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 이란 핵협상·사우디의 ‘반란’…심상치 않은 중동

입력 2022.10.21 (08:00) 수정 2022.10.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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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AF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두 여성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 이들의 뒤에 있는 벽에는 ‘슬픈 이들에게 포옹을’이라는 내용의 페르시아어 문구가 적혀있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풍속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22세)가 체포 사흘만인 지난달 16일 사망했다고 발표된 이후 이란에서는 줄곧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테헤란 AF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두 여성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 이들의 뒤에 있는 벽에는 ‘슬픈 이들에게 포옹을’이라는 내용의 페르시아어 문구가 적혀있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풍속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22세)가 체포 사흘만인 지난달 16일 사망했다고 발표된 이후 이란에서는 줄곧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 '히잡 시위' 격화·핵 협상 '교착'…혼돈의 이란

이란에서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시위가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13일,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다 의문사한 사건입니다. 반정부 시위로 번져, 이란 전역에서 한 달 넘게 시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란 당국은 강경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체포 8천여 명, 사망 240여 명. 인명 피해가 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위 진압은 이란 경찰과 민병대인 바시즈가 맡아왔습니다. 이젠 주요 도시에 혁명수비대 병력이 배치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옵니다. 뉴욕타임즈는 "혁명수비대는 전시 특수작전, 고위인사 경호 등 특수임무를 맡는 최정예부대"라며 "그만큼 이란 정권이 현 사태에 큰 위험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도했습니다.

'히잡'은 촉매제였을 뿐, 시위 확산의 근본 원인으로 '경제난'이 꼽힙니다.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는 3년 뒤 트럼프 대통령의 '파기' 선언으로 깨졌고, 경제 제재가 복원됐습니다. 시민들은 생활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미국과 핵합의 복원 협상이 진행중이지만, 향방은 예측불허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유럽이 협상 타결을 위해 적극 나섰습니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가 바로 이란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최종문안'을 직접 만들어 이란과 미국 양측에 전달할 정도로 열심이었고, '타결 임박' 기사까지 나올 만큼 희망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우크라이나 전쟁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란이 러시아에 미사일과 드론 등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정황이 계속 나왔기 때문입니다. 외신들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이란제 자폭 드론 '샤헤드-136'이 포착됐고, 이란이 드론 조종법을 가르치기 위해 러시아에 교관을 파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이같은 무기 거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은 제재 완화는 커녕 추가 제재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핵합의 복원 협상도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질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이란의 '혼돈'이 장기화되면, 중동 전체 정세가 영향받을 수 있습니다.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파 벨트'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독보적이기 때문입니다.

■'친미'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란'

중동에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사우디아라비아가 꼽힙니다. 하지만 최근 사우디는 미국 행보에 번번이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3일 트위터에서 사우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우디계 미국인 사드 이브라힘 알마디(72)에게 징역 16년, 해외여행 금지 16년을 선고했습니다. 알마디는 지난해 11월 가족 방문차 사우디를 찾았다가 공항에서 체포됐습니다. 7년여 간 미국에서 올린 트위터 게시글 14개를 문제삼았습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동맹국이 미국 시민을 억류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5일에는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들 간 협의체인 OPEC+가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미국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OPEC+에서 영향력이 큰 사우디에 감산 결정을 미뤄달라고 부탁했지만 들어주지 않은 겁니다. 미국은 발끈했고, 사우디와 관계 재설정을 검토하겠단 뜻을 비치기도 했습니다.

16~17일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모로코, 오만, 이집트 등이 OPEC+의 감산 결정을 지지하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습니다. 감산 결정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내린 것으로, 정치적 고려와는 관계 없고, 회원국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이 성명 역시 사우디의 압박때문에 발표된 걸로 보고 있습니다.

중동 내 친미국가들 사이에서 미국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로, 국립외교원 아중동연구부장인 인남식 교수는 "미국이 셰일혁명으로 석유 공급체계를 교란시켰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워 반정부 세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데다, 이란과 핵 협상을 재가동하며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는 불만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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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2-10-21 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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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AF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두 여성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 이들의 뒤에 있는 벽에는 ‘슬픈 이들에게 포옹을’이라는 내용의 페르시아어 문구가 적혀있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풍속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22세)가 체포 사흘만인 지난달 16일 사망했다고 발표된 이후 이란에서는 줄곧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 '히잡 시위' 격화·핵 협상 '교착'…혼돈의 이란

이란에서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시위가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13일,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다 의문사한 사건입니다. 반정부 시위로 번져, 이란 전역에서 한 달 넘게 시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란 당국은 강경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체포 8천여 명, 사망 240여 명. 인명 피해가 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위 진압은 이란 경찰과 민병대인 바시즈가 맡아왔습니다. 이젠 주요 도시에 혁명수비대 병력이 배치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옵니다. 뉴욕타임즈는 "혁명수비대는 전시 특수작전, 고위인사 경호 등 특수임무를 맡는 최정예부대"라며 "그만큼 이란 정권이 현 사태에 큰 위험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도했습니다.

'히잡'은 촉매제였을 뿐, 시위 확산의 근본 원인으로 '경제난'이 꼽힙니다.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는 3년 뒤 트럼프 대통령의 '파기' 선언으로 깨졌고, 경제 제재가 복원됐습니다. 시민들은 생활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미국과 핵합의 복원 협상이 진행중이지만, 향방은 예측불허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유럽이 협상 타결을 위해 적극 나섰습니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가 바로 이란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최종문안'을 직접 만들어 이란과 미국 양측에 전달할 정도로 열심이었고, '타결 임박' 기사까지 나올 만큼 희망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우크라이나 전쟁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란이 러시아에 미사일과 드론 등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정황이 계속 나왔기 때문입니다. 외신들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이란제 자폭 드론 '샤헤드-136'이 포착됐고, 이란이 드론 조종법을 가르치기 위해 러시아에 교관을 파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이같은 무기 거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은 제재 완화는 커녕 추가 제재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핵합의 복원 협상도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질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이란의 '혼돈'이 장기화되면, 중동 전체 정세가 영향받을 수 있습니다.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파 벨트'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독보적이기 때문입니다.

■'친미'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란'

중동에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사우디아라비아가 꼽힙니다. 하지만 최근 사우디는 미국 행보에 번번이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3일 트위터에서 사우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우디계 미국인 사드 이브라힘 알마디(72)에게 징역 16년, 해외여행 금지 16년을 선고했습니다. 알마디는 지난해 11월 가족 방문차 사우디를 찾았다가 공항에서 체포됐습니다. 7년여 간 미국에서 올린 트위터 게시글 14개를 문제삼았습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동맹국이 미국 시민을 억류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보도했습니다.

5일에는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들 간 협의체인 OPEC+가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미국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OPEC+에서 영향력이 큰 사우디에 감산 결정을 미뤄달라고 부탁했지만 들어주지 않은 겁니다. 미국은 발끈했고, 사우디와 관계 재설정을 검토하겠단 뜻을 비치기도 했습니다.

16~17일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모로코, 오만, 이집트 등이 OPEC+의 감산 결정을 지지하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습니다. 감산 결정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내린 것으로, 정치적 고려와는 관계 없고, 회원국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이 성명 역시 사우디의 압박때문에 발표된 걸로 보고 있습니다.

중동 내 친미국가들 사이에서 미국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로, 국립외교원 아중동연구부장인 인남식 교수는 "미국이 셰일혁명으로 석유 공급체계를 교란시켰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워 반정부 세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데다, 이란과 핵 협상을 재가동하며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는 불만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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