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환율 1400 고지를 사수하라”

입력 2022.09.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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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이 무섭게 떨어집니다. 13년 만의 최저입니다. 역외시장에선 우리돈 원화(선물)를 둘러싼 투전판이 성행 하나 봅니다. 밤마다 글로벌 큰손들이 들어와 ‘원화 하락’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원래 외환시장이 ‘돈 놓고 돈 먹기’ 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1달러=1,400원이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외환당국이 뒤에서 손을 쓰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은 알리고 싶지만 알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마지노선이 누가 봐도 ‘1,400원’입니다. 우리 외환당국은 ‘1.400원’ 고지를 사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밤 열리는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그 승패의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원화 투전판이 열렸습니다

시장에서 배추 출하가 늘면 배춧값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각 나라의 화폐가치는 이렇게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서울외환시장’이라는 온라인공간에서 누군가 달러나 원화를 사고파는 수요로 결정됩니다. 그러니까 대표선수들이 뭉칫돈을 들고 와 ‘서울외환시장’이라는 온라인 프로그램안에서 각 화폐에 베팅한 결과로 ‘돈의 값(환율)’이 정해집니다.

(지금처럼 우리 원화가치가 너무 떨어지면 ‘한국 외환당국’이라는 선수가 ‘외환보유고’라는 판돈을 들고 몰래 이 도박판에 뛰어들어, 미리 준비해둔 Dollar를 왕창 팔고 ‘Won’을 마구 사들이면서 우리돈의 가치를 지키는 겁니다)

유로화나 파운드화 등 자존심 강한 화폐를 빼면, 우리 돈 원화를 비롯해 대부분의 화폐는 달러의 교환비율로 가격이 결정됩니다. 달러가치가 기준점입니다. 예를들어 제가 일하는 방콕에서는 바트화(THB)를 쓰는데, 우리 돈 원화와 바트화의 환율은 ‘우리돈과 달러’ 對 ‘바트화와 달러’의 교환 비율로 결정됩니다. 최근 바트화 대비 우리 원화의 가격이 떨어졌는데, 이는 달러화에 대한 우리돈의 가격이 달러화에 대한 바트화의 가격보다 더 내렸기 때문입니다.

2.왜 이렇게 원화를 내다 팔까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이 원화=한국의 경제=대한민국의 미래 가치가 내릴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본 경제도 영국 경제도 '장기적으로 별 볼일 없겠다...’ 싶어서 엔화나 파운드화를 팔고 자꾸 달러를 사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우리는 ‘낯선’ 무역적자를 경험중입니다. 지구별에서 연간 1조 달러 이상 무역을 하는 나라는 미국 중국 한국 등 10개 나라뿐입니다. 그중 흑자를 보는 나라는 중국 독일 한국 정도인데, 심지어 중국한테 흑자를 보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 무역대국 한국의 무역수지가 그런데 6개월 연속 적자입니다. 그러니 투자자들이 원화를 잔뜩 내다 팔고 달러를 챙겨갑니다.

다른 이유도 많습니다. 한국 교역의 1/4을 차지하는 중국이 좀처럼 코로나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수출도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가스밸브를 잠가 버릴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꾸 지구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무역국가’ 한국은 장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자꾸 원화를 내다 팝니다.

특히 세계 각국이 서둘러 금리를 올리면서 글로벌 경기침체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지구인들이 조만간 지갑을 닫는다면, 가장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 순서대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원화를 내다팝니다.

무엇보다 연준(FED)이 미친 듯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미 시장참여자의 상상 영역을 벗어난 수준입니다. 우리 한국은행도 따라 기준금리를 올려야하는데, 가계부채가 많아서 이게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2.50%로 같지만, 오늘밤 연준이 또 0.75%P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격차는 또 많이 벌어집니다. 돈은 원래 이자를 더 많이 준다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미국의 이자율이 올라갈수록 달러는 AMERICA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또 원화를 내다팝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우리 돈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준 것은 우리 기업들입니다. 해외에서 달러를 주야장천 벌어온 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로 바꿉니다.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수백억 달러가 매년 이런 식으로 서울 외환시장으로 돌아와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입니다. 그렇게 달러와 원화가 수급의 균형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렇게 달러값이 계속 오르면 삼성전자는 아마 “일단 달러를 팔지 말고 갖고 있어볼까?” 이렇게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사겠다는 수요가 더 줄어듭니다. (도요타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로 잘 교환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요즘은 한국인들의 외화 자산투자도 크게 늘어서 달러 수요가 더 높아졌습니다 (테슬라 주식을 우리돈 원화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주요 6개 나라 통화대비 달러값을 알려주는 달러 인덱스. 달러값이 이들 6개 나라 통화 대비 20년만에 최고치로 치솟고 있다. 특히 엔화와 파운드화 그리고 원화가 유독 맥을 못추고 있다. 사진 네이버 달러 인덱스 캡처주요 6개 나라 통화대비 달러값을 알려주는 달러 인덱스. 달러값이 이들 6개 나라 통화 대비 20년만에 최고치로 치솟고 있다. 특히 엔화와 파운드화 그리고 원화가 유독 맥을 못추고 있다. 사진 네이버 달러 인덱스 캡처

3.투기세력의 귀환

이 와중에 환투기세력이 몰려들었습니다. 지금처럼 금리가 급변하고 자산시장이 요동칠 때 이리떼처럼 찾아옵니다. 우리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수많은 대내외 변수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환차익을 노린 투기꾼들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너도 나도 원화를 팔겠다는 투기적 쏠림이 원화가치 하락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아파트 값이 갑자기 오르는 가장 큰 이유도 공급량 등 여러 기술적 이유가 있지만, 사실은 너도나도 아파트를 사겠다는 투기적 쏠림이 진짜 원인인 것처럼...)

한국이나 호주 같은 적당히 크고 적당히 안전한 외환시장은 유독 투기세력들이 몰립니다. 쉽게 말해 만만합니다. 정부는 특히 최근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 투기꾼들이 잔뜩 몰려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서울외환시장이 아닌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역외시장에서 우리 ‘원화선물’을 사고팝니다. 우리 동네가 아닌 남의 동네에서 미래의 원화가치가 거래되는 겁니다.

이렇게 밤사이 거래된 원화선물 가격은 한국시간 아침 9시 서울외환시장의 문이 열리면 고스란히 우리 원화(현물) 가격에 반영됩니다. 경제부총리가 나서 공개적으로 이런 역외시장의 투기적 수요를 경고했지만, 투기꾼들이 남의 동네(역외시장)에서 우리 원화선물을 사고파는데... 딱히 대책은 없습니다.

4.한국 외환당국의 개입(이라고 쓰고, ‘한국 외환당국의 개입 가능성’이라고 읽는다)

이쯤 되니 우리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1달러=1,400원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난 15일엔 환율이 장중 1,397원90전까지 올랐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7억 달러 규모의 달러를 팔아치웠습니다. 누가 봐도 우리 외환당국(기획재정부+한국은행)이 뛰어든 것입니다. 사실상 전투 개시입니다.

우리는 변동환율제 국가입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안됩니다. 맘대로 자국 화폐가치를 조정하면 안됩니다. 특히 미 재무부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미 재무부에 불려가 혼쭐이 납니다(미국 정부 입찰 참여도 못합니다). 그래서 흔적이 남지 않게 몰래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둔 외환보유고(4,300억 달러 정도) 통장을 들고 가서, 달러를 팔고 원화를 마구 사들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환투기세력에게 “한국 정부가 1,400원 이상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줍니다(몰래 작전을 펼쳐야하는데, 누군가에겐 작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외환당국은 사흘전에는 서울외환시장에 참여하는 외국환은행들에게 달러 매수·매도 현황을 1시간 마다 보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실상 노골적인 개입입니다. 외환당국이 ‘이쯤 되면 이판사판이다’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대구 부산 다 뚫리듯, 1,400원이 무너지면 원화 가치가 어디까지 밀릴지 모릅니다.

환율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가 있지만, 오늘밤 미국의 기준금리 결정이후 투자자들이 어떤 포지션을 잡을 지가 관심입니다(사실 경제지표는 숫자보다 해석이 관건입니다). 우리 외환당국은 외환보유고 곳간을 활짝 열고 참전중입니다. 정부의 외환 딜링 룸 한 켠에선 지금 피말리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총 대신 마우스를 쥐고 있을 뿐입니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데, 외환시장은 한나라의 경제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전설의 투기꾼인 조지 소로스(퀀텀펀드)가 위안화를 공격했습니다. 역외시장에서 위안화를 천문학적으로 공매도하면서 값을 끌어내렸습니다. “소로스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지만, 실패할 것”이라는 인민일보의 보도가 나가고, 며칠 뒤 중국 정부가 방어에 나섰습니다. 결국 소로스의 패배로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이 아껴둔 외환보유고 4천억 달러가 탕진됐습니다.

우리 정부 곳간의 외환보유고가 지금 딱 4천억 달러 정도 남아있습니다.

한국은행 곳간의 외환보유고에는 현금성자산(주로 달러)이  5% 정도밖에 없다. 당장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사들일 탄환(현금)이 5%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입장에선 천문학적인 외환보유고를 운용하면서 이자도 안붙는 현금만 쥐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미국채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통해 매년 이자등 운용수익을 추구한다.  지난해에는 미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프 한국은행 홈페이지 캡처한국은행 곳간의 외환보유고에는 현금성자산(주로 달러)이 5% 정도밖에 없다. 당장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사들일 탄환(현금)이 5%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입장에선 천문학적인 외환보유고를 운용하면서 이자도 안붙는 현금만 쥐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미국채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통해 매년 이자등 운용수익을 추구한다. 지난해에는 미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프 한국은행 홈페이지 캡처

5. 원화는 물론 엔화와 유로화, 파운드화까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원하지 않는다는 ‘킹 달러’의 시대, 스리랑카에서 파키스탄과 아르헨티나까지... 달러 유출을 막지 못한 나라들이 하나둘 쓰러집니다.

지구인들의 공통 화폐를 발행하는 미국이 오늘밤 또 금리를 크게 올립니다. 높은 금리는 진공청소기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를 빨아들입니다. 달러값은 또 얼마나 요동칠까요. 우리 원화는 안녕할 수 있을까요. 연준(FED)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우리 시각으로 내일 새벽 3시쯤(22일 새벽 3시) 열립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얼추 답이 나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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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환율 1400 고지를 사수하라”
    • 입력 2022-09-21 06:00:13
    특파원 리포트
원화값이 무섭게 떨어집니다. 13년 만의 최저입니다. 역외시장에선 우리돈 원화(선물)를 둘러싼 투전판이 성행 하나 봅니다. 밤마다 글로벌 큰손들이 들어와 ‘원화 하락’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원래 외환시장이 ‘돈 놓고 돈 먹기’ 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1달러=1,400원이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외환당국이 뒤에서 손을 쓰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은 알리고 싶지만 알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마지노선이 누가 봐도 ‘1,400원’입니다. 우리 외환당국은 ‘1.400원’ 고지를 사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밤 열리는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그 승패의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원화 투전판이 열렸습니다

시장에서 배추 출하가 늘면 배춧값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각 나라의 화폐가치는 이렇게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서울외환시장’이라는 온라인공간에서 누군가 달러나 원화를 사고파는 수요로 결정됩니다. 그러니까 대표선수들이 뭉칫돈을 들고 와 ‘서울외환시장’이라는 온라인 프로그램안에서 각 화폐에 베팅한 결과로 ‘돈의 값(환율)’이 정해집니다.

(지금처럼 우리 원화가치가 너무 떨어지면 ‘한국 외환당국’이라는 선수가 ‘외환보유고’라는 판돈을 들고 몰래 이 도박판에 뛰어들어, 미리 준비해둔 Dollar를 왕창 팔고 ‘Won’을 마구 사들이면서 우리돈의 가치를 지키는 겁니다)

유로화나 파운드화 등 자존심 강한 화폐를 빼면, 우리 돈 원화를 비롯해 대부분의 화폐는 달러의 교환비율로 가격이 결정됩니다. 달러가치가 기준점입니다. 예를들어 제가 일하는 방콕에서는 바트화(THB)를 쓰는데, 우리 돈 원화와 바트화의 환율은 ‘우리돈과 달러’ 對 ‘바트화와 달러’의 교환 비율로 결정됩니다. 최근 바트화 대비 우리 원화의 가격이 떨어졌는데, 이는 달러화에 대한 우리돈의 가격이 달러화에 대한 바트화의 가격보다 더 내렸기 때문입니다.

2.왜 이렇게 원화를 내다 팔까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이 원화=한국의 경제=대한민국의 미래 가치가 내릴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본 경제도 영국 경제도 '장기적으로 별 볼일 없겠다...’ 싶어서 엔화나 파운드화를 팔고 자꾸 달러를 사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우리는 ‘낯선’ 무역적자를 경험중입니다. 지구별에서 연간 1조 달러 이상 무역을 하는 나라는 미국 중국 한국 등 10개 나라뿐입니다. 그중 흑자를 보는 나라는 중국 독일 한국 정도인데, 심지어 중국한테 흑자를 보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 무역대국 한국의 무역수지가 그런데 6개월 연속 적자입니다. 그러니 투자자들이 원화를 잔뜩 내다 팔고 달러를 챙겨갑니다.

다른 이유도 많습니다. 한국 교역의 1/4을 차지하는 중국이 좀처럼 코로나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수출도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가스밸브를 잠가 버릴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꾸 지구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무역국가’ 한국은 장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자꾸 원화를 내다 팝니다.

특히 세계 각국이 서둘러 금리를 올리면서 글로벌 경기침체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지구인들이 조만간 지갑을 닫는다면, 가장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 순서대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원화를 내다팝니다.

무엇보다 연준(FED)이 미친 듯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미 시장참여자의 상상 영역을 벗어난 수준입니다. 우리 한국은행도 따라 기준금리를 올려야하는데, 가계부채가 많아서 이게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2.50%로 같지만, 오늘밤 연준이 또 0.75%P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격차는 또 많이 벌어집니다. 돈은 원래 이자를 더 많이 준다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미국의 이자율이 올라갈수록 달러는 AMERICA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또 원화를 내다팝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우리 돈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준 것은 우리 기업들입니다. 해외에서 달러를 주야장천 벌어온 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로 바꿉니다.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수백억 달러가 매년 이런 식으로 서울 외환시장으로 돌아와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입니다. 그렇게 달러와 원화가 수급의 균형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렇게 달러값이 계속 오르면 삼성전자는 아마 “일단 달러를 팔지 말고 갖고 있어볼까?” 이렇게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사겠다는 수요가 더 줄어듭니다. (도요타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로 잘 교환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요즘은 한국인들의 외화 자산투자도 크게 늘어서 달러 수요가 더 높아졌습니다 (테슬라 주식을 우리돈 원화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주요 6개 나라 통화대비 달러값을 알려주는 달러 인덱스. 달러값이 이들 6개 나라 통화 대비 20년만에 최고치로 치솟고 있다. 특히 엔화와 파운드화 그리고 원화가 유독 맥을 못추고 있다. 사진 네이버 달러 인덱스 캡처
3.투기세력의 귀환

이 와중에 환투기세력이 몰려들었습니다. 지금처럼 금리가 급변하고 자산시장이 요동칠 때 이리떼처럼 찾아옵니다. 우리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수많은 대내외 변수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환차익을 노린 투기꾼들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너도 나도 원화를 팔겠다는 투기적 쏠림이 원화가치 하락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아파트 값이 갑자기 오르는 가장 큰 이유도 공급량 등 여러 기술적 이유가 있지만, 사실은 너도나도 아파트를 사겠다는 투기적 쏠림이 진짜 원인인 것처럼...)

한국이나 호주 같은 적당히 크고 적당히 안전한 외환시장은 유독 투기세력들이 몰립니다. 쉽게 말해 만만합니다. 정부는 특히 최근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 투기꾼들이 잔뜩 몰려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서울외환시장이 아닌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역외시장에서 우리 ‘원화선물’을 사고팝니다. 우리 동네가 아닌 남의 동네에서 미래의 원화가치가 거래되는 겁니다.

이렇게 밤사이 거래된 원화선물 가격은 한국시간 아침 9시 서울외환시장의 문이 열리면 고스란히 우리 원화(현물) 가격에 반영됩니다. 경제부총리가 나서 공개적으로 이런 역외시장의 투기적 수요를 경고했지만, 투기꾼들이 남의 동네(역외시장)에서 우리 원화선물을 사고파는데... 딱히 대책은 없습니다.

4.한국 외환당국의 개입(이라고 쓰고, ‘한국 외환당국의 개입 가능성’이라고 읽는다)

이쯤 되니 우리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1달러=1,400원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난 15일엔 환율이 장중 1,397원90전까지 올랐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7억 달러 규모의 달러를 팔아치웠습니다. 누가 봐도 우리 외환당국(기획재정부+한국은행)이 뛰어든 것입니다. 사실상 전투 개시입니다.

우리는 변동환율제 국가입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안됩니다. 맘대로 자국 화폐가치를 조정하면 안됩니다. 특히 미 재무부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미 재무부에 불려가 혼쭐이 납니다(미국 정부 입찰 참여도 못합니다). 그래서 흔적이 남지 않게 몰래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둔 외환보유고(4,300억 달러 정도) 통장을 들고 가서, 달러를 팔고 원화를 마구 사들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환투기세력에게 “한국 정부가 1,400원 이상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줍니다(몰래 작전을 펼쳐야하는데, 누군가에겐 작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외환당국은 사흘전에는 서울외환시장에 참여하는 외국환은행들에게 달러 매수·매도 현황을 1시간 마다 보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실상 노골적인 개입입니다. 외환당국이 ‘이쯤 되면 이판사판이다’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대구 부산 다 뚫리듯, 1,400원이 무너지면 원화 가치가 어디까지 밀릴지 모릅니다.

환율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가 있지만, 오늘밤 미국의 기준금리 결정이후 투자자들이 어떤 포지션을 잡을 지가 관심입니다(사실 경제지표는 숫자보다 해석이 관건입니다). 우리 외환당국은 외환보유고 곳간을 활짝 열고 참전중입니다. 정부의 외환 딜링 룸 한 켠에선 지금 피말리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총 대신 마우스를 쥐고 있을 뿐입니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데, 외환시장은 한나라의 경제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전설의 투기꾼인 조지 소로스(퀀텀펀드)가 위안화를 공격했습니다. 역외시장에서 위안화를 천문학적으로 공매도하면서 값을 끌어내렸습니다. “소로스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지만, 실패할 것”이라는 인민일보의 보도가 나가고, 며칠 뒤 중국 정부가 방어에 나섰습니다. 결국 소로스의 패배로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이 아껴둔 외환보유고 4천억 달러가 탕진됐습니다.

우리 정부 곳간의 외환보유고가 지금 딱 4천억 달러 정도 남아있습니다.

한국은행 곳간의 외환보유고에는 현금성자산(주로 달러)이  5% 정도밖에 없다. 당장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사들일 탄환(현금)이 5%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입장에선 천문학적인 외환보유고를 운용하면서 이자도 안붙는 현금만 쥐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미국채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통해 매년 이자등 운용수익을 추구한다.  지난해에는 미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를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프 한국은행 홈페이지 캡처
5. 원화는 물론 엔화와 유로화, 파운드화까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원하지 않는다는 ‘킹 달러’의 시대, 스리랑카에서 파키스탄과 아르헨티나까지... 달러 유출을 막지 못한 나라들이 하나둘 쓰러집니다.

지구인들의 공통 화폐를 발행하는 미국이 오늘밤 또 금리를 크게 올립니다. 높은 금리는 진공청소기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를 빨아들입니다. 달러값은 또 얼마나 요동칠까요. 우리 원화는 안녕할 수 있을까요. 연준(FED)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우리 시각으로 내일 새벽 3시쯤(22일 새벽 3시) 열립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얼추 답이 나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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