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왜군 시신 거둬준 그곳…前 일본 총리 찾는다

입력 2022.09.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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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에는 1597년 명량대첩 당시 전사한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 수군들의 시신을 묻어준 ‘왜덕산’이라는 곳이 있다. ‘조선이 왜에 덕을 베풀다’는 뜻이다. (사진 출처=영화 ‘명량’ 스틸컷 캡처)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에는 1597년 명량대첩 당시 전사한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 수군들의 시신을 묻어준 ‘왜덕산’이라는 곳이 있다. ‘조선이 왜에 덕을 베풀다’는 뜻이다. (사진 출처=영화 ‘명량’ 스틸컷 캡처)

■ 시신 한 구씩 봉분 쌓아…'조선이 왜에 덕을 베풀다'

1597년 선조 30년, 강화(講和) 교섭이 결렬되자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른바 '정유재란(丁酉再亂)'의 발발. 그해 9월 왜장(倭將) 구루시마 미치후사(来島通総)가 이끄는 왜군 전함 330여 척이 전남 진도 앞바다로 진격합니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복귀한 이순신은 진도와 해남 반도 사이 좁은 해협인 '울돌목'에서 단 13척의 배로 왜군을 섬멸합니다. 임진왜란사의 3대 해전으로 불리는 '명량대첩(鳴梁大捷)'입니다.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에는 우리 조상들이 명량대첩에서 전사한 왜군 시신을 거두어 묻어준 곳이 있습니다. 왜덕산(倭德山), '조선이 왜에 덕을 베풀었다'는 뜻의 지명입니다.

정유재란 당시 진도군 주민들은 내동마을 오산만으로 흘러들어온 왜군 시신을 한 구씩 안장, 정성스레 봉분을 쌓고 무덤을 조성했습니다. 이후 산 일부는 밭으로 개간돼 현재 무덤 100여 기 중 50여 기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도 현지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 그들의 고국인 일본 열도 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고 전해집니다.

명량대첩 당시 전사한 왜군 시신을 안장한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 소재의 왜덕산 위치. (사진 출처=진도문화원 제공)명량대첩 당시 전사한 왜군 시신을 안장한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 소재의 왜덕산 위치. (사진 출처=진도문화원 제공)

■ '조선인 귀 무덤' 참배한 하토야마 전 총리, 왜덕산으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오는 24일 이 왜덕산을 찾습니다. 이날 오전 10시에 열리는 '위령제(慰靈祭)'에서 추모사를 하기 위해섭니다.

한일 양국의 화합을 위해 한국 진도문화원과 일본 교토평화회가 마련한 국제 학술 행사가 이달 23~24일 개최됩니다. 23일에는 진도군청 대회의실에서 진도와 왜덕산, 명량해전 등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24일에는 왜덕산 위령제가 열립니다.

학술회의에서는 '전쟁 유산으로서의 진도 왜덕산과 교토 이총: 공양과 덕의 비교문화론'(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 '전쟁과 진도 사람들의 특성'(이토 아비토 일본 도쿄대학 교수), '교토 귀 무덤을 비롯한 일본의 조선인 귀(코) 무덤'(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 '교토 귀무덤 위령제를 통한 세계 평화운동'(아마기 나오토 교토평화회 대표) 등의 발제가 진행됩니다. 발표 및 토론이 끝난 뒤에는 진도문화원과 교토평화회 간 '왜덕산 사람들의 교토 귀(코) 무덤 평화제 공동 추진 MOU(양해각서)' 체결식이 열립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작년 11월 8일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열린 ‘조선인 귀 무덤(이총)’ 진혼제에 참석, 부인과 함께 참배하는 모습. (사진 출처=연합뉴스)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작년 11월 8일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열린 ‘조선인 귀 무덤(이총)’ 진혼제에 참석, 부인과 함께 참배하는 모습. (사진 출처=연합뉴스)

위령제는 헌향(獻香)과 헌다례(獻茶禮) 등으로 진행되며 하토야마 전 총리의 추도사를 비롯, 김희수 진도군수와 외교부 및 전라남도 관계자의 기념사가 이어집니다.

앞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작년 11월 8일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열린 '조선인 귀 무덤(이총)' 진혼제에 참석, 헌향·참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가해자 측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순순히 사죄하는 마음을 계속 가져야만 한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유재란 때 희생된 조선인 1천여 명의 귀가 묻혀 있는 이곳은 한동안 방치돼 있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에 의해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200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왜장 구루시마 수군의 후손인 일본인과 학계 인사 등이 왜덕산을 참배한 모습. (사진 출처=진도문화원 제공)200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왜장 구루시마 수군의 후손인 일본인과 학계 인사 등이 왜덕산을 참배한 모습. (사진 출처=진도문화원 제공)

■ 진도문화원장 "위령제에 日 총리 참석 처음…양국 화합 계기 됐으면"

해발 150m의 왜덕산에는 병졸 무덤뿐 아니라 장수의 묘도 조성돼 있는데요. 2002년 첫 발견 이후 왜덕산에 묻힌 왜군 후손 일본인들이 종종 방한, 내동마을에 성금을 전하는 등 조상을 잘 돌봐준 진도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고 합니다.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왜덕산 말고도 울돌목 인근에 왜군을 묻어준 무덤들이 더 있을 것"이라며 "현재 명량대첩 당시 이야기를 전해줄 어르신들이 많이 남아 계시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진도군 내 다른 동네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왜덕산 위령제에 전직 일본 총리가 참석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특히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국 과거사에 대해 반성을 촉구해왔고, 한일 선린 외교를 위해서도 힘써온 인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번 행사가 양국 화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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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량대첩 왜군 시신 거둬준 그곳…前 일본 총리 찾는다
    • 입력 2022-09-20 09:11:17
    취재K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에는 1597년 명량대첩 당시 전사한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 수군들의 시신을 묻어준 ‘왜덕산’이라는 곳이 있다. ‘조선이 왜에 덕을 베풀다’는 뜻이다. (사진 출처=영화 ‘명량’ 스틸컷 캡처)
■ 시신 한 구씩 봉분 쌓아…'조선이 왜에 덕을 베풀다'

1597년 선조 30년, 강화(講和) 교섭이 결렬되자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른바 '정유재란(丁酉再亂)'의 발발. 그해 9월 왜장(倭將) 구루시마 미치후사(来島通総)가 이끄는 왜군 전함 330여 척이 전남 진도 앞바다로 진격합니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복귀한 이순신은 진도와 해남 반도 사이 좁은 해협인 '울돌목'에서 단 13척의 배로 왜군을 섬멸합니다. 임진왜란사의 3대 해전으로 불리는 '명량대첩(鳴梁大捷)'입니다.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에는 우리 조상들이 명량대첩에서 전사한 왜군 시신을 거두어 묻어준 곳이 있습니다. 왜덕산(倭德山), '조선이 왜에 덕을 베풀었다'는 뜻의 지명입니다.

정유재란 당시 진도군 주민들은 내동마을 오산만으로 흘러들어온 왜군 시신을 한 구씩 안장, 정성스레 봉분을 쌓고 무덤을 조성했습니다. 이후 산 일부는 밭으로 개간돼 현재 무덤 100여 기 중 50여 기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도 현지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 그들의 고국인 일본 열도 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고 전해집니다.

명량대첩 당시 전사한 왜군 시신을 안장한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 소재의 왜덕산 위치. (사진 출처=진도문화원 제공)
■ '조선인 귀 무덤' 참배한 하토야마 전 총리, 왜덕산으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오는 24일 이 왜덕산을 찾습니다. 이날 오전 10시에 열리는 '위령제(慰靈祭)'에서 추모사를 하기 위해섭니다.

한일 양국의 화합을 위해 한국 진도문화원과 일본 교토평화회가 마련한 국제 학술 행사가 이달 23~24일 개최됩니다. 23일에는 진도군청 대회의실에서 진도와 왜덕산, 명량해전 등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24일에는 왜덕산 위령제가 열립니다.

학술회의에서는 '전쟁 유산으로서의 진도 왜덕산과 교토 이총: 공양과 덕의 비교문화론'(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 '전쟁과 진도 사람들의 특성'(이토 아비토 일본 도쿄대학 교수), '교토 귀 무덤을 비롯한 일본의 조선인 귀(코) 무덤'(김문길 부산외대 명예교수), '교토 귀무덤 위령제를 통한 세계 평화운동'(아마기 나오토 교토평화회 대표) 등의 발제가 진행됩니다. 발표 및 토론이 끝난 뒤에는 진도문화원과 교토평화회 간 '왜덕산 사람들의 교토 귀(코) 무덤 평화제 공동 추진 MOU(양해각서)' 체결식이 열립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작년 11월 8일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열린 ‘조선인 귀 무덤(이총)’ 진혼제에 참석, 부인과 함께 참배하는 모습. (사진 출처=연합뉴스)
위령제는 헌향(獻香)과 헌다례(獻茶禮) 등으로 진행되며 하토야마 전 총리의 추도사를 비롯, 김희수 진도군수와 외교부 및 전라남도 관계자의 기념사가 이어집니다.

앞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작년 11월 8일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에서 열린 '조선인 귀 무덤(이총)' 진혼제에 참석, 헌향·참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가해자 측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순순히 사죄하는 마음을 계속 가져야만 한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유재란 때 희생된 조선인 1천여 명의 귀가 묻혀 있는 이곳은 한동안 방치돼 있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에 의해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200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왜장 구루시마 수군의 후손인 일본인과 학계 인사 등이 왜덕산을 참배한 모습. (사진 출처=진도문화원 제공)
■ 진도문화원장 "위령제에 日 총리 참석 처음…양국 화합 계기 됐으면"

해발 150m의 왜덕산에는 병졸 무덤뿐 아니라 장수의 묘도 조성돼 있는데요. 2002년 첫 발견 이후 왜덕산에 묻힌 왜군 후손 일본인들이 종종 방한, 내동마을에 성금을 전하는 등 조상을 잘 돌봐준 진도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고 합니다.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왜덕산 말고도 울돌목 인근에 왜군을 묻어준 무덤들이 더 있을 것"이라며 "현재 명량대첩 당시 이야기를 전해줄 어르신들이 많이 남아 계시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진도군 내 다른 동네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왜덕산 위령제에 전직 일본 총리가 참석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특히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국 과거사에 대해 반성을 촉구해왔고, 한일 선린 외교를 위해서도 힘써온 인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번 행사가 양국 화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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