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악의 식량난’ 대책, 결국 농민 쥐어짜기?

입력 2022.09.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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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과 북·중 화물열차 운행 재개 등 굵직한 이슈로 주목을 받은 오늘(26일), 북한 관영매체들은 농사 실태와 농업 정책을 점검하는 노동당 정치국 회의가 열린 사실을 주요 소식으로 보도했습니다.

관영매체들은 "어제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올해의 농사 실태를 점검하고, 농업 정책들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문제를 주요 의제로 토의해 중요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밝혔습니다.

농사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해 정치국 회의를 연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식량난을 방증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 "양곡 빼돌리기와 전쟁" 선포

관영매체들은 정치국 회의에서 채택됐다는 중요 결정서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선중앙통신은 회의 소식과 함께 다음과 같이 보도해, 결정서의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을걷이와 탈곡에 모든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총집중해 양곡수매와 공급사업을 개선하고 당과 국가의 양곡정책 집행을 저해하는 현상들과의 투쟁을 강도높이 전개할 데 대하여 강조했다"

눈길을 끄는 건 '양곡정책 집행 저해 현상들과의 투쟁'이란 대목입니다.

북한의 양곡정책을 간단히 보면, 농민들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곡물을 국가에 내고 남은 곡물을 분배받는 구조입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분조 관리제 내 포전 담당제'(협동농장에서 농사일을 담당하는 말단 단위인 분조(分組)를 세분화해 4~5명의 인원으로 축소한 가족 단위 규모로 운영되는 영농방식 )를 통해  기존의 집단농업체제를 완화하고, 생산물에 대한 농민들의 자율적인 처분권을 확대하는 개혁 조치를 시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는 농민들이 국가에 바쳐야 하는 양이 늘어나는 반면, 분배받을 것은 줄어드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자율 처분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북한 농민들 사이에는 가을 식량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가가 곡물을 가져가는 '양곡정책 집행'을 회피하는 '저해 현상들', 즉 '양곡 빼돌리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겁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농민들도 처분할 식량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가져가기 전에 미리 베어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북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결국, 북한 지도부는 '양곡 빼돌리기'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을 정치국 회의에서 논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생산량 증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양곡 빼돌리기, 성과치 부풀리기, 양곡 매수 시 주민들의 저항 등 비리를 엄단하기 위한 사전 점검"이라고 회의의 성격을 진단했습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정치국 회의가 25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정치국 회의가 25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 "평양도 식량 공급 비상조치"

북한 농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북한 엘리트 계급이 모여 사는 평양에는 식량 공급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북한이 10월 10일 당 창건일을 앞두고 평양시 주민들에게 20일분의 식량을 공급하라는 지시를 평양시 당 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 하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매체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 북한은 황해도와 평안도의 일부 농장을 평양시 주민 공급용 식량 기지로 지정했지만,   태풍과 폭우 등에 따른 피해가 심각해 가을철 평양 식량 공급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지난 17일 긴급회의 이후 평양 시내 구역·군 인민위원회 책임일꾼(간부)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각 지방으로 급파됐다"고 전했습니다. 또 "지방 주민들은 한해 농사를 지어 놓으면 군대나 평양에서 다 가져간다고 반발하고 있다”며 지방 민심도 전했습니다.

이런 보도에 대해 조한범 연구위원은 "개연성이 있다"면서 "선심성 조치라기보다는 평양의 식량 사정도 절박하기 때문에 취하는 비상 조치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보통 6개월 치 식량을 비축해놓고 있는데, 일반 주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구조"라며 "지금은 국경 봉쇄로 장마당 체계가 무너져 구매력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약 150일 만에 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되면서 북한의 식량난도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는 게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중국도 올해 가뭄과 수해에 시달려 식량 상황이 좋지 않다. 중국은 원래 식량 수출을 통제하는 국가"라며 "중국이 2천5백만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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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최악의 식량난’ 대책, 결국 농민 쥐어짜기?
    • 입력 2022-09-26 16:38:53
    취재K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과 북·중 화물열차 운행 재개 등 굵직한 이슈로 주목을 받은 오늘(26일), 북한 관영매체들은 농사 실태와 농업 정책을 점검하는 노동당 정치국 회의가 열린 사실을 주요 소식으로 보도했습니다.

관영매체들은 "어제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올해의 농사 실태를 점검하고, 농업 정책들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문제를 주요 의제로 토의해 중요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밝혔습니다.

농사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해 정치국 회의를 연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식량난을 방증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 "양곡 빼돌리기와 전쟁" 선포

관영매체들은 정치국 회의에서 채택됐다는 중요 결정서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선중앙통신은 회의 소식과 함께 다음과 같이 보도해, 결정서의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을걷이와 탈곡에 모든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총집중해 양곡수매와 공급사업을 개선하고 당과 국가의 양곡정책 집행을 저해하는 현상들과의 투쟁을 강도높이 전개할 데 대하여 강조했다"

눈길을 끄는 건 '양곡정책 집행 저해 현상들과의 투쟁'이란 대목입니다.

북한의 양곡정책을 간단히 보면, 농민들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곡물을 국가에 내고 남은 곡물을 분배받는 구조입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분조 관리제 내 포전 담당제'(협동농장에서 농사일을 담당하는 말단 단위인 분조(分組)를 세분화해 4~5명의 인원으로 축소한 가족 단위 규모로 운영되는 영농방식 )를 통해  기존의 집단농업체제를 완화하고, 생산물에 대한 농민들의 자율적인 처분권을 확대하는 개혁 조치를 시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는 농민들이 국가에 바쳐야 하는 양이 늘어나는 반면, 분배받을 것은 줄어드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자율 처분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북한 농민들 사이에는 가을 식량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가가 곡물을 가져가는 '양곡정책 집행'을 회피하는 '저해 현상들', 즉 '양곡 빼돌리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겁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농민들도 처분할 식량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가져가기 전에 미리 베어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북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결국, 북한 지도부는 '양곡 빼돌리기'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을 정치국 회의에서 논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생산량 증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양곡 빼돌리기, 성과치 부풀리기, 양곡 매수 시 주민들의 저항 등 비리를 엄단하기 위한 사전 점검"이라고 회의의 성격을 진단했습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정치국 회의가 25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 "평양도 식량 공급 비상조치"

북한 농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북한 엘리트 계급이 모여 사는 평양에는 식량 공급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북한이 10월 10일 당 창건일을 앞두고 평양시 주민들에게 20일분의 식량을 공급하라는 지시를 평양시 당 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 하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매체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 북한은 황해도와 평안도의 일부 농장을 평양시 주민 공급용 식량 기지로 지정했지만,   태풍과 폭우 등에 따른 피해가 심각해 가을철 평양 식량 공급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지난 17일 긴급회의 이후 평양 시내 구역·군 인민위원회 책임일꾼(간부)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각 지방으로 급파됐다"고 전했습니다. 또 "지방 주민들은 한해 농사를 지어 놓으면 군대나 평양에서 다 가져간다고 반발하고 있다”며 지방 민심도 전했습니다.

이런 보도에 대해 조한범 연구위원은 "개연성이 있다"면서 "선심성 조치라기보다는 평양의 식량 사정도 절박하기 때문에 취하는 비상 조치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보통 6개월 치 식량을 비축해놓고 있는데, 일반 주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구조"라며 "지금은 국경 봉쇄로 장마당 체계가 무너져 구매력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약 150일 만에 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되면서 북한의 식량난도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는 게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중국도 올해 가뭄과 수해에 시달려 식량 상황이 좋지 않다. 중국은 원래 식량 수출을 통제하는 국가"라며 "중국이 2천5백만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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