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표절률 86%…그런데 ‘격려금’이 나왔다

입력 2022.10.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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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논문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실까요. 제목부터 표지, 내용, 참고문헌까지... 비슷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마치 '데칼코마니' 같기도 한데요.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표절한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 두 논문, 저자가 같습니다.


똑같아 보이는 두 논문의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논문이 제출된 '연도' 입니다. 경찰인재개발원 소속 A 교수는 두 논문을 각각 2020년과 2021년에 '인재개발원 내부 논문'으로 제출했습니다.

한 번 제출한 논문을 '일부' 수정해 이듬해 다시 제출한 건데요. 학술지 투고의 경우, 이렇게 거의 같은 논문을 각각 투고할 경우 학계에서는 '자기 표절' 내지는 '중복 게재'로 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A 교수는 두 논문으로 2년 연속 '연구실적 점수'와 '격려금'까지 챙겼습니다.

"A 교수요원은 2020년도에 내부 논문을 작성·제출하여…(중략), 2021년도에 동일한 논문을 극히 일부만 수정한 뒤 다시 제출하여 동일하게 연구실적점수와 연구성과격려금을 확보했다."
- 경찰인재개발원 종합감사 결과보고서 中

"내부논문 43%, 표절률 25% 이상"

경찰인재개발원 교수요원들의 '연구논문 부실 작성' 의혹, 경찰청 종합감사로 드러났습니다.

표절 심의 프로그램 '카피킬러' 검사 결과, 2020년과 2021년 제출된 '내부 논문' 46건 중 17건이 표절률 25%를 넘겼습니다. 이 중 6건은 표절률이 50%를 넘었고, 최대 표절률은 86%에 달했습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논문 상당수는 다른 사람의 연구물이나 인터넷 게시물을 인용하면서도 출처 표기를 누락했습니다. 일부는 다른 저자의 연구물을 인용하면서 '인용 표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청 감사 결과입니다.

■ "그럼에도 성과 점수·격려금 챙겨"

감사 결과 '논문 부실 작성' 의혹을 받는 교수는 총 7명. 그런데 이들 모두 인재개발원으로부터 '연구성과 격려금'을 받았습니다. 격려금 평균 액수는 30만 원. 표절률 25% 이상인 논문이 '성과'로 인정된 겁니다.

"1차적으로 소속 교육센터장의 결재를 받도록 하고, 2차적으로 교수평가위원회를 개최하여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락) 그대로 실적을 인정하여 연구성과격려금을 지급하고 있었고..."
- 경찰인재개발원 종합감사 결과보고서 中

경찰청은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인재개발원의 논문 심사 절차가 부실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논문이 부실하게 작성됐는데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고, 그 실적을 인정해 연구성과격려금까지 줬다고 꼬집었습니다.

의혹이 제기된 논문을 재심의하고, 부적절한 연구실적으로 확인될 경우 격려금을 환수하라고 권고했습니다.

■ "경찰공무원…연구윤리 더 엄격해야"

이에 따라 오는 25일, 인재개발원은 표절 여부 심사를 위한 '외부전문가 검증위원회'를 개최합니다. 의혹 당사자인 교수들도 각자 소명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유사한 논문으로 격려금을 두 번 지급받은 A 교수는 "2020년 제출한 논문은 연구실적으로는 인정받았지만, 외부 전문가 심사위원회에서 미비점을 지적받아 논문집에 게재되지 못했다"며 "2021년에는 지적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다시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2020년 논문과 2021년 논문을 중복 제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청 역시 "감사에서 지적됐다는 사실이 곧 논문 표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표절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논문들을 대상으로 면밀히 표절 여부를 심의하라는 것이 감사 보고서의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표절률이 높게 나온 것만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우택 의원은 "고도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갖춰야 할 경찰공무원의 논문이기에 표절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와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논문심사 기준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연구윤리를 준수하는 가운데 논문이 작성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과 모니터링 절차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 제작: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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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 표절률 86%…그런데 ‘격려금’이 나왔다
    • 입력 2022-10-21 07:00:11
    취재K

두 개의 논문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실까요. 제목부터 표지, 내용, 참고문헌까지... 비슷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마치 '데칼코마니' 같기도 한데요.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표절한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 두 논문, 저자가 같습니다.


똑같아 보이는 두 논문의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논문이 제출된 '연도' 입니다. 경찰인재개발원 소속 A 교수는 두 논문을 각각 2020년과 2021년에 '인재개발원 내부 논문'으로 제출했습니다.

한 번 제출한 논문을 '일부' 수정해 이듬해 다시 제출한 건데요. 학술지 투고의 경우, 이렇게 거의 같은 논문을 각각 투고할 경우 학계에서는 '자기 표절' 내지는 '중복 게재'로 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A 교수는 두 논문으로 2년 연속 '연구실적 점수'와 '격려금'까지 챙겼습니다.

"A 교수요원은 2020년도에 내부 논문을 작성·제출하여…(중략), 2021년도에 동일한 논문을 극히 일부만 수정한 뒤 다시 제출하여 동일하게 연구실적점수와 연구성과격려금을 확보했다."
- 경찰인재개발원 종합감사 결과보고서 中

"내부논문 43%, 표절률 25% 이상"

경찰인재개발원 교수요원들의 '연구논문 부실 작성' 의혹, 경찰청 종합감사로 드러났습니다.

표절 심의 프로그램 '카피킬러' 검사 결과, 2020년과 2021년 제출된 '내부 논문' 46건 중 17건이 표절률 25%를 넘겼습니다. 이 중 6건은 표절률이 50%를 넘었고, 최대 표절률은 86%에 달했습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논문 상당수는 다른 사람의 연구물이나 인터넷 게시물을 인용하면서도 출처 표기를 누락했습니다. 일부는 다른 저자의 연구물을 인용하면서 '인용 표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청 감사 결과입니다.

■ "그럼에도 성과 점수·격려금 챙겨"

감사 결과 '논문 부실 작성' 의혹을 받는 교수는 총 7명. 그런데 이들 모두 인재개발원으로부터 '연구성과 격려금'을 받았습니다. 격려금 평균 액수는 30만 원. 표절률 25% 이상인 논문이 '성과'로 인정된 겁니다.

"1차적으로 소속 교육센터장의 결재를 받도록 하고, 2차적으로 교수평가위원회를 개최하여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락) 그대로 실적을 인정하여 연구성과격려금을 지급하고 있었고..."
- 경찰인재개발원 종합감사 결과보고서 中

경찰청은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인재개발원의 논문 심사 절차가 부실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논문이 부실하게 작성됐는데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고, 그 실적을 인정해 연구성과격려금까지 줬다고 꼬집었습니다.

의혹이 제기된 논문을 재심의하고, 부적절한 연구실적으로 확인될 경우 격려금을 환수하라고 권고했습니다.

■ "경찰공무원…연구윤리 더 엄격해야"

이에 따라 오는 25일, 인재개발원은 표절 여부 심사를 위한 '외부전문가 검증위원회'를 개최합니다. 의혹 당사자인 교수들도 각자 소명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유사한 논문으로 격려금을 두 번 지급받은 A 교수는 "2020년 제출한 논문은 연구실적으로는 인정받았지만, 외부 전문가 심사위원회에서 미비점을 지적받아 논문집에 게재되지 못했다"며 "2021년에는 지적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다시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2020년 논문과 2021년 논문을 중복 제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청 역시 "감사에서 지적됐다는 사실이 곧 논문 표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표절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논문들을 대상으로 면밀히 표절 여부를 심의하라는 것이 감사 보고서의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표절률이 높게 나온 것만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우택 의원은 "고도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갖춰야 할 경찰공무원의 논문이기에 표절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와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논문심사 기준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연구윤리를 준수하는 가운데 논문이 작성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과 모니터링 절차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 제작: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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