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기준금리 역전 괜찮다고? 자칫하다간 이렇게 된다

입력 2022.09.23 (08:00) 수정 2022.09.2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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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75%p 자이언트스텝으로 인상했습니다. 이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연 3.0~3.25%, 우리나라는 연 2.5%로 한미간 기준금리가 0.75%p 격차로 역전됐습니다. 게다가 미 연준은 내년 기준금리를 연 4.6%로 내다봤습니다. 확실하게 물가가 잡히는 걸 확인할 때까지 앞으로도 1.5%p 가량 더 올리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한미간 금리차만 보면 우리도 연말까지 연 4% 이상 끌어올려야 하지만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습니다. 주요 국가 가운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똑같이 쫓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이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걱정 안해도 된다고?

정부는 22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하고 단기간 내 변동성에 대해서 적극 관리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발생 가능한 주요 리스크와 상황별 대응 조치를 선제 점검해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추 부총리는 그러면서도 "과거 금융위기 등에 비해 현재 우리의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양호한 상황"이라며 "과도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말을 꺼냈습니다.

정부의 기준금리 역전에 대한 시각은 과연 정확한 걸까요? 추 부총리는 앞서 지난 7월 한미간 기준금리가 잠깐 역전됐을 당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 연준의 결정으로 한미 간 정책금리가 역전됐지만,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한미 기준금리 역전 시기 자본유출입 동향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금리가 역전된 시기, 자본 시장 전체적으로는 순유입이 더 많았다는 걸 강조하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의 말을 꺼냈던 겁니다.


하지만,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은 한국 경제에 분명한 적신호입니다. 특히 환율을 봤을 때 그 신호가 무섭습니다. 추경호 부총리가 예로 든 것처럼 지난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 시기를 볼까요?

정부가 예로 든 금리역전 시기는 외환위기 이후 모두 3차례로 1999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9월, 2018년 3월~2020년 2월입니다.

■ 과거 기준금리 역전 3번 중 2번은 환율 급등

이 세 번의 시기 중 두 번은 환율이 급등했습니다. 먼저 외환위기 여파가 지속된 1999년~2001년을 보죠.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여서 우리 경기는 안 좋고 미국 경기는 상대적으로 좋은 구간이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치솟았던 환율이 IMF 구제금융과 미국 정부의 채권은행 만기 상환 기한 연장 설득 이후 급격히 내려가던 와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회복하는 것 같았던 한국 경제는 1999년 2분기 정점을 찍고 다시 하향추세로 돌아섰고, 2000년 1월 다시 무역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 경기는 외환위기로 인한 충격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국내 경제가 안 좋으면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습니다. 투자처로 매력이 없기 때문이죠.

반면 미국에선 당시 경제가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했고 닷컴버블로 경기가 과열되면서 이에대한 차단이 필요했습니다. 연속적인 금리인상 카드였던 거죠. 금리도 미국이 높고, 경기도 미국이 좋아서 환율이 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1999년 6월부터 거의 1년 가까이 환율이 하향·횡보 하다가 2000년 8월부터 급등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에 더해 한국경제의 침체와 미국 경제 과열로 환율이 올랐던 거죠.

두 번째로 2018년 3월에서 2020년 2월 코로나19 발발 때까지로 이 당시에도 환율이 거침없이 상승했습니다.


당시 경제상황은 이랬습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를 오르내리며 안정적이었습니다. 2009년부터 연 0.25% 저금리를 계속해온 덕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금융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실업률도 완전고용에 다가서 오히려 노동시장 과열을 감안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불가피했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 금리를 올려놓아야 경기가 안 좋아졌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쫓아가지 못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투자·소비까지 둔화됐습니다. 2019년 1분기엔 마이너스 경제성장까지 하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기준금리를 쫓아서 올릴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기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한 차례 밖에 올리지 못했고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으로 환율은 상승했습니다. 다만 이 당시 금리역전 기간 환율은 1070원에서 시작해 1215원까지 올랐습니다.

■ 2005년~2007년 환율하락, 그 때 경제상황은 달랐다

정부가 예로 든 세 차례의 금리역전 기간 중 유일하게 환율이 하락한 시기는 2005년 8월~2007년 9월입니다. 당시 미국 기준금리가 우리나라 금리보다 더 높게 치솟았는데, 왜 환율은 떨어졌던 것일까요? 미국 금리가 높으면 일반적으로 달러를 쫓아 미국에 돈이 몰리면서 환율이 오르는 걸로 알고 있죠. 하지만 환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금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앞선 두 차례의 금리역전 시기와 다르게 이 당시에는 미국이 부동산발 금융위기로 치닫던 때였고, 우리 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환율 측면에서 원화의 매력보다 달러의 매력이 극히 떨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금리역전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하락했던 겁니다.

먼저 기준금리 역전 초기인 2005년 8월부터 2006년 9월까지는 소비자물가가 높았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반드시 올려야 했습니다. 2005년 7월 3.2%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3.6%, 9월 4.7%까지 치솟았습니다. 계속된 기준금리 인상에도 소비자물가는 좀처럼 잡히지 않다가 2006년 10월에 가서야 1.3%로 잡혔습니다. 소비자물가를 잡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물가가 잡혔는데도 연 5.25%까지 올린 기준금리를 한동안 내리지 않았습니다. 만 1년간 기준금리를 유지하다 2007년 10월이 돼서야 금리를 내렸습니다.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려온 또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깁니다.

부동산 투기 붐은 버블을 낳고 버블은 언젠가 터지면서 경기를 끌어내립니다.부동산 투기 붐은 버블을 낳고 버블은 언젠가 터지면서 경기를 끌어내립니다.

당시 미국 부동산 시장은 30년 만의 최악의 버블로 연방주택기업감독청 조사 결과 미국 플로리다주 주택가격 상승폭이 5년간 113%에 달하는 등 곳곳에서 수년간 부동산 가격 급등세가 이어져왔습니다. 이때가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붙었던 시기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도 집값의 100% 이상을 대출해서 집을 사던 시기였습니다. 2007년 4분기 기준 GDP 대비 미국 가계부채 비율은 98.4%로 역대 최대규모였습니다. (100%가 넘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위험이 더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만...)

이렇게 부동산 시장에 버블이 생긴 상황에서 자칫 금리를 내렸다간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부 지역에서 급등해온 부동산 가격이 하락 전환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부동산 폭락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국 부동산 과열을 경고해온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는 2007년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집값이 하락해 침체가 올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침체가 언제 시작돼 얼마나 계속될 것이냐가 핵심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미국의 부동산버블과 이로인한 강한 경기침체 우려는 미국 달러화 가치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입니다.


환율에 영향을 주는 또다른 주요 요인은 바로 경상수지입니다. 당시 부동산발 경제위기감에 더해 경상수지 적자도 역대 최악이었습니다. 2006년 3분기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2,200억 달러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이같은 경상수지 적자 해결을 위해 달러 약세를 방치할 유인이 충분했습니다. 달러 약세로 수출 경쟁력을 높여서 무역수지 적자폭을 줄이려 했던 겁니다.

■ 하지만, 지금은 환율이 너무 높은 상태…그래서 걱정이다

이제 지금의 환율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환율이 치솟고 있죠. 한때 "1300원이 뚫렸다", ""1350원 마지노선은 지켜야" 등등 환율 상승에 따라 매체의 헤드라인이 바뀌어갔고, 급기야 22일 13년 6개월 만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습니다. 1400원 돌파는 안타깝게도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달러화의 가치가 치솟으며 달러 인덱스가 110을 돌파한 상황에서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은 환율 상승의 또다른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전에 한미간 기준금리가 역전됐을 때 미국 경제상황이 극히 좋지 않아 환율이 하락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미국의 가계부채·고용 등 경제 펀더멘털이 우리보다 견고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미 연준은 올해 말까지 스스로 기준금리 연 4.4%, 내년 연 4.6%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눈 앞에 두고 있고, 경상수지도 2021년 8월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해 지난 7월 10억 9천만 달러 흑자로 줄었습니다. 주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로선 뼈아픈 부분입니다

또, 국제금융협회 조사결과 올 1분기 GDP 대비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세계 주요 36개국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경제 펀더멘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가 비교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 당분간 대세적 환율하락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얘깁니다.

이달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지 않는 한국은행이 다음달 0.5%p 빅스텝 기준금리 인상이 아닌 0.75%p 자이언트 스텝 인상을 할 거라고 전망하는 금융전문가는 소수입니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가계부채 위험을 사전에 줄이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가계부채 위험만 생각하다간 환율급등으로 인한 외환·자본시장의 혼란, 수입물가 상승과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로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수출 주력업종 150개사를 대상으로 하반기 수출 전망 조사를 한 결과 우리 수출기업들이 수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 환율은 1206.1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보다 14% 가량 환율을 떨어뜨려야 하지만 과연 언제쯤 그만큼 환율이 떨어질지 지금으로선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픽: 김석훈,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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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기준금리 역전 괜찮다고? 자칫하다간 이렇게 된다
    • 입력 2022-09-23 08:00:10
    • 수정2022-09-23 10:25:42
    취재K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75%p 자이언트스텝으로 인상했습니다. 이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연 3.0~3.25%, 우리나라는 연 2.5%로 한미간 기준금리가 0.75%p 격차로 역전됐습니다. 게다가 미 연준은 내년 기준금리를 연 4.6%로 내다봤습니다. 확실하게 물가가 잡히는 걸 확인할 때까지 앞으로도 1.5%p 가량 더 올리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한미간 금리차만 보면 우리도 연말까지 연 4% 이상 끌어올려야 하지만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습니다. 주요 국가 가운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똑같이 쫓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이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걱정 안해도 된다고?

정부는 22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하고 단기간 내 변동성에 대해서 적극 관리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발생 가능한 주요 리스크와 상황별 대응 조치를 선제 점검해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추 부총리는 그러면서도 "과거 금융위기 등에 비해 현재 우리의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양호한 상황"이라며 "과도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말을 꺼냈습니다.

정부의 기준금리 역전에 대한 시각은 과연 정확한 걸까요? 추 부총리는 앞서 지난 7월 한미간 기준금리가 잠깐 역전됐을 당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 연준의 결정으로 한미 간 정책금리가 역전됐지만,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한미 기준금리 역전 시기 자본유출입 동향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금리가 역전된 시기, 자본 시장 전체적으로는 순유입이 더 많았다는 걸 강조하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의 말을 꺼냈던 겁니다.


하지만,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은 한국 경제에 분명한 적신호입니다. 특히 환율을 봤을 때 그 신호가 무섭습니다. 추경호 부총리가 예로 든 것처럼 지난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 시기를 볼까요?

정부가 예로 든 금리역전 시기는 외환위기 이후 모두 3차례로 1999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2007년 9월, 2018년 3월~2020년 2월입니다.

■ 과거 기준금리 역전 3번 중 2번은 환율 급등

이 세 번의 시기 중 두 번은 환율이 급등했습니다. 먼저 외환위기 여파가 지속된 1999년~2001년을 보죠.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여서 우리 경기는 안 좋고 미국 경기는 상대적으로 좋은 구간이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치솟았던 환율이 IMF 구제금융과 미국 정부의 채권은행 만기 상환 기한 연장 설득 이후 급격히 내려가던 와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회복하는 것 같았던 한국 경제는 1999년 2분기 정점을 찍고 다시 하향추세로 돌아섰고, 2000년 1월 다시 무역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 경기는 외환위기로 인한 충격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국내 경제가 안 좋으면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습니다. 투자처로 매력이 없기 때문이죠.

반면 미국에선 당시 경제가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했고 닷컴버블로 경기가 과열되면서 이에대한 차단이 필요했습니다. 연속적인 금리인상 카드였던 거죠. 금리도 미국이 높고, 경기도 미국이 좋아서 환율이 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1999년 6월부터 거의 1년 가까이 환율이 하향·횡보 하다가 2000년 8월부터 급등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에 더해 한국경제의 침체와 미국 경제 과열로 환율이 올랐던 거죠.

두 번째로 2018년 3월에서 2020년 2월 코로나19 발발 때까지로 이 당시에도 환율이 거침없이 상승했습니다.


당시 경제상황은 이랬습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를 오르내리며 안정적이었습니다. 2009년부터 연 0.25% 저금리를 계속해온 덕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금융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실업률도 완전고용에 다가서 오히려 노동시장 과열을 감안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불가피했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 금리를 올려놓아야 경기가 안 좋아졌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쫓아가지 못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투자·소비까지 둔화됐습니다. 2019년 1분기엔 마이너스 경제성장까지 하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기준금리를 쫓아서 올릴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기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한 차례 밖에 올리지 못했고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으로 환율은 상승했습니다. 다만 이 당시 금리역전 기간 환율은 1070원에서 시작해 1215원까지 올랐습니다.

■ 2005년~2007년 환율하락, 그 때 경제상황은 달랐다

정부가 예로 든 세 차례의 금리역전 기간 중 유일하게 환율이 하락한 시기는 2005년 8월~2007년 9월입니다. 당시 미국 기준금리가 우리나라 금리보다 더 높게 치솟았는데, 왜 환율은 떨어졌던 것일까요? 미국 금리가 높으면 일반적으로 달러를 쫓아 미국에 돈이 몰리면서 환율이 오르는 걸로 알고 있죠. 하지만 환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금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앞선 두 차례의 금리역전 시기와 다르게 이 당시에는 미국이 부동산발 금융위기로 치닫던 때였고, 우리 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환율 측면에서 원화의 매력보다 달러의 매력이 극히 떨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금리역전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하락했던 겁니다.

먼저 기준금리 역전 초기인 2005년 8월부터 2006년 9월까지는 소비자물가가 높았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반드시 올려야 했습니다. 2005년 7월 3.2%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3.6%, 9월 4.7%까지 치솟았습니다. 계속된 기준금리 인상에도 소비자물가는 좀처럼 잡히지 않다가 2006년 10월에 가서야 1.3%로 잡혔습니다. 소비자물가를 잡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물가가 잡혔는데도 연 5.25%까지 올린 기준금리를 한동안 내리지 않았습니다. 만 1년간 기준금리를 유지하다 2007년 10월이 돼서야 금리를 내렸습니다.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려온 또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깁니다.

부동산 투기 붐은 버블을 낳고 버블은 언젠가 터지면서 경기를 끌어내립니다.
당시 미국 부동산 시장은 30년 만의 최악의 버블로 연방주택기업감독청 조사 결과 미국 플로리다주 주택가격 상승폭이 5년간 113%에 달하는 등 곳곳에서 수년간 부동산 가격 급등세가 이어져왔습니다. 이때가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붙었던 시기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도 집값의 100% 이상을 대출해서 집을 사던 시기였습니다. 2007년 4분기 기준 GDP 대비 미국 가계부채 비율은 98.4%로 역대 최대규모였습니다. (100%가 넘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위험이 더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만...)

이렇게 부동산 시장에 버블이 생긴 상황에서 자칫 금리를 내렸다간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부 지역에서 급등해온 부동산 가격이 하락 전환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부동산 폭락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국 부동산 과열을 경고해온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는 2007년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집값이 하락해 침체가 올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침체가 언제 시작돼 얼마나 계속될 것이냐가 핵심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미국의 부동산버블과 이로인한 강한 경기침체 우려는 미국 달러화 가치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입니다.


환율에 영향을 주는 또다른 주요 요인은 바로 경상수지입니다. 당시 부동산발 경제위기감에 더해 경상수지 적자도 역대 최악이었습니다. 2006년 3분기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2,200억 달러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이같은 경상수지 적자 해결을 위해 달러 약세를 방치할 유인이 충분했습니다. 달러 약세로 수출 경쟁력을 높여서 무역수지 적자폭을 줄이려 했던 겁니다.

■ 하지만, 지금은 환율이 너무 높은 상태…그래서 걱정이다

이제 지금의 환율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환율이 치솟고 있죠. 한때 "1300원이 뚫렸다", ""1350원 마지노선은 지켜야" 등등 환율 상승에 따라 매체의 헤드라인이 바뀌어갔고, 급기야 22일 13년 6개월 만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습니다. 1400원 돌파는 안타깝게도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달러화의 가치가 치솟으며 달러 인덱스가 110을 돌파한 상황에서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은 환율 상승의 또다른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전에 한미간 기준금리가 역전됐을 때 미국 경제상황이 극히 좋지 않아 환율이 하락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미국의 가계부채·고용 등 경제 펀더멘털이 우리보다 견고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미 연준은 올해 말까지 스스로 기준금리 연 4.4%, 내년 연 4.6%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눈 앞에 두고 있고, 경상수지도 2021년 8월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해 지난 7월 10억 9천만 달러 흑자로 줄었습니다. 주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로선 뼈아픈 부분입니다

또, 국제금융협회 조사결과 올 1분기 GDP 대비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세계 주요 36개국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경제 펀더멘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가 비교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 당분간 대세적 환율하락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얘깁니다.

이달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지 않는 한국은행이 다음달 0.5%p 빅스텝 기준금리 인상이 아닌 0.75%p 자이언트 스텝 인상을 할 거라고 전망하는 금융전문가는 소수입니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가계부채 위험을 사전에 줄이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가계부채 위험만 생각하다간 환율급등으로 인한 외환·자본시장의 혼란, 수입물가 상승과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로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수출 주력업종 150개사를 대상으로 하반기 수출 전망 조사를 한 결과 우리 수출기업들이 수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 환율은 1206.1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보다 14% 가량 환율을 떨어뜨려야 하지만 과연 언제쯤 그만큼 환율이 떨어질지 지금으로선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픽: 김석훈,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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