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 달 된 물 빠지자 전염병 창궐…파키스탄 수해현장을 가다

입력 2022.10.0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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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신드 주의 수쿠르 시에서 차로 조금만 벗어나자, 도로 양 옆으로 거대한 물이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호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나 싶을 정도로 깊어 보이는 물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가끔 전신주와 나무만 보일 뿐 다른 흔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 위로는 텐트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색도 제각각, 크기도 제각각인 천들로 겨우 햇빛만 가려놨습니다. 다들 힘없이 앉아 물만 바라봅니다.

취재를 위해 다가가자 다들 홍수 이후 힘든 상황을 들려줍니다.
"바로 저기 물속에 집이 있어요.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파키스탄 신드 주 한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파키스탄 신드 주 한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 호수로 변한 도시…한 달째 물 안 빠져

홍수 피해가 가장 컸던 신드 주 캄바르 샤다코트 지역의 한 마을.

취재진이 가자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꿈을 묻는 질문에 한 소녀가 수줍게 답하자 다른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대답합니다.
"저도요", "저도 선생님이 꿈이에요"

학교도 물에 잠겼고, 선생님도 없어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고 아이들의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물에 잠겼다 일부 물이  빠진  신드 주의 한 마을물에 잠겼다 일부 물이 빠진 신드 주의 한 마을

8월 30일, 이들이 사는 마을은 폭우로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어른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물을 피해 급히 도로 위로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이들의 도로 위 텐트 생활은 이어졌습니다. 천막에 쓰일 천 조각 하나도 지원받지 못했던 이들은 급하게 옷가지 등으로 가리고 3주간 생활했습니다. 지난주부터 물이 조금 빠졌다는 소식에 100가구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집들은 대부분 무너졌고, 여전히 일부는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래도 도로 위보다는 안전하다고 생각해 무너진 마을에서 생활 중입니다. 하지만 물은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생활은 어렵기만 합니다. 특히 괴로운 건 늘어나는 모기와 뱀입니다. 치명적인 병들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 말라리아·콜레라 등 전염병 심각…"교통비 없어 병원 못 가"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교통비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감기약으로 버티고 있는 아이말라리아에 걸렸지만, 교통비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감기약으로 버티고 있는 아이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도 한 소녀가 심한 말라리아를 앓고 있었습니다. 열이 펄펄 끓는 소녀는 오한이 와 담요를 끌어안고 침대 구조물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감기약만 계속 먹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첫째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려 병원에 데려갔다 왔습니다. 약을 받아왔는데 그때 모든 돈을 다 썼습니다. 둘째까지 데려갈 돈이 없습니다."

병원은 차로 한 두 시간 가야 하는데, 대부분 교통비가 없습니다.

유엔 식량계획(WFP)의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유엔 식량계획(WFP)의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지원 손길 닿지 못하는 곳 많아…한 달 넘게 도로 위 생활

신드 주 자카바드의 또다른 마을.

홍수 피해를 입은 지 한 달 만에 첫 구호물품이 도착했습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받을 수 있을 만큼의 물량이 있지만, 마음은 조급합니다. 앞에서 한 명씩 들어갈 때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불안합니다.

간절함과 불안함에 서로 밀치고, 항의하고, 결국 무장경찰까지 나섭니다.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구호물품을 받을 수 없다고 방송해 보지만,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취재진이 인터뷰한 모함마드 까심 씨는 아이가 10명입니다.
집이 여전히 물에 잠겨 있어 벌써 한 달째 도로 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다며 받은 밀가루와 오일 등을 힘겹게 들고 다시 텐트로 돌아갔습니다.

보트를 타고 한참 가야 보이는 고립된 마을. 인명구조대(Rescue 1122)의 가장 큰 임무는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다.보트를 타고 한참 가야 보이는 고립된 마을. 인명구조대(Rescue 1122)의 가장 큰 임무는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 물 한가운데 고립된 마을들이 문제…보트로도 접근 어려워

가장 큰 문제는 고립된 마을들입니다. 주변으로 물이 너무 많이 차올라 쉽게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취재진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한 고립된 마을을 찾았습니다.

수륙양용차를 타고 보트가 있는 곳까지 15분, 보트로 갈아탄 뒤 20분을 들어가자, 한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가는 길은 험했습니다. 곳곳에 전신주가 쓰러져 있어 위험해 보였고, 물이 깊어졌다 얕아졌다 반복되고 있어 보트가 헤치고 가기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다 풀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이면 엄청난 모기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40가구가 사는 나비단 메그시 마을.

일부는 지붕에서, 일부는 마당에서 가재도구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혹시라도 물고기가 잡힐까 그물을 펼쳐보는 이재민.혹시라도 물고기가 잡힐까 그물을 펼쳐보는 이재민.

먹을 것이 없는 이들은 물에 들어가서 물고기라도 잡을까 그물을 펼쳐보지만, 고여있는 물에서는 물고기를 볼 수 없습니다.

도로 위 텐트촌 모습. 텐트에 쓰이는 천막 하나 지원받지 못한 상황.도로 위 텐트촌 모습. 텐트에 쓰이는 천막 하나 지원받지 못한 상황.

집을 잃은 이들 대부분은 도로 위에 텐트를 치고 생활합니다. 겨우 햇빛만 가릴 뿐 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재산의 전부인 가축과 함께 텐트 안에서 그저 물이 빠지기를 기다립니다.

■ 790만 명 여전히 집 떠나 생활…물 빠지는데 최소 6개월 전망

한 달이 지난 지금 현재까지 파키스탄 홍수로 숨진 사람은 1,600명이 넘었습니다. 3,300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790만 명이 집을 떠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비가 그친 지금 가장 심각한 건 식량 부족과 전염병인데, 일부에서는 500만 명이 수인성 전염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병원은 말라리아와 콜레라, 뎅기열, 피부병에 걸린 아이들로 가득 찼고, 병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더 많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수해 피해 지역에 9월 11일까지 밀가루와 노란 콩, 식물성 기름, 소금 등 2천 톤에 가까운 식량을 제공했습니다. 또 5천 명의 아동과 산모에게 영양 식품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지원이 닿지 못하는 지역은 더 많습니다.

존 에일리프/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장존 에일리프/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장

KBS는 유엔세계식량계획의 존 에일리프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장으로부터 파키스탄의 상황을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Q. 파키스탄의 현재 상황은?

A. 이번 홍수는 처참함 그 자체입니다. 3천3백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파키스탄 전 국토의 1/3이 물에 잠겼습니다. 피해가 정말 심합니다. 학교 2만 곳이 없어졌고, 2백만 가구와 6천㎞에 달하는 도로가 물에 잠기거나 붕괴 또는 유실됐습니다. 파키스탄 국민들은 심하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60만 명이 임시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는데 이미 꽉 찼습니다.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심각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시보호시설에 머무는 건 그나마 낫습니다. 나머지는 고립됐습니다. 접근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고립되어서 나올 수조차 없습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A. 파키스탄 정부는 현재 사람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6백 40만 명이 즉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건 주거와 식량 문제 해결입니다. 그리고 건강 문제도 포함됩니다.

WFP는 처참한 상황에 놓여있는 2백만 명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0만 명에 지원을 했는데 이는 단기간이 아닌 장기 회복을 위한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립된 이들에게 구호품을 지급하기 위해 정부와 다른 구호단체들과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고립된 지역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A. 매일 도로 상황을 살피고 현장 상황들을 보며 지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막힌 도로들이 많은데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회할 수 있는 도로들을 찾고 있습니다. 보트를 이용해 구호품도 전달합니다. 정부도 헬리콥터를 이용해 구호작업을 계속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습니다.

Q. 지원을 위해 필요한 기금이 얼마인가?

A. 펀딩을 위해 1억 5천만 달러(한화 약 2,161억 원)가 필요합니다. 단지 몇 주 지원을 하기 위한 기금 뿐만 아니라 홍수 피해 회복을 위한 비용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집과 가축, 생계를 위한 도구 등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회복되는데는 수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WFP가 당장의 생계 지원 뿐만 아니라 오랜 회복 기간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금이 필요합니다.

Q. 현지 의료 상황은 어떤가?

A. 파키스탄 정부에서 파견한 훌륭한 의료진들 뿐만 아니라 구호단체 소속 의료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피해의 규모가 너무나 크다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의료 혜택이 돌아가기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영양적인 부분에서 걱정이 됩니다. 파키스탄은 홍수 이전에도 18%의 아이들이 심각한 영양부족을 겪고 있었고, 이제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입니다. 이미 많은 인구가 영양부족 상태입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임산부들에게도 특별 영양식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기금 마련이 가장 우선순위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같은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WFP의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합니다.

Q. 기후위기의 영향은?

A. 저는 2010년 파키스탄 홍수 피해 복구 당시에도 참여했습니다. 2022년 현재는 당시보다 3배 나 많은 3천3백만 명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관련된 재난들은 점점 빈번해지고 있고 더 처참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파키스탄 폭우도 기후변화와 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폭우는 물론, 그 전에 나타난 폭염, 올해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폭염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UN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파키스탄을 방문해 이는 보통의 재난이 아니고 '기후 위기'라고 규정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선진국들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그 지원은 단순히 '관대함'이 아닌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기후변화에 가장 큰 원인제공을 한, 즉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한 국가들이 지금 파키스탄 국민과 영양실조 아동들을 도와야하는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Q.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있을까?

A.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이 문제제기에 좋은 시점입니다. 오늘날 3억 4천 5백만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초보다 8천만 명이나 많은 수치입니다.
코로나 대유행, 무역 중단, 각 국가의 봉쇄정책, 기후요인,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이 큽니다. 물론 인구증가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첫째로 기후 변화에 대한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농업과 식량 시스템을 개선하고, 농촌 인구의 소득을 다양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또 소규모 농가와 빈곤 가정을 연결하기 위한 계획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사회 복지입니다.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인 사회보호 시스템의 역할이 과소평가되어 있습니다. 사회 보호 시스템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복 속도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인당 투자액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적고, 사회적 보호 시스템도 부족하며 약 70%의 노동자가 보호 장치 없이 비공식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스리랑카와 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떤가요?

A. 얼마 전 저는 스리랑카에 다녀왔는데 굶주림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입니다. 음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수입이 없으며 절반의 가정은 식탁위에 음식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WFP는 10월 말 또는 11월, 정부로부터 지원받던 110만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걱정입니다. 다음 농사 시즌이 다가오고 있지만, 비료도 거의 없습니다. 이는 식량 공급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제가 30년동안 이 분야 일을 하면서 경험했던 중 가장 마음이 아픈 상황입니다. 고통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인구의 절반인 2천4백만 명이 긴급한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10가구 중 9가구는 식탁 위에 음식을 올릴 수 없습니다. 정부 예산 중 75%는 국제사회 지원으로 충당됐는데 탈레반 재집권 이후 이마저도 어려워지면서 빈곤은 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달 전 아프간의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병원직원들은 나무를 팔아서 병원 운영비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2-3kg밖에 몸무게가 나가지 않는 한 살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아기의 오빠도 누워있었는데 엄마는 보고 있었습니다. 자포자기가 퍼진 아프간 상황입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어린 딸을 팔아 결혼시키고, 장기를 파는 이야기들을 들으셨을 겁니다.

WFP는 아프간 내 가장 큰 인도주의 지원단체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기부금이 들어왔지만 슬프게도 이제 그 기금은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10억 달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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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한 달 된 물 빠지자 전염병 창궐…파키스탄 수해현장을 가다
    • 입력 2022-10-04 07:03:47
    특파원 리포트

파키스탄 신드 주의 수쿠르 시에서 차로 조금만 벗어나자, 도로 양 옆으로 거대한 물이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호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나 싶을 정도로 깊어 보이는 물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가끔 전신주와 나무만 보일 뿐 다른 흔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 위로는 텐트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색도 제각각, 크기도 제각각인 천들로 겨우 햇빛만 가려놨습니다. 다들 힘없이 앉아 물만 바라봅니다.

취재를 위해 다가가자 다들 홍수 이후 힘든 상황을 들려줍니다.
"바로 저기 물속에 집이 있어요.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파키스탄 신드 주 한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 호수로 변한 도시…한 달째 물 안 빠져

홍수 피해가 가장 컸던 신드 주 캄바르 샤다코트 지역의 한 마을.

취재진이 가자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꿈을 묻는 질문에 한 소녀가 수줍게 답하자 다른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대답합니다.
"저도요", "저도 선생님이 꿈이에요"

학교도 물에 잠겼고, 선생님도 없어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고 아이들의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물에 잠겼다 일부 물이  빠진  신드 주의 한 마을
8월 30일, 이들이 사는 마을은 폭우로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어른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물을 피해 급히 도로 위로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이들의 도로 위 텐트 생활은 이어졌습니다. 천막에 쓰일 천 조각 하나도 지원받지 못했던 이들은 급하게 옷가지 등으로 가리고 3주간 생활했습니다. 지난주부터 물이 조금 빠졌다는 소식에 100가구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집들은 대부분 무너졌고, 여전히 일부는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래도 도로 위보다는 안전하다고 생각해 무너진 마을에서 생활 중입니다. 하지만 물은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생활은 어렵기만 합니다. 특히 괴로운 건 늘어나는 모기와 뱀입니다. 치명적인 병들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 말라리아·콜레라 등 전염병 심각…"교통비 없어 병원 못 가"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교통비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감기약으로 버티고 있는 아이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도 한 소녀가 심한 말라리아를 앓고 있었습니다. 열이 펄펄 끓는 소녀는 오한이 와 담요를 끌어안고 침대 구조물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감기약만 계속 먹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첫째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려 병원에 데려갔다 왔습니다. 약을 받아왔는데 그때 모든 돈을 다 썼습니다. 둘째까지 데려갈 돈이 없습니다."

병원은 차로 한 두 시간 가야 하는데, 대부분 교통비가 없습니다.

유엔 식량계획(WFP)의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지원 손길 닿지 못하는 곳 많아…한 달 넘게 도로 위 생활

신드 주 자카바드의 또다른 마을.

홍수 피해를 입은 지 한 달 만에 첫 구호물품이 도착했습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받을 수 있을 만큼의 물량이 있지만, 마음은 조급합니다. 앞에서 한 명씩 들어갈 때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불안합니다.

간절함과 불안함에 서로 밀치고, 항의하고, 결국 무장경찰까지 나섭니다.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구호물품을 받을 수 없다고 방송해 보지만,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취재진이 인터뷰한 모함마드 까심 씨는 아이가 10명입니다.
집이 여전히 물에 잠겨 있어 벌써 한 달째 도로 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다며 받은 밀가루와 오일 등을 힘겹게 들고 다시 텐트로 돌아갔습니다.

보트를 타고 한참 가야 보이는 고립된 마을. 인명구조대(Rescue 1122)의 가장 큰 임무는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 물 한가운데 고립된 마을들이 문제…보트로도 접근 어려워

가장 큰 문제는 고립된 마을들입니다. 주변으로 물이 너무 많이 차올라 쉽게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취재진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한 고립된 마을을 찾았습니다.

수륙양용차를 타고 보트가 있는 곳까지 15분, 보트로 갈아탄 뒤 20분을 들어가자, 한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가는 길은 험했습니다. 곳곳에 전신주가 쓰러져 있어 위험해 보였고, 물이 깊어졌다 얕아졌다 반복되고 있어 보트가 헤치고 가기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다 풀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이면 엄청난 모기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40가구가 사는 나비단 메그시 마을.

일부는 지붕에서, 일부는 마당에서 가재도구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혹시라도 물고기가 잡힐까 그물을 펼쳐보는 이재민.
먹을 것이 없는 이들은 물에 들어가서 물고기라도 잡을까 그물을 펼쳐보지만, 고여있는 물에서는 물고기를 볼 수 없습니다.

도로 위 텐트촌 모습. 텐트에 쓰이는 천막 하나 지원받지 못한 상황.
집을 잃은 이들 대부분은 도로 위에 텐트를 치고 생활합니다. 겨우 햇빛만 가릴 뿐 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재산의 전부인 가축과 함께 텐트 안에서 그저 물이 빠지기를 기다립니다.

■ 790만 명 여전히 집 떠나 생활…물 빠지는데 최소 6개월 전망

한 달이 지난 지금 현재까지 파키스탄 홍수로 숨진 사람은 1,600명이 넘었습니다. 3,300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790만 명이 집을 떠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비가 그친 지금 가장 심각한 건 식량 부족과 전염병인데, 일부에서는 500만 명이 수인성 전염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병원은 말라리아와 콜레라, 뎅기열, 피부병에 걸린 아이들로 가득 찼고, 병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더 많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수해 피해 지역에 9월 11일까지 밀가루와 노란 콩, 식물성 기름, 소금 등 2천 톤에 가까운 식량을 제공했습니다. 또 5천 명의 아동과 산모에게 영양 식품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지원이 닿지 못하는 지역은 더 많습니다.

존 에일리프/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장
KBS는 유엔세계식량계획의 존 에일리프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장으로부터 파키스탄의 상황을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Q. 파키스탄의 현재 상황은?

A. 이번 홍수는 처참함 그 자체입니다. 3천3백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파키스탄 전 국토의 1/3이 물에 잠겼습니다. 피해가 정말 심합니다. 학교 2만 곳이 없어졌고, 2백만 가구와 6천㎞에 달하는 도로가 물에 잠기거나 붕괴 또는 유실됐습니다. 파키스탄 국민들은 심하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60만 명이 임시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는데 이미 꽉 찼습니다.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심각하게 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시보호시설에 머무는 건 그나마 낫습니다. 나머지는 고립됐습니다. 접근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고립되어서 나올 수조차 없습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A. 파키스탄 정부는 현재 사람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6백 40만 명이 즉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건 주거와 식량 문제 해결입니다. 그리고 건강 문제도 포함됩니다.

WFP는 처참한 상황에 놓여있는 2백만 명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0만 명에 지원을 했는데 이는 단기간이 아닌 장기 회복을 위한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립된 이들에게 구호품을 지급하기 위해 정부와 다른 구호단체들과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고립된 지역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A. 매일 도로 상황을 살피고 현장 상황들을 보며 지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막힌 도로들이 많은데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회할 수 있는 도로들을 찾고 있습니다. 보트를 이용해 구호품도 전달합니다. 정부도 헬리콥터를 이용해 구호작업을 계속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습니다.

Q. 지원을 위해 필요한 기금이 얼마인가?

A. 펀딩을 위해 1억 5천만 달러(한화 약 2,161억 원)가 필요합니다. 단지 몇 주 지원을 하기 위한 기금 뿐만 아니라 홍수 피해 회복을 위한 비용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집과 가축, 생계를 위한 도구 등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회복되는데는 수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WFP가 당장의 생계 지원 뿐만 아니라 오랜 회복 기간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금이 필요합니다.

Q. 현지 의료 상황은 어떤가?

A. 파키스탄 정부에서 파견한 훌륭한 의료진들 뿐만 아니라 구호단체 소속 의료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피해의 규모가 너무나 크다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의료 혜택이 돌아가기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영양적인 부분에서 걱정이 됩니다. 파키스탄은 홍수 이전에도 18%의 아이들이 심각한 영양부족을 겪고 있었고, 이제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입니다. 이미 많은 인구가 영양부족 상태입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임산부들에게도 특별 영양식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기금 마련이 가장 우선순위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같은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WFP의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합니다.

Q. 기후위기의 영향은?

A. 저는 2010년 파키스탄 홍수 피해 복구 당시에도 참여했습니다. 2022년 현재는 당시보다 3배 나 많은 3천3백만 명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관련된 재난들은 점점 빈번해지고 있고 더 처참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파키스탄 폭우도 기후변화와 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폭우는 물론, 그 전에 나타난 폭염, 올해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폭염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UN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파키스탄을 방문해 이는 보통의 재난이 아니고 '기후 위기'라고 규정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선진국들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그 지원은 단순히 '관대함'이 아닌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기후변화에 가장 큰 원인제공을 한, 즉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한 국가들이 지금 파키스탄 국민과 영양실조 아동들을 도와야하는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Q.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있을까?

A.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이 문제제기에 좋은 시점입니다. 오늘날 3억 4천 5백만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초보다 8천만 명이나 많은 수치입니다.
코로나 대유행, 무역 중단, 각 국가의 봉쇄정책, 기후요인,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이 큽니다. 물론 인구증가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첫째로 기후 변화에 대한 지역 사회의 회복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농업과 식량 시스템을 개선하고, 농촌 인구의 소득을 다양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또 소규모 농가와 빈곤 가정을 연결하기 위한 계획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사회 복지입니다.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인 사회보호 시스템의 역할이 과소평가되어 있습니다. 사회 보호 시스템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복 속도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인당 투자액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적고, 사회적 보호 시스템도 부족하며 약 70%의 노동자가 보호 장치 없이 비공식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스리랑카와 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떤가요?

A. 얼마 전 저는 스리랑카에 다녀왔는데 굶주림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입니다. 음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수입이 없으며 절반의 가정은 식탁위에 음식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WFP는 10월 말 또는 11월, 정부로부터 지원받던 110만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걱정입니다. 다음 농사 시즌이 다가오고 있지만, 비료도 거의 없습니다. 이는 식량 공급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제가 30년동안 이 분야 일을 하면서 경험했던 중 가장 마음이 아픈 상황입니다. 고통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인구의 절반인 2천4백만 명이 긴급한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10가구 중 9가구는 식탁 위에 음식을 올릴 수 없습니다. 정부 예산 중 75%는 국제사회 지원으로 충당됐는데 탈레반 재집권 이후 이마저도 어려워지면서 빈곤은 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달 전 아프간의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병원직원들은 나무를 팔아서 병원 운영비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2-3kg밖에 몸무게가 나가지 않는 한 살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아기의 오빠도 누워있었는데 엄마는 보고 있었습니다. 자포자기가 퍼진 아프간 상황입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어린 딸을 팔아 결혼시키고, 장기를 파는 이야기들을 들으셨을 겁니다.

WFP는 아프간 내 가장 큰 인도주의 지원단체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기부금이 들어왔지만 슬프게도 이제 그 기금은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10억 달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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