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제’ 환경부 뒷걸음질…왜?

입력 2022.09.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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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에 유예됐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작됩니다. 시작은 12월 2일. 그런데 적용 지역은 '제주와 세종'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전면 시행에서 사실상 시범 운영으로 바뀐 겁니다.

제도가 적용되는 곳은 매장은 매장 수가 100개 이상인 커피·제빵·패스트푸드·아이스크림·음료 판매점입니다.

제주와 세종지역의 해당 매장에서는 음료를 일회용컵에 받을 때 음료값과 함께 '보증금 300원'을 내고, 컵을 다시 매장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게 됩니다.

반납 방식도 당초 환경부가 발표한 것과 달라졌습니다. 기존에는 브랜드와 관계없이 어느 매장에서나 컵을 반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최종 발표에서는 같은 브랜드 매장에서만 반납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 A 커피전문점에서 음료를 일회용컵에 받았다면, A 브랜드 매장에만 반납할 수 있습니다. 꼭 같은 매장일 필요는 없고 같은 브랜드 매장이기만 하면 됩니다. 제주도에서 구매한 일회용컵을 세종시에서 반납해도 됩니다.

그런데 반발 속에 반년을 미뤘던 제도를 환경부는 왜 축소한 걸까요?

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회용품 보증금제’ 관련 브리핑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회용품 보증금제’ 관련 브리핑

■ 시행 미루더니 이번엔 지역 축소, 이유는?

앞서 환경부는 지난 2020년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과 관련한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이 제도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돼 컵 회수율이 높아지고, 재활용이 촉진되면 일회용 컵을 소각했을 때와 비교해 온실가스를 66% 이상 줄일 수 있고, 연간 445억 원 이상의 편익이 발생할 것"

그런데 환경부가 갑자기 정책의 큰 흐름을 바꾼 걸까요?

실제로 어제(22일) 열린 환경부 사전 브리핑에서도 "상당히 급하게 결정된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환경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다른 나라에 없는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회용컵 '표준 용기'를 사례로 들었는데요. 당초 어느 매장에서든 같은 크기의 일회용컵을 사용해야 수거하기 쉽기 때문에 환경부는 표준 용기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업계 관계자들과 논의를 하다 보니 표준 용기가 나오더라도 매장 점주들이 이 컵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매장 점주들은 본사가 공급하는 일회용컵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도가 시행되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계속 발견될 수 있고, 이런 시행착오를 전국적으로 겪는 것보다는 이른바 '선도지역'인 제주와 세종에서 먼저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는 겁니다.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환경부는 강조했습니다.

6개월의 유예. 환경부의 말대로라면 제도 시행에 앞서 '과연 사전 준비가 얼마나 됐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사실상 정책 후퇴가 아니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정책의 성과와 앞으로의 행동으로 답해 드리겠다"는 환경부의 말을 쉬이 믿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오늘(2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환경단체의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면 시행’ 촉구 기자회견오늘(2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환경단체의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면 시행’ 촉구 기자회견

■ 업주·환경단체 모두 반발…"정부 신뢰 잃었다"

하지만 환경부와 17차례 회의를 진행했던 환경단체,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등 이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이들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21일 마지막 회의, 그러니까 발표 이틀 전에야 갑자기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행한다는 계획을 들고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수의 관계자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다음 달 초에 국정감사가 있기 때문에 실적 내기에 급급해서 일단 밀어붙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부와 처음 회의 때부터 전국 실시를 기준으로 논의했다"면서 "커피를 판매하는 모든 업종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던 환경부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각지대 없이 실시한다는 환경부의 설명에 카페 사장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많은 부분을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나 통보도 없이 일방적 결정을 내리고 발표한 환경부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환경단체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녹색연합과 녹색소비자연대, 환경운동연합 등도 기자회견을 열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다시 유예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번 제도에 대해 날 선 반응을 내놨습니다.

이들은 "제도 준비 미흡을 이유로 전격 유예를 결정했다면 환경부는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면서 "그런데 준비는커녕 제도를 다시 유예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데, 이번 환경부의 발표는 국정과제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자'는 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의 의지뿐만 아니라 이해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 단계부터 신뢰를 잃는다면 환경부가 말하는 '정책의 성과'를 쉽게 달성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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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회용컵 보증금제’ 환경부 뒷걸음질…왜?
    • 입력 2022-09-23 15:00:33
    취재K

논란 속에 유예됐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작됩니다. 시작은 12월 2일. 그런데 적용 지역은 '제주와 세종'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전면 시행에서 사실상 시범 운영으로 바뀐 겁니다.

제도가 적용되는 곳은 매장은 매장 수가 100개 이상인 커피·제빵·패스트푸드·아이스크림·음료 판매점입니다.

제주와 세종지역의 해당 매장에서는 음료를 일회용컵에 받을 때 음료값과 함께 '보증금 300원'을 내고, 컵을 다시 매장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게 됩니다.

반납 방식도 당초 환경부가 발표한 것과 달라졌습니다. 기존에는 브랜드와 관계없이 어느 매장에서나 컵을 반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최종 발표에서는 같은 브랜드 매장에서만 반납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 A 커피전문점에서 음료를 일회용컵에 받았다면, A 브랜드 매장에만 반납할 수 있습니다. 꼭 같은 매장일 필요는 없고 같은 브랜드 매장이기만 하면 됩니다. 제주도에서 구매한 일회용컵을 세종시에서 반납해도 됩니다.

그런데 반발 속에 반년을 미뤘던 제도를 환경부는 왜 축소한 걸까요?

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회용품 보증금제’ 관련 브리핑
■ 시행 미루더니 이번엔 지역 축소, 이유는?

앞서 환경부는 지난 2020년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과 관련한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이 제도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돼 컵 회수율이 높아지고, 재활용이 촉진되면 일회용 컵을 소각했을 때와 비교해 온실가스를 66% 이상 줄일 수 있고, 연간 445억 원 이상의 편익이 발생할 것"

그런데 환경부가 갑자기 정책의 큰 흐름을 바꾼 걸까요?

실제로 어제(22일) 열린 환경부 사전 브리핑에서도 "상당히 급하게 결정된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환경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다른 나라에 없는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회용컵 '표준 용기'를 사례로 들었는데요. 당초 어느 매장에서든 같은 크기의 일회용컵을 사용해야 수거하기 쉽기 때문에 환경부는 표준 용기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업계 관계자들과 논의를 하다 보니 표준 용기가 나오더라도 매장 점주들이 이 컵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매장 점주들은 본사가 공급하는 일회용컵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도가 시행되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계속 발견될 수 있고, 이런 시행착오를 전국적으로 겪는 것보다는 이른바 '선도지역'인 제주와 세종에서 먼저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는 겁니다.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환경부는 강조했습니다.

6개월의 유예. 환경부의 말대로라면 제도 시행에 앞서 '과연 사전 준비가 얼마나 됐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사실상 정책 후퇴가 아니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정책의 성과와 앞으로의 행동으로 답해 드리겠다"는 환경부의 말을 쉬이 믿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오늘(2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환경단체의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면 시행’ 촉구 기자회견
■ 업주·환경단체 모두 반발…"정부 신뢰 잃었다"

하지만 환경부와 17차례 회의를 진행했던 환경단체,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등 이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이들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21일 마지막 회의, 그러니까 발표 이틀 전에야 갑자기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행한다는 계획을 들고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수의 관계자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다음 달 초에 국정감사가 있기 때문에 실적 내기에 급급해서 일단 밀어붙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부와 처음 회의 때부터 전국 실시를 기준으로 논의했다"면서 "커피를 판매하는 모든 업종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던 환경부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각지대 없이 실시한다는 환경부의 설명에 카페 사장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많은 부분을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나 통보도 없이 일방적 결정을 내리고 발표한 환경부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환경단체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녹색연합과 녹색소비자연대, 환경운동연합 등도 기자회견을 열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다시 유예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번 제도에 대해 날 선 반응을 내놨습니다.

이들은 "제도 준비 미흡을 이유로 전격 유예를 결정했다면 환경부는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면서 "그런데 준비는커녕 제도를 다시 유예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데, 이번 환경부의 발표는 국정과제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자'는 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의 의지뿐만 아니라 이해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 단계부터 신뢰를 잃는다면 환경부가 말하는 '정책의 성과'를 쉽게 달성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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