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국에 이례적인 성명으로 대응한 사우디…‘한 방’까지

입력 2022.10.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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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경제적 결정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성명의 발단은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5일에 내린 대규모 감산 결정에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발끈'하면서부터입니다.

OPE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입니다. OPEC+는 지난 5일, 2년 반 만에 대면 회의를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11월부터는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대 감산 폭으로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였습니다. 당연히 전 세계 이목은 유가에 쏠렸습니다.

■ '대규모 감산'에 체면 구긴 바이든…줄줄이 사우디 비판

'안정적인 유가'를 계속 홍보해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체면을 완전히 구긴 셈입니다. 당장 다음 달 있을 중간 선거가 걱정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그동안 목소리를 높이던 인권 문제에 눈감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국가들을 순방했습니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는 회담까지 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이자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가 비판했던 인물입니다.

순방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사우디가 몇 주 내에 조치할 것이다", "향후 수개월 내 벌어질 일을 기대하고 있다" 등 희망 섞인 언급을 이어갔지만 결과는 '대규모 감산' 이었습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은 줄줄이 사우디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근시안적"이라는 표현까지 썼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물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사우디와의 '관계 재검토' 등을 시사하며 비판 강도를 높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결정에 따르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신과 전문가들은 미국이 사우디와의 안보 동맹 철회까지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가 13일(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의 일부.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세계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다른 해석은 거부한다”고 적혀 있다.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가 13일(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의 일부.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세계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다른 해석은 거부한다”고 적혀 있다.

■ 이례적 성명으로 답한 사우디…"순수한 경제적 논리 따른 것"

사우디는 이례적으로 미국에 반박 성명을 내놓으며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한다"고 답했습니다.

OPEC+의 결정은 순수한 경제적인 논리에 따른 것이며 특히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세계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산유국들이 지속적인 협의와 분석에 따라 독립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우디의 요구에 따라 OPEC+가 결정을 내렸다는 미국의 주장을 부인한 겁니다.

또 러시아 편을 들었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을 흐리게 하는 시도'라며 "유감"을 나타냈습니다.


■ '미국 로비' 사실 공개하며 '한 방'…상호존중 다시 강조

사우디는 미국에 '한 방' 먹이기도 했습니다.미국이 감산 결정을 늦추기 위해 사우디에 '로비'해 왔다는 점을 은근슬쩍 공개한 겁니다. 사우디는 구체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 달 동안 결정을 연기하면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말로 그동안 미국 언론들이 보도해왔던 '로비설'을 사실로 인정했습니다.

사우디는 성명 마지막에 미국과의 관계를 공동의 이익에 봉사하는 '전략적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존중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우디는 바이든 대통령 방문 당시에도 상호 존중을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간 회담 당시 '인권 이슈'가 거론되자 빈 살만 왕세자는 '다른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반박한 바 있습니다.

사우디의 이례적인 성명에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cil)도 즉각 지지 성명을 냈습니다. 걸프협력회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등 6개 아랍 산유국들이 결성한 지역 협력기구입니다. 이들은 성명에서 변동성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사우디의 노력을 지지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산유국들은 이른바 '돈 잔치'를 벌였습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지만 산유국들은 예외였습니다. '나홀로 호황'을 누린 산유국들은 최근 전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면서 감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 이후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곳간을 오일머니로 채워주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랜 우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 또한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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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미국에 이례적인 성명으로 대응한 사우디…‘한 방’까지
    • 입력 2022-10-14 09:00:32
    특파원 리포트

"순수한 경제적 결정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성명의 발단은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5일에 내린 대규모 감산 결정에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발끈'하면서부터입니다.

OPE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입니다. OPEC+는 지난 5일, 2년 반 만에 대면 회의를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11월부터는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대 감산 폭으로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였습니다. 당연히 전 세계 이목은 유가에 쏠렸습니다.

■ '대규모 감산'에 체면 구긴 바이든…줄줄이 사우디 비판

'안정적인 유가'를 계속 홍보해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체면을 완전히 구긴 셈입니다. 당장 다음 달 있을 중간 선거가 걱정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그동안 목소리를 높이던 인권 문제에 눈감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국가들을 순방했습니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는 회담까지 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이자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가 비판했던 인물입니다.

순방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사우디가 몇 주 내에 조치할 것이다", "향후 수개월 내 벌어질 일을 기대하고 있다" 등 희망 섞인 언급을 이어갔지만 결과는 '대규모 감산' 이었습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은 줄줄이 사우디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근시안적"이라는 표현까지 썼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물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사우디와의 '관계 재검토' 등을 시사하며 비판 강도를 높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결정에 따르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신과 전문가들은 미국이 사우디와의 안보 동맹 철회까지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가 13일(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의 일부.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세계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다른 해석은 거부한다”고 적혀 있다.
■ 이례적 성명으로 답한 사우디…"순수한 경제적 논리 따른 것"

사우디는 이례적으로 미국에 반박 성명을 내놓으며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한다"고 답했습니다.

OPEC+의 결정은 순수한 경제적인 논리에 따른 것이며 특히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세계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산유국들이 지속적인 협의와 분석에 따라 독립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우디의 요구에 따라 OPEC+가 결정을 내렸다는 미국의 주장을 부인한 겁니다.

또 러시아 편을 들었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을 흐리게 하는 시도'라며 "유감"을 나타냈습니다.


■ '미국 로비' 사실 공개하며 '한 방'…상호존중 다시 강조

사우디는 미국에 '한 방' 먹이기도 했습니다.미국이 감산 결정을 늦추기 위해 사우디에 '로비'해 왔다는 점을 은근슬쩍 공개한 겁니다. 사우디는 구체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 달 동안 결정을 연기하면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말로 그동안 미국 언론들이 보도해왔던 '로비설'을 사실로 인정했습니다.

사우디는 성명 마지막에 미국과의 관계를 공동의 이익에 봉사하는 '전략적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존중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우디는 바이든 대통령 방문 당시에도 상호 존중을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간 회담 당시 '인권 이슈'가 거론되자 빈 살만 왕세자는 '다른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반박한 바 있습니다.

사우디의 이례적인 성명에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cil)도 즉각 지지 성명을 냈습니다. 걸프협력회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등 6개 아랍 산유국들이 결성한 지역 협력기구입니다. 이들은 성명에서 변동성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사우디의 노력을 지지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산유국들은 이른바 '돈 잔치'를 벌였습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지만 산유국들은 예외였습니다. '나홀로 호황'을 누린 산유국들은 최근 전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면서 감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 이후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곳간을 오일머니로 채워주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랜 우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 또한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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