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막말 배경엔 ‘글로벌펀드 기여금’…재원 마련 어떻게?

입력 2022.09.23 (18:45) 수정 2022.09.2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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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난 직후 한 이 말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윤 대통령의 '깜짝 증액 약속'…바이든도 언급

해당 발언이 나온 자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해 뉴욕에서 열린 '제7차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초 이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 없었는데, 애초 기대했던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이 어그러지면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짧은 환담을 위해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은 총 1억 달러를 앞으로 3년 동안 글로벌 시스템 강화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면서 "대한민국은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글로벌 보건 시스템 강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글로벌펀드는 저개발 국가의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 재원을 조성하기 위한 국제 협력 기구인데, 한국은 2004년부터 2021년까지 18년 동안 총 6천172만 달러를 기여했습니다.

또 기여금 규모는 3년 단위로 결정하는데, 한국이 2020년부터 2022년 3년 동안 낸 기여금은 2천5백만 달러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서 밝힌 향후 3년간 기여금 1억 달러는 직전 같은 기간보다 4배나 늘어난 규모입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한국의 파격적인 기여금 증액이 인상적이라고 봤는지 이날 자신의 연설에서 "한국이 상당한 증액을 해줬다"고 따로 언급해줬을 정도입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면서 "윤 대통령은 자유와 연대를 위한 국제사회의 책임을 이행하고자 하는 정부의 기조를 (기여금 1억 달러 공여 약속을 통해)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예산 심의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이 같은 기조를 꺾고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나라의 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4배 늘어난 글로벌펀드 기여금…예산 마련은?

그렇다면 과연 김 수석의 말처럼 해당 기여금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돼 있을까요?

외교부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 사업설명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글로벌 국제질병퇴치 사업' 가운데 '글로벌펀드 백신 개발 및 보급을 통한 질병 퇴치 활동' 명목으로 예산 96억 원이 편성돼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약속한 3년간 1억 달러(한국 돈으로 약 1,400억 원)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입니다.

재원 마련도 문제입니다.

정부는 국제선 탑승객이나 출국자를 대상으로 1인당 천 원씩의 출국 납부금을 걷고, 여기에 정부 출연금을 보태 마련하는 국제질병퇴치기금을 글로벌펀드 재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에는 출국자가 급감하는 바람에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았고 결국 한 푼도 기부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7월 말까지 90억 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해외 여행 회복세가 더딜 경우 내년에도 역시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외교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내년도에 국제기금 사업분담금 납부를 위해 편성한 예산은 2,767억 원이나 됩니다.

올해보다 천억 원 이상 늘어난 규모입니다.

외교부는 이 항목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 "각종 국제기구에서 재정적 기여 규모에 따라 권리행사와 발언권이 증대되는 점을 고려했다"면서 "재정적 기여 확대를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증대·국익 증진을 의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예산을 활용한다면 3년간 1억 달러(우리 돈 1,400억 원) 규모의 글로벌펀드 기여금을 내는 것도 어렵지는 않아 보입니다.

물론 당초 목적과는 달라지기 때문에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습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해보면 국제사회 책임 이행을 위해 글로벌펀드 기여금을 큰 규모로 증액하기로 대외적으로 발표했는데, 국회 다수당인 야당이 관련 예산안을 삭감하거나 취소시키면 '쪽팔릴 수도 있다'는 윤 대통령의 우려가 담긴 발언이라는 김 수석의 해명도 일견 납득이 갑니다.

■ 미국도 기여금 약속 못 지켜…바이든도 '쪽팔릴 수' 있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글로벌펀드가 최근 공개한 '공약 및 기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81억 8천만 달러를 기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실제로 낸 기여금은 올해 7월까지 47억 7천5백만 달러 가량입니다.

기여 약속을 지키는 데 사실상 실패한 셈인데, 바이든 대통령은 향후 3년간 6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3년간 60억 달러 기여금도 미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

'미 의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한국과 미국, 양쪽으로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막말은 과연 우리나라의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까요. 아니면 우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기여금을 약속한 미국 대통령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을까요.

다만 중요한건 누구를 향한 발언이었든 공적 자리에서 하기에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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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 대통령 막말 배경엔 ‘글로벌펀드 기여금’…재원 마련 어떻게?
    • 입력 2022-09-23 18:45:42
    • 수정2022-09-23 18:46:20
    취재K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난 직후 한 이 말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윤 대통령의 '깜짝 증액 약속'…바이든도 언급

해당 발언이 나온 자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해 뉴욕에서 열린 '제7차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초 이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 없었는데, 애초 기대했던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이 어그러지면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짧은 환담을 위해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은 총 1억 달러를 앞으로 3년 동안 글로벌 시스템 강화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면서 "대한민국은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글로벌 보건 시스템 강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글로벌펀드는 저개발 국가의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 재원을 조성하기 위한 국제 협력 기구인데, 한국은 2004년부터 2021년까지 18년 동안 총 6천172만 달러를 기여했습니다.

또 기여금 규모는 3년 단위로 결정하는데, 한국이 2020년부터 2022년 3년 동안 낸 기여금은 2천5백만 달러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서 밝힌 향후 3년간 기여금 1억 달러는 직전 같은 기간보다 4배나 늘어난 규모입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한국의 파격적인 기여금 증액이 인상적이라고 봤는지 이날 자신의 연설에서 "한국이 상당한 증액을 해줬다"고 따로 언급해줬을 정도입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면서 "윤 대통령은 자유와 연대를 위한 국제사회의 책임을 이행하고자 하는 정부의 기조를 (기여금 1억 달러 공여 약속을 통해)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예산 심의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이 같은 기조를 꺾고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나라의 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4배 늘어난 글로벌펀드 기여금…예산 마련은?

그렇다면 과연 김 수석의 말처럼 해당 기여금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돼 있을까요?

외교부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 사업설명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글로벌 국제질병퇴치 사업' 가운데 '글로벌펀드 백신 개발 및 보급을 통한 질병 퇴치 활동' 명목으로 예산 96억 원이 편성돼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약속한 3년간 1억 달러(한국 돈으로 약 1,400억 원)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입니다.

재원 마련도 문제입니다.

정부는 국제선 탑승객이나 출국자를 대상으로 1인당 천 원씩의 출국 납부금을 걷고, 여기에 정부 출연금을 보태 마련하는 국제질병퇴치기금을 글로벌펀드 재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에는 출국자가 급감하는 바람에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았고 결국 한 푼도 기부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7월 말까지 90억 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해외 여행 회복세가 더딜 경우 내년에도 역시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외교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내년도에 국제기금 사업분담금 납부를 위해 편성한 예산은 2,767억 원이나 됩니다.

올해보다 천억 원 이상 늘어난 규모입니다.

외교부는 이 항목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 "각종 국제기구에서 재정적 기여 규모에 따라 권리행사와 발언권이 증대되는 점을 고려했다"면서 "재정적 기여 확대를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증대·국익 증진을 의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예산을 활용한다면 3년간 1억 달러(우리 돈 1,400억 원) 규모의 글로벌펀드 기여금을 내는 것도 어렵지는 않아 보입니다.

물론 당초 목적과는 달라지기 때문에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습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해보면 국제사회 책임 이행을 위해 글로벌펀드 기여금을 큰 규모로 증액하기로 대외적으로 발표했는데, 국회 다수당인 야당이 관련 예산안을 삭감하거나 취소시키면 '쪽팔릴 수도 있다'는 윤 대통령의 우려가 담긴 발언이라는 김 수석의 해명도 일견 납득이 갑니다.

■ 미국도 기여금 약속 못 지켜…바이든도 '쪽팔릴 수' 있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글로벌펀드가 최근 공개한 '공약 및 기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81억 8천만 달러를 기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실제로 낸 기여금은 올해 7월까지 47억 7천5백만 달러 가량입니다.

기여 약속을 지키는 데 사실상 실패한 셈인데, 바이든 대통령은 향후 3년간 6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3년간 60억 달러 기여금도 미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

'미 의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한국과 미국, 양쪽으로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막말은 과연 우리나라의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까요. 아니면 우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기여금을 약속한 미국 대통령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을까요.

다만 중요한건 누구를 향한 발언이었든 공적 자리에서 하기에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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