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나는데 왜 심어?”…‘단골 가로수’ 은행나무의 비밀

입력 2022.10.0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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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가을철이 되면서 은행나무 낙과로 인한 민원이 각 지자체에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시내 가로수는 총 30만 5,086그루, 이 중 은행나무가 10만 6,205그루(약 35% 차지)로 가장 많다. (사진 출처=연합뉴스)본격적인 가을철이 되면서 은행나무 낙과로 인한 민원이 각 지자체에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시내 가로수는 총 30만 5,086그루, 이 중 은행나무가 10만 6,205그루(약 35% 차지)로 가장 많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 "빨리 털자" 굴착기까지 등장…전국은 지금 '은행과의 전쟁'

본격적인 가을철이 되면서 길가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은행나무 열매', 자주 보실 겁니다. 무심히 걷다 밟으면 터져 나오는 악취에 코를 쥐기도 하고, 으깨진 채로 거리를 뒤덮은 모양새에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을 텐데요.

이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구청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지금 '은행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거리 청소는 물론 보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가지 주변에 그물망을 설치하거나, 굴착기 등 진동기가 부착된 설비로 '조기 채취'에 나서는 식입니다.

가을철 ‘악취 민원’이 잇따르자 은행나무 열매 채취를 위해 가지 주변에 망을 설치하거나, 진동 수확기가 장착된 굴착기로 ‘조기 수거’에 나서는 등 지자체마다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 출처=KBS 뉴스 영상 갈무리 및 연합뉴스)가을철 ‘악취 민원’이 잇따르자 은행나무 열매 채취를 위해 가지 주변에 망을 설치하거나, 진동 수확기가 장착된 굴착기로 ‘조기 수거’에 나서는 등 지자체마다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 출처=KBS 뉴스 영상 갈무리 및 연합뉴스)

서울시는 최근 25개 자치구에 '은행나무 열매 처리 방법 지침'을 내렸고, 현재 구마다 기동반을 편성해 은행을 집중 채취하고 있습니다. 민원이 접수되면 24시간 이내에 은행을 수거하는 '신속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구·광주·목포 등 각 지방에서도 쾌적한 거리 조성을 위해 조기 채취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자치구마다 접수되는 은행나무 열매 민원은 월평균 40~50건, 많을 때는 하루에 30여 건의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는데요. 이처럼 낙과(落果)가 골칫거리인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은행나무의 비밀' 한 껍질을 벗겨봤습니다.

■ 서울 가로수 중 '은행나무' 가장 많아…예전에는 '플라타너스' 인기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시내 가로수는 총 30만 5,086그루, 이 중 은행나무가 10만 6,205그루(약 35% 차지)로 가장 많습니다. 이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5만 9,776그루, 느티나무 3만 7,789그루, 왕벚나무 3만 5,583그루 순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 도로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가 으깨져 있다.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는데, 서울시내 은행나무 가로수 가운데 25.4%, 2만 6,981그루가 암나무다.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 도로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가 으깨져 있다.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는데, 서울시내 은행나무 가로수 가운데 25.4%, 2만 6,981그루가 암나무다.

은행 열매의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는 겉껍질 속 점액에 있는 '비오볼'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곤충으로부터 속살을 보호하는 물질로, 열매 껍질이 찢어지면 점액이 새어 나와 악취를 풍기는데요. 이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립니다. 서울 은행나무 가로수 가운데 25.4%, 2만 6,981그루가 암나무입니다.

열매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자 서울 강북구 등 몇몇 지자체에서는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근래 들어 국립산림과학원이 조기에 '은행나무 암수 감별'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지만, 예전에는 최소 15년 이상 성장한 뒤에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애초에 은행나무 자체를 가로수로 안 심으면 될 일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양버즘나무가 가로수로 제일 인기였답니다. 당시 은행나무는 양버즘나무에 이어 수양버들에도 밀려 서울 시내 가로수 중 3위에 그쳤습니다.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좌)와 수양버들(우). 1980~1990년대 우리나라 가로수로 애용되던 두 수종은 2000년대 이후 은행나무의 인기에 밀리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좌)와 수양버들(우). 1980~1990년대 우리나라 가로수로 애용되던 두 수종은 2000년대 이후 은행나무의 인기에 밀리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1990년대까지 '가로수 큰형님'으로 자리 잡았던 양버즘나무는 2000년대 이후 점차 퇴조했습니다. 한때 매력 포인트였던 큼직한 잎사귀와 빠른 생장(生長) 속도가 되레 단점으로 지목됐기 때문이지요. 건물 간판과 고층 빌딩 창을 가린다는 이유였습니다. 수양버들도 '홀씨를 날려 시민들의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퇴출됐습니다.

■ "아름다운 잎새 외에도 '화재·병충해·대기오염'에 강하다"

그렇게 두 수종(樹種)이 물러난 '무주공산(無主空山) 가로수계(界)'를 은행나무가 물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학계에서는 '경관상 이유 외에도, 은행나무가 가로수로서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관련 학계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분진을 흡착하는 등 공기 정화 능력을 지녔고 껍질이 두꺼워 화재와 병충해에 강해 가로수로서 애용되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관련 학계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분진을 흡착하는 등 공기 정화 능력을 지녔고 껍질이 두꺼워 화재와 병충해에 강해 가로수로서 애용되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첫째,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매연과 분진 등 공해(公害)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산화탄소·아황산가스 등 유해물질을 빨아들이는 '공기 정화 효과'가 좋다는 것이지요. 김수봉 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로수의 제1조건은 '대기오염에 강해야 한다'는 점이다"라며 "침엽수인 은행나무는 매연에 잘 죽지도 않고, 분진이 잎에 가라앉아서 비가 오면 씻겨나간다. 먼지 흡착력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껍질이 두꺼워 화재와 병충해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최재용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은행나무는 방화(防火) 식재(植栽)로 좋다"며 "불이 나도 잘 옮겨붙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나무 자체에 '플라보노이드'라는 살균·살충 성분이 있어 기생하는 벌레나 바이러스를 억제한다고 합니다.

■ '가을 일기장, 은행잎 책갈피'…낭만은 갔어도

떨어진 잎사귀를 책갈피 삼아 일기장에 꽂고, 열매를 거둬 기름 두른 팬에 볶아 먹던 옛 시절. 그때의 '낭만'은 흘러갔고 이젠 '불청객'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은행나무, 우리 곁에 가로수로 계속 남아 있어도 괜찮을까요?

몇몇 생태학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수나무 교체나 약물 주입 등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건 '인간의 편의'만 생각한 조치"라며 "은행나무도 가로수로서 여러 이점이 있는 만큼, 열매가 떨어지는 짧은 시기만 사람이 감수하고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탄소 중립'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하는데요.

가을이 절정일 때 노랗게 물들어 잎새는 아름다워도 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 역시 많은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또 다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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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냄새 나는데 왜 심어?”…‘단골 가로수’ 은행나무의 비밀
    • 입력 2022-10-03 09:01:51
    취재K
본격적인 가을철이 되면서 은행나무 낙과로 인한 민원이 각 지자체에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시내 가로수는 총 30만 5,086그루, 이 중 은행나무가 10만 6,205그루(약 35% 차지)로 가장 많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 "빨리 털자" 굴착기까지 등장…전국은 지금 '은행과의 전쟁'

본격적인 가을철이 되면서 길가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은행나무 열매', 자주 보실 겁니다. 무심히 걷다 밟으면 터져 나오는 악취에 코를 쥐기도 하고, 으깨진 채로 거리를 뒤덮은 모양새에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을 텐데요.

이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구청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지금 '은행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거리 청소는 물론 보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가지 주변에 그물망을 설치하거나, 굴착기 등 진동기가 부착된 설비로 '조기 채취'에 나서는 식입니다.

가을철 ‘악취 민원’이 잇따르자 은행나무 열매 채취를 위해 가지 주변에 망을 설치하거나, 진동 수확기가 장착된 굴착기로 ‘조기 수거’에 나서는 등 지자체마다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 출처=KBS 뉴스 영상 갈무리 및 연합뉴스)
서울시는 최근 25개 자치구에 '은행나무 열매 처리 방법 지침'을 내렸고, 현재 구마다 기동반을 편성해 은행을 집중 채취하고 있습니다. 민원이 접수되면 24시간 이내에 은행을 수거하는 '신속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구·광주·목포 등 각 지방에서도 쾌적한 거리 조성을 위해 조기 채취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자치구마다 접수되는 은행나무 열매 민원은 월평균 40~50건, 많을 때는 하루에 30여 건의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는데요. 이처럼 낙과(落果)가 골칫거리인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은행나무의 비밀' 한 껍질을 벗겨봤습니다.

■ 서울 가로수 중 '은행나무' 가장 많아…예전에는 '플라타너스' 인기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시내 가로수는 총 30만 5,086그루, 이 중 은행나무가 10만 6,205그루(약 35% 차지)로 가장 많습니다. 이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5만 9,776그루, 느티나무 3만 7,789그루, 왕벚나무 3만 5,583그루 순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 도로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가 으깨져 있다.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는데, 서울시내 은행나무 가로수 가운데 25.4%, 2만 6,981그루가 암나무다.
은행 열매의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는 겉껍질 속 점액에 있는 '비오볼'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곤충으로부터 속살을 보호하는 물질로, 열매 껍질이 찢어지면 점액이 새어 나와 악취를 풍기는데요. 이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립니다. 서울 은행나무 가로수 가운데 25.4%, 2만 6,981그루가 암나무입니다.

열매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자 서울 강북구 등 몇몇 지자체에서는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근래 들어 국립산림과학원이 조기에 '은행나무 암수 감별'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지만, 예전에는 최소 15년 이상 성장한 뒤에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애초에 은행나무 자체를 가로수로 안 심으면 될 일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양버즘나무가 가로수로 제일 인기였답니다. 당시 은행나무는 양버즘나무에 이어 수양버들에도 밀려 서울 시내 가로수 중 3위에 그쳤습니다.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좌)와 수양버들(우). 1980~1990년대 우리나라 가로수로 애용되던 두 수종은 2000년대 이후 은행나무의 인기에 밀리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1990년대까지 '가로수 큰형님'으로 자리 잡았던 양버즘나무는 2000년대 이후 점차 퇴조했습니다. 한때 매력 포인트였던 큼직한 잎사귀와 빠른 생장(生長) 속도가 되레 단점으로 지목됐기 때문이지요. 건물 간판과 고층 빌딩 창을 가린다는 이유였습니다. 수양버들도 '홀씨를 날려 시민들의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퇴출됐습니다.

■ "아름다운 잎새 외에도 '화재·병충해·대기오염'에 강하다"

그렇게 두 수종(樹種)이 물러난 '무주공산(無主空山) 가로수계(界)'를 은행나무가 물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학계에서는 '경관상 이유 외에도, 은행나무가 가로수로서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관련 학계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분진을 흡착하는 등 공기 정화 능력을 지녔고 껍질이 두꺼워 화재와 병충해에 강해 가로수로서 애용되고 있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첫째,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매연과 분진 등 공해(公害)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산화탄소·아황산가스 등 유해물질을 빨아들이는 '공기 정화 효과'가 좋다는 것이지요. 김수봉 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로수의 제1조건은 '대기오염에 강해야 한다'는 점이다"라며 "침엽수인 은행나무는 매연에 잘 죽지도 않고, 분진이 잎에 가라앉아서 비가 오면 씻겨나간다. 먼지 흡착력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껍질이 두꺼워 화재와 병충해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최재용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은행나무는 방화(防火) 식재(植栽)로 좋다"며 "불이 나도 잘 옮겨붙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나무 자체에 '플라보노이드'라는 살균·살충 성분이 있어 기생하는 벌레나 바이러스를 억제한다고 합니다.

■ '가을 일기장, 은행잎 책갈피'…낭만은 갔어도

떨어진 잎사귀를 책갈피 삼아 일기장에 꽂고, 열매를 거둬 기름 두른 팬에 볶아 먹던 옛 시절. 그때의 '낭만'은 흘러갔고 이젠 '불청객'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은행나무, 우리 곁에 가로수로 계속 남아 있어도 괜찮을까요?

몇몇 생태학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수나무 교체나 약물 주입 등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건 '인간의 편의'만 생각한 조치"라며 "은행나무도 가로수로서 여러 이점이 있는 만큼, 열매가 떨어지는 짧은 시기만 사람이 감수하고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탄소 중립'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하는데요.

가을이 절정일 때 노랗게 물들어 잎새는 아름다워도 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 역시 많은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또 다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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