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첫 낙선…이유는?

입력 2022.10.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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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현지시각 11일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인권이사회 이사국 낙선은 2006년 인권이사회 출범 이후 처음입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2006년 이후 5번 이사국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규정상 3연임이 안되기 때문에 선거에 나가지 못한 2011~2013년, 2018~2020년을 제외하면 입후보한 모든 선거에서 이사국에 진출했던 겁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안전보장이사회와 함께 유엔의 3대 핵심 기구여서 정부 입장에선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입니다. 정부는 특히, 이번에 3개 기구 동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선 아시아·태평양몫 신규 이사국 4자리를 두고 6개국이 경합했습니다. 한국은 5등으로, 4등인 키르기스스탄에 3표 차이로 밀렸습니다. 1위는 160표를 얻은 방글라데시였습니다.


■ 한국, 올해 국제기구 선거 14회 출마…"선택과 집중 못 했다"

외교부는 올해 한국이 국제기구 선거에 유난히 많이 출마한 점이 패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부가 올해 출마한 국제기구 선거는 모두 14건입니다. 2020년에는 11개, 지난해에는 10개의 국제기구 선거에 입후보했습니다.

게다가 올해 선거는 절반 이상이 상반기에 몰려 있어서, 순서상 14건 중 13번째였던 인권이사회 선거는 하반기에야 다른 나라들과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가 국제기구 선거에 나서려면, 외교부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외교부는 매해 12월, 다음 해 국제기구 출마 전략을 짜는 '선거 조정회의'를 열고 중요도에 따라 ①중점 ②주요 ③일반으로 구분합니다.

'중점 선거'는 모든 대사관을 동원해 표를 모아야 하는 경우로,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 선거 역시 중점선거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통상 매해 1~2개던 중점 선거가 올해 4개나 됐고, 그만큼 교섭력도 분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오늘(12일) "마지막까지 적극적인 지지 교섭을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론 충분한 지지표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올해 (국제기구) 선거에 과도하게 입후보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제기구 선거에선 국가들 사이에 상호 지지와 교환 지지를 하는데, 우리의 과도한 입후보로 인해서 가용 표가 조기에 소진됐다"고 말했습니다.

■ "신냉전 구도…다양한 국가 설득했어야"

이번 결과와 관련해, 이사국 배정이 우리나라에 불리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유엔 헌장은 대륙별로 이사국 수를 정합니다. 그런데 국가별 이해관계가 유사한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한국이 속한 '아시아태평양 그룹'은 아시아 전체와 태평양 도서국, 중동까지 포함하고 출마 희망국도 많아서 경합이 치열하단 겁니다.

다만, 동일한 조건에서도 2006년 이후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선전을 이어왔던 만큼 이번엔 득표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KBS에 익명을 전제로 "신냉전 상황에서 양대 진영에 속하지 않는 '비동맹 국가'들이 뭉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나라들을 데려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과거 한국이 선거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당선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을 거라고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롯된 신냉전 구도에서, 과거보다 다양한 국가들을 설득했어야 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여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4년 연속 불참한 이력이 표 이탈로 이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무엇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면서 "가장 직접적이고 큰 원인은 입후보가 너무 많았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초라한 성적표…인권이사회 향배도 주목해야

이번 인권이사회 이사국 낙선을 비롯해 올해 국제기구 선거 결과는 썩 좋지 않습니다. 올해 14건 가운데 다음달 치러지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집행이사국 선거를 제외한 13건을 보면, 낙선이 5건에 이릅니다.

특히 외교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입한 '중점 선거' 4건 중,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 진출을 제외한 3건이 모두 낙선인 점은 뼈아픕니다.

향후 국제기구 선거를 치를 때 보다 면밀한 판세 분석과 표 확보가 필요해 보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향배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12월을 끝으로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리를 내려놓게 됩니다. 내년 이사국 선거에는 이미 여러 나라가 출사표를 던진 만큼, 재도전을 당장 준비하지는 않을 거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인권 탄압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국가들이 다수 이사국에 진입한 만큼, 앞으로 이사회 내에서 북한 주민 인권 등의 문제를 다루는게 지금보다 어려워질 거란 전망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자유, 인권, 법치 등의 '가치' 구현도 제한이 될 수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결과와 무관하게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과 유엔 헌장에 부합하는 다자 외교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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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첫 낙선…이유는?
    • 입력 2022-10-12 18:30:23
    취재K

한국이 현지시각 11일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인권이사회 이사국 낙선은 2006년 인권이사회 출범 이후 처음입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2006년 이후 5번 이사국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규정상 3연임이 안되기 때문에 선거에 나가지 못한 2011~2013년, 2018~2020년을 제외하면 입후보한 모든 선거에서 이사국에 진출했던 겁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안전보장이사회와 함께 유엔의 3대 핵심 기구여서 정부 입장에선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입니다. 정부는 특히, 이번에 3개 기구 동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선 아시아·태평양몫 신규 이사국 4자리를 두고 6개국이 경합했습니다. 한국은 5등으로, 4등인 키르기스스탄에 3표 차이로 밀렸습니다. 1위는 160표를 얻은 방글라데시였습니다.


■ 한국, 올해 국제기구 선거 14회 출마…"선택과 집중 못 했다"

외교부는 올해 한국이 국제기구 선거에 유난히 많이 출마한 점이 패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부가 올해 출마한 국제기구 선거는 모두 14건입니다. 2020년에는 11개, 지난해에는 10개의 국제기구 선거에 입후보했습니다.

게다가 올해 선거는 절반 이상이 상반기에 몰려 있어서, 순서상 14건 중 13번째였던 인권이사회 선거는 하반기에야 다른 나라들과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가 국제기구 선거에 나서려면, 외교부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외교부는 매해 12월, 다음 해 국제기구 출마 전략을 짜는 '선거 조정회의'를 열고 중요도에 따라 ①중점 ②주요 ③일반으로 구분합니다.

'중점 선거'는 모든 대사관을 동원해 표를 모아야 하는 경우로,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 선거 역시 중점선거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통상 매해 1~2개던 중점 선거가 올해 4개나 됐고, 그만큼 교섭력도 분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오늘(12일) "마지막까지 적극적인 지지 교섭을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론 충분한 지지표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올해 (국제기구) 선거에 과도하게 입후보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제기구 선거에선 국가들 사이에 상호 지지와 교환 지지를 하는데, 우리의 과도한 입후보로 인해서 가용 표가 조기에 소진됐다"고 말했습니다.

■ "신냉전 구도…다양한 국가 설득했어야"

이번 결과와 관련해, 이사국 배정이 우리나라에 불리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유엔 헌장은 대륙별로 이사국 수를 정합니다. 그런데 국가별 이해관계가 유사한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한국이 속한 '아시아태평양 그룹'은 아시아 전체와 태평양 도서국, 중동까지 포함하고 출마 희망국도 많아서 경합이 치열하단 겁니다.

다만, 동일한 조건에서도 2006년 이후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선전을 이어왔던 만큼 이번엔 득표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KBS에 익명을 전제로 "신냉전 상황에서 양대 진영에 속하지 않는 '비동맹 국가'들이 뭉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나라들을 데려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과거 한국이 선거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당선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을 거라고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롯된 신냉전 구도에서, 과거보다 다양한 국가들을 설득했어야 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여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4년 연속 불참한 이력이 표 이탈로 이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무엇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면서 "가장 직접적이고 큰 원인은 입후보가 너무 많았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초라한 성적표…인권이사회 향배도 주목해야

이번 인권이사회 이사국 낙선을 비롯해 올해 국제기구 선거 결과는 썩 좋지 않습니다. 올해 14건 가운데 다음달 치러지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집행이사국 선거를 제외한 13건을 보면, 낙선이 5건에 이릅니다.

특히 외교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입한 '중점 선거' 4건 중,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 진출을 제외한 3건이 모두 낙선인 점은 뼈아픕니다.

향후 국제기구 선거를 치를 때 보다 면밀한 판세 분석과 표 확보가 필요해 보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향배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12월을 끝으로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리를 내려놓게 됩니다. 내년 이사국 선거에는 이미 여러 나라가 출사표를 던진 만큼, 재도전을 당장 준비하지는 않을 거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인권 탄압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국가들이 다수 이사국에 진입한 만큼, 앞으로 이사회 내에서 북한 주민 인권 등의 문제를 다루는게 지금보다 어려워질 거란 전망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자유, 인권, 법치 등의 '가치' 구현도 제한이 될 수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결과와 무관하게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과 유엔 헌장에 부합하는 다자 외교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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