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 짝사랑 아니라 ‘스토킹’입니다

입력 2022.09.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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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의 신상 공개가 결정된 가운데,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지난 1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의 신상 공개가 결정된 가운데,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너도 원하잖아" "보고 싶어 왔어"…위험한 드라마들

#1. 한때 연인 관계였던 여성 A와 남성 B. 갑자기 내린 비에 A가 급히 집으로 들어오고, A가 미처 닫지 못한 문을 열고 들어서는 B. 놀란 A가 문을 닫아보지만 끝내 안으로 들어온 B는 A를 벽에 밀치고 입맞춤을 시도한다. A는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내 방에서 나가요"라고 거절하지만, B는 "사실은 너도 원하잖아. 나를 볼 때마다 그때 생각 나잖아"라며 A의 몸을 붙잡고 강제로 입을 맞춘다.

#2. "다시 보지 말자"고 선을 그은 남성 C. 뒤따라오는 여성 D는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라고 외치며 그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후 개인 사정으로 먼 곳의 병원에 가서 근무를 하게 된 C, 떠난 그를 찾아 차를 몰고 쫓아오는 D. 놀란 C가 "당신이 여길 왜"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D는 태연스럽게 대답한다. "왜긴, 보고 싶어서 왔지."

불과 2~4년 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기 드라마의 장면들입니다.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아랑곳없이 저돌적인 '구애(求愛) 작전'을 펼치는 주인공들. 극 중에서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으로 미화됐을지언정, 현실로 보자면 분명 애정을 빙자한 폭력, 바로 '스토킹'입니다.

지난 1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의 신상 공개가 결정된 가운데,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로맨틱하게 묘사한 드라마처럼, 현실에서는 아직도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구애 행위를 '애끓는 순애보' 정도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데요.

과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던 식의 안일한 인식이, 곧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스토킹은 구애 행위가 아닌 명백한 ‘범죄’다. 작년 4월 제정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을 ‘스토킹 범죄’로 규정, 처벌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스토킹은 구애 행위가 아닌 명백한 ‘범죄’다. 작년 4월 제정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을 ‘스토킹 범죄’로 규정, 처벌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집 앞 꽃다발, 회사로 전화까지…후유증 시달리는 피해자들

'낭만적 구애'라는 착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을 주는 스토킹은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습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처음 본 사람, 이혼한 배우자 등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연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대문 앞에 웬 꽃다발이 놓여 있더라. 휴대전화 번호를 적은 메모도 있었는데, 'OO구 직장 다니는 예쁜 그녀에게, 당신을 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며 " 얼마 뒤에는 집 앞까지 찾아와서 꽃다발을 주고 갔다. 그 남자가 대놓고 '마음에 들어서 쫓아왔다'고 말하는 게 무서워서 정중하게 얘기해 돌려보냈는데, 꽃 속에 주말 뮤지컬 티켓 2장이 꽂혀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혼 후 전 남편이 밤마다 연락을 한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다시 합치자' 같은 내용인데 거절 의사를 드러내도 계속 연락한다"며 "어떻게 알았는지 회사로까지 전화를 해서, 동료에게 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바꿔달라고 하더라. 회사 전화기에 전화번호가 떠서 놀라서 끊어버렸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작년 3월 국회에 제출한 연구용역보고서 '스토킹 방지 입법 정책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들은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불신감 ▲신변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 ▲공공장소를 이용하기가 어려움 등이 대표적입니다.

‘낭만적 구애’라는 착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을 주는 스토킹은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낭만적 구애’라는 착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을 주는 스토킹은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상대방에 불안감·공포심 일으켜"…스토킹은 처벌받는 '범죄'

스토킹은 구애 행위가 아닌 명백한 '범죄'입니다. 작년 4월 제정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 처벌법)'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을 '스토킹 범죄'로 규정, 처벌하고 있습니다.

'스토킹 처벌법' 제3장 벌칙 - 제18조(스토킹 범죄)

①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하여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스토킹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행위로는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등이 해당됩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장윤미 변호사는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공포스러운 위협이다. 가해자는 애정이고 사랑이라고 얘기해봤자, 상대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일방적인 폭력일 뿐"이라며 "상대방의 거부 의사가 명시적으로 있었음에도 스토킹이 반복될 경우, 법으로 처벌받는 '범죄 행위'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의 보복살인 혐의는 구애의 외피를 쓴, 통제되지 않은 스토킹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여준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스토킹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의 보복살인 혐의는 구애의 외피를 쓴, 통제되지 않은 스토킹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여준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스토킹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 스토킹의 끝은 '강력 범죄'…협박과 살인 '신당역 사건'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전주환의 계획 범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사건 당일인 지난 14일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에 접속해 역무원인 피해자의 근무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이날 오후 8시쯤 2호선 신당역 내 여자 화장실 부근을 서성일 때는 장갑과 위생모를 착용했습니다.

1991년생으로 올해 31살인 전주환과 20대 피해자는 2018년 서울교통공사에 취직한 '입사 동기'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전주환이 "2019년 11월부터 작년 10월까지 피해자에게 '만나달라'며 350여 차례 연락했다"며 스토킹을 계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전주환은 스토킹에서 나아가, 불법 촬영물까지 전송하며 피해자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피해자의 고소로 검찰에 의해 징역 9년을 구형받자,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날 살인을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전주환에게 적용될 혐의는 가중 처벌 대상인 '보복살인'으로 전해졌습니다. 살인죄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는 데 반해, 보복살인죄는 최소 1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집니다.

이번 '신당역 살인 사건'은 구애의 외피를 쓴, 통제되지 않은 스토킹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여줍니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스토킹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승혜 변호사 / 前 대검찰청 성범죄 전담 검사

"제가 예전에 검사로 수사할 때는 스토킹 처벌법도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때는 '짝사랑이 죄냐' '좋아서 구애하는 거고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스토킹은 내버려 두면 점점 양상이 중해져요. 단순 집착에서 중상해 폭력, 성폭력까지 이어지는 거죠. 사실 보통 사람들은 구애 행위를 해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단념하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스토킹까지 할 사람이면 어느 정도 '범죄 기질'이 보인다는 것이죠. 1차적인 스토킹 단계일 때 수사기관에서 강력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 폭증하는 스토킹 범죄…"인격 교육, 문제 공론화로 '사회적 인식 변화' 이끌어야"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스토킹 범죄는 폭증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13건, 11월 277건, 12월 735건에서 올해 1월 817건, 2월 1,496건, 3월 2,369건으로 빈발하는 추세입니다. 범죄 발생 직후 신속하고 강력하게 개시되는 '법적 조치'만큼이나, 사회 분위기 일신을 통한 '사전 예방'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흉악 범죄로 이어지는 스토킹을 초기에 막으려면, '상대방의 거절을 무시한 일방적·반복적 집착은 곧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상대방의 입장은 개의치 않고 자기 기분과 마음에 따라 매달리는 건 분명한 스토킹의 문제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상대방의 입장은 개의치 않고 자기 기분과 마음에 따라 매달리는 건 분명한 스토킹의 문제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한 20대 여성 대학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스토커나 사생팬(연예인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극성 팬)은 상대방이 화내거나 힘들어하고 심지어 고소하는 것까지도 '본인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라며 "이성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연애 대상이자 성적인 소유물로 보는 시각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만연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상대방의 입장은 개의치 않고 자기 기분과 마음에 따라 매달리는 건 분명한 스토킹의 문제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가해자 주변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원래 상대방은 한두 번 거절하는 거다, 얼마나 정성스럽게 구애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식으로 부추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은의 /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대학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맡아보면 스토킹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진 경우가 많아요. 어떤 대학생은 스토킹 피해를 입어서 수업 시간 때 '가해 학생과의 분리'를 요청했다가 교수랑 학교 측에 이런 소리까지 들었대요. '네가 예뻐서, 어리고 상큼해서 그래. 걔가 좋아해서 그런 거야.' 이런 일이 생각보다 되게 많아요.

감정이 일방적으로 흐르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행위를 '구애'라고 표현해서는 안 되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도 결국 '찍겠다'는 폭력적 비유잖아요. '좋아해서'라는 말로 포장돼 있을 뿐이지, 엄밀히 따져서 '나를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건 욕망을 휘둘러서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들을 직시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도 지난 19일 KBS1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인격 교육을 통해 '싫어하는 행위를 하는 건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거나 진배없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 노(No)는 노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만나달라고 계속 호소했는데 안 만나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식의 감수성을 가지고는 이 범죄가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하채은 변호사는 "사회적 인식 변화는 먼저 '제도 개선'으로 이끌어줘야 한다"며 "가정폭력·아동학대 범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보호 명령 제도'라는 게 있다. 신고하는 순간부터 법원에 요청하면 '가해자 접근 금지'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 이를 스토킹 처벌법에도 포함시켜 피해자 신변 보호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취재 지원: 최민주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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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 짝사랑 아니라 ‘스토킹’입니다
    • 입력 2022-09-21 09:07:25
    취재K
지난 1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의 신상 공개가 결정된 가운데,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너도 원하잖아" "보고 싶어 왔어"…위험한 드라마들

#1. 한때 연인 관계였던 여성 A와 남성 B. 갑자기 내린 비에 A가 급히 집으로 들어오고, A가 미처 닫지 못한 문을 열고 들어서는 B. 놀란 A가 문을 닫아보지만 끝내 안으로 들어온 B는 A를 벽에 밀치고 입맞춤을 시도한다. A는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내 방에서 나가요"라고 거절하지만, B는 "사실은 너도 원하잖아. 나를 볼 때마다 그때 생각 나잖아"라며 A의 몸을 붙잡고 강제로 입을 맞춘다.

#2. "다시 보지 말자"고 선을 그은 남성 C. 뒤따라오는 여성 D는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라고 외치며 그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후 개인 사정으로 먼 곳의 병원에 가서 근무를 하게 된 C, 떠난 그를 찾아 차를 몰고 쫓아오는 D. 놀란 C가 "당신이 여길 왜"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D는 태연스럽게 대답한다. "왜긴, 보고 싶어서 왔지."

불과 2~4년 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기 드라마의 장면들입니다.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아랑곳없이 저돌적인 '구애(求愛) 작전'을 펼치는 주인공들. 극 중에서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으로 미화됐을지언정, 현실로 보자면 분명 애정을 빙자한 폭력, 바로 '스토킹'입니다.

지난 1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의 신상 공개가 결정된 가운데,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로맨틱하게 묘사한 드라마처럼, 현실에서는 아직도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구애 행위를 '애끓는 순애보' 정도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데요.

과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던 식의 안일한 인식이, 곧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스토킹은 구애 행위가 아닌 명백한 ‘범죄’다. 작년 4월 제정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을 ‘스토킹 범죄’로 규정, 처벌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집 앞 꽃다발, 회사로 전화까지…후유증 시달리는 피해자들

'낭만적 구애'라는 착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을 주는 스토킹은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습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처음 본 사람, 이혼한 배우자 등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연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대문 앞에 웬 꽃다발이 놓여 있더라. 휴대전화 번호를 적은 메모도 있었는데, 'OO구 직장 다니는 예쁜 그녀에게, 당신을 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며 " 얼마 뒤에는 집 앞까지 찾아와서 꽃다발을 주고 갔다. 그 남자가 대놓고 '마음에 들어서 쫓아왔다'고 말하는 게 무서워서 정중하게 얘기해 돌려보냈는데, 꽃 속에 주말 뮤지컬 티켓 2장이 꽂혀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혼 후 전 남편이 밤마다 연락을 한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다시 합치자' 같은 내용인데 거절 의사를 드러내도 계속 연락한다"며 "어떻게 알았는지 회사로까지 전화를 해서, 동료에게 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바꿔달라고 하더라. 회사 전화기에 전화번호가 떠서 놀라서 끊어버렸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작년 3월 국회에 제출한 연구용역보고서 '스토킹 방지 입법 정책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들은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불신감 ▲신변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 ▲공공장소를 이용하기가 어려움 등이 대표적입니다.

‘낭만적 구애’라는 착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을 주는 스토킹은 우리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상대방에 불안감·공포심 일으켜"…스토킹은 처벌받는 '범죄'

스토킹은 구애 행위가 아닌 명백한 '범죄'입니다. 작년 4월 제정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 처벌법)'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을 '스토킹 범죄'로 규정, 처벌하고 있습니다.

'스토킹 처벌법' 제3장 벌칙 - 제18조(스토킹 범죄)

①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하여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스토킹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행위로는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직장·학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등이 해당됩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장윤미 변호사는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공포스러운 위협이다. 가해자는 애정이고 사랑이라고 얘기해봤자, 상대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일방적인 폭력일 뿐"이라며 "상대방의 거부 의사가 명시적으로 있었음에도 스토킹이 반복될 경우, 법으로 처벌받는 '범죄 행위'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의 보복살인 혐의는 구애의 외피를 쓴, 통제되지 않은 스토킹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여준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스토킹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 스토킹의 끝은 '강력 범죄'…협박과 살인 '신당역 사건'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전주환의 계획 범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사건 당일인 지난 14일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에 접속해 역무원인 피해자의 근무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이날 오후 8시쯤 2호선 신당역 내 여자 화장실 부근을 서성일 때는 장갑과 위생모를 착용했습니다.

1991년생으로 올해 31살인 전주환과 20대 피해자는 2018년 서울교통공사에 취직한 '입사 동기'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전주환이 "2019년 11월부터 작년 10월까지 피해자에게 '만나달라'며 350여 차례 연락했다"며 스토킹을 계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전주환은 스토킹에서 나아가, 불법 촬영물까지 전송하며 피해자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피해자의 고소로 검찰에 의해 징역 9년을 구형받자,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날 살인을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전주환에게 적용될 혐의는 가중 처벌 대상인 '보복살인'으로 전해졌습니다. 살인죄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는 데 반해, 보복살인죄는 최소 1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집니다.

이번 '신당역 살인 사건'은 구애의 외피를 쓴, 통제되지 않은 스토킹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여줍니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스토킹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승혜 변호사 / 前 대검찰청 성범죄 전담 검사

"제가 예전에 검사로 수사할 때는 스토킹 처벌법도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때는 '짝사랑이 죄냐' '좋아서 구애하는 거고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스토킹은 내버려 두면 점점 양상이 중해져요. 단순 집착에서 중상해 폭력, 성폭력까지 이어지는 거죠. 사실 보통 사람들은 구애 행위를 해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단념하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스토킹까지 할 사람이면 어느 정도 '범죄 기질'이 보인다는 것이죠. 1차적인 스토킹 단계일 때 수사기관에서 강력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 폭증하는 스토킹 범죄…"인격 교육, 문제 공론화로 '사회적 인식 변화' 이끌어야"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스토킹 범죄는 폭증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13건, 11월 277건, 12월 735건에서 올해 1월 817건, 2월 1,496건, 3월 2,369건으로 빈발하는 추세입니다. 범죄 발생 직후 신속하고 강력하게 개시되는 '법적 조치'만큼이나, 사회 분위기 일신을 통한 '사전 예방'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흉악 범죄로 이어지는 스토킹을 초기에 막으려면, '상대방의 거절을 무시한 일방적·반복적 집착은 곧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상대방의 입장은 개의치 않고 자기 기분과 마음에 따라 매달리는 건 분명한 스토킹의 문제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한 20대 여성 대학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스토커나 사생팬(연예인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극성 팬)은 상대방이 화내거나 힘들어하고 심지어 고소하는 것까지도 '본인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라며 "이성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연애 대상이자 성적인 소유물로 보는 시각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만연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상대방의 입장은 개의치 않고 자기 기분과 마음에 따라 매달리는 건 분명한 스토킹의 문제다. 사회 전체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가해자 주변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원래 상대방은 한두 번 거절하는 거다, 얼마나 정성스럽게 구애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식으로 부추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은의 /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대학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맡아보면 스토킹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진 경우가 많아요. 어떤 대학생은 스토킹 피해를 입어서 수업 시간 때 '가해 학생과의 분리'를 요청했다가 교수랑 학교 측에 이런 소리까지 들었대요. '네가 예뻐서, 어리고 상큼해서 그래. 걔가 좋아해서 그런 거야.' 이런 일이 생각보다 되게 많아요.

감정이 일방적으로 흐르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행위를 '구애'라고 표현해서는 안 되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도 결국 '찍겠다'는 폭력적 비유잖아요. '좋아해서'라는 말로 포장돼 있을 뿐이지, 엄밀히 따져서 '나를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건 욕망을 휘둘러서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들을 직시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도 지난 19일 KBS1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인격 교육을 통해 '싫어하는 행위를 하는 건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거나 진배없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 노(No)는 노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만나달라고 계속 호소했는데 안 만나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식의 감수성을 가지고는 이 범죄가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하채은 변호사는 "사회적 인식 변화는 먼저 '제도 개선'으로 이끌어줘야 한다"며 "가정폭력·아동학대 범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보호 명령 제도'라는 게 있다. 신고하는 순간부터 법원에 요청하면 '가해자 접근 금지'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 이를 스토킹 처벌법에도 포함시켜 피해자 신변 보호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취재 지원: 최민주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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