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공사 현장 방치하는 LH…“불법은 아니다”

입력 2022.10.0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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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은 사망사고가 가장 많은 산업현장입니다. 부동의 1위입니다. 지난해에도 건설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노동자가 417명, 매일 1.1명꼴입니다.

사고 원인을 보면, '추락'과 '끼임' 등 후진적인 산재가 절반을 넘습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기본만 지켜도 절반은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 수칙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일을 전담할 이를 배치하자는 논의가 나온 배경입니다.

■ 공사 감독자는 누구?

2019년 7월부터 공공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는 '공사 감독자'를 둬야 합니다. 건설기술진흥법이 정한 법적 의무입니다.

공사 감독자는 공사가 계획대로 시공되는지 감독하고 공사 현장의 안전과 품질을 전담 관리합니다. '돈줄'에 대한 권한도 있습니다. 공사비를 현장의 안전 실태에 맞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공사 발주처가 현장에 내려보낸 일종의 '시어머니' 입니다.

시공하는 건설사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발주처 몰래 더 싼 자재를 쓰거나, 추락 방지 발판을 덜 설치하는 꼼수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 LH 현장 85% 감독자 '미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가장 많은 공공 공사를 발주하는 기관입니다. LH의 공사 감독자는 어떠할까요. 법을 잘 지키고 있을까요.

LH가 자체 감독하는 공사현장 중 인원 기준을 맞춘 곳은 1/4 정도뿐입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조오섭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LH의 자체 감독 현장 166곳 중 142곳이 법적 기준에 못 미치는 공사 감독자를 두고 있습니다. 85%가 기준 미달입니다.

상주하는 감독자가 한 명도 없는 건설 현장도 30곳이나 됩니다.


■ 문제는 있지만,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LH 현장 대부분은 불법이 아닙니다.

공사 감독을 의무화한 건설기술진흥법의 관련 조항이 2019년 7월부터 시행됐기 때문입니다. 설계용역 입찰 공고 시점이 그 이전이라면 법에서 자유롭습니다.

LH 관계자는 "공사 감독자가 기준에 미달하는 곳들은 모두 2019년 7월 이전에 입찰 공고를 낸 곳들"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이 적용되는 현장은 법을 지키고 있지만, 미적용되는 현장은 '굳이' 법을 안 지키는 겁니다. 준법 경영도 '효율적으로' 하는 셈입니다.

■ "안전은 소급하면 안 되나요"


2018년 11월,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에 건축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 이후,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의료기관 등엔 소방시설을 소급 설치하도록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5년 동안 LH 자체 감독 공사현장에선 산재로 11명이 사망하고 538명이 다쳤습니다.

한해에 같은 장소에서 사망 사고가 두 번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LH가 발주한 과천 지식정보타운 공사 현장에선 지난해 2월 60대 노동자가 'H빔'에 맞아 숨졌고, 곧바로 4개월 뒤 50대 작업자가 깔림 사고로 숨졌습니다.

현행법대로면, 이 공사 현장엔 공사 감독자가 9명 근무해야 하지만, 소급 적용을 피한 곳이라 4명만 근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안전 경영만큼은 자발적으로 소급하면 어떨지. 공공기관 LH의 인식 전환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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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한 공사 현장 방치하는 LH…“불법은 아니다”
    • 입력 2022-10-03 07:02:26
    취재K

건설업은 사망사고가 가장 많은 산업현장입니다. 부동의 1위입니다. 지난해에도 건설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노동자가 417명, 매일 1.1명꼴입니다.

사고 원인을 보면, '추락'과 '끼임' 등 후진적인 산재가 절반을 넘습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기본만 지켜도 절반은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 수칙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일을 전담할 이를 배치하자는 논의가 나온 배경입니다.

■ 공사 감독자는 누구?

2019년 7월부터 공공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는 '공사 감독자'를 둬야 합니다. 건설기술진흥법이 정한 법적 의무입니다.

공사 감독자는 공사가 계획대로 시공되는지 감독하고 공사 현장의 안전과 품질을 전담 관리합니다. '돈줄'에 대한 권한도 있습니다. 공사비를 현장의 안전 실태에 맞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공사 발주처가 현장에 내려보낸 일종의 '시어머니' 입니다.

시공하는 건설사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발주처 몰래 더 싼 자재를 쓰거나, 추락 방지 발판을 덜 설치하는 꼼수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 LH 현장 85% 감독자 '미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가장 많은 공공 공사를 발주하는 기관입니다. LH의 공사 감독자는 어떠할까요. 법을 잘 지키고 있을까요.

LH가 자체 감독하는 공사현장 중 인원 기준을 맞춘 곳은 1/4 정도뿐입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조오섭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LH의 자체 감독 현장 166곳 중 142곳이 법적 기준에 못 미치는 공사 감독자를 두고 있습니다. 85%가 기준 미달입니다.

상주하는 감독자가 한 명도 없는 건설 현장도 30곳이나 됩니다.


■ 문제는 있지만,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LH 현장 대부분은 불법이 아닙니다.

공사 감독을 의무화한 건설기술진흥법의 관련 조항이 2019년 7월부터 시행됐기 때문입니다. 설계용역 입찰 공고 시점이 그 이전이라면 법에서 자유롭습니다.

LH 관계자는 "공사 감독자가 기준에 미달하는 곳들은 모두 2019년 7월 이전에 입찰 공고를 낸 곳들"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이 적용되는 현장은 법을 지키고 있지만, 미적용되는 현장은 '굳이' 법을 안 지키는 겁니다. 준법 경영도 '효율적으로' 하는 셈입니다.

■ "안전은 소급하면 안 되나요"


2018년 11월,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에 건축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 이후,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의료기관 등엔 소방시설을 소급 설치하도록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5년 동안 LH 자체 감독 공사현장에선 산재로 11명이 사망하고 538명이 다쳤습니다.

한해에 같은 장소에서 사망 사고가 두 번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LH가 발주한 과천 지식정보타운 공사 현장에선 지난해 2월 60대 노동자가 'H빔'에 맞아 숨졌고, 곧바로 4개월 뒤 50대 작업자가 깔림 사고로 숨졌습니다.

현행법대로면, 이 공사 현장엔 공사 감독자가 9명 근무해야 하지만, 소급 적용을 피한 곳이라 4명만 근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안전 경영만큼은 자발적으로 소급하면 어떨지. 공공기관 LH의 인식 전환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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