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끝판왕”…노조 운영비, 어디까지 써봤니?

입력 2022.09.20 (14:1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8월 16일 ‘KBS 9’ 보도 화면8월 16일 ‘KBS 9’ 보도 화면

지난달 KBS에서 전해드린 '한국연합건설산업노조' 위원장 이 모 씨의 횡령 의혹. 최근에는 노조 위원장의 자금줄이 된 이른바 '단협비' 문제점까지 짚어드렸는데요. 취재진이 따져보니 횡령으로 의심되는 금액만 최소 15억 원에 달했고, 사용처 역시 기가 막혔습니다.

■아파트 구매는 기본…가족 건물도 노조 돈으로

이 씨는 서울 부동산에 특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KBS가 지적한 횡령 추정 금액 절반 이상이 부동산 투자에 집중됐습니다.

아래 사진은 서울 한강 변에 위치한 아파트입니다.


2020년 말, 전용 면적 143㎡의 이 아파트 한 채가 17억 8천만 원에 거래됩니다. 계약 당사자는 이 씨와 그의 부인. 확인 결과 이 씨는 아파트 잔금을 치르는 날 노조 통장에서 4억 2천만 원을 빼서 아파트 구매비용으로 썼습니다.

이 씨는 가족 명의로 건물을 살 때도 노조 돈을 끌어다가 썼습니다. 이 씨 부인이 지난해 산 서울 중곡동에 위치한 5층짜리 빌딩 역시 매입 과정에 노조 운영비 2억 원이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해당 건물엔 위원장이 이끄는 노조가 입주했습니다. 노조 측은 위원장 부인에게 월세 보증금 명목으로 1억 원을 넘게 지급했고, 매달 월세로만 800여만 원씩 내고 있었습니다.

■"유령직원까지 내세워 현금 횡령"

노조 상근자 급여 명부에선 곳곳에서 조작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취재 결과, 이 가운데 일부는 아예 채용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씨가 신뢰하는 직원의 지인이거나 가족이었습니다. 노조는 이런 '유령 직원'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줬고, 나중엔 퇴직금까지 지급했습니다. 그렇게 빼돌린 금액만 1억 원에 달합니다.

이 밖에도 이 씨는 주말에 골프장을 가거나 한우 식당 등을 갈 때도 어김없이 노조 돈을 가져다 썼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수억 원씩 빌려주기도 했는데, 이 역시 출처는 노조 운영비였습니다.

■'매년 회계 결산은 엉터리…회계 감사는 친형

노조는 조합비 등 통장으로 들어오는 수입과 지출에 대해 매년 예산·결산 자료를 기록하고, 대의원들의 결재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따져 보니 보고된 회계 자료는 숫자만 끼워 맞춘 엉터리 보고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수입이 60억 원이 들어왔다고 하면, 뺄 건 빼고, 대충 40억 원 들어왔다고 쓰는 식이죠. 어차피 대의원들도 위원장 측근들이라 뭐라고 하지도 않고요."
- 노조 회계 자료 담당 전 직원 증언

취재 과정에 노조 운영비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회계 감사 위원이 위원장의 친형인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횡령 추정 금액 대부분 건설사가 낸 '단협비'

이 씨가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 '연합건설산업노조'의 한 달 평균 운영비는 2억 5천만 원가량입니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건설사에 받는 '단체협약비'(단협비) 명목의 돈이었습니다.


'단협비'는 공사 현장에 '연합건설노조원'이 채용되면, 이들의 처우 등을 관리하는 노조 전임자에게 건설사가 주는 일종의 노조 활동비입니다.

문제는 노조원이 일하지 않은 건설현장에서도 '단협비'를 받아 냈다는 점입니다.

"위원장 측근으로 구성된 집행부가 매달 받아야 하는 '단협비' 할당을 정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갖은 방법으로 건설사를 괴롭혀 받아내는 거죠."
- 노조 '쟁의' 담당 직원 증언

'쟁의' 담당 직원은 공사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고용 촉구 집회' 대부분이 겉으로는 노조원을 채용해 줄 것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건설사를 압박해 '단협비'를 받아내기 위함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건설사 "건설노조 10여 곳이 돌아가면서 돈 뜯어"

'연합건설노조에 수천만 원 넘는 '단협비'를 뜯긴 한 건설사 대표는 "집회로 공사를 방해하고, 안전 문제를 꼬투리 잡아 여기저기 신고하는 탓에 노조가 해달라는 데로 해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연합건설노조' 측은 조합원이 채용되지 않은 현장에서 '단협비'를 받은 적은 없다며, KBS의 취재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다만, 집행부에서 파악하지 못한 일부 현장이 있을 수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도와준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이번 사안에 대해 "노조가 마치 위원장의 제국처럼 움직였다며, 사용처를 보면 '횡령 끝판왕'과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연합건설노조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거라며, 전방위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노조 운영비를 쥐락펴락하며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는 위원장 이 씨는 KBS 취재진 연락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측근을 통해 대부분 내부적으로 나름의 절차를 거쳐서 집행한 예산들이고, 문제가 된 금액은 추후 채워 넣었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횡령 끝판왕”…노조 운영비, 어디까지 써봤니?
    • 입력 2022-09-20 14:13:28
    취재K
8월 16일 ‘KBS 9’ 보도 화면
지난달 KBS에서 전해드린 '한국연합건설산업노조' 위원장 이 모 씨의 횡령 의혹. 최근에는 노조 위원장의 자금줄이 된 이른바 '단협비' 문제점까지 짚어드렸는데요. 취재진이 따져보니 횡령으로 의심되는 금액만 최소 15억 원에 달했고, 사용처 역시 기가 막혔습니다.

■아파트 구매는 기본…가족 건물도 노조 돈으로

이 씨는 서울 부동산에 특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KBS가 지적한 횡령 추정 금액 절반 이상이 부동산 투자에 집중됐습니다.

아래 사진은 서울 한강 변에 위치한 아파트입니다.


2020년 말, 전용 면적 143㎡의 이 아파트 한 채가 17억 8천만 원에 거래됩니다. 계약 당사자는 이 씨와 그의 부인. 확인 결과 이 씨는 아파트 잔금을 치르는 날 노조 통장에서 4억 2천만 원을 빼서 아파트 구매비용으로 썼습니다.

이 씨는 가족 명의로 건물을 살 때도 노조 돈을 끌어다가 썼습니다. 이 씨 부인이 지난해 산 서울 중곡동에 위치한 5층짜리 빌딩 역시 매입 과정에 노조 운영비 2억 원이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해당 건물엔 위원장이 이끄는 노조가 입주했습니다. 노조 측은 위원장 부인에게 월세 보증금 명목으로 1억 원을 넘게 지급했고, 매달 월세로만 800여만 원씩 내고 있었습니다.

■"유령직원까지 내세워 현금 횡령"

노조 상근자 급여 명부에선 곳곳에서 조작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취재 결과, 이 가운데 일부는 아예 채용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씨가 신뢰하는 직원의 지인이거나 가족이었습니다. 노조는 이런 '유령 직원'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줬고, 나중엔 퇴직금까지 지급했습니다. 그렇게 빼돌린 금액만 1억 원에 달합니다.

이 밖에도 이 씨는 주말에 골프장을 가거나 한우 식당 등을 갈 때도 어김없이 노조 돈을 가져다 썼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수억 원씩 빌려주기도 했는데, 이 역시 출처는 노조 운영비였습니다.

■'매년 회계 결산은 엉터리…회계 감사는 친형

노조는 조합비 등 통장으로 들어오는 수입과 지출에 대해 매년 예산·결산 자료를 기록하고, 대의원들의 결재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따져 보니 보고된 회계 자료는 숫자만 끼워 맞춘 엉터리 보고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수입이 60억 원이 들어왔다고 하면, 뺄 건 빼고, 대충 40억 원 들어왔다고 쓰는 식이죠. 어차피 대의원들도 위원장 측근들이라 뭐라고 하지도 않고요."
- 노조 회계 자료 담당 전 직원 증언

취재 과정에 노조 운영비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회계 감사 위원이 위원장의 친형인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횡령 추정 금액 대부분 건설사가 낸 '단협비'

이 씨가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 '연합건설산업노조'의 한 달 평균 운영비는 2억 5천만 원가량입니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건설사에 받는 '단체협약비'(단협비) 명목의 돈이었습니다.


'단협비'는 공사 현장에 '연합건설노조원'이 채용되면, 이들의 처우 등을 관리하는 노조 전임자에게 건설사가 주는 일종의 노조 활동비입니다.

문제는 노조원이 일하지 않은 건설현장에서도 '단협비'를 받아 냈다는 점입니다.

"위원장 측근으로 구성된 집행부가 매달 받아야 하는 '단협비' 할당을 정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갖은 방법으로 건설사를 괴롭혀 받아내는 거죠."
- 노조 '쟁의' 담당 직원 증언

'쟁의' 담당 직원은 공사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고용 촉구 집회' 대부분이 겉으로는 노조원을 채용해 줄 것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건설사를 압박해 '단협비'를 받아내기 위함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건설사 "건설노조 10여 곳이 돌아가면서 돈 뜯어"

'연합건설노조에 수천만 원 넘는 '단협비'를 뜯긴 한 건설사 대표는 "집회로 공사를 방해하고, 안전 문제를 꼬투리 잡아 여기저기 신고하는 탓에 노조가 해달라는 데로 해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연합건설노조' 측은 조합원이 채용되지 않은 현장에서 '단협비'를 받은 적은 없다며, KBS의 취재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다만, 집행부에서 파악하지 못한 일부 현장이 있을 수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도와준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이번 사안에 대해 "노조가 마치 위원장의 제국처럼 움직였다며, 사용처를 보면 '횡령 끝판왕'과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연합건설노조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거라며, 전방위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노조 운영비를 쥐락펴락하며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는 위원장 이 씨는 KBS 취재진 연락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측근을 통해 대부분 내부적으로 나름의 절차를 거쳐서 집행한 예산들이고, 문제가 된 금액은 추후 채워 넣었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