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홍콩은 공포의 도시”…중국은 홍콩을 어떻게 바꿨나

입력 2022.10.06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폐간된 빈과일보 사장인 지미 라이는 2020년 8월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출처: 연합=EPA)폐간된 빈과일보 사장인 지미 라이는 2020년 8월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출처: 연합=EPA)

"열린 도시에서 공포의 도시로"

미국 의회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가 홍콩의 변화를 두고 한 표현 ("From an Open City to a City of Fear")입니다.

미국 의회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가 현지 시간 3일 발표한 특별 보고서 표지 (출처: 미국 의회 CECC)미국 의회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가 현지 시간 3일 발표한 특별 보고서 표지 (출처: 미국 의회 CECC)

미 의회 중국위원회가 홍콩 시민사회 단체의 전·현직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린 결론이기도 합니다. 66페이지에 달하는 특별 보고서에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인터뷰한 변호사와 교육자, 노조원, 기자, 성직자 등 42명의 이야기가 조목조목 담겨 있습니다.

■홍콩은 어떻게 '공포의 도시'가 됐나?

'열린 도시에서 공포의 도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여 정도입니다. 미 의회 중국위원회는 그 수단으로 중국이 만든 홍콩국가보안법을 지목했습니다.

2019년 6월 송환법 완전 철폐를 외치기 위해 홍콩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2019년 6월 송환법 완전 철폐를 외치기 위해 홍콩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홍콩국가보안법은 2020년 6월 30일 시행됐습니다. 2019년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6개월 이상 이어지자 중국이 직접 제정한 법입니다.

홍콩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등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홍콩국가보안법은 의도적으로 모호합니다. 법은 모호할수록 사람들을 통제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자신을 체포될 수 있도록 하는지 의심하게 만들고 따라서 자기 검열을 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매우 위협적인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당국은 모든 사람들이 그 다음은 그녀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게 만드는 겁니다. - 패트릭 푼/ 도쿄 메이지 대학 비교법 연구소 방문 연구원

실제 홍콩 경찰이 2019년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체포한 사람이 1만 명 이상인데,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올해 6월 26일까지 203명이 추가로 체포됐습니다. 이 가운데 120여 명은 기소됐습니다.

지난달 20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홍콩 기자협회장 (출처: 연합뉴스)지난달 20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홍콩 기자협회장 (출처: 연합뉴스)

단속 대상도 시위대에서 단체로 확대됐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2022년 6월까지 홍콩국가보안법은 직·간접적으로 58개 이상의 독립단체를 해체시키거나 해산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여기에는 '빈과일보', '입장신문' 등 언론사와 최대 노동단체인 홍콩직공회연맹, 최대 교원노조 홍콩직업교사노조,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단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등이 포함됐습니다.

■"구술 역사와 맞먹는다"…보고서에서 드러난 홍콩의 현실

홍콩 당국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홍콩 시민사회 단체들을 와해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자와 교육자, 사회복지사 등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요즘 경영진은 모든 인터뷰 대상자, 모든 인터뷰, 모든 인용구, 모든 기사, 모든 자막, 모든 영상에 대해 세세한(마이크로) 검열을 실시합니다. 홍콩 라디오 텔레비전(RTHK)의 프로그램은 똑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정신(spirit)은 더 이상 없습니다. -홍콩 라디오 텔레비전 전 직원

글로벌 언론사에서 중국과 홍콩에 대한 탐사 보도를 30년 동안 했다는 익명의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도 '방해'가 잇따랐다고 증언했습니다. 민감한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전화가 끊어지거나 취재원을 만날 때 감시자가 나타났다고 밝혔는데요.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은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지난해 12월 홍콩대학서 또 철거된 ‘톈안먼 시위 추모’ 조각상지난해 12월 홍콩대학서 또 철거된 ‘톈안먼 시위 추모’ 조각상

학교를 떠난 교사도 있었습니다. 이 교사는 홍콩 시위가 사회에 대한 토론을 격려하는 인문학에서 비롯됐다는 비난도 비난이었지만 이후 교육과 정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2021년 홍콩을 떠났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내뱉은 어떤 말이라도 비난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사들을 덮치는 것은 신체적 억압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우리 입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었습니다. -2021년 홍콩을 떠난 익명의 인문학 교사

■길들여지는 홍콩…중국의 인식은?

이런 상황에서 홍콩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했던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당국의 직접적인 탄압뿐만 아니라 자기 검열과 자기 규제가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인터뷰에 나선 절반 이상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의식해 익명으로 응하거나 이름 일부만 밝혔습니다. 홍콩국가보안법에 따르면 인터뷰 대상자가 위원회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외국 세력과의 '유착' 혐의에 해당할 수 있고, 홍콩에 남아 있는 가족이나 전 동료, 동료 활동가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홍콩은 열린 사회에서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힌 사회로 바뀌었고, 그러한 공포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 익명을 요구한 홍콩의 한 교수

2022년 홍콩의 현실은 이렇지만, 중국은 이 상황을 180도 다르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1일 중국의 국경절을 맞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입니다. "더 안전하고 더 좋은 홍콩"이라며 2022년 중국 오성기가 펄럭이는 홍콩과 2019년 반정부 시위 당시 사진을 비교했습니다.

미국 의회 중국위원회와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반문하고 있습니다. 침묵하는 사회가 더 안전하고 더 좋은 곳인지.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홍콩은 공포의 도시”…중국은 홍콩을 어떻게 바꿨나
    • 입력 2022-10-06 07:00:38
    특파원 리포트
폐간된 빈과일보 사장인 지미 라이는 2020년 8월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출처: 연합=EPA)
"열린 도시에서 공포의 도시로"

미국 의회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가 홍콩의 변화를 두고 한 표현 ("From an Open City to a City of Fear")입니다.

미국 의회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가 현지 시간 3일 발표한 특별 보고서 표지 (출처: 미국 의회 CECC)
미 의회 중국위원회가 홍콩 시민사회 단체의 전·현직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린 결론이기도 합니다. 66페이지에 달하는 특별 보고서에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인터뷰한 변호사와 교육자, 노조원, 기자, 성직자 등 42명의 이야기가 조목조목 담겨 있습니다.

■홍콩은 어떻게 '공포의 도시'가 됐나?

'열린 도시에서 공포의 도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여 정도입니다. 미 의회 중국위원회는 그 수단으로 중국이 만든 홍콩국가보안법을 지목했습니다.

2019년 6월 송환법 완전 철폐를 외치기 위해 홍콩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홍콩국가보안법은 2020년 6월 30일 시행됐습니다. 2019년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6개월 이상 이어지자 중국이 직접 제정한 법입니다.

홍콩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등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홍콩국가보안법은 의도적으로 모호합니다. 법은 모호할수록 사람들을 통제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자신을 체포될 수 있도록 하는지 의심하게 만들고 따라서 자기 검열을 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매우 위협적인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당국은 모든 사람들이 그 다음은 그녀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게 만드는 겁니다. - 패트릭 푼/ 도쿄 메이지 대학 비교법 연구소 방문 연구원

실제 홍콩 경찰이 2019년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체포한 사람이 1만 명 이상인데,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올해 6월 26일까지 203명이 추가로 체포됐습니다. 이 가운데 120여 명은 기소됐습니다.

지난달 20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홍콩 기자협회장 (출처: 연합뉴스)
단속 대상도 시위대에서 단체로 확대됐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2022년 6월까지 홍콩국가보안법은 직·간접적으로 58개 이상의 독립단체를 해체시키거나 해산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여기에는 '빈과일보', '입장신문' 등 언론사와 최대 노동단체인 홍콩직공회연맹, 최대 교원노조 홍콩직업교사노조,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단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등이 포함됐습니다.

■"구술 역사와 맞먹는다"…보고서에서 드러난 홍콩의 현실

홍콩 당국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홍콩 시민사회 단체들을 와해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자와 교육자, 사회복지사 등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요즘 경영진은 모든 인터뷰 대상자, 모든 인터뷰, 모든 인용구, 모든 기사, 모든 자막, 모든 영상에 대해 세세한(마이크로) 검열을 실시합니다. 홍콩 라디오 텔레비전(RTHK)의 프로그램은 똑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정신(spirit)은 더 이상 없습니다. -홍콩 라디오 텔레비전 전 직원

글로벌 언론사에서 중국과 홍콩에 대한 탐사 보도를 30년 동안 했다는 익명의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도 '방해'가 잇따랐다고 증언했습니다. 민감한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전화가 끊어지거나 취재원을 만날 때 감시자가 나타났다고 밝혔는데요.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은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지난해 12월 홍콩대학서 또 철거된 ‘톈안먼 시위 추모’ 조각상
학교를 떠난 교사도 있었습니다. 이 교사는 홍콩 시위가 사회에 대한 토론을 격려하는 인문학에서 비롯됐다는 비난도 비난이었지만 이후 교육과 정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2021년 홍콩을 떠났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내뱉은 어떤 말이라도 비난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사들을 덮치는 것은 신체적 억압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우리 입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었습니다. -2021년 홍콩을 떠난 익명의 인문학 교사

■길들여지는 홍콩…중국의 인식은?

이런 상황에서 홍콩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했던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당국의 직접적인 탄압뿐만 아니라 자기 검열과 자기 규제가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인터뷰에 나선 절반 이상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의식해 익명으로 응하거나 이름 일부만 밝혔습니다. 홍콩국가보안법에 따르면 인터뷰 대상자가 위원회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외국 세력과의 '유착' 혐의에 해당할 수 있고, 홍콩에 남아 있는 가족이나 전 동료, 동료 활동가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홍콩은 열린 사회에서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힌 사회로 바뀌었고, 그러한 공포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 익명을 요구한 홍콩의 한 교수

2022년 홍콩의 현실은 이렇지만, 중국은 이 상황을 180도 다르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1일 중국의 국경절을 맞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입니다. "더 안전하고 더 좋은 홍콩"이라며 2022년 중국 오성기가 펄럭이는 홍콩과 2019년 반정부 시위 당시 사진을 비교했습니다.

미국 의회 중국위원회와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반문하고 있습니다. 침묵하는 사회가 더 안전하고 더 좋은 곳인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