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공약(空約)이었나?, 물 건너간 이륜차 앞번호판

입력 2022.10.05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여야 공통 대선공약, '오토바이 앞번호판' 도입
주무 부처 국토부, "번호판 달 공간이 없다." 난색
뒷번호판 첨단 장비 예산은 단 10억 원 편성
나 홀로 증가 이륜차 사고, 해법은 안갯속으로


■ 이륜차는 어떻게 단속망을 피해가나?

이륜차(오토바이)는 같은 車이지만 사륜차(승용차 등)와 달리 단속의 통제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습니다. 과속하지 않고 신호를 잘 지키는 오토바이가 오히려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불법이 일상화돼 있습니다. 인도와 횡단보도에서 행인 사이를 빠른 속도로 요리저리 피해 가는 운전을 보면 아찔한 정도로 위험해 보입니다. 위험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실제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집니다. 안전운전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전체 교통사고는 줄고 있지만, 오히려 이륜차 사고는 느는 '역주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지 사고 건수뿐 아니라 사망자와 부상자 규모도 모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몇 블록 건너마다 설치된 수많은 무인 단속카메라는 이륜차에는 무용지물입니다. 오토바이의 경우 뒤에만 번호판이 달려있는데(그것도 일부는 훼손) 지금의 카메라는 뒷면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운전자와 행인들의 불편을 줄이고 사상자 수를 좀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이륜차 앞부분에 번호판을 달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대선 공약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 여야 대선후보 너도나도, "전면 번호판 도입"

지난 대선 기간 여야 후보들은 비슷한 시기에 오토바이 '전면번호판' 도입을 약속했습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차이 있지만, 제도 도입 취지와 큰 줄기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약 내용이 알려지면서 운전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우선 상당수 이륜차 운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오토바이 앞면에 번호판을 달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문제부터, 비용은 누가 낼 것이냐며 반발했습니다. 앞 번호판을 달아도 종이 같은 것으로 가리거나 훼손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속과 중앙선 침범, 인도 주행 같은 이륜차 불법을 번호판 단속을 통해서라도 근절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적지 않게 힘을 받았습니다.

■ 국토부, "여러 문제점…충분한 검토 필요" 사실상 '포기각'?

그래서 공약을 넘겨받은 국토교통부의 입장이 중요했습니다. 검토 결과 "이륜차 전면 번호판 부착은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국토부가 난색을 표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토교통부 입장
▶ 전면에 번호판을 부착할 공간 부족
▶ 충돌사고 시 보행자·운전자 부상 증가
▶ 전문가 의견수렴 등 충분한 검토 필요

당장은 어렵기 때문에 국토부는 우선 배달업체 등과 협력해 안전운행 교육과 교통법규 준수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의 공익제보를 활성화하는 등의 기존 재탕 대책도 계속 주문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해외 사례를 보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필리핀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이륜차 앞에 번호판을 달고 있습니다.

이륜차 전면번호판 공약 관련 국토교통부 설명자료(8.23)이륜차 전면번호판 공약 관련 국토교통부 설명자료(8.23)

■ 대안은 '뒷번호판 단속?', 배정 예산은 단 10억 원

이렇게 사실상 전면 번호판 단속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정부가 마련한 '2023년 예산안'에서 눈에 띄는 항목이 발견됐습니다. 바로 '후면 번호판 단속 장비'입니다. 번호판이 뒤에 달려 단속 사각지대로 꼽혔던 이륜차 단속을 위해 차량 뒤 번호판을 찍는 장비를 도입하겠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최첨단 방식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추진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내년 편성된 예산이 25대 도입 몫, 10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이륜차 단속의 실효성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번호판이 있어도 사실상 누구의 눈에도 적발되지 않는 '무적 차량'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호판 단속이 현실화되면 누군가 보고 있다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이륜차의 각종 법 위반이 줄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른바 '명찰 효과'입니다)

"배달 시간에 쫓겨서", "다른 이륜차도 다 그렇기 때문에" 등으로 합리화된 오토바이 운행 관행은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나 홀로 늘고 있는 이륜차 사고와 사상자 수는 그 합리적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전보다 더 앞서고 우선할 수 있는 변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문사진:신혜지 / 인포그래픽:권세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것도 공약(空約)이었나?, 물 건너간 이륜차 앞번호판
    • 입력 2022-10-05 07:00:28
    취재K
여야 공통 대선공약, '오토바이 앞번호판' 도입<br />주무 부처 국토부, "번호판 달 공간이 없다." 난색<br />뒷번호판 첨단 장비 예산은 단 10억 원 편성<br />나 홀로 증가 이륜차 사고, 해법은 안갯속으로

■ 이륜차는 어떻게 단속망을 피해가나?

이륜차(오토바이)는 같은 車이지만 사륜차(승용차 등)와 달리 단속의 통제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습니다. 과속하지 않고 신호를 잘 지키는 오토바이가 오히려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불법이 일상화돼 있습니다. 인도와 횡단보도에서 행인 사이를 빠른 속도로 요리저리 피해 가는 운전을 보면 아찔한 정도로 위험해 보입니다. 위험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실제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집니다. 안전운전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전체 교통사고는 줄고 있지만, 오히려 이륜차 사고는 느는 '역주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지 사고 건수뿐 아니라 사망자와 부상자 규모도 모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몇 블록 건너마다 설치된 수많은 무인 단속카메라는 이륜차에는 무용지물입니다. 오토바이의 경우 뒤에만 번호판이 달려있는데(그것도 일부는 훼손) 지금의 카메라는 뒷면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운전자와 행인들의 불편을 줄이고 사상자 수를 좀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이륜차 앞부분에 번호판을 달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대선 공약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 여야 대선후보 너도나도, "전면 번호판 도입"

지난 대선 기간 여야 후보들은 비슷한 시기에 오토바이 '전면번호판' 도입을 약속했습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차이 있지만, 제도 도입 취지와 큰 줄기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약 내용이 알려지면서 운전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우선 상당수 이륜차 운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오토바이 앞면에 번호판을 달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문제부터, 비용은 누가 낼 것이냐며 반발했습니다. 앞 번호판을 달아도 종이 같은 것으로 가리거나 훼손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속과 중앙선 침범, 인도 주행 같은 이륜차 불법을 번호판 단속을 통해서라도 근절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적지 않게 힘을 받았습니다.

■ 국토부, "여러 문제점…충분한 검토 필요" 사실상 '포기각'?

그래서 공약을 넘겨받은 국토교통부의 입장이 중요했습니다. 검토 결과 "이륜차 전면 번호판 부착은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국토부가 난색을 표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토교통부 입장
▶ 전면에 번호판을 부착할 공간 부족
▶ 충돌사고 시 보행자·운전자 부상 증가
▶ 전문가 의견수렴 등 충분한 검토 필요

당장은 어렵기 때문에 국토부는 우선 배달업체 등과 협력해 안전운행 교육과 교통법규 준수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의 공익제보를 활성화하는 등의 기존 재탕 대책도 계속 주문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해외 사례를 보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필리핀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이륜차 앞에 번호판을 달고 있습니다.

이륜차 전면번호판 공약 관련 국토교통부 설명자료(8.23)
■ 대안은 '뒷번호판 단속?', 배정 예산은 단 10억 원

이렇게 사실상 전면 번호판 단속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정부가 마련한 '2023년 예산안'에서 눈에 띄는 항목이 발견됐습니다. 바로 '후면 번호판 단속 장비'입니다. 번호판이 뒤에 달려 단속 사각지대로 꼽혔던 이륜차 단속을 위해 차량 뒤 번호판을 찍는 장비를 도입하겠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최첨단 방식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추진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내년 편성된 예산이 25대 도입 몫, 10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이륜차 단속의 실효성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번호판이 있어도 사실상 누구의 눈에도 적발되지 않는 '무적 차량'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호판 단속이 현실화되면 누군가 보고 있다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이륜차의 각종 법 위반이 줄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른바 '명찰 효과'입니다)

"배달 시간에 쫓겨서", "다른 이륜차도 다 그렇기 때문에" 등으로 합리화된 오토바이 운행 관행은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나 홀로 늘고 있는 이륜차 사고와 사상자 수는 그 합리적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전보다 더 앞서고 우선할 수 있는 변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문사진:신혜지 / 인포그래픽:권세라)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