 시장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가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인 북한 이탈주민 33살 김 모 씨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했다는 게 수사기관의 판단입니다.


앞서 김 씨는 2018년 대전고등법원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2019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뒤이어 2020년 12월에는 대전고등법원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 55장을 만들어 13차례에 걸쳐 사용했다는 혐의로 또다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기소된 내용은 김 씨가 처벌받은 두 차례 범행 이외에 또 위조지폐를 만들어 썼다는 추가 범행에 대한 부분입니다.


■피의자 신문…그리고 영치금 3만 원

재판에 넘겨진 김 씨는 법정에서 “위조한 5만 원을 사용하려 했지만, 돈을 건네 받은 피해자가 자신을 붙잡으려 하자 도주하는 과정에서 모두 잃어버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김 씨의 법정 진술과 달리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위조지폐를 사용한 사실을 인정한 것처럼 기재된 내용이 발견됩니다.

결국, 법정에 선 김 씨. 그런데 경찰이 쓴 신문조서 내용을 갑자기 부인합니다.

김 씨는 “경찰 수사에서 위조지폐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는데 경찰수사관이 자신에게 영치금을 넣어주겠다. 이 사건은 별것 아니라고 회유하고 진술과 다르게 피의자신문조서가 기재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국선변호인은 실제로 경찰수사관이 김 씨에게 영치금 3만 원을 입금한 자료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결국, 재판부는 “위조지폐와 관련된 다른 자신의 혐의들은 모두 자백했지만, 이 사건만은 부인한다. 이는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을 높여준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의 위조지폐에서 피고 김 씨의 지문이 검출된 건 사실이지만, 또 다른 사람의 지문도 있다며 제3의 인물이 위조지폐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도 봤습니다.

■8개월 뒤 입금된 위조지폐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에선 김 씨가 위조지폐를 2020년 4월 22일 사용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고는 2020년 12월 16일에 이르러서야 청주의 한 은행 직원이 입금 과정에서 이를 발견하며 이뤄졌습니다.

그러니까 위조지폐는 사용된 지 무려 8개월이나 지난 다음에 은행 입금 과정에서 발견됐고 신고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법원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위조지폐가 은행에 입금된 경위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겁니다.

대전지방법원 제12형사부 나상훈, 최광진, 박주원 판사는 “위조지폐가 실제로 사용된 사실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오히려 누군가 위조지폐를 습득한 뒤 청주 인근에서 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피고에게 동종 전력이 있다는 점 역시 그 자체만으로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간접사실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범죄의 증명

위조지폐 사범에 대한 재판은 무죄로 끝났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단됐습니다. 판례는 이렇습니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유죄의 인정은 법관에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검찰은 항소했습니다. 지난 14일 검찰의 항소이유서가 법원에 제출됐습니다. 사건은 다시 항소심 재판부로 넘어갔습니다.

경찰이 준 영치금과 검찰이 밝히지 못한 8개월간의 공백은 앞으로 재판에서 어떻게 해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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