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상실 뒤에 오는 삶…영화가 그리는 ‘종결 없이 사는 법’

입력 2022.10.16 (09:00) 수정 2022.12.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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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한 장면. © 2016 Amazon Studios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한 장면. © 2016 Amazon Studios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기자의 문장은 사건·사고에서 멈춘다. 어디에서 불이 나 몇 명이 죽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 수감됐다. 반면 당사자의 삶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신이 방금 무슨 일을 겪었든, 살아 있는 한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손톱을 자르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야 하며,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다가 언젠가는 '그 일'에 대해 설명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어떤 끔찍한 사건이나 천재지변 뒤에도 '산 사람은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주인공 리는 지병을 앓던 형이 죽으면서 홀로 남겨진 조카의 후견인이 된다. 상의 없이 중책을 맡긴 형을 원망할 틈도 없이, 변호사와 장의사에게 연락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길고 성가신 일들이 리를 기다린다. 기억 속 꼬맹이는 온데간데없고, 집에 여자 친구를 데려와 한 침대를 쓸 만큼 훌쩍 커버린 조카에게 갑자기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하는 것도 어색하다. 가장 큰 문제는 조카를 돌보려면 리가 도망치듯 떠난 보스턴 대신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모두가 등 뒤에서 자신을 '그 유명한 리'라고 수군대는 이 마을로.

영화는 초반부터 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지만, 사건의 실체는 영화 시작 1시간이 다 되어서야 비밀을 벗는다. 과거 아내와 어린 두 딸, 갓 태어난 아들까지 둔 행복한 가장이었던 리는 어느 날 새벽 더 먹을 술과 안줏거리를 사러 혼자 밖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사이 집이 불타면서 아이들은 모두 죽는다. 사이 좋던 아내와도 헤어진다. 화재의 원인이 리가 켠 장작 벽난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취해서 벽난로 안전망을 치는 걸 깜빡한 것. 경찰은 실수를 처벌할 수 없다며 리를 풀어주지만, 아무도 죄를 묻지 않아서 리는 오히려 영원한 죄책감의 감옥에 갇힌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한 장면. © 2016 Amazon Studios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한 장면. © 2016 Amazon Studios

창백한 겨울 하늘과 눈 덮인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카메라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여러 태도를 비춘다. 너무 깊은 고통으로 리의 감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면, 사춘기를 맞은 16살 조카 패트릭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픔을 흘려보내려 한다. 영안실에 누운 아빠를 흘끗 보고 돌아서고, 부고 당일 친구들을 불러 피자를 시켜 먹는 등 태연하게 굴던 패트릭이 무너지는 건 장례식이 끝나고 한밤중 혼자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다. 냉동실 안쪽에서 굴러 떨어진 냉동 식품의 감촉과 냉기에서 패트릭은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내내 덤덤하던 패트릭은 그제야 엉엉 울기 시작한다.

회복 불가능한 상실을 겪은 인생은 벌어진 상처를 계속 갖고 살아가는 것과 같고, 그런 사람의 마음은 깃털만큼 가벼운 일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영화에선 대개 장면 바깥으로 밀려날 일상의 디테일을 불러모은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듣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도 인물들은 잘못 불린 의사의 이름을 바로잡거나 별 뜻 없는 농담을 나누고, 진지한 주제로 다툴 때도 차를 어디에 주차해 뒀는지 몰라 발을 구른다. 심지어 실신한 리의 아내를 구급차로 옮기는 들것의 다리마저 한 번에 접히는 법이 없다. 이처럼 매사 실수와 오류로 삐걱거리는 삶 속에서, '영화같이' 매끈한 회복은 있을 수 없다는 걸 드러냄으로써 이 작품은 오히려 위안을 준다.

최근 한국과 태국에서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랐다. 두 사건 모두 한 명씩 생존자가 있었다. 사건의 경위를 밝히고 개선점과 후속 조치를 전하는 게 언론이 할 일이지만, 생존자와 유족들의 마음은 누가 헤아려 주는 지가 궁금했다. 트라우마와 심리 치료 전문가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겠지만, 고통을 덜어주는 데엔 예술의 역할도 있지 않을까. 영화는 쉽게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완벽히 회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세상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으니까. 섬세한 연출부터 연기까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성추행 전력이 있는 배우 케이시 에플렉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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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마진국] 상실 뒤에 오는 삶…영화가 그리는 ‘종결 없이 사는 법’
    • 입력 2022-10-16 09:00:24
    • 수정2022-12-26 09:39:17
    씨네마진국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한 장면. © 2016 Amazon Studios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기자의 문장은 사건·사고에서 멈춘다. 어디에서 불이 나 몇 명이 죽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 수감됐다. 반면 당사자의 삶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신이 방금 무슨 일을 겪었든, 살아 있는 한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손톱을 자르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야 하며,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다가 언젠가는 '그 일'에 대해 설명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어떤 끔찍한 사건이나 천재지변 뒤에도 '산 사람은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주인공 리는 지병을 앓던 형이 죽으면서 홀로 남겨진 조카의 후견인이 된다. 상의 없이 중책을 맡긴 형을 원망할 틈도 없이, 변호사와 장의사에게 연락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길고 성가신 일들이 리를 기다린다. 기억 속 꼬맹이는 온데간데없고, 집에 여자 친구를 데려와 한 침대를 쓸 만큼 훌쩍 커버린 조카에게 갑자기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하는 것도 어색하다. 가장 큰 문제는 조카를 돌보려면 리가 도망치듯 떠난 보스턴 대신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모두가 등 뒤에서 자신을 '그 유명한 리'라고 수군대는 이 마을로.

영화는 초반부터 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지만, 사건의 실체는 영화 시작 1시간이 다 되어서야 비밀을 벗는다. 과거 아내와 어린 두 딸, 갓 태어난 아들까지 둔 행복한 가장이었던 리는 어느 날 새벽 더 먹을 술과 안줏거리를 사러 혼자 밖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사이 집이 불타면서 아이들은 모두 죽는다. 사이 좋던 아내와도 헤어진다. 화재의 원인이 리가 켠 장작 벽난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취해서 벽난로 안전망을 치는 걸 깜빡한 것. 경찰은 실수를 처벌할 수 없다며 리를 풀어주지만, 아무도 죄를 묻지 않아서 리는 오히려 영원한 죄책감의 감옥에 갇힌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의 한 장면. © 2016 Amazon Studios
창백한 겨울 하늘과 눈 덮인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카메라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여러 태도를 비춘다. 너무 깊은 고통으로 리의 감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면, 사춘기를 맞은 16살 조카 패트릭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픔을 흘려보내려 한다. 영안실에 누운 아빠를 흘끗 보고 돌아서고, 부고 당일 친구들을 불러 피자를 시켜 먹는 등 태연하게 굴던 패트릭이 무너지는 건 장례식이 끝나고 한밤중 혼자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다. 냉동실 안쪽에서 굴러 떨어진 냉동 식품의 감촉과 냉기에서 패트릭은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내내 덤덤하던 패트릭은 그제야 엉엉 울기 시작한다.

회복 불가능한 상실을 겪은 인생은 벌어진 상처를 계속 갖고 살아가는 것과 같고, 그런 사람의 마음은 깃털만큼 가벼운 일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영화에선 대개 장면 바깥으로 밀려날 일상의 디테일을 불러모은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듣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도 인물들은 잘못 불린 의사의 이름을 바로잡거나 별 뜻 없는 농담을 나누고, 진지한 주제로 다툴 때도 차를 어디에 주차해 뒀는지 몰라 발을 구른다. 심지어 실신한 리의 아내를 구급차로 옮기는 들것의 다리마저 한 번에 접히는 법이 없다. 이처럼 매사 실수와 오류로 삐걱거리는 삶 속에서, '영화같이' 매끈한 회복은 있을 수 없다는 걸 드러냄으로써 이 작품은 오히려 위안을 준다.

최근 한국과 태국에서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랐다. 두 사건 모두 한 명씩 생존자가 있었다. 사건의 경위를 밝히고 개선점과 후속 조치를 전하는 게 언론이 할 일이지만, 생존자와 유족들의 마음은 누가 헤아려 주는 지가 궁금했다. 트라우마와 심리 치료 전문가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겠지만, 고통을 덜어주는 데엔 예술의 역할도 있지 않을까. 영화는 쉽게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완벽히 회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세상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으니까. 섬세한 연출부터 연기까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성추행 전력이 있는 배우 케이시 에플렉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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