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스토킹 대책…신당역 피해자는 왜 보호대상서 빠졌나?

입력 2022.09.21 (06: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14일, 여성 역무원 28살 A씨는 전 직장동료 31살 전주환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A씨가 스토킹 피해를 경찰에 호소했는데도, 경찰의 스토킹 범죄 대응책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그제(19일) KBS가 단독 보도했습니다. 스토킹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A씨는 왜 스토킹 피해자 보호 대상에서 ‘누락’된 걸까요? 어디서부터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그 결과가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졌는지 자세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난해 12월, 경찰 ‘스토킹 범죄 현장대응력 강화’ 대책 발표

지난해 11월에도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35살이었던 김병찬은 결별에 보복하려 4개월간 전 여자친구인 피해자를 스토킹했습니다. 피해자가 경찰에 스토킹 범죄로 자신을 신고하자 김병찬은 피해자 거주지를 찾아가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서울경찰청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스토킹 범죄 현장대응력 강화’ 대책입니다. 핵심은 모든 스토킹 사건에 대해 위험성을 분류해서 현장 대응을 하겠다는 겁니다.

이 단계는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주의’, ‘위기’, ‘심각’입니다. 세 가지 단계를 설정하기 위해선 ‘위험경보판단회의’를 매일 열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스토킹 사건이 전날 발생했습니다. 그러면 주무과장 주재로 매일 수사팀장, 담당 수사관, 스토킹 전담관, 피해자 전담관이 참석해서 ‘위험단계등급’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당역 피해자 A씨에 대한 회의는 언제 열렸고 결과는 어땠을까요?

■ "전주환의 경우 '위기 단계' 이상 발동 필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A씨에 대한 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따라서 위험 단계에 대한 판단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신당역 피해자 A씨는 전주환을 두 차례 고소했습니다. 첫 번째는 지난해 11월, 불법 촬영과 협박 혐의였습니다. 그런데도 스토킹이 끊이지 않자, 올해 1월 성범죄와 스토킹 혐의로 전주환을 재고소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경찰청이 스토킹 범죄 강력 대응책을 발표한 지 한 달만이었습니다. 경찰 발표대로라면, 전주환에 대해서는 ‘위기 단계' 이상이 발동돼야 했었습니다. '위기단계'는 스토킹 범죄가 1회 이상 있고, ①최근 5년 이내 신고·수사·범죄 경력이 2회 이상 있거나 ② 상해·폭행·주거침입 등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가 있는 경우 중 1개가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전주환은 이미 2018년에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과 지난 1월, A씨로부터 두 번 고소를 당했기 때문에 A씨 경우는 최소 '위기 단계' 이상에 해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왜 A씨는 회의 대상에서 '누락'됐을까?

그렇다면 왜 A씨는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위험경보판단회의 대상에서 '누락'됐을까요. 경찰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전주환이 피해자를 직접 찾아오지 않았으며, 문자 메시지만 보내는 등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 "문자 메시지 내용 또한 '합의해주세요', '미안합니다.' 등의 정중한 표현이 담긴 내용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첫 번째 고소 내용과 두 번째 고소 내용 또한 내용과 고소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사건 처리 결과를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결국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한 겁니다. 이에 따라 매일 열려야 하는 '위험경보판단회의' 에 A씨의 이름조차 올라가지 않은 겁니다.

■ '위기 단계'가 발동됐다면?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 전 ‘위기 단계’가 발동됐다면 어땠을까요? 지금의 참혹하고 안타까운 사고를 예방할 가능성은 커졌을 겁니다. 위기 단계에선 피해자에 대해 ‘긴급응급조치’나 ‘긴급신변보호’, ‘보호시설 인도’ 등 보호책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인 전주환에 대해선 현행범 체포 등 신병을 확보하고 즉시 입건하고 조사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잠정조치 1~3호를 신청할 수도 있고, 4호 신청도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1호 서면 경고, 2호 피해자·주거지 등 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 전기통신 이용 접근 금지, 4호 최대 한 달간 가해자 유치장 유치 또는 구치소 수감 등으로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제 조치들입니다.

■ "경찰 신변 보호 조치 중 재신고는 급증"

신당역 피해자 A씨는 전주환을 두 번 고소했습니다. 첫 고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위험을 느껴 재고소를 한 겁니다. 이렇게 스토킹 피해자의 경우 첫 신고 이후 다시 위험을 느껴 재신고를 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봉민(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의 신변 보호 중에 재신고를 하는 경우가 2018년(667건)에서 2021년(5,242건)으로 8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재신고를 받고 출동은 했지만, 현장에서 가해자가 이미 떠났거나 피해자의 안전을 확인했다는 이유 등으로 정식 수사 절차를 밟지 않고 ‘현장 조치’만으로 종결한 경우가 전체의 81%나 됐습니다. 형사 입건 등은 겨우 18%에 불과했습니다.

■ "피해자 전담 경찰관, 서울 내 일선 경찰서에 1~2명뿐"

수사 현장에선 결국 ‘인력 부족’을 호소합니다. 쏟아지는 업무에 인력은 부족한 상황에 ‘여성·청소년 수사과는 기피 부서'라는 말도 경찰 내에선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서울경찰청 내 각 경찰서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서울청 내 일선 경찰서에 피해자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은 모두 52명이었습니다. 서울청 내 일선 경찰서는 31개로 경찰서마다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의 전담 경찰관만 있는 겁니다. 특히나, 피해자 A씨를 담당했던 서울 서부경찰서 내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은 1명뿐입니다. 지난해 서울에만 신변 보호 조치를 진행한 건수는 5,391건이 되고, 올해 1월부터 8월까지만 4,443건이 됩니다. 사실상 일선 경찰서의 1~2명의 전담 경찰관이 피해자들의 사각지대를 살펴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당역 피해자 A씨 발생 이후 경찰은 또 한 번 대응책을 어제(19일) 내놓았습니다. 전국의 스토킹 사건을 전수조사하겠다는 겁니다. 대응책을 발표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엔 메뉴얼을 얼마나 지키는지가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강력 대응책 메뉴얼 절차만이라도 따랐더라면, A씨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턱없이 부족한 스토킹 범죄와 관련된 대응 인력 수급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래픽 제작 : 김서린
대문사진 제작 : 원소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말뿐인 스토킹 대책…신당역 피해자는 왜 보호대상서 빠졌나?
    • 입력 2022-09-21 06:00:07
    취재K

지난 14일, 여성 역무원 28살 A씨는 전 직장동료 31살 전주환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A씨가 스토킹 피해를 경찰에 호소했는데도, 경찰의 스토킹 범죄 대응책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그제(19일) KBS가 단독 보도했습니다. 스토킹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A씨는 왜 스토킹 피해자 보호 대상에서 ‘누락’된 걸까요? 어디서부터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그 결과가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졌는지 자세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난해 12월, 경찰 ‘스토킹 범죄 현장대응력 강화’ 대책 발표

지난해 11월에도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35살이었던 김병찬은 결별에 보복하려 4개월간 전 여자친구인 피해자를 스토킹했습니다. 피해자가 경찰에 스토킹 범죄로 자신을 신고하자 김병찬은 피해자 거주지를 찾아가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서울경찰청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스토킹 범죄 현장대응력 강화’ 대책입니다. 핵심은 모든 스토킹 사건에 대해 위험성을 분류해서 현장 대응을 하겠다는 겁니다.

이 단계는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주의’, ‘위기’, ‘심각’입니다. 세 가지 단계를 설정하기 위해선 ‘위험경보판단회의’를 매일 열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스토킹 사건이 전날 발생했습니다. 그러면 주무과장 주재로 매일 수사팀장, 담당 수사관, 스토킹 전담관, 피해자 전담관이 참석해서 ‘위험단계등급’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당역 피해자 A씨에 대한 회의는 언제 열렸고 결과는 어땠을까요?

■ "전주환의 경우 '위기 단계' 이상 발동 필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A씨에 대한 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따라서 위험 단계에 대한 판단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신당역 피해자 A씨는 전주환을 두 차례 고소했습니다. 첫 번째는 지난해 11월, 불법 촬영과 협박 혐의였습니다. 그런데도 스토킹이 끊이지 않자, 올해 1월 성범죄와 스토킹 혐의로 전주환을 재고소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경찰청이 스토킹 범죄 강력 대응책을 발표한 지 한 달만이었습니다. 경찰 발표대로라면, 전주환에 대해서는 ‘위기 단계' 이상이 발동돼야 했었습니다. '위기단계'는 스토킹 범죄가 1회 이상 있고, ①최근 5년 이내 신고·수사·범죄 경력이 2회 이상 있거나 ② 상해·폭행·주거침입 등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가 있는 경우 중 1개가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전주환은 이미 2018년에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과 지난 1월, A씨로부터 두 번 고소를 당했기 때문에 A씨 경우는 최소 '위기 단계' 이상에 해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왜 A씨는 회의 대상에서 '누락'됐을까?

그렇다면 왜 A씨는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위험경보판단회의 대상에서 '누락'됐을까요. 경찰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전주환이 피해자를 직접 찾아오지 않았으며, 문자 메시지만 보내는 등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 "문자 메시지 내용 또한 '합의해주세요', '미안합니다.' 등의 정중한 표현이 담긴 내용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첫 번째 고소 내용과 두 번째 고소 내용 또한 내용과 고소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사건 처리 결과를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결국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한 겁니다. 이에 따라 매일 열려야 하는 '위험경보판단회의' 에 A씨의 이름조차 올라가지 않은 겁니다.

■ '위기 단계'가 발동됐다면?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 전 ‘위기 단계’가 발동됐다면 어땠을까요? 지금의 참혹하고 안타까운 사고를 예방할 가능성은 커졌을 겁니다. 위기 단계에선 피해자에 대해 ‘긴급응급조치’나 ‘긴급신변보호’, ‘보호시설 인도’ 등 보호책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인 전주환에 대해선 현행범 체포 등 신병을 확보하고 즉시 입건하고 조사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잠정조치 1~3호를 신청할 수도 있고, 4호 신청도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1호 서면 경고, 2호 피해자·주거지 등 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 전기통신 이용 접근 금지, 4호 최대 한 달간 가해자 유치장 유치 또는 구치소 수감 등으로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제 조치들입니다.

■ "경찰 신변 보호 조치 중 재신고는 급증"

신당역 피해자 A씨는 전주환을 두 번 고소했습니다. 첫 고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위험을 느껴 재고소를 한 겁니다. 이렇게 스토킹 피해자의 경우 첫 신고 이후 다시 위험을 느껴 재신고를 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봉민(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의 신변 보호 중에 재신고를 하는 경우가 2018년(667건)에서 2021년(5,242건)으로 8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재신고를 받고 출동은 했지만, 현장에서 가해자가 이미 떠났거나 피해자의 안전을 확인했다는 이유 등으로 정식 수사 절차를 밟지 않고 ‘현장 조치’만으로 종결한 경우가 전체의 81%나 됐습니다. 형사 입건 등은 겨우 18%에 불과했습니다.

■ "피해자 전담 경찰관, 서울 내 일선 경찰서에 1~2명뿐"

수사 현장에선 결국 ‘인력 부족’을 호소합니다. 쏟아지는 업무에 인력은 부족한 상황에 ‘여성·청소년 수사과는 기피 부서'라는 말도 경찰 내에선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서울경찰청 내 각 경찰서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서울청 내 일선 경찰서에 피해자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은 모두 52명이었습니다. 서울청 내 일선 경찰서는 31개로 경찰서마다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의 전담 경찰관만 있는 겁니다. 특히나, 피해자 A씨를 담당했던 서울 서부경찰서 내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은 1명뿐입니다. 지난해 서울에만 신변 보호 조치를 진행한 건수는 5,391건이 되고, 올해 1월부터 8월까지만 4,443건이 됩니다. 사실상 일선 경찰서의 1~2명의 전담 경찰관이 피해자들의 사각지대를 살펴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당역 피해자 A씨 발생 이후 경찰은 또 한 번 대응책을 어제(19일) 내놓았습니다. 전국의 스토킹 사건을 전수조사하겠다는 겁니다. 대응책을 발표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엔 메뉴얼을 얼마나 지키는지가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강력 대응책 메뉴얼 절차만이라도 따랐더라면, A씨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턱없이 부족한 스토킹 범죄와 관련된 대응 인력 수급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래픽 제작 : 김서린
대문사진 제작 : 원소민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