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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거름’이 됩니다”…‘시신 퇴비화’ 허용에 논란 확산 美
입력 2022.09.24 (10:02) 세계는 지금
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컴포즈’ 인스타그램 캡처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컴포즈’ 인스타그램 캡처

■ 죽으면 '거름'이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시신을 거름으로 만드는 법안이 통과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개빈 뉴섬 주지사가 사람의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만드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명 '퇴비장'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오는 2027년부터 시행됩니다.

고인과 유족은 화장이나 매장 대신 퇴비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퇴비장은 시신을 나뭇조각, 짚 등 천연 물질과 미생물 등이 담긴 상자에 넣습니다. 이후 30~45일가량이 지나면 뼈, 치아 등 신체가 자연적으로 분해돼 퇴비용 흙이 됩니다. 퇴비가 된 고인의 유해는 유족이 돌려받거나 공공 토지에 기부됩니다.

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

■ "퇴비장, 친환경적이고 저렴해"

퇴비장은 기존 장례 방식인 매장이나 화장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매장의 경우 관을 짜는 나무와 일정한 면적의 토지 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신에 있는 병원균 등이 토지를 오염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화장은 처리 과정에서 큰 에너지가 소비되며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실제 미국에서는 매년 2억 7천2백만kg의 이산화탄소가 화장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법안을 발의한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퇴비장이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등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정중하고 저렴한 친환경적인 방법"이라면서 "시신을 퇴비로 처리하면 1톤 이상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고, 대도시의 토지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가격 측면도 퇴비장의 장점으로 꼽힙니다. 2021년 미국의 '국가 장의사 협회'(National Funeral Directors Association)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기존 장례 평균 비용은 7,800달러 정도입니다. 더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퇴비장 비용은 약 5천~7천 달러입니다.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저렴한 수준입니다.

일부 미국 시민들은 캘리포니아주의 퇴비 장례 법안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SNS 갈무리)일부 미국 시민들은 캘리포니아주의 퇴비 장례 법안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SNS 갈무리)

■ "인체를 일회용 상품으로"…반대 목소리도

반면 퇴비장 법안 통과에 일각에서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고인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의 아홉 개 심의회 중 하나인 신앙교리성은 과거 훈령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Ad resurgendum cum Christo)를 통해 "교회는 고인에 대한 더 큰 존경심을 보여주기 위해 시신을 묻는 관행을 계속 선호해야 한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캐슬린 도밍고 캘리포니아 가톨릭 연회 전무 이사도 퇴비장에 대해 "고인과 불행한 영적, 정서적, 심리적 거리를 창출한다"며 "인체를 일회용 상품으로 바꾼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신을 정중하게 묻거나 고인의 재를 기리는 관행은 고인에 대한 존경과 보살핌의 보편적인 규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국 시민들의 비판도 이어집니다. 일각에서는 "고인에 대한 불경스러운 장례법.", "인간의 삶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인간의 유골을 퇴비화하는 것은 무례하다."며 퇴비장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

■ 논쟁 속 늘어나는 '퇴비장'…새로운 장례 문화로 정착할까

논쟁 속에 퇴비장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난 2019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세계 최초로 퇴비장 법안을 통과시킨 후 3년 동안 콜로라도주, 오리건주, 버몬트주 등이 동참했습니다. 이로써 퇴비장 허용 지역이 총 5개 주로 늘어났습니다. 퇴비장 전문업체 '리턴 홈'(Return Home) CEO 미카 트루먼은 "수요가 매우 많아 12개 주에서 사람들이 온다"고 말하며 하나의 장례 문화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퇴비장이 기존 장례 문화의 단점을 극복하고 환경문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장점입니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중시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인류 문화이자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신을 고의로 썩혀 퇴비로 만드는 게 낯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퇴비장 이전에도 과학 기술의 발달과 환경문제로 기존과 다른 형식의 장례법이 등장해 왔습니다. 고인의 유골 일부를 로켓에 담아 우주로 보내는 우주장, 시신을 가수분해기 통에 넣어 뼈만 남기고 살을 녹이는 장례법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새로운 장례 문화가 꾸준히 등장하는 가운데 '친환경'과 '가성비'를 내세운 퇴비장이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주목됩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취재 지원: 최민주 리서처
  • “죽으면 ‘거름’이 됩니다”…‘시신 퇴비화’ 허용에 논란 확산 美
    • 입력 2022-09-24 10:02:27
    세계는 지금
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컴포즈’ 인스타그램 캡처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컴포즈’ 인스타그램 캡처

■ 죽으면 '거름'이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시신을 거름으로 만드는 법안이 통과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개빈 뉴섬 주지사가 사람의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만드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명 '퇴비장'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오는 2027년부터 시행됩니다.

고인과 유족은 화장이나 매장 대신 퇴비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퇴비장은 시신을 나뭇조각, 짚 등 천연 물질과 미생물 등이 담긴 상자에 넣습니다. 이후 30~45일가량이 지나면 뼈, 치아 등 신체가 자연적으로 분해돼 퇴비용 흙이 됩니다. 퇴비가 된 고인의 유해는 유족이 돌려받거나 공공 토지에 기부됩니다.

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

■ "퇴비장, 친환경적이고 저렴해"

퇴비장은 기존 장례 방식인 매장이나 화장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매장의 경우 관을 짜는 나무와 일정한 면적의 토지 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신에 있는 병원균 등이 토지를 오염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화장은 처리 과정에서 큰 에너지가 소비되며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실제 미국에서는 매년 2억 7천2백만kg의 이산화탄소가 화장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법안을 발의한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퇴비장이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등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정중하고 저렴한 친환경적인 방법"이라면서 "시신을 퇴비로 처리하면 1톤 이상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고, 대도시의 토지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가격 측면도 퇴비장의 장점으로 꼽힙니다. 2021년 미국의 '국가 장의사 협회'(National Funeral Directors Association)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기존 장례 평균 비용은 7,800달러 정도입니다. 더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퇴비장 비용은 약 5천~7천 달러입니다.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저렴한 수준입니다.

일부 미국 시민들은 캘리포니아주의 퇴비 장례 법안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SNS 갈무리)일부 미국 시민들은 캘리포니아주의 퇴비 장례 법안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SNS 갈무리)

■ "인체를 일회용 상품으로"…반대 목소리도

반면 퇴비장 법안 통과에 일각에서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고인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의 아홉 개 심의회 중 하나인 신앙교리성은 과거 훈령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Ad resurgendum cum Christo)를 통해 "교회는 고인에 대한 더 큰 존경심을 보여주기 위해 시신을 묻는 관행을 계속 선호해야 한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캐슬린 도밍고 캘리포니아 가톨릭 연회 전무 이사도 퇴비장에 대해 "고인과 불행한 영적, 정서적, 심리적 거리를 창출한다"며 "인체를 일회용 상품으로 바꾼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신을 정중하게 묻거나 고인의 재를 기리는 관행은 고인에 대한 존경과 보살핌의 보편적인 규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국 시민들의 비판도 이어집니다. 일각에서는 "고인에 대한 불경스러운 장례법.", "인간의 삶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인간의 유골을 퇴비화하는 것은 무례하다."며 퇴비장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사진 출처 : 미국 퇴비장 업체 ‘리턴홈’ 인스타그램 캡처

■ 논쟁 속 늘어나는 '퇴비장'…새로운 장례 문화로 정착할까

논쟁 속에 퇴비장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난 2019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세계 최초로 퇴비장 법안을 통과시킨 후 3년 동안 콜로라도주, 오리건주, 버몬트주 등이 동참했습니다. 이로써 퇴비장 허용 지역이 총 5개 주로 늘어났습니다. 퇴비장 전문업체 '리턴 홈'(Return Home) CEO 미카 트루먼은 "수요가 매우 많아 12개 주에서 사람들이 온다"고 말하며 하나의 장례 문화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퇴비장이 기존 장례 문화의 단점을 극복하고 환경문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장점입니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중시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인류 문화이자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신을 고의로 썩혀 퇴비로 만드는 게 낯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퇴비장 이전에도 과학 기술의 발달과 환경문제로 기존과 다른 형식의 장례법이 등장해 왔습니다. 고인의 유골 일부를 로켓에 담아 우주로 보내는 우주장, 시신을 가수분해기 통에 넣어 뼈만 남기고 살을 녹이는 장례법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새로운 장례 문화가 꾸준히 등장하는 가운데 '친환경'과 '가성비'를 내세운 퇴비장이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주목됩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취재 지원: 최민주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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