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 유독 가혹한 나라…‘국가 사과’ 절실한 이유는?

입력 2022.10.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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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연된 국가 사과 … 거짓 기록 의혹도

KBS는 지난주 <사과는 없었다> 연속 보도를 통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국가'를 고발했다.

취재 결과,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국가의 인권유린 등이 인정된 사건에 대해서도, 10년 넘게 국가가 방치한 경우, 258건이나 됐다.

'피해자의 연락처가 없다', '피해자가 사과에 동의하지 않았다' 등의 이유로 국가의 사과는 지연되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이 잘되지 않는다는 피해자와 취재진은 쉽게 연락이 닿았다. 피해자는 사과를 거부한 적도 없었다고 했다. 국가가 사과하라는 '권고'에 대한 이행 기록은 거짓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지연된 '국가 사과'. 과거사 문제에 있어 국가의 사과는 왜 중요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우선 전한다.


■ "지금이라도 사과해 달라"

과거사 피해자들은 지금이라도 '국가'가 잘못에 대해 사과해주길 바라고 있다. 또 그 사죄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가장 큰 이유는 평생 국가가 찍은 '낙인'에 시달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국가 폭력의 특성상 피해자는 단순히 물리적 가혹 행위를 당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인권 유린을 당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맞을 만하니 맞았다', '그럴 만했다'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는 '때릴 만하니 때렸다'고 버티다가 시간이 흐른 뒤엔 이를 바로잡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전두환 정권이 '불량배를 소탕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든 '삼청교육대' 사건이 그렇다. 정작 전체 입소자 10명 중 4명 정도, 특히 여성 입소자 10명 중 7명은 전과가 없었다는 게 국방부 과거사위의 2006년 조사 결과다. 죄 없는 사람들까지 끌려가야 한 게 진실이다. 삼청교육대 안에서의 무자비한 폭행과 끝없는 기합 등은 '인권 유린'일 뿐이었고 '불량배 소탕'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삼청교육대'를 다룬 기사에는 '범죄자를 때려잡아 잘한 일'이라는 댓글이 빗발친다. 사실이 아닌데 말이다. 국가의 낙인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증거다.

"가슴에 문신이 그려진 깡패들이 앞에서 목봉 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놈들을 잘 잡혀갔구나' 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제가 잡혀갈 줄 몰랐죠."
- 이적 / 삼청교육대 피해자

■ 국가 사과 없이는 지울 수 없는 '낙인'

각종 '간첩 조작 사건'들도 그렇다. 피해자들은 각종 정부 위원회는 물론 재심 등을 통해 '간첩'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받아도 여전히 '간첩' 출신이란 의심의 눈초리와 싸워야 한다.

피해자들이 관할 경찰서장 등 개인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 이유다. '꼬리표'를 떼줄 수 있는 건 '꼬리표'를 만든 이뿐이라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이는 단순히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도 국가 폭력의 '꼬리표'는 대물림되고 있다.

국가 폭력 후유증으로 피해자들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다. 직업을 구하기도 주변과 관계 맺기도 어렵다. 주위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보낸다. 자연스레 가정의 경제 사정도 여의치 않아진다는 게 여러 피해자의 증언이다.

"가족 증명서가 뗄 일이 있으면 거기에 납북이라고 색깔 다르게 찍혀있는 거예요. 수시로 누군가가 와서 사찰을 하는 것 같았고... 지금도 누군가는 (간첩이라) 의심을 또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저희들의 자식 자녀도 있잖아요."
- 김○○ / 남북 귀환 어부 간첩 조작 건 피해자 딸

" 나 같은 경우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아비가 거기 (삼청교육대)를 끌려 갔다 오니까 아이들은 학교 다니다가 포기하려는 거예요."
- 최○○/ 삼청교육대 피해자


■ "피해자가 져야 하는 입증 책임...소송 엄두 안 나"

악순환에 빠진 피해자 가정에 '국가'는 더 가혹하다. 국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기 더 어렵다.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은 ①'때린 사람이 '국가'고 맞은 사람이 '피해자'다.' ②'피해자'는 '국가'에 억울하게 맞았다. 여기까지만 확인해 준다.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면 당사자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피해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있다.

하루하루 생업에 치이는 피해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국가와 싸울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여러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본 피해를 가슴에 묻어만 두고 사는 이유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기록을 남기면 간신히 소송에 돌입한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법정에서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에 대한 중요한 증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살다 군에 납치돼서 여지껏 여기서 살고 있다고 했더니, 피해 보상을 받으려면 소송을 하라는 거야. 그래서 변호사를 알아보려 했더니 몇 백만 원이 필요하다해서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지. 우리가 그 돈이 어딨어."
- 김주삼 씨 / 군에 의한 납치 피해자

"우리가 개인적으로 소송해봐야 정부하고 해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또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러니까 못하는 거죠. 하고는 싶어도..."
-정 00 / 삼청교육대 피해자

■ "국가 주도 인권침해 수십 년째 방치"

그런데 가해자인 '국가'는 피해자에 대한 이 최소한의 '도움'조차도 12년째 온갖 이유로 미뤄왔다는 게 KBS 취재 결과다.

취재진이 만난 과거사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괴롭혔던 당시 수사관, 교관, 보안사 ·중앙정보부 직원 등의 이름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고 승진을 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에게 유독 가혹한 나라. 파비앙 살리올리 국제연합(UN)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 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지난 6월 우리의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한국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살인· 고문·실종· 성착취·인신매매·강제 노역· 자의적 구금을 포함한 심각한 인권 위반이 자행됐음을 확인했다. 다수의 인권침해가 대규모로 정기적으로 이뤄졌음에도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단 하나의 비극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인정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
- 파비앙 살리올리 / UN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 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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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3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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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0860
삼청교육대, 국가의 사과는 없었다…보상 권고도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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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거짓 의혹도’…지연된 국가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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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없었다’ 258건 전체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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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자에 유독 가혹한 나라…‘국가 사과’ 절실한 이유는?
    • 입력 2022-10-07 07:00:27
    취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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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결과,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국가의 인권유린 등이 인정된 사건에 대해서도, 10년 넘게 국가가 방치한 경우, 258건이나 됐다.

'피해자의 연락처가 없다', '피해자가 사과에 동의하지 않았다' 등의 이유로 국가의 사과는 지연되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이 잘되지 않는다는 피해자와 취재진은 쉽게 연락이 닿았다. 피해자는 사과를 거부한 적도 없었다고 했다. 국가가 사과하라는 '권고'에 대한 이행 기록은 거짓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지연된 '국가 사과'. 과거사 문제에 있어 국가의 사과는 왜 중요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우선 전한다.


■ "지금이라도 사과해 달라"

과거사 피해자들은 지금이라도 '국가'가 잘못에 대해 사과해주길 바라고 있다. 또 그 사죄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가장 큰 이유는 평생 국가가 찍은 '낙인'에 시달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국가 폭력의 특성상 피해자는 단순히 물리적 가혹 행위를 당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인권 유린을 당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맞을 만하니 맞았다', '그럴 만했다'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는 '때릴 만하니 때렸다'고 버티다가 시간이 흐른 뒤엔 이를 바로잡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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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직도 '삼청교육대'를 다룬 기사에는 '범죄자를 때려잡아 잘한 일'이라는 댓글이 빗발친다. 사실이 아닌데 말이다. 국가의 낙인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증거다.

"가슴에 문신이 그려진 깡패들이 앞에서 목봉 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놈들을 잘 잡혀갔구나' 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제가 잡혀갈 줄 몰랐죠."
- 이적 / 삼청교육대 피해자

■ 국가 사과 없이는 지울 수 없는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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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이 관할 경찰서장 등 개인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 이유다. '꼬리표'를 떼줄 수 있는 건 '꼬리표'를 만든 이뿐이라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이는 단순히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도 국가 폭력의 '꼬리표'는 대물림되고 있다.

국가 폭력 후유증으로 피해자들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다. 직업을 구하기도 주변과 관계 맺기도 어렵다. 주위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보낸다. 자연스레 가정의 경제 사정도 여의치 않아진다는 게 여러 피해자의 증언이다.

"가족 증명서가 뗄 일이 있으면 거기에 납북이라고 색깔 다르게 찍혀있는 거예요. 수시로 누군가가 와서 사찰을 하는 것 같았고... 지금도 누군가는 (간첩이라) 의심을 또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저희들의 자식 자녀도 있잖아요."
- 김○○ / 남북 귀환 어부 간첩 조작 건 피해자 딸

" 나 같은 경우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아비가 거기 (삼청교육대)를 끌려 갔다 오니까 아이들은 학교 다니다가 포기하려는 거예요."
- 최○○/ 삼청교육대 피해자


■ "피해자가 져야 하는 입증 책임...소송 엄두 안 나"

악순환에 빠진 피해자 가정에 '국가'는 더 가혹하다. 국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기 더 어렵다.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은 ①'때린 사람이 '국가'고 맞은 사람이 '피해자'다.' ②'피해자'는 '국가'에 억울하게 맞았다. 여기까지만 확인해 준다.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면 당사자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피해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있다.

하루하루 생업에 치이는 피해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국가와 싸울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여러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본 피해를 가슴에 묻어만 두고 사는 이유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기록을 남기면 간신히 소송에 돌입한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법정에서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에 대한 중요한 증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살다 군에 납치돼서 여지껏 여기서 살고 있다고 했더니, 피해 보상을 받으려면 소송을 하라는 거야. 그래서 변호사를 알아보려 했더니 몇 백만 원이 필요하다해서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지. 우리가 그 돈이 어딨어."
- 김주삼 씨 / 군에 의한 납치 피해자

"우리가 개인적으로 소송해봐야 정부하고 해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또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러니까 못하는 거죠. 하고는 싶어도..."
-정 00 / 삼청교육대 피해자

■ "국가 주도 인권침해 수십 년째 방치"

그런데 가해자인 '국가'는 피해자에 대한 이 최소한의 '도움'조차도 12년째 온갖 이유로 미뤄왔다는 게 KBS 취재 결과다.

취재진이 만난 과거사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괴롭혔던 당시 수사관, 교관, 보안사 ·중앙정보부 직원 등의 이름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고 승진을 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에게 유독 가혹한 나라. 파비앙 살리올리 국제연합(UN)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 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지난 6월 우리의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한국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살인· 고문·실종· 성착취·인신매매·강제 노역· 자의적 구금을 포함한 심각한 인권 위반이 자행됐음을 확인했다. 다수의 인권침해가 대규모로 정기적으로 이뤄졌음에도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단 하나의 비극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인정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
- 파비앙 살리올리 / UN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 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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