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 정당인 제명취소 조정 결렬…법정 공방 계속

입력 2022.10.13 (12:00) 수정 2022.10.18 (08:0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말, 서울고등법원 4층 법정에 12명의 젊은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한 정당인의 성추행 사건을 판단하기 위해 ‘배심조정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겁니다.

‘성추행’ 여부를 판단하는데 왜 여성들만 모였을까요? ‘배심원’도 아니고 ‘배심조정위원’은 또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술자리 이후 성적 접촉…성추행일까?

2019년, 한 정당의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성 A 씨는 여성 B 씨와 술자리 이후 성적 접촉이 있었습니다.

A 씨는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B 씨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표면상 동의만 두 차례 있었을 뿐 그 외에는 일관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맞섰습니다.

B 씨는 결국 A 씨가 속한 정당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알렸고, 당은 심의 끝에 A 씨를 제명했습니다.

A 씨는 당의 이런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1년 반의 심리 끝에 1심 재판부는 “A 씨의 행동이 성추행이고 당의 제명 처분도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2심 재판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판단해 주세요”

2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18부(부장판사 정준영 민달기 김용민)는 ‘배심조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배심조정’은 민사소송의 ‘조정’ 절차와 형사소송의 ‘국민참여재판’을 합친 방식입니다.

배심원 역할을 하는 조정위원 여러 명을 선임하고, 이들이 토론한 뒤 내놓는 평결을 분쟁 해결의 기초로 삼는 제도입니다. 배심조정위원들의 평결은 당사자들에게 권고적 효력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에 왜 여성들만 모았을까요?

‘여성들만 모이면 편파적인 거 아니냐’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재판부는 대법원의 ‘합리적 피해자 기준’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성적인 언동 등’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나 남성 또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로서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 대법원 2007두22498 판결

재판부는 이 같은 기준에 따라, 그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닌, B 씨와 입장이 같은 ‘여성’들을 배심조정위원으로 선정해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합리적 피해자 기준’을 반영하는 데 원고와 피고, 양측 대리인은 합의했습니다.

■ 팽팽히 엇갈린 배심조정위

합의에 따라 12명의 배심조정위원이 추첨됐고, 위원들은 재판부로부터 사건 개요와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후 2시간에 걸쳐 A 씨와 B 씨, 정당 측으로부터 사건 설명을 듣고 평의실로 이동해 1시간 동안 2가지 쟁점에 대해 평의를 했습니다.

재판부 요청에 따라 조정위원들이 따져본 사안은 두 가지입니다.
① A 씨의 행위가 정당 당규가 규정한 성폭력*에 해당하는지
② A 씨의 행위에 대해 ‘제명’이라는 당 징계 처분이 정당한지

*해당 정당의 당규상 ‘성폭력’은 ‘사이버 환경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범죄 행위의 구성 여부와 관계없이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환경적 폭력을 통해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됩니다.

위원들의 평의 결과는 팽팽히 갈렸습니다.

성폭력이 맞는지 아닌지, 12명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겁니다.

■ 양측 이의 신청…다시 재판 절차로

재판부는 평결을 참고해 A 씨 측에는 정당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정당에는 제명 처분을 취소하는 대신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내리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런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양측 모두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데, A 씨와 정당은 지난 11일 모두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재판절차가 시작되고 민사소송의 변론도 다시 열립니다.

재판부는 양측의 이의 신청 이유를 다시 들어본 뒤 조정을 다시 시도할 수도 있지만, 양측이 조정을 거부한다면 일반적인 민사 재판 절차로 법적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성추행 의혹’ 정당인 제명취소 조정 결렬…법정 공방 계속
    • 입력 2022-10-13 12:00:11
    • 수정2022-10-18 08:07:28
    취재K


지난달 말, 서울고등법원 4층 법정에 12명의 젊은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한 정당인의 성추행 사건을 판단하기 위해 ‘배심조정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겁니다.

‘성추행’ 여부를 판단하는데 왜 여성들만 모였을까요? ‘배심원’도 아니고 ‘배심조정위원’은 또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술자리 이후 성적 접촉…성추행일까?

2019년, 한 정당의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성 A 씨는 여성 B 씨와 술자리 이후 성적 접촉이 있었습니다.

A 씨는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B 씨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표면상 동의만 두 차례 있었을 뿐 그 외에는 일관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맞섰습니다.

B 씨는 결국 A 씨가 속한 정당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알렸고, 당은 심의 끝에 A 씨를 제명했습니다.

A 씨는 당의 이런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1년 반의 심리 끝에 1심 재판부는 “A 씨의 행동이 성추행이고 당의 제명 처분도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2심 재판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판단해 주세요”

2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18부(부장판사 정준영 민달기 김용민)는 ‘배심조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배심조정’은 민사소송의 ‘조정’ 절차와 형사소송의 ‘국민참여재판’을 합친 방식입니다.

배심원 역할을 하는 조정위원 여러 명을 선임하고, 이들이 토론한 뒤 내놓는 평결을 분쟁 해결의 기초로 삼는 제도입니다. 배심조정위원들의 평결은 당사자들에게 권고적 효력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에 왜 여성들만 모았을까요?

‘여성들만 모이면 편파적인 거 아니냐’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재판부는 대법원의 ‘합리적 피해자 기준’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성적인 언동 등’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나 남성 또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로서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 대법원 2007두22498 판결

재판부는 이 같은 기준에 따라, 그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닌, B 씨와 입장이 같은 ‘여성’들을 배심조정위원으로 선정해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합리적 피해자 기준’을 반영하는 데 원고와 피고, 양측 대리인은 합의했습니다.

■ 팽팽히 엇갈린 배심조정위

합의에 따라 12명의 배심조정위원이 추첨됐고, 위원들은 재판부로부터 사건 개요와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후 2시간에 걸쳐 A 씨와 B 씨, 정당 측으로부터 사건 설명을 듣고 평의실로 이동해 1시간 동안 2가지 쟁점에 대해 평의를 했습니다.

재판부 요청에 따라 조정위원들이 따져본 사안은 두 가지입니다.
① A 씨의 행위가 정당 당규가 규정한 성폭력*에 해당하는지
② A 씨의 행위에 대해 ‘제명’이라는 당 징계 처분이 정당한지

*해당 정당의 당규상 ‘성폭력’은 ‘사이버 환경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범죄 행위의 구성 여부와 관계없이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환경적 폭력을 통해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됩니다.

위원들의 평의 결과는 팽팽히 갈렸습니다.

성폭력이 맞는지 아닌지, 12명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겁니다.

■ 양측 이의 신청…다시 재판 절차로

재판부는 평결을 참고해 A 씨 측에는 정당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정당에는 제명 처분을 취소하는 대신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내리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런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양측 모두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데, A 씨와 정당은 지난 11일 모두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재판절차가 시작되고 민사소송의 변론도 다시 열립니다.

재판부는 양측의 이의 신청 이유를 다시 들어본 뒤 조정을 다시 시도할 수도 있지만, 양측이 조정을 거부한다면 일반적인 민사 재판 절차로 법적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