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병원도 전문의 ‘부족’…공공어린이재활병원, 무산 위기?

입력 2022.09.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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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발달센터, 한 달 940만 원인데도 대기는 1년"

이영후 씨(가명)의 아이는 20개월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도 6개월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뒤로 시작된 재활 치료 역시 끊임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부담이 되더라도 '좋은 곳'을 찾으려 했던 김 씨는 한 사설 발달센터를 찾아 재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 비용은 약 940만 원, 그럼에도 길게는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곳입니다.

재활치료를 받는 아동(시청자 제공)재활치료를 받는 아동(시청자 제공)

실제로 재활이 필요한 어린이 환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병원이나 사설 발달센터, 장애인복지관 정도입니다. 재활의 질경제적인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서울은평병원은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유일무이한 곳'이라고 이곳을 이용하는 부모들은 입을 모읍니다.

■ 시립병원, 전문의 못 구해 한 달째 '공석'

서울은평병원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정신과 전문 종합병원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은평병원 내 어린이발달센터의 유일한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 후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이미 소아정신과 전문의 2명이 이탈했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전문의마저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발령 주체이자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시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겁니다.

은평병원 전문의를 구하기 위한 서울시의 뒤늦은 채용 공고은평병원 전문의를 구하기 위한 서울시의 뒤늦은 채용 공고

이 씨는 "최근 소아전문의가 정원 대비 50%도 차지 않는 상황이 3~5년간 계속됐는데 의지가 있었다면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평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5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어머니 김지선 씨(가명) 역시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센터가 시에서 운영하는데도 이렇게 운영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돈이 있어도 인프라를 갖춘 곳이 없고, 있다고 해도 들어가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민간병원과 보수 차이가 크고, 코로나19 이후 공공병원의 의료 인력들이 선별진료소 등에 차출되면서 의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다만, 서울시는 최근 보수를 좀 더 올려 인력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어린이 재활 난민' 해결하겠다더니…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 '0곳'

어린이 재활 환자의 인력과 인프라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에 정부는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를 해결한다며 2018년부터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올해까지 10곳 건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을 연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건립 예산 자체가 부족하다보니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겁니다. 윤희만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추진 전북부모회 공동대표는 "후원을 받지 못한 경우는 열악한 상황에서 추진하다가 아예 포기해 버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나마 대전(충남권)과 전주(전북권)에서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데 여전히 부족한 건립비와 운영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시민TF에서 활동하며 지금은 비영리단체 '토닥토닥'을 세우고 사업 추진에 역할을 하고 있는 일명 '건우 아빠' 김동석 이사장은 " 첫 해 운영비 적자 규모를 20~30억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운영을 책임지는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고 강조했습니다.

처음 김 이사장이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촉구한 때는 2013년입니다. 지금까지 장애아동 가족들의 1004배 집회,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마라톤, 수차례의 토론회까지 거치며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왔습니다. 김 이사장은 " 민간은 수익성을 이유로, 정부는 무관심으로 기피한 시간이 9년"이라며 "우리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인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라고 성토했습니다.


좋은 인력을 채용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입니다. 한정된 예산과 운영비로는 구성원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건국대병원 재활의학과 고성은 교수는 " 운영상의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그러한 부담을 안고 가기 때문에 좋은 인력을 뽑을 수 있고 잘 만들 수 있는 지원이 지금 단계에서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윤희만 대표는 "어린이 재활치료에 필요한 것 중에서 사실 '건물'이라고 하는 물리적인 인프라만 지금 얘기하고 있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맞춤형으로 치료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성은 교수 역시 "최근 필수의료 강화 논의가 나오는 만큼 소아 재활에서도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는 유인책과 교육 체계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역할 분담을 통해 적절한 소아 재활 의료 전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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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립병원도 전문의 ‘부족’…공공어린이재활병원, 무산 위기?
    • 입력 2022-09-26 07:00:19
    취재K

■ "사설 발달센터, 한 달 940만 원인데도 대기는 1년"

이영후 씨(가명)의 아이는 20개월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도 6개월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뒤로 시작된 재활 치료 역시 끊임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부담이 되더라도 '좋은 곳'을 찾으려 했던 김 씨는 한 사설 발달센터를 찾아 재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 비용은 약 940만 원, 그럼에도 길게는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곳입니다.

재활치료를 받는 아동(시청자 제공)
실제로 재활이 필요한 어린이 환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병원이나 사설 발달센터, 장애인복지관 정도입니다. 재활의 질경제적인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서울은평병원은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유일무이한 곳'이라고 이곳을 이용하는 부모들은 입을 모읍니다.

■ 시립병원, 전문의 못 구해 한 달째 '공석'

서울은평병원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정신과 전문 종합병원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은평병원 내 어린이발달센터의 유일한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 후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이미 소아정신과 전문의 2명이 이탈했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전문의마저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발령 주체이자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시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겁니다.

은평병원 전문의를 구하기 위한 서울시의 뒤늦은 채용 공고
이 씨는 "최근 소아전문의가 정원 대비 50%도 차지 않는 상황이 3~5년간 계속됐는데 의지가 있었다면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평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5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어머니 김지선 씨(가명) 역시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센터가 시에서 운영하는데도 이렇게 운영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돈이 있어도 인프라를 갖춘 곳이 없고, 있다고 해도 들어가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민간병원과 보수 차이가 크고, 코로나19 이후 공공병원의 의료 인력들이 선별진료소 등에 차출되면서 의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다만, 서울시는 최근 보수를 좀 더 올려 인력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어린이 재활 난민' 해결하겠다더니…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 '0곳'

어린이 재활 환자의 인력과 인프라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에 정부는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를 해결한다며 2018년부터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올해까지 10곳 건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을 연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건립 예산 자체가 부족하다보니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겁니다. 윤희만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추진 전북부모회 공동대표는 "후원을 받지 못한 경우는 열악한 상황에서 추진하다가 아예 포기해 버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나마 대전(충남권)과 전주(전북권)에서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데 여전히 부족한 건립비와 운영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시민TF에서 활동하며 지금은 비영리단체 '토닥토닥'을 세우고 사업 추진에 역할을 하고 있는 일명 '건우 아빠' 김동석 이사장은 " 첫 해 운영비 적자 규모를 20~30억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운영을 책임지는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고 강조했습니다.

처음 김 이사장이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촉구한 때는 2013년입니다. 지금까지 장애아동 가족들의 1004배 집회,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마라톤, 수차례의 토론회까지 거치며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왔습니다. 김 이사장은 " 민간은 수익성을 이유로, 정부는 무관심으로 기피한 시간이 9년"이라며 "우리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인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라고 성토했습니다.


좋은 인력을 채용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입니다. 한정된 예산과 운영비로는 구성원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건국대병원 재활의학과 고성은 교수는 " 운영상의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그러한 부담을 안고 가기 때문에 좋은 인력을 뽑을 수 있고 잘 만들 수 있는 지원이 지금 단계에서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윤희만 대표는 "어린이 재활치료에 필요한 것 중에서 사실 '건물'이라고 하는 물리적인 인프라만 지금 얘기하고 있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맞춤형으로 치료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성은 교수 역시 "최근 필수의료 강화 논의가 나오는 만큼 소아 재활에서도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는 유인책과 교육 체계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역할 분담을 통해 적절한 소아 재활 의료 전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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