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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최초의 미국 풍경화’ 그린 조선 화가의 숨은 그림 찾았다
입력 2022.10.10 (17:08) 수정 2022.10.11 (09:07) 취재K
여기, 아주 흥미로운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제목은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그림 상단에 철길을 달리는 기차 두 대가 보이죠. 1888년 그림이니 조선은 분명 아닙니다. 그때 조선에는 기차가 없었으니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11년 뒤였습니다.
이 장면은 미국 풍경입니다. 어딘지는 몰라도 처음 미국 땅을 밟은 화가의 눈에는 굉음과 함께 연기를 뿜어내며 철도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였겠죠. 그 덕분에 서양 종이에 먹으로 그린 미국 풍경이 이렇게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구한말의 서화가이자 전각가인 청운 강진희(菁雲 姜璡熙, 1851~1919). 강진희는 1887년 6월 박정양이 첫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돼 미국 워싱턴으로 부임해 갈 때 수행원으로 함께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청나라 사람과 인연을 맺는데요. 그 인연을 기념하는 의미로 둘의 그림을 한 데 묶은 화첩을 꾸몄으니,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미사묵연-화초청운잡화합벽(美槎墨緣-華初菁雲襍畵合璧)』입니다. 위에 소개한 그림이 바로 이 화첩에 들어 있고요.
화첩 첫 장에 '1888년 워싱턴 주미 조선공관에서 그렸다'고 적혀 있어서 그림을 그린 정확한 시기와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이구열 선생은 일찍이 이 그림을 "한국인 화가로서는 처음 미국에 갔다가 보고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구열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돌베개, 2005) 이렇게 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이 그림에 '조선 화가가 그린 최초의 미국 풍경화'라는 수식어가 붙게 됩니다.
■최초로 공개되는 강진희의 숨은 그림과 글씨
강진희에 관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 전통미술 연구자 김영욱의 논문 「청운 강진희(1851-1919)의 생애와 서화 연구」를 보면, 지금까지 파악된 강진희 작품은 그림 19점과 글씨 10점 등 모두 29점입니다. 우리 미술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서화가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강진희가 남긴 역사적 자취는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리고 마침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강진희의 그림과 글씨 9점이 한꺼번에 발견됐습니다. 묘하게도 지난 5월 어느 전시회에서 우리에게 낯선 <화차분별도>라는 그림이 소개되면서 강진희이라는 화가의 이름이 뉴스를 통해 반짝 조명됐죠. 그로부터 불과 넉 달 만에 강진희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사진을 통해 최초로 공개하는 강진희의 그림입니다.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가장 사랑한 그림의 소재였죠. 강진희 역시 매화를 특히 잘 그린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남아 전하는 그림 19점 가운데 8점이 매화입니다. 위 아래로 뻗은 가지에 긴 겨울을 이겨낸 매화가 탐스럽게 피었죠. 문인화의 품격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강진희의 그림이라는 건 낙관으로 확인됩니다. 서로 다른 그림에 찍힌 청운(菁雲)이란 인장과 강진희인(姜璡熙印)이란 인장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진 적 없는 강진희 그림과 글씨를, 그것도 9점이나 한꺼번에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물론 큰 의미가 있겠죠.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뭔가 조금은 아쉽습니다.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강진희라는 화가의 숨은 그림을 찾았다는 소식은 강진희 연구자들에게야 희소식이겠지만, 딱히 다른 이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뉴스는 아니니까요.
■화가는 강진희, 그렇다면 그림을 선물 받은 사람은 누구?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림 가운데 한 폭에 적힌 글씨가 이 그림의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고야 말았으니, 이 그림을 찾아낸 연구자는 물론 취재진도 역사의 시계를 1888년으로 되돌려 그때 강진희가 이 그림들을 그려 선물해준 상대의 흔적을 남겨놓았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화가는 과연 누구에게 이 그림을 그려줬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오늘 밤 9시 뉴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단독] ‘최초의 미국 풍경화’ 그린 조선 화가의 숨은 그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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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0-10 17:08:27
- 수정2022-10-11 09:07:24

여기, 아주 흥미로운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제목은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그림 상단에 철길을 달리는 기차 두 대가 보이죠. 1888년 그림이니 조선은 분명 아닙니다. 그때 조선에는 기차가 없었으니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11년 뒤였습니다.
이 장면은 미국 풍경입니다. 어딘지는 몰라도 처음 미국 땅을 밟은 화가의 눈에는 굉음과 함께 연기를 뿜어내며 철도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였겠죠. 그 덕분에 서양 종이에 먹으로 그린 미국 풍경이 이렇게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구한말의 서화가이자 전각가인 청운 강진희(菁雲 姜璡熙, 1851~1919). 강진희는 1887년 6월 박정양이 첫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돼 미국 워싱턴으로 부임해 갈 때 수행원으로 함께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청나라 사람과 인연을 맺는데요. 그 인연을 기념하는 의미로 둘의 그림을 한 데 묶은 화첩을 꾸몄으니,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미사묵연-화초청운잡화합벽(美槎墨緣-華初菁雲襍畵合璧)』입니다. 위에 소개한 그림이 바로 이 화첩에 들어 있고요.
화첩 첫 장에 '1888년 워싱턴 주미 조선공관에서 그렸다'고 적혀 있어서 그림을 그린 정확한 시기와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이구열 선생은 일찍이 이 그림을 "한국인 화가로서는 처음 미국에 갔다가 보고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구열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돌베개, 2005) 이렇게 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이 그림에 '조선 화가가 그린 최초의 미국 풍경화'라는 수식어가 붙게 됩니다.
■최초로 공개되는 강진희의 숨은 그림과 글씨
강진희에 관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 전통미술 연구자 김영욱의 논문 「청운 강진희(1851-1919)의 생애와 서화 연구」를 보면, 지금까지 파악된 강진희 작품은 그림 19점과 글씨 10점 등 모두 29점입니다. 우리 미술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서화가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강진희가 남긴 역사적 자취는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리고 마침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강진희의 그림과 글씨 9점이 한꺼번에 발견됐습니다. 묘하게도 지난 5월 어느 전시회에서 우리에게 낯선 <화차분별도>라는 그림이 소개되면서 강진희이라는 화가의 이름이 뉴스를 통해 반짝 조명됐죠. 그로부터 불과 넉 달 만에 강진희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사진을 통해 최초로 공개하는 강진희의 그림입니다.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가장 사랑한 그림의 소재였죠. 강진희 역시 매화를 특히 잘 그린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남아 전하는 그림 19점 가운데 8점이 매화입니다. 위 아래로 뻗은 가지에 긴 겨울을 이겨낸 매화가 탐스럽게 피었죠. 문인화의 품격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강진희의 그림이라는 건 낙관으로 확인됩니다. 서로 다른 그림에 찍힌 청운(菁雲)이란 인장과 강진희인(姜璡熙印)이란 인장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진 적 없는 강진희 그림과 글씨를, 그것도 9점이나 한꺼번에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물론 큰 의미가 있겠죠.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뭔가 조금은 아쉽습니다.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강진희라는 화가의 숨은 그림을 찾았다는 소식은 강진희 연구자들에게야 희소식이겠지만, 딱히 다른 이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뉴스는 아니니까요.
■화가는 강진희, 그렇다면 그림을 선물 받은 사람은 누구?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림 가운데 한 폭에 적힌 글씨가 이 그림의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고야 말았으니, 이 그림을 찾아낸 연구자는 물론 취재진도 역사의 시계를 1888년으로 되돌려 그때 강진희가 이 그림들을 그려 선물해준 상대의 흔적을 남겨놓았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화가는 과연 누구에게 이 그림을 그려줬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오늘 밤 9시 뉴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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