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이 만난 사람] “그곳 출신이라고 아내한테도 말 못 했다…어른들이 애들 갖고 장난질”

입력 2022.10.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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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류규석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10살 때 동네서 형들과 놀다가 혼자 잡혀 뗏목 타고 선감도 끌려가"
"감시 삼엄해 몇 차례 탈출했다가 공무원 추적조에게 잡히고 무차별 폭행당해"
"섬 축사에서 소 키우는 일 맡아 섬 돌아다니며 아이들 시체 수차례 목격"
"선감도 탈출해 다른 섬에서 인간 농기계처럼 일하다가 육지로 돌아와"
"탈출자들, 가족과 연이 끊겨 자살한 이들도...지금도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
"'선감도 출신'이라면 거지라며 동정도 받지 못해 아내에게도 말 못해"
"어른들의 장난질로 숨진 어린 고아들, 유해 발굴해 영면 빌어야 살아남은 피해자들 치유"


■ 방송시간 : 10월 14일(금) 16:00~17:00 KBS1
■ 진행 : 범기영 기자
■ 출연 : 이경호 KBS 해설위원


https://youtu.be/tlx1LRVuHRo

◎범기영 사만사, 오늘 주인공은 선감학원 피해자, 류규석 씨입니다. 이경호 해설위원이 만나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경호 안녕하세요?

◎범기영 이제는 좀 많이 알려진 것 같긴 한데요. 이 사건, 어떤 내용인지 정리를 좀 해볼까요?

▼이경호 과거 경기도 안산시에 선감도라는 섬이 있었는데, 지금은 육지로 연결돼 있지만, 거기에 일제강점기 말기죠? 1941~1942년도에 선감학원이라는 부랑아 수용시설이 만들어집니다. 폐쇄된 지가 1982년이니까 40년 동안 운영이 됐거든요? 현재 거기 수용된 인원이 한 4,700명 정도 되고요. 본인이 선감학원에 수용됐었다고 밝힌 피해자분들이 현재 확인된 것만 190명 정도 되는데 류규석 씨는 바로 그 190명 중의 한 분입니다.

◎범기영 직접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나서신 분 중의 1명이고. 시설 설치한 명분이 부랑아 수용, 이렇게 알려졌는데 어떻게 하다가 끌려가시게 된 겁니까?

▼이경호 부랑아만 수용한 건 아니고요. 길거리에서 그냥 마구잡이로 잡아가지고 가족 있고 집 있는 소년들까지도 같이 수용이 됐는데 류규석 씨 역시 마찬가지로 평범한 가정집의 아들이었답니다. 그때 당시 얘기 한번 만나서 들어봤습니다.

류규석 씨는 10여 년 전에 선감학원의 실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피해자 모임의 초대 대표를 맡으셨던 분인데요. 지금은 몸이 불편해서 집에 머물고 계신데, 어렵게 찾아가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선감학원에 어렸을 때 들어가셨는데, 그때 당시에 어떻게 선감학원에 들어가시게 된 거예요?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동네 형들이랑 놀다가 나만 잡혔어요. 다른 사람들은 형들이니까 빨리 뛰고. 시커먼 ‘쓰리쿼터’ 차가 딱 오더니 어리니까 이렇게 잡아서 그 위로 던지더라고요. 그리고 뭐 어느 정도 모이니까 다시 차를 대고 월미도 근처에 하인천이라는 데가 있어요, 배에다가 싣더라고요. 줄 서 갖고 다시 또 뗏목을 타요. 뗏목을 타고 대부도에서 일단 배 태워서 내리는 거예요. 뗏목 타고 선감도로, 나루터로 가는 거죠. 그때가 10살 때였을 거예요. 10살인가, 11살인가.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부모님이 있고, 집이 있고 가족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을 텐데.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소용없어요. 뭐 좀 나는 옷이 남루하지도 않았어요. 집이 좀 (여유 있어서) 그렇고 그래서 남루하지도 않았는데. 옷도 깨끗이 입은 애들도 있더라고요, 내가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이제 거기서 도망갈까 하고도 생각했는데 워낙 삼엄해서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나는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그렇게 끌려간 선감학원에서는 구타, 강제 노역, 굶주림이 아주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첫날서부터 하여간 뭐 두들겨 패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거기를 여러 명이 갔는데 첫날 내가 탈출을 했어요. 그래 갖고 나왔는데, (추적조에) 잡혀 왔는데, 그때 당시는 추적조가, 공무원이 왔더라고요. 망원경을 보여주더라고요. ‘네가 도망가면 다 이렇게 된다’ 멀리 있는 것도 이만하게 보이더라고요, 다 당겨가지고. 그래서 어린 나이에 이제는 여기서 잘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이후에는) 곤봉으로 계속 치는 거예요. 걔는, 나랑 같이 간 애는 장애인 됐을 거예요. 쓰러져 기절하니까 그때서부터는 안 때리더라고요. 괜히 그냥 그때서부터는 잘 엎어졌어요. 중심을 못 잡겠더라고요, 뇌 손상이 됐으니까. 식당에서 먹는 것 갖고는 워낙 배가 고프니까... 맞는 건 고사하고 배고픈 거더라고요.

◎범기영 가혹 행위도 가혹 행위지만 너무 배가 고팠다. 탈출하려는 시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섬이라서 쉽진 않았겠어요.

▼이경호 섬이다 보니까 탈출 과정에서 숨진 어린이들이 많았는데요. 그 어린이 시신들, 본인이 직접 목격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합니다. 기억 한번 들어보시죠.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같이 있었던 동료들 있지 않습니까? 많이 있었을 텐데. 뭐 신문, 언론 보도라든지, 또 살아계신 분들이 얘기하신 거 보면 죽은 분도 많이 있었다, 이런 얘기하셨는데.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내 기억으로는 어마어마해요.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을 하냐면요. 나는 우리 축산부에는 소 당번만큼은 이 섬을 자유롭게 다 돌아다녀요, 방목을 하기 때문에. 그러면 저기 뭐가 떠 있는지를 알아요. 맨 처음에 몰랐어요. 그런데 한번 가니까 (시체) 냄새가 무지무지 나잖아요. 어린 나이에 그걸 보고 기절하다시피 했어요. 애들이 세 명이서 그냥 겁을 얼마나 잔뜩 먹었는지 소를 저쪽에다 몰아넣고 그냥 덜덜 떠는 거예요. 그게 생생해.

그렇게 2년 동안 힘든 생활을 하시다가 탈출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하지만 탈출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그러면 선감도에서 나오셔 가지고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선감도에서 나오면서 닥치는 대로 했죠. 여기(선재도) 나오니까 거기서, 섬(선재도)에서 머슴이라고는 이야기할 것까지는 없고 인간 농기계로 있었어요. 여기저기서 일하는데 어떤 뜻있는 사람이 자기 뱃삵을, 배표를 끊어주고 자기애들 옷 입혀서 내보내 주더라고요.

◎범기영 2년 만에 탈출했다고 했으니까 고작 12살, 13살이랬는데, 그때부터 집도 가족도 없이 그냥 계속 사셨던 거네요?

▼이경호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가지고 집을 찾아가지 못했던 거고요. 그러다 보니까 홀로 또다시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의 동료들이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힘들었고, 그 적응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이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그 얘기도 당시 한번 들어봤습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어린 나이에 자살 아닌 자살을 해요. 목매달아 자살하는 게 아니고, 실제 농약 먹고 자살한 사람도 있고. 술로 그러더라고요. 괴로우니까 술로, 밥 안 먹고 술로. 얼마 못 가서 죽더라고요. 스무 살, 스물두 살, 이때 되니까. 나도 트라우마 정신과 치료한 지가 오래됐어요. 지금도 치료하고 있고.

Q. 주변의 시선은 어땠어요? 선감도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거의 동정을 받을 수가 없어요. 거지OO라고 그러고, 손가락질하고. 그래서 거기 출신이라는 건 나는 절대 누구한테도 얘기 안 했어요, 집사람한테도 얘기 안 하고. 다 그렇게 다 그러더라고요. 선감도 출신이라는 것은 입도 뻥끗 안 하고.

◎범기영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알리겠다고 나선 계기는 뭐였습니까?

▼이경호 부끄러운 일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어서 숨기면 그 고통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결국 공개를 하고 알리는 것이 고통을 치유하는 데 낫다, 이렇게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 얘기 한번 들어봤습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너무 괴롭더라고요. 어떻게든지 세상에 좀 알렸으면 좋겠더라고요. 당시 어른들이 애를 갖고 장난질을 한 거예요. 나쁜 짓을 한 거죠. 고아를 만든 거예요, 고아를. (피해자가) 실제 뭐 4,691명이라고 통계로 나왔다고 그러지만, 과연 몇 명이나 살아있겠어요. 이렇게까지 어린애들을 갖다가 잔인하게, 얼마나 잔인해.

◎범기영 인터뷰 과정에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으시네요. 가장 바라는 점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이경호 이번에 유해 발굴이 제대로 돼가지고 숨진 동료들의 무덤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주고 추모식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데요. 얘기 들어봤습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선감도를, 거기를 자꾸 가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진짜 편하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지긋지긋하다고 그러는데, 나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원생들 묘에 가서 자리나 보고, 그리고 오고 그랬더니 자꾸 (마음의) 치료가 빨라지더라고요. (유해) 발굴하는 의미는, 한을 풀어줘야 될 거예요. 그 한을 섬에 다 영영 원혼의 섬으로 남겨놓는다는 것은 도대체 탈을 쓴 인간들이 지금 그렇게 안 하면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유해발굴이 시굴이 잘 돼서 그 사람들의 영면을 잘 빌어줬으면 좋겠어요.

◎범기영 2017년이었던가요? 경기도에서 조사했는데 시신이 150여 구 있는 걸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도 봤던 것 같은데요.

▼이경호 당시에 지표투과레이더 조사를 통해서 했던 거고요. 실제로 발굴은 안 이루어졌던 거고요. 이번에 그 결과를 가지고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발굴을 했고요. 그 발굴된 걸 가지고 진실화해위원회가 종합적인 결과를 다음 주쯤에 발표한다고 합니다.

◎범기영 진실 규명 결과는 다음 주쯤에 나온다는 얘기고, 보상도 혹시 가능할까요?

▼이경호 국가 책임을 어디까지 둘 것이냐의 문제인데요. 경기도가 지금은 민선이지만 과거에는 관선이었기 때문에 국가 책임이고 그건 결국 국가가 보상을 해야 된다는 건데, 다른 비슷한 사례도 마찬가지로 이게 보상까지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법적 소송 불가피해 보입니다.

◎범기영 류규석 씨, 아까 증언 중에 추격조가 공무원이 왔다, 이런 대목이 있어서 과연 지자체, 국가 책임이 진짜 없는지, 이런 것들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앞으로 좀 지켜보겠습니다. 이경호 해설위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국가가 직접 나서거나 적어도 묵인, 방조했던 인권 침해 사건 적지 않습니다. 오늘 다룬 선감학원도 그렇고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라도 진실 규명과 책임 있는 당국 사과 또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기대 하겠습니다. 사사건건도 지켜보겠습니다. 이번 주 저희 준비한 내용 여기까지고요. 저는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4시엔 사사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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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사건건이 만난 사람] “그곳 출신이라고 아내한테도 말 못 했다…어른들이 애들 갖고 장난질”
    • 입력 2022-10-15 08:00:08
    사회
류규석 (선감학원 피해생존자)<br />"10살 때 동네서 형들과 놀다가 혼자 잡혀 뗏목 타고 선감도 끌려가"<br />"감시 삼엄해 몇 차례 탈출했다가 공무원 추적조에게 잡히고 무차별 폭행당해"<br />"섬 축사에서 소 키우는 일 맡아 섬 돌아다니며 아이들 시체 수차례 목격"<br />"선감도 탈출해 다른 섬에서 인간 농기계처럼 일하다가 육지로 돌아와"<br />"탈출자들, 가족과 연이 끊겨 자살한 이들도...지금도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br />"'선감도 출신'이라면 거지라며 동정도 받지 못해 아내에게도 말 못해"<br />"어른들의 장난질로 숨진 어린 고아들, 유해 발굴해 영면 빌어야 살아남은 피해자들 치유"<br />

■ 방송시간 : 10월 14일(금) 16:00~17:00 KBS1
■ 진행 : 범기영 기자
■ 출연 : 이경호 KBS 해설위원


https://youtu.be/tlx1LRVuHRo

◎범기영 사만사, 오늘 주인공은 선감학원 피해자, 류규석 씨입니다. 이경호 해설위원이 만나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경호 안녕하세요?

◎범기영 이제는 좀 많이 알려진 것 같긴 한데요. 이 사건, 어떤 내용인지 정리를 좀 해볼까요?

▼이경호 과거 경기도 안산시에 선감도라는 섬이 있었는데, 지금은 육지로 연결돼 있지만, 거기에 일제강점기 말기죠? 1941~1942년도에 선감학원이라는 부랑아 수용시설이 만들어집니다. 폐쇄된 지가 1982년이니까 40년 동안 운영이 됐거든요? 현재 거기 수용된 인원이 한 4,700명 정도 되고요. 본인이 선감학원에 수용됐었다고 밝힌 피해자분들이 현재 확인된 것만 190명 정도 되는데 류규석 씨는 바로 그 190명 중의 한 분입니다.

◎범기영 직접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나서신 분 중의 1명이고. 시설 설치한 명분이 부랑아 수용, 이렇게 알려졌는데 어떻게 하다가 끌려가시게 된 겁니까?

▼이경호 부랑아만 수용한 건 아니고요. 길거리에서 그냥 마구잡이로 잡아가지고 가족 있고 집 있는 소년들까지도 같이 수용이 됐는데 류규석 씨 역시 마찬가지로 평범한 가정집의 아들이었답니다. 그때 당시 얘기 한번 만나서 들어봤습니다.

류규석 씨는 10여 년 전에 선감학원의 실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피해자 모임의 초대 대표를 맡으셨던 분인데요. 지금은 몸이 불편해서 집에 머물고 계신데, 어렵게 찾아가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선감학원에 어렸을 때 들어가셨는데, 그때 당시에 어떻게 선감학원에 들어가시게 된 거예요?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동네 형들이랑 놀다가 나만 잡혔어요. 다른 사람들은 형들이니까 빨리 뛰고. 시커먼 ‘쓰리쿼터’ 차가 딱 오더니 어리니까 이렇게 잡아서 그 위로 던지더라고요. 그리고 뭐 어느 정도 모이니까 다시 차를 대고 월미도 근처에 하인천이라는 데가 있어요, 배에다가 싣더라고요. 줄 서 갖고 다시 또 뗏목을 타요. 뗏목을 타고 대부도에서 일단 배 태워서 내리는 거예요. 뗏목 타고 선감도로, 나루터로 가는 거죠. 그때가 10살 때였을 거예요. 10살인가, 11살인가.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부모님이 있고, 집이 있고 가족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을 텐데.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소용없어요. 뭐 좀 나는 옷이 남루하지도 않았어요. 집이 좀 (여유 있어서) 그렇고 그래서 남루하지도 않았는데. 옷도 깨끗이 입은 애들도 있더라고요, 내가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이제 거기서 도망갈까 하고도 생각했는데 워낙 삼엄해서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나는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그렇게 끌려간 선감학원에서는 구타, 강제 노역, 굶주림이 아주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첫날서부터 하여간 뭐 두들겨 패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거기를 여러 명이 갔는데 첫날 내가 탈출을 했어요. 그래 갖고 나왔는데, (추적조에) 잡혀 왔는데, 그때 당시는 추적조가, 공무원이 왔더라고요. 망원경을 보여주더라고요. ‘네가 도망가면 다 이렇게 된다’ 멀리 있는 것도 이만하게 보이더라고요, 다 당겨가지고. 그래서 어린 나이에 이제는 여기서 잘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이후에는) 곤봉으로 계속 치는 거예요. 걔는, 나랑 같이 간 애는 장애인 됐을 거예요. 쓰러져 기절하니까 그때서부터는 안 때리더라고요. 괜히 그냥 그때서부터는 잘 엎어졌어요. 중심을 못 잡겠더라고요, 뇌 손상이 됐으니까. 식당에서 먹는 것 갖고는 워낙 배가 고프니까... 맞는 건 고사하고 배고픈 거더라고요.

◎범기영 가혹 행위도 가혹 행위지만 너무 배가 고팠다. 탈출하려는 시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섬이라서 쉽진 않았겠어요.

▼이경호 섬이다 보니까 탈출 과정에서 숨진 어린이들이 많았는데요. 그 어린이 시신들, 본인이 직접 목격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합니다. 기억 한번 들어보시죠.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같이 있었던 동료들 있지 않습니까? 많이 있었을 텐데. 뭐 신문, 언론 보도라든지, 또 살아계신 분들이 얘기하신 거 보면 죽은 분도 많이 있었다, 이런 얘기하셨는데.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내 기억으로는 어마어마해요.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을 하냐면요. 나는 우리 축산부에는 소 당번만큼은 이 섬을 자유롭게 다 돌아다녀요, 방목을 하기 때문에. 그러면 저기 뭐가 떠 있는지를 알아요. 맨 처음에 몰랐어요. 그런데 한번 가니까 (시체) 냄새가 무지무지 나잖아요. 어린 나이에 그걸 보고 기절하다시피 했어요. 애들이 세 명이서 그냥 겁을 얼마나 잔뜩 먹었는지 소를 저쪽에다 몰아넣고 그냥 덜덜 떠는 거예요. 그게 생생해.

그렇게 2년 동안 힘든 생활을 하시다가 탈출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하지만 탈출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경호 / KBS 해설위원
그러면 선감도에서 나오셔 가지고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선감도에서 나오면서 닥치는 대로 했죠. 여기(선재도) 나오니까 거기서, 섬(선재도)에서 머슴이라고는 이야기할 것까지는 없고 인간 농기계로 있었어요. 여기저기서 일하는데 어떤 뜻있는 사람이 자기 뱃삵을, 배표를 끊어주고 자기애들 옷 입혀서 내보내 주더라고요.

◎범기영 2년 만에 탈출했다고 했으니까 고작 12살, 13살이랬는데, 그때부터 집도 가족도 없이 그냥 계속 사셨던 거네요?

▼이경호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가지고 집을 찾아가지 못했던 거고요. 그러다 보니까 홀로 또다시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의 동료들이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힘들었고, 그 적응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이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그 얘기도 당시 한번 들어봤습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어린 나이에 자살 아닌 자살을 해요. 목매달아 자살하는 게 아니고, 실제 농약 먹고 자살한 사람도 있고. 술로 그러더라고요. 괴로우니까 술로, 밥 안 먹고 술로. 얼마 못 가서 죽더라고요. 스무 살, 스물두 살, 이때 되니까. 나도 트라우마 정신과 치료한 지가 오래됐어요. 지금도 치료하고 있고.

Q. 주변의 시선은 어땠어요? 선감도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거의 동정을 받을 수가 없어요. 거지OO라고 그러고, 손가락질하고. 그래서 거기 출신이라는 건 나는 절대 누구한테도 얘기 안 했어요, 집사람한테도 얘기 안 하고. 다 그렇게 다 그러더라고요. 선감도 출신이라는 것은 입도 뻥끗 안 하고.

◎범기영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알리겠다고 나선 계기는 뭐였습니까?

▼이경호 부끄러운 일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어서 숨기면 그 고통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결국 공개를 하고 알리는 것이 고통을 치유하는 데 낫다, 이렇게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 얘기 한번 들어봤습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너무 괴롭더라고요. 어떻게든지 세상에 좀 알렸으면 좋겠더라고요. 당시 어른들이 애를 갖고 장난질을 한 거예요. 나쁜 짓을 한 거죠. 고아를 만든 거예요, 고아를. (피해자가) 실제 뭐 4,691명이라고 통계로 나왔다고 그러지만, 과연 몇 명이나 살아있겠어요. 이렇게까지 어린애들을 갖다가 잔인하게, 얼마나 잔인해.

◎범기영 인터뷰 과정에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으시네요. 가장 바라는 점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이경호 이번에 유해 발굴이 제대로 돼가지고 숨진 동료들의 무덤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주고 추모식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데요. 얘기 들어봤습니다.

<녹취> 류규석 / 선감학원 피해자
선감도를, 거기를 자꾸 가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진짜 편하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지긋지긋하다고 그러는데, 나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원생들 묘에 가서 자리나 보고, 그리고 오고 그랬더니 자꾸 (마음의) 치료가 빨라지더라고요. (유해) 발굴하는 의미는, 한을 풀어줘야 될 거예요. 그 한을 섬에 다 영영 원혼의 섬으로 남겨놓는다는 것은 도대체 탈을 쓴 인간들이 지금 그렇게 안 하면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유해발굴이 시굴이 잘 돼서 그 사람들의 영면을 잘 빌어줬으면 좋겠어요.

◎범기영 2017년이었던가요? 경기도에서 조사했는데 시신이 150여 구 있는 걸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도 봤던 것 같은데요.

▼이경호 당시에 지표투과레이더 조사를 통해서 했던 거고요. 실제로 발굴은 안 이루어졌던 거고요. 이번에 그 결과를 가지고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발굴을 했고요. 그 발굴된 걸 가지고 진실화해위원회가 종합적인 결과를 다음 주쯤에 발표한다고 합니다.

◎범기영 진실 규명 결과는 다음 주쯤에 나온다는 얘기고, 보상도 혹시 가능할까요?

▼이경호 국가 책임을 어디까지 둘 것이냐의 문제인데요. 경기도가 지금은 민선이지만 과거에는 관선이었기 때문에 국가 책임이고 그건 결국 국가가 보상을 해야 된다는 건데, 다른 비슷한 사례도 마찬가지로 이게 보상까지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법적 소송 불가피해 보입니다.

◎범기영 류규석 씨, 아까 증언 중에 추격조가 공무원이 왔다, 이런 대목이 있어서 과연 지자체, 국가 책임이 진짜 없는지, 이런 것들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앞으로 좀 지켜보겠습니다. 이경호 해설위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국가가 직접 나서거나 적어도 묵인, 방조했던 인권 침해 사건 적지 않습니다. 오늘 다룬 선감학원도 그렇고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라도 진실 규명과 책임 있는 당국 사과 또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기대 하겠습니다. 사사건건도 지켜보겠습니다. 이번 주 저희 준비한 내용 여기까지고요. 저는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4시엔 사사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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