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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쌀 컵밥’ 우리쌀로 꼭 바꿔야 할까
입력 2022.10.07 (06:02) 수정 2022.10.07 (09:28) 취재K
미국 쌀이 한 때 명품 취급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칼로스(Calrose),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는 쌀입니다. 1970년대 개발된 '통일벼'보다 훨씬 고급으로 통했습니다. 주한미군 PX에 납품된 칼로스가 90년대 부유층에 불법 유통돼 사회 문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쌀 시장 개방 때는 우리 밥상을 집어삼킬 '괴물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칼로스가 본격 수입되자, 우리 입맛에는 안 맞다는 소비자들이 많았고, 시장에서 금방 자취를 감췄습니다.

■ 국정감사에 등장한 컵밥
그런데 이 칼로스가 국회 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CJ제일제당과 오뚜기 등 식품업체가 '빅스팸마요덮밥' 등 일부 컵밥 제품을 만드는데 칼로스 등 수입쌀을 쓰고 있다고 지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데, 수입쌀 대신 국산 쌀을 써서 농가 어려움을 덜어달란 취지였습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호영 위원은 "즉석밥 시장의 67%를 차지하는 CJ제일제당이 농민과 소비자를 실망시켰다"며 "대기업이 쓰면 다른 기업도 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라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상임위 소속 이원택 위원도 "국산쌀 활용을 늘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임형찬 CJ제일제당 부사장은 이런 지적에 "R&D(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서 국산으로 대체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황성만 오뚜기 대표도 "수출용 제품에 한해서만 수입쌀을 사용하지만, 거래처와 협의해 국산 대체를 검토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 볶음밥에 쓰이는 칼로스…원가 차이 3배
국감에서 언급된 제품들이 칼로스를 쓰기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입니다. CJ제일제당은 "소비자 맛 평가에서 국산보다 칼로스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 바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품 원가를 낮추려고 그런 건 아니란 건데, 농해수위 안호영 위원이 확보한 구매원가 자료에 따르면 칼로스는 1㎏당 456원, 국산 쌀이 1㎏당 1,875원(9월 기준 도매가)으로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칼로스는 국산 쌀과 맛이 다르다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쌀밥으로 별로 인기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칼로스는 국산 쌀 품종(추청, 고시히카리 등)에 비해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쫀득쫀득한 맛, 찰기가 조금 부족한데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는 잘 안 맞는 겁니다.
다만, '고슬밥' 칼로스는 밥알 사이 양념이 스며드는 음식에는 비교적 잘 맞는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미국 쌀 협회' 홈페이지에서도 "볶음밥과 리조또 등 서양 요리나 중국요리에 적합하다"라고 칼로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스와 함께 비벼 먹는 컵밥 종류에선 칼로스가 국산 쌀보다 어울리는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부족할 땐 수입쌀 쓰라더니…
식품업계가 국산 쌀 대신 수입쌀을 쓴 배경엔 가공식품에 쓰는 국산 쌀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았던 측면도 있습니다. 농식품부는 추수한 지 2~3년 지난 정부 비축미를 가공용 쌀로 공급하는데, 이 공급량은 ▲ 2020년 11만 톤 ▲2021년 7만 톤 ▲2022년 5만 톤으로 꾸준히 줄었습니다.
태풍으로 쌀 수확량이 크게 줄었던 2020년에는 쌀 가공 협회(정부의 수입쌀 공급을 대행)가 나서 식품업계에 수입쌀 등 대체원료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CJ제일제당을 비롯한 식품업체들이 냉동밥류 제품에 쓰이는 쌀을 수입산으로 바꿨던 것입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공용으로 쓸 재고 쌀이 한 때 부족했었다"라면서 "내년부터는 가공용 국산 쌀 물량이 늘어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국산 쌀' 보다 '쌀 소비'가 먼저
쌀 소비는 급격하게 줄고 있지만, '쌀 가공식품'은 거의 유일하게 소비가 늘고 있는 쌀 관련 식품입니다.
수출 성장세도 뚜렷합니다. 2020년 기준 미국 수출액은 5,533만 달러로 직전 해에 비해 53% 늘었고, 5년 간 연평균 성장률은 23%에 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WTO 협정상 매년 41만 톤가량의 수입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합니다. 올해 쌀 예측 수요량이 347만 톤 수준이니, 적지 않은 물량인 셈입니다. 국회 농해수위 정희용 위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이런 의무 수입 쌀을 사고 보관하는 데 2조 5천억 원가량 들어갔다고 합니다.

쌀값 폭락은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식품회사를 추궁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인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CJ제일제당이 올해 쓴 칼로스 쌀은 468톤 규모입니다(가장 유명한 '햇반' 제품은 연간 6만 톤 규모의 국산 쌀을 씁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국산 쌀에 집착하기보다 쌀 소비 시장 자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라면서 "일본은 즉석밥용 쌀을 따로 개발하는 등 소비 패턴에 맞게 품종을 만들어 소비 시장을 키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 ‘미국쌀 컵밥’ 우리쌀로 꼭 바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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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0-07 06:02:23
- 수정2022-10-07 09:28:51

미국 쌀이 한 때 명품 취급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칼로스(Calrose),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는 쌀입니다. 1970년대 개발된 '통일벼'보다 훨씬 고급으로 통했습니다. 주한미군 PX에 납품된 칼로스가 90년대 부유층에 불법 유통돼 사회 문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쌀 시장 개방 때는 우리 밥상을 집어삼킬 '괴물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칼로스가 본격 수입되자, 우리 입맛에는 안 맞다는 소비자들이 많았고, 시장에서 금방 자취를 감췄습니다.

■ 국정감사에 등장한 컵밥
그런데 이 칼로스가 국회 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CJ제일제당과 오뚜기 등 식품업체가 '빅스팸마요덮밥' 등 일부 컵밥 제품을 만드는데 칼로스 등 수입쌀을 쓰고 있다고 지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데, 수입쌀 대신 국산 쌀을 써서 농가 어려움을 덜어달란 취지였습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호영 위원은 "즉석밥 시장의 67%를 차지하는 CJ제일제당이 농민과 소비자를 실망시켰다"며 "대기업이 쓰면 다른 기업도 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라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상임위 소속 이원택 위원도 "국산쌀 활용을 늘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임형찬 CJ제일제당 부사장은 이런 지적에 "R&D(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서 국산으로 대체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황성만 오뚜기 대표도 "수출용 제품에 한해서만 수입쌀을 사용하지만, 거래처와 협의해 국산 대체를 검토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 볶음밥에 쓰이는 칼로스…원가 차이 3배
국감에서 언급된 제품들이 칼로스를 쓰기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입니다. CJ제일제당은 "소비자 맛 평가에서 국산보다 칼로스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 바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품 원가를 낮추려고 그런 건 아니란 건데, 농해수위 안호영 위원이 확보한 구매원가 자료에 따르면 칼로스는 1㎏당 456원, 국산 쌀이 1㎏당 1,875원(9월 기준 도매가)으로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칼로스는 국산 쌀과 맛이 다르다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쌀밥으로 별로 인기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칼로스는 국산 쌀 품종(추청, 고시히카리 등)에 비해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쫀득쫀득한 맛, 찰기가 조금 부족한데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는 잘 안 맞는 겁니다.
다만, '고슬밥' 칼로스는 밥알 사이 양념이 스며드는 음식에는 비교적 잘 맞는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미국 쌀 협회' 홈페이지에서도 "볶음밥과 리조또 등 서양 요리나 중국요리에 적합하다"라고 칼로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스와 함께 비벼 먹는 컵밥 종류에선 칼로스가 국산 쌀보다 어울리는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부족할 땐 수입쌀 쓰라더니…
식품업계가 국산 쌀 대신 수입쌀을 쓴 배경엔 가공식품에 쓰는 국산 쌀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았던 측면도 있습니다. 농식품부는 추수한 지 2~3년 지난 정부 비축미를 가공용 쌀로 공급하는데, 이 공급량은 ▲ 2020년 11만 톤 ▲2021년 7만 톤 ▲2022년 5만 톤으로 꾸준히 줄었습니다.
태풍으로 쌀 수확량이 크게 줄었던 2020년에는 쌀 가공 협회(정부의 수입쌀 공급을 대행)가 나서 식품업계에 수입쌀 등 대체원료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CJ제일제당을 비롯한 식품업체들이 냉동밥류 제품에 쓰이는 쌀을 수입산으로 바꿨던 것입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공용으로 쓸 재고 쌀이 한 때 부족했었다"라면서 "내년부터는 가공용 국산 쌀 물량이 늘어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국산 쌀' 보다 '쌀 소비'가 먼저
쌀 소비는 급격하게 줄고 있지만, '쌀 가공식품'은 거의 유일하게 소비가 늘고 있는 쌀 관련 식품입니다.
수출 성장세도 뚜렷합니다. 2020년 기준 미국 수출액은 5,533만 달러로 직전 해에 비해 53% 늘었고, 5년 간 연평균 성장률은 23%에 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WTO 협정상 매년 41만 톤가량의 수입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합니다. 올해 쌀 예측 수요량이 347만 톤 수준이니, 적지 않은 물량인 셈입니다. 국회 농해수위 정희용 위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이런 의무 수입 쌀을 사고 보관하는 데 2조 5천억 원가량 들어갔다고 합니다.

쌀값 폭락은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식품회사를 추궁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인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CJ제일제당이 올해 쓴 칼로스 쌀은 468톤 규모입니다(가장 유명한 '햇반' 제품은 연간 6만 톤 규모의 국산 쌀을 씁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국산 쌀에 집착하기보다 쌀 소비 시장 자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라면서 "일본은 즉석밥용 쌀을 따로 개발하는 등 소비 패턴에 맞게 품종을 만들어 소비 시장을 키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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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진 기자 analog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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