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어감사전이 풀이한 비슷한 듯 다른 우리말

입력 2022.10.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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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30년 넘게 사전 편찬 안상순 작가
겸손·겸허·겸양... 미묘하게 뜻이 다른 말들
같은 듯 같지 않은 말... 뭐가 다를까?
예문과 함께 설명하는 말의 동질성과 이질성


※ [주말& 책] 매주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 간섭과 참견... "글쎄, 잘 모르겠는데? 비슷한데 같지는 않아"

'감동과 감격과 감명', '거만과 오만과 교만', '걱정과 근심과 염려', '간섭과 참견' 등 서로 뜻이 다른 것은 알겠는데, 막상 그 차이를 설명하려면 쉽지 않은 말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자존심과 자존감이 있다. 비슷한 의미이지만 뜻이 똑같다고 할 수 없다. 쓰임새도 다르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는 표현은 말이나 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자존감이 상해서'라는 표현은 그렇지 않다. 구글 검색을 해봐도 '자존심이 상해서'라는 표현이 '‘자존감이 상해서'라는 표현보다 수십 배 더 많이 나온다. 반면 '자존감 높이기'라는 표현은 '자존심 높이기'라는 표현보다 열 배 정도 더 많이 검색된다. 사람들이 자존심을 높이는 행위보다는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자존심과 자존감, 같은 듯 다른 두 단어의 어감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금성출판사 사전팀장으로 일하며 30년 넘게 사전 만드는 일에 매진했던 안상순 작가는 책 '우리말 어감사전'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시선의 향방에 있다. 자존심의 시선은 자신의 밖을 향하고 있고, 자존감의 시선은 자신의 안을 향하고 있다. 자존심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민감하지만, 자존감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자존심이 남과의 관계 속에 형성되는 면이 있다면, 자존감은 내 스스로의 인식과 자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안상순 작가는 자존심과 자존감이 또 어떻게 다른지를 '남의 평가에 대한 반응'을 기준 삼아 설명하기도 한다.

자기 긍정이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것이 자존심이라면,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자존감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자존심이 센 것(남의 평가에 예민하게 구는 것)은 오히려 자존감이 낮은 것일 수 있고, 자존심을 죽이는 것(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자존감을 살리는 것일 수 있다.

안상순 작가는 진정한 자존감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진정한 자존감이란 남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을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책 '우리말 어감사전'은 이처럼 비슷한데 같지는 않은 여러 말의 어감을 풀어내고 있다. 언어에서는 말의 느낌과 맛, 즉 '어감'의 차이를 익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안상순 작가는 자존심과 자존감, 감동과 감격과 감명 등 다른 뜻인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까다로운 말의 속뜻을 다양한 예문과 함께 설명한다.

■ '국어사전 뜻풀이만 보면 어감 파악 어려움 겪을 수도'

평생에 걸쳐 국어사전 편찬 작업을 해 왔던 작가는 우리 국어사전은 순환 정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가령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모습 = 1. 사람의 생긴 모양'으로 정의돼 있는데, 모양의 뜻을 찾아보면 '모양 = 1.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모습'으로 돼 있다며, 결과적으로 모습은 모양, 모양은 모습처럼 뜻풀이가 쳇바퀴처럼 순환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게 작가의 얘기다. 그 결과, 국어사전만 봐서는 어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속뜻과 말맛 느낄 수 있게…'말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톺아보고 싶었다'

안상순 작가는 이와 같이 국어사전만으로는 미묘한 말의 차이를 잡아내기가 힘든 때도 있어서, 같은 듯 다른 말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제대로 톺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말 유의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는 그는 책을 통해 겸손과 겸허와 겸양, 고독과 외로움, 공부와 학습, 구별과 구분, 논쟁과 설전과 언쟁 등 이백 개가 넘는 단어의 '속뜻'과 '말맛'과 '뉘앙스'에 대해 밝혀 놓았다.

작가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책이 언어 규범서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부분의 모어 화자들이 아무 의심 없이 쓰는 말을 규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하기는 어려웠다'면서 '어쩔 수 없이 현행 국어사전의 규범과 상치되는 점도 있다'고 밝혔다. 정식으로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나 표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라면 그 어감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책은 부도덕과 비도덕, 무도덕의 어감 차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비도덕이 나오지 않는다. 무도덕은 무도덕하다의 어근이라고만 나온다.

앞서 사례로 나왔던 자존감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들 단어가 정식 표준어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로 인정받아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국어사전에는 등재돼 있기도 하다. 자존감의 경우 우리말샘 국어사전은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대하며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책 '우리말 어감사전'은 지난해 5월 출간됐다. 책을 쓴 국어사전 전문가 안상순 작가는 책이 나오기 전 세상을 떠났다. 출판사는 '안상순 작가가 지병이 재발해 책이 나오기 직전 돌아가셨다'고 전하면서, '우리말 어감사전'은 작가의 유작이자 유일한 책이 됐다고 밝혔다. 고 안상순 작가는 국어사전 편찬을 비롯해 한글 발전에 공을 세운 점이 인정돼 지난해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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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다르고 어 다르다?…어감사전이 풀이한 비슷한 듯 다른 우리말
    • 입력 2022-10-08 09:00:36
    취재K
<strong>30년 넘게 사전 편찬 안상순 작가<br />겸손·겸허·겸양... 미묘하게 뜻이 다른 말들<br />같은 듯 같지 않은 말... 뭐가 다를까?<br />예문과 함께 설명하는 말의 동질성과 이질성<br /></strong>

※ [주말& 책] 매주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 간섭과 참견... "글쎄, 잘 모르겠는데? 비슷한데 같지는 않아"

'감동과 감격과 감명', '거만과 오만과 교만', '걱정과 근심과 염려', '간섭과 참견' 등 서로 뜻이 다른 것은 알겠는데, 막상 그 차이를 설명하려면 쉽지 않은 말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자존심과 자존감이 있다. 비슷한 의미이지만 뜻이 똑같다고 할 수 없다. 쓰임새도 다르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는 표현은 말이나 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자존감이 상해서'라는 표현은 그렇지 않다. 구글 검색을 해봐도 '자존심이 상해서'라는 표현이 '‘자존감이 상해서'라는 표현보다 수십 배 더 많이 나온다. 반면 '자존감 높이기'라는 표현은 '자존심 높이기'라는 표현보다 열 배 정도 더 많이 검색된다. 사람들이 자존심을 높이는 행위보다는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자존심과 자존감, 같은 듯 다른 두 단어의 어감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금성출판사 사전팀장으로 일하며 30년 넘게 사전 만드는 일에 매진했던 안상순 작가는 책 '우리말 어감사전'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시선의 향방에 있다. 자존심의 시선은 자신의 밖을 향하고 있고, 자존감의 시선은 자신의 안을 향하고 있다. 자존심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민감하지만, 자존감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자존심이 남과의 관계 속에 형성되는 면이 있다면, 자존감은 내 스스로의 인식과 자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안상순 작가는 자존심과 자존감이 또 어떻게 다른지를 '남의 평가에 대한 반응'을 기준 삼아 설명하기도 한다.

자기 긍정이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것이 자존심이라면,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자존감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자존심이 센 것(남의 평가에 예민하게 구는 것)은 오히려 자존감이 낮은 것일 수 있고, 자존심을 죽이는 것(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자존감을 살리는 것일 수 있다.

안상순 작가는 진정한 자존감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진정한 자존감이란 남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을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책 '우리말 어감사전'은 이처럼 비슷한데 같지는 않은 여러 말의 어감을 풀어내고 있다. 언어에서는 말의 느낌과 맛, 즉 '어감'의 차이를 익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안상순 작가는 자존심과 자존감, 감동과 감격과 감명 등 다른 뜻인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까다로운 말의 속뜻을 다양한 예문과 함께 설명한다.

■ '국어사전 뜻풀이만 보면 어감 파악 어려움 겪을 수도'

평생에 걸쳐 국어사전 편찬 작업을 해 왔던 작가는 우리 국어사전은 순환 정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가령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모습 = 1. 사람의 생긴 모양'으로 정의돼 있는데, 모양의 뜻을 찾아보면 '모양 = 1.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모습'으로 돼 있다며, 결과적으로 모습은 모양, 모양은 모습처럼 뜻풀이가 쳇바퀴처럼 순환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게 작가의 얘기다. 그 결과, 국어사전만 봐서는 어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속뜻과 말맛 느낄 수 있게…'말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톺아보고 싶었다'

안상순 작가는 이와 같이 국어사전만으로는 미묘한 말의 차이를 잡아내기가 힘든 때도 있어서, 같은 듯 다른 말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제대로 톺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말 유의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는 그는 책을 통해 겸손과 겸허와 겸양, 고독과 외로움, 공부와 학습, 구별과 구분, 논쟁과 설전과 언쟁 등 이백 개가 넘는 단어의 '속뜻'과 '말맛'과 '뉘앙스'에 대해 밝혀 놓았다.

작가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책이 언어 규범서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부분의 모어 화자들이 아무 의심 없이 쓰는 말을 규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하기는 어려웠다'면서 '어쩔 수 없이 현행 국어사전의 규범과 상치되는 점도 있다'고 밝혔다. 정식으로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나 표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라면 그 어감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책은 부도덕과 비도덕, 무도덕의 어감 차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비도덕이 나오지 않는다. 무도덕은 무도덕하다의 어근이라고만 나온다.

앞서 사례로 나왔던 자존감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들 단어가 정식 표준어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로 인정받아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국어사전에는 등재돼 있기도 하다. 자존감의 경우 우리말샘 국어사전은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대하며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책 '우리말 어감사전'은 지난해 5월 출간됐다. 책을 쓴 국어사전 전문가 안상순 작가는 책이 나오기 전 세상을 떠났다. 출판사는 '안상순 작가가 지병이 재발해 책이 나오기 직전 돌아가셨다'고 전하면서, '우리말 어감사전'은 작가의 유작이자 유일한 책이 됐다고 밝혔다. 고 안상순 작가는 국어사전 편찬을 비롯해 한글 발전에 공을 세운 점이 인정돼 지난해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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