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다”…대통령은 ‘전술핵’에 왜 여지를 남겼나?

입력 2022.10.13 (07:02) 수정 2022.10.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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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대해서 제가 수없이 얘기를 드렸고요. 대통령으로서 지금 현재 이렇다 저렇다,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조야의 여러 의견들을 잘 경청하고 또 따져보고 있습니다." - 11일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문답

북한의 핵 위협이 노골화되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위와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이 '수없이 드렸다'는 얘기는, '전술핵 재배치 반대'입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토론회 등에서 "핵 공유나 우리가 핵을 보유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게 된다. 그때부터는 비핵화 문제가 아니라 핵 군축 문제로 넘어간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의견들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는, 뒤에 덧붙인 말 때문입니다. 전술핵 재배치의 여지를 남겨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침 여권에서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커지고 있습니다.

■ '전술핵'이 뭐기에…재배치 주장 나오는 이유는?

'전술핵'은 위력 등을 '전략핵'에 비해 줄인 핵무기를 말합니다. '전략핵'이 메가톤(Mt·TNT 100만 톤 위력)급 폭발력으로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무기라면, '전술핵'은 킬로톤(Kt·TNT 1,000톤 위력)급으로 전쟁의 구도를 바꿀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분류상의 기준일 뿐입니다. 비슷한 위력을 내는 탄도미사일도 있지만, 군사적·정치적 의미는 전술핵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폭발력이 크든 작든 핵무기는 핵무기입니다.

전술핵은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이 많게는 수백 발의 전술핵을 배치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1991년 미국과 소련의 합의, 1992년 남북의 비핵화공동선언으로 주한미군의 전술핵은 모두 철수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는 미군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재래식 전력은 우리가 압도적인데도 북한이 연일 위협 수위를 높이는 건 '비대칭 전력'인 핵 때문인 만큼, 우리도 핵 무장을 해 저울추를 맞추자는 것입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역시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위원장은 다만, 이런 주장이 곧바로 전술핵 재배치 요구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 "대통령 입장 달라진 것 없다"…논의 여지? 전략적 모호성?

'수없이 얘기했다'와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 사이, 윤 대통령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일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전술핵 운용부대'를 언급하며 도발 수위를 한껏 높인 마당에, 국민의 불안을 반영해 여권에서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가 나오지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당장 전술핵 재배치는 여당이 요구하거나 우리 정부가 결정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미국과 협의를 해야 하는 문제이고, 미국은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했을 때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타이완까지, 동북아 전체에 미칠 파장을 먼저 고려할 것입니다.

'담대한 구상'을 비롯한 그동안의 대북 전략도 새로운 판을 짜야 합니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로 우리가 일종의 핵 무장을 하게되면, 더이상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과거 윤 대통령이 지적했듯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군축 협상'을 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NPT(핵 확산 금지조약) 체제를 지키겠다는 뜻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한다'고 잘라 말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합니다. "핵과 관련된 문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것은 불문율"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것도 이유로 보입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에 나설지, 현재 보유한 다양한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경량화된 전술핵 실험일지, 6차 실험때보다 위력을 높인 실험일지, 이후의 행보는 어떻게 할지, 중국이나 러시아의 반응은 어떨지…변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한미 당국은 현재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응할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없다'고 단언하는 건, 북한이 대비해야 할 선택지 하나를 미리 줄여주는 게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또 '최악의 상황'에는 전술핵 재배치를 정말 고려해야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도 있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핵 공유나 전술핵 배치는 미국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미 확장억제가 도저히 안 될 때"를 전제로 "그때는 미국과 상의해서 마지막으로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30여 년만에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면 한반도의 긴장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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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고 있다”…대통령은 ‘전술핵’에 왜 여지를 남겼나?
    • 입력 2022-10-13 07:02:05
    • 수정2022-10-14 10:13:45
    취재K

"거기에 대해서 제가 수없이 얘기를 드렸고요. 대통령으로서 지금 현재 이렇다 저렇다,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조야의 여러 의견들을 잘 경청하고 또 따져보고 있습니다." - 11일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문답

북한의 핵 위협이 노골화되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위와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이 '수없이 드렸다'는 얘기는, '전술핵 재배치 반대'입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토론회 등에서 "핵 공유나 우리가 핵을 보유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게 된다. 그때부터는 비핵화 문제가 아니라 핵 군축 문제로 넘어간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의견들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는, 뒤에 덧붙인 말 때문입니다. 전술핵 재배치의 여지를 남겨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침 여권에서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커지고 있습니다.

■ '전술핵'이 뭐기에…재배치 주장 나오는 이유는?

'전술핵'은 위력 등을 '전략핵'에 비해 줄인 핵무기를 말합니다. '전략핵'이 메가톤(Mt·TNT 100만 톤 위력)급 폭발력으로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무기라면, '전술핵'은 킬로톤(Kt·TNT 1,000톤 위력)급으로 전쟁의 구도를 바꿀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분류상의 기준일 뿐입니다. 비슷한 위력을 내는 탄도미사일도 있지만, 군사적·정치적 의미는 전술핵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폭발력이 크든 작든 핵무기는 핵무기입니다.

전술핵은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이 많게는 수백 발의 전술핵을 배치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1991년 미국과 소련의 합의, 1992년 남북의 비핵화공동선언으로 주한미군의 전술핵은 모두 철수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는 미군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재래식 전력은 우리가 압도적인데도 북한이 연일 위협 수위를 높이는 건 '비대칭 전력'인 핵 때문인 만큼, 우리도 핵 무장을 해 저울추를 맞추자는 것입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역시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위원장은 다만, 이런 주장이 곧바로 전술핵 재배치 요구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 "대통령 입장 달라진 것 없다"…논의 여지? 전략적 모호성?

'수없이 얘기했다'와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 사이, 윤 대통령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일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전술핵 운용부대'를 언급하며 도발 수위를 한껏 높인 마당에, 국민의 불안을 반영해 여권에서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가 나오지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당장 전술핵 재배치는 여당이 요구하거나 우리 정부가 결정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미국과 협의를 해야 하는 문제이고, 미국은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했을 때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타이완까지, 동북아 전체에 미칠 파장을 먼저 고려할 것입니다.

'담대한 구상'을 비롯한 그동안의 대북 전략도 새로운 판을 짜야 합니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로 우리가 일종의 핵 무장을 하게되면, 더이상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과거 윤 대통령이 지적했듯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군축 협상'을 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NPT(핵 확산 금지조약) 체제를 지키겠다는 뜻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한다'고 잘라 말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합니다. "핵과 관련된 문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것은 불문율"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것도 이유로 보입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에 나설지, 현재 보유한 다양한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경량화된 전술핵 실험일지, 6차 실험때보다 위력을 높인 실험일지, 이후의 행보는 어떻게 할지, 중국이나 러시아의 반응은 어떨지…변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한미 당국은 현재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응할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없다'고 단언하는 건, 북한이 대비해야 할 선택지 하나를 미리 줄여주는 게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또 '최악의 상황'에는 전술핵 재배치를 정말 고려해야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도 있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핵 공유나 전술핵 배치는 미국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미 확장억제가 도저히 안 될 때"를 전제로 "그때는 미국과 상의해서 마지막으로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30여 년만에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면 한반도의 긴장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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