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개편’ 그친 우윳값 결정 체계…가격 또 오를까?

입력 2022.09.1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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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로부터 갓 짠 우유, 원유(原乳)의 가격 결정 체계가 10년 만에 바뀝니다. 낙농진흥회는 이틀 전(16일)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3년 8월 도입된 '생산비 연동제'는 폐지 수순을 밟습니다. 낙농진흥회는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생산비 연동제를 대체할 새로운 우윳값 산정 방식을 정할 계획입니다. 모레(20일)부터 낙농가와 유업체가 동수로 참여하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협상을 시작합니다.

16일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의결을 위해 열린 낙농진흥회 이사회. [촬영기자 김현태]16일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의결을 위해 열린 낙농진흥회 이사회. [촬영기자 김현태]

■ 생산비 증감에 따라 결정되던 우윳값

낙농진흥회의 이번 결정은 정부가 추진하는 '낙농제 개편'의 신호탄으로 해석됩니다. 정부는 현재 ℓ
당 1,100원 수준인 원유 수취가격(유업체가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사가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판단합니다. 아울러 이 원유 수취가격이 결정되는 계산식이, 생산비가 오르면 자동으로 오르는 구조(생산비 연동제)라 바꿔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 왔습니다.

현재 계산식은 1~2년마다 생산비가 얼마나 오르는지 보고, 증가액의 10% 범위 안에서 정하는 구조입니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올해 원유 수취가격은 ℓ당 최대 58원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 '초과 공급' 연간 23만 톤…정부가 보조

지난해 우리나라 원유 생산량은 203만 톤이었습니다. 유업체들은 15일 단위로 낙농가로부터 정해진 원유 물량을 의무 구매(쿼터제)했습니다. 그리고 의무 구매량을 넘는 물량(초과유)은 ℓ당 100원에 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유업체들은 지난해 198만 톤을 ℓ당 1,100원에 구매했고, 5만 톤을 ℓ당 100원에 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마시는 흰 우우, 음용유 수요량은 175만 톤이었습니다. ℓ당 1,100원이란 가격은 음용유 수요를 감안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유업체들은 23만 톤을 더 많이 사들였다는 게 정부 판단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정부는 유업체가 손해를 본 부분에 대해 186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했습니다.


■ 수입 멸균 우유에 잠식되는 시장

저출산 등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음용유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대신 가공유(치즈·버터 등) 수요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공유 제품들은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습니다. 원유 가격이 ℓ당 400원~500원 수준으로 싼 유럽·미국 등의 가공유 제품은 우리나라 원유(ℓ당 1,100원 수준)로 만드는 가공유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우유 시장은 수입 우유에 빠르게 잠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꺼내든 배경입니다. 원유 195만 톤은 현행대로 ℓ당 1,100원, 원유 10만 톤은 가공유 물량으로 정해 ℓ당 800원에 유업체가 구매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공유 물량에 한해선 정부가 ℓ당 200원의 보조금을 유업체에 지원합니다. 사실상 유업체는 가공유를 ℓ당 600원에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적용되는 음용유와 가공유는 205만 톤입니다. 그리고 이걸 초과할 경우 유업체는 ℓ당 100원에 사게 됩니다.


■ '시장 1위' 서울우유는 빠져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 서울우유는 제외됐다는 겁니다. 앞서 서울우유는 지난 8월 16일 대의원 총회에서 낙농가에 월 30억 원 규모의 목장경영 안정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원유 수취가격을 ℓ당 58원 인상하는 격이라고 업계는 해석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우윳값 계산식(생산비 연동제)에 따른 최대 인상폭입니다.

서울우유는 흰 우유 시장 점유율이 40%가 넘는 1위 업체입니다. 농식품부 박범수 차관보는 서울우유가 안정자금 지원 결정을 내리고 이틀 뒤 브리핑을 열고 "아쉽지만 서울우유에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의무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우유시장 1위 업체가 정부가 추진하는 '낙농제 개편'에서 혼자만 빠져나온 모양새입니다.


■ 조합원 1,500여 명이 목장주…문 닫는 농장들

이런 배경엔 '협동조합' 형태의 서울우유 기업 구조가 있습니다. 서울우유는 1,500여 조합원들이 출자한 이용자 소유 기업입니다. 이 조합원들 자격 조건 중에는 '젖소 5마리 이상으로 일정 규모의 낙농업 경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합원 거의 모두가 목장 주인, 낙농가라는 얘기입니다. 어찌보면 협동조합으로서 낙농가들의 사정을 충실히 반영한 결정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ℓ당 원유 생산비는 843원입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사룟값 인상분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낙농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15개월 동안 228개 농장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나라 젖소 사육 마릿수는 38만 9천 마리(올해 2분기 기준)로, 역대 최악이었던 구제역 파동 당시보다도 적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젖소농장에서 기자(왼쪽)가 주인으로부터 사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조은경]경기도 이천의 젖소농장에서 기자(왼쪽)가 주인으로부터 사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조은경]

■ 20일 협상 시작…우윳값 3,000원 시대 열릴까

이제 내년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 발맞춰 적용될 원윳값이 걱정입니다. '생산비 연동제'는 폐지되겠지만, 일단 현재 1.100원 수준의 음용유 가격은 유지하거나 조금 올리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습니다. 낙농진흥회가 정하는 우윳값은 사실상 업계의 표준이 되기 때문에,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참여하지 않는 서울우유도 일단 이 가격을 준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유통정보에 따르면 흰우유 1ℓ 소매가는 2,714원(15일 기준)입니다. '우윳값 3,000원 시대'가 열릴지, 20일부터 시작되는 낙농진흥회 협상 결과에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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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쪽 개편’ 그친 우윳값 결정 체계…가격 또 오를까?
    • 입력 2022-09-18 08:01:16
    취재K

젖소로부터 갓 짠 우유, 원유(原乳)의 가격 결정 체계가 10년 만에 바뀝니다. 낙농진흥회는 이틀 전(16일)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3년 8월 도입된 '생산비 연동제'는 폐지 수순을 밟습니다. 낙농진흥회는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생산비 연동제를 대체할 새로운 우윳값 산정 방식을 정할 계획입니다. 모레(20일)부터 낙농가와 유업체가 동수로 참여하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협상을 시작합니다.

16일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의결을 위해 열린 낙농진흥회 이사회. [촬영기자 김현태]
■ 생산비 증감에 따라 결정되던 우윳값

낙농진흥회의 이번 결정은 정부가 추진하는 '낙농제 개편'의 신호탄으로 해석됩니다. 정부는 현재 ℓ
당 1,100원 수준인 원유 수취가격(유업체가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사가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판단합니다. 아울러 이 원유 수취가격이 결정되는 계산식이, 생산비가 오르면 자동으로 오르는 구조(생산비 연동제)라 바꿔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 왔습니다.

현재 계산식은 1~2년마다 생산비가 얼마나 오르는지 보고, 증가액의 10% 범위 안에서 정하는 구조입니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올해 원유 수취가격은 ℓ당 최대 58원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 '초과 공급' 연간 23만 톤…정부가 보조

지난해 우리나라 원유 생산량은 203만 톤이었습니다. 유업체들은 15일 단위로 낙농가로부터 정해진 원유 물량을 의무 구매(쿼터제)했습니다. 그리고 의무 구매량을 넘는 물량(초과유)은 ℓ당 100원에 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유업체들은 지난해 198만 톤을 ℓ당 1,100원에 구매했고, 5만 톤을 ℓ당 100원에 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마시는 흰 우우, 음용유 수요량은 175만 톤이었습니다. ℓ당 1,100원이란 가격은 음용유 수요를 감안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유업체들은 23만 톤을 더 많이 사들였다는 게 정부 판단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정부는 유업체가 손해를 본 부분에 대해 186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했습니다.


■ 수입 멸균 우유에 잠식되는 시장

저출산 등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음용유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대신 가공유(치즈·버터 등) 수요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공유 제품들은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습니다. 원유 가격이 ℓ당 400원~500원 수준으로 싼 유럽·미국 등의 가공유 제품은 우리나라 원유(ℓ당 1,100원 수준)로 만드는 가공유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우유 시장은 수입 우유에 빠르게 잠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꺼내든 배경입니다. 원유 195만 톤은 현행대로 ℓ당 1,100원, 원유 10만 톤은 가공유 물량으로 정해 ℓ당 800원에 유업체가 구매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공유 물량에 한해선 정부가 ℓ당 200원의 보조금을 유업체에 지원합니다. 사실상 유업체는 가공유를 ℓ당 600원에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적용되는 음용유와 가공유는 205만 톤입니다. 그리고 이걸 초과할 경우 유업체는 ℓ당 100원에 사게 됩니다.


■ '시장 1위' 서울우유는 빠져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 서울우유는 제외됐다는 겁니다. 앞서 서울우유는 지난 8월 16일 대의원 총회에서 낙농가에 월 30억 원 규모의 목장경영 안정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원유 수취가격을 ℓ당 58원 인상하는 격이라고 업계는 해석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우윳값 계산식(생산비 연동제)에 따른 최대 인상폭입니다.

서울우유는 흰 우유 시장 점유율이 40%가 넘는 1위 업체입니다. 농식품부 박범수 차관보는 서울우유가 안정자금 지원 결정을 내리고 이틀 뒤 브리핑을 열고 "아쉽지만 서울우유에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의무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우유시장 1위 업체가 정부가 추진하는 '낙농제 개편'에서 혼자만 빠져나온 모양새입니다.


■ 조합원 1,500여 명이 목장주…문 닫는 농장들

이런 배경엔 '협동조합' 형태의 서울우유 기업 구조가 있습니다. 서울우유는 1,500여 조합원들이 출자한 이용자 소유 기업입니다. 이 조합원들 자격 조건 중에는 '젖소 5마리 이상으로 일정 규모의 낙농업 경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합원 거의 모두가 목장 주인, 낙농가라는 얘기입니다. 어찌보면 협동조합으로서 낙농가들의 사정을 충실히 반영한 결정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ℓ당 원유 생산비는 843원입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사룟값 인상분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낙농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15개월 동안 228개 농장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나라 젖소 사육 마릿수는 38만 9천 마리(올해 2분기 기준)로, 역대 최악이었던 구제역 파동 당시보다도 적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젖소농장에서 기자(왼쪽)가 주인으로부터 사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촬영기자 조은경]
■ 20일 협상 시작…우윳값 3,000원 시대 열릴까

이제 내년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 발맞춰 적용될 원윳값이 걱정입니다. '생산비 연동제'는 폐지되겠지만, 일단 현재 1.100원 수준의 음용유 가격은 유지하거나 조금 올리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습니다. 낙농진흥회가 정하는 우윳값은 사실상 업계의 표준이 되기 때문에,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참여하지 않는 서울우유도 일단 이 가격을 준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유통정보에 따르면 흰우유 1ℓ 소매가는 2,714원(15일 기준)입니다. '우윳값 3,000원 시대'가 열릴지, 20일부터 시작되는 낙농진흥회 협상 결과에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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