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면담 불발은 실수”…한국의 고민

입력 2022.10.04 (11:39) 수정 2022.10.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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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윤석열 대통령은 8월 초 방한했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만나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휴가를 표면적인 이유로 들었습니다. 미국 측에 미리 설명했고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을 의식한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을 내놨습니다. "만난다", "아니다" 여러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40분 전화 통화라는 절충점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 주최로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이 장면을 두고 중국에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고 평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실수'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으로 하여금 "윤석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펠로시 의장 방한 직후 박진 외교장관이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게 돼 있었는데, 이 회담도 대통령실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빅터 차 석좌는 분석했습니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방한 5일 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했다(사진출처:외교부)박진 외교부장관은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방한 5일 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했다(사진출처:외교부)

빅터 차 한국석좌는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되, 사전에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서 펠로시 의장과의 면담 사실을 알려주는 조치를 했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 "일본 호주는 강한 동맹... 한국은?"...일각의 우려

미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차 석좌는 워싱턴 정가의 우려도 전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과 호주는 굉장히 강한 동맹이지만, 한국은 중국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흔들거린다는 워싱턴 일각의 우려를 더 보태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앞서 7월에 열렸던 한국전쟁 '추모의 벽' 제막식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통령이나 부통령 대신 부통령의 남편이 참석한 데 그친 것도 상징적이라고 차 석좌는 진단했습니다.

지난 7월 워싱턴 ‘추모의 벽’ 제막식. 가장 왼쪽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더글러스 엠호프.지난 7월 워싱턴 ‘추모의 벽’ 제막식. 가장 왼쪽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더글러스 엠호프.

미국은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역할을 해주길 요구해 오고 있습니다. 2009년 무렵부터 그런 기대가 구체적으로 있었습니다. 일본이나 호주처럼 인도 태평양 지역에 걸쳐 방위와 전략 분야에서 미국과 호흡을 맞추는 '글로벌 파트너'가 돼주길 원하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또 북한 문제 때문에 미국 기준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본과의 군사 협력은 여전히 국내 여론의 반발을 불러오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류 여 한국석좌는 "문재인 정부 후반에 한국 정부가 하는 게 없다"는 비판이 워싱턴에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회의체(쿼드·Quad)에 참여하지 않고, 다자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 "중국은 경제를 무기화"

미국은 특히 대중국 견제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바라지만, 한국에는 종말단계고고도지역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가 불러왔던 경제 보복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과 중국의 2021년 교역량은 3,000억 달러로, 미국(1,700억 달러)과 일본(840만 달러)의 교역량과 합한 것보다 많은 것도 매번 선택을 어렵게 합니다. 정책 결정에 따라 자칫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심'이 있습니다.


빅터 차 석좌는 한국으로 하여금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두려워하게끔 만들고, 그것을 미리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중국이 원하는 바라고 지적했습니다. 경제를 '무기화'하는 행태를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일본이나 호주 등도 중국의 제재를 다 받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억압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앤드류 여 한국 석좌는 한국의 딜레마를 이해한다면서도 "중국은 한국이 무엇을 하든 자국의 이익만 중시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역내 국가 파트너십을 맺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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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펠로시 면담 불발은 실수”…한국의 고민
    • 입력 2022-10-04 11:39:34
    • 수정2022-10-04 11:40:08
    취재K

왜 윤석열 대통령은 8월 초 방한했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만나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휴가를 표면적인 이유로 들었습니다. 미국 측에 미리 설명했고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을 의식한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을 내놨습니다. "만난다", "아니다" 여러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40분 전화 통화라는 절충점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 주최로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이 장면을 두고 중국에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고 평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실수'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으로 하여금 "윤석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펠로시 의장 방한 직후 박진 외교장관이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게 돼 있었는데, 이 회담도 대통령실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빅터 차 석좌는 분석했습니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방한 5일 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했다(사진출처:외교부)
빅터 차 한국석좌는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되, 사전에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서 펠로시 의장과의 면담 사실을 알려주는 조치를 했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 "일본 호주는 강한 동맹... 한국은?"...일각의 우려

미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차 석좌는 워싱턴 정가의 우려도 전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과 호주는 굉장히 강한 동맹이지만, 한국은 중국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흔들거린다는 워싱턴 일각의 우려를 더 보태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앞서 7월에 열렸던 한국전쟁 '추모의 벽' 제막식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통령이나 부통령 대신 부통령의 남편이 참석한 데 그친 것도 상징적이라고 차 석좌는 진단했습니다.

지난 7월 워싱턴 ‘추모의 벽’ 제막식. 가장 왼쪽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더글러스 엠호프.
미국은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역할을 해주길 요구해 오고 있습니다. 2009년 무렵부터 그런 기대가 구체적으로 있었습니다. 일본이나 호주처럼 인도 태평양 지역에 걸쳐 방위와 전략 분야에서 미국과 호흡을 맞추는 '글로벌 파트너'가 돼주길 원하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또 북한 문제 때문에 미국 기준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본과의 군사 협력은 여전히 국내 여론의 반발을 불러오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류 여 한국석좌는 "문재인 정부 후반에 한국 정부가 하는 게 없다"는 비판이 워싱턴에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회의체(쿼드·Quad)에 참여하지 않고, 다자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 "중국은 경제를 무기화"

미국은 특히 대중국 견제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바라지만, 한국에는 종말단계고고도지역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가 불러왔던 경제 보복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과 중국의 2021년 교역량은 3,000억 달러로, 미국(1,700억 달러)과 일본(840만 달러)의 교역량과 합한 것보다 많은 것도 매번 선택을 어렵게 합니다. 정책 결정에 따라 자칫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심'이 있습니다.


빅터 차 석좌는 한국으로 하여금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두려워하게끔 만들고, 그것을 미리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중국이 원하는 바라고 지적했습니다. 경제를 '무기화'하는 행태를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일본이나 호주 등도 중국의 제재를 다 받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억압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앤드류 여 한국 석좌는 한국의 딜레마를 이해한다면서도 "중국은 한국이 무엇을 하든 자국의 이익만 중시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역내 국가 파트너십을 맺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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