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인지 발렛기사인지”…경비원법 1년, 변화는 더디다

입력 2022.10.21 (21:51) 수정 2022.10.2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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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故 최희석/아파트 경비원/2020년 : "맞아본 것 생전 처음입니다. 막냇동생 같은 사람이 협박하고 때리고 감금시켜 놓고. 강력히 처벌해주세요. 저같이 억울하게 당하다가 죽는 사람이 없이."]

2년 전, 입주민의 갑질과 폭행을 견디다 숨진 故 최희석 씨 목소리입니다.

그 뒤 대책 논의가 시작됐고, 이른바 '경비원 갑질방지법'이 시행됐습니다.

오늘(21일)로 꼭 1년입니다.

본래 업무 말고 대리 주차나 택배 배달 같은 잡무를 시키면 안 되고, 어기면 과태료가 최대 천 만 원입니다.

그 사이 갑질 피해를 신고하고 나선 경비원들도 두 배정도 늘었는데 실제 과태료 처분까지 이어진 사례는 찾기 힘듭니다.

신고는 했는데 처벌은 없는 법,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황다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주차난이 심한 서울 강남의 아파트, 출근 시간대 주차면 앞뒤로, 2중·3중 평행 주차된 차들이 빼곡합니다.

한 대가 나가려면, 많게는 서너 대까지 옮겨야 하는 상황.

그 일은 곧, 경비원들 몫입니다.

이렇게 하루 평균 서른 대 가량을 대신 운전해야 하고, 귀가하는 입주민이 요구할 땐 '대리 주차'까지 해줘야 합니다.

[관리원 A 씨/음성변조 : "준발렛이라 봐야죠. 준발렛. 자리가 있으면 넣으시는 분도 있고, 안 넣으시는 분도 있고."]

'경비원 갑질 방지법'에 따르면 모두 금지된 일, 그런데 왜 버젓이 계속되고 있을까?

[관리원 B 씨/음성변조 : "(경비원 신분이 아니라) '관리원'으로 돼 있거든요. '경비원'은 (주차 업무) 못 하게 돼 있어가지고, 좀 변칙으로 해서 '관리원'..."]

경비원에서 관리원으로 법적 신분을 바꾸는, '우회' 방식을 이용한 겁니다.

'관리원'은 일반 근로자라 업무 제약이 없고, 아파트 측은 이걸 근거로 주차 등의 업무를 시킵니다.

대신 일반 근로자라면 '주 52시간제'가 적용되고 의무 휴식도 제공해야 하는데, 그건 또, 보장이 안 됩니다.

[관리원 C 씨/음성변조 : "출퇴근 시간 제일 바쁜데, 여기 같이 있으면서 휴게시간이라고 못합니다, 그럴 수 있겠어요?"]

막말과 욕설은 좀 사라졌을까?

[아파트 입주민/음성변조 : "당신 뭐하는 거야 누구 월급 받아, 내 월급 받아 안 받아, 내가 ×× 갑질하는 거야? ×××가 이거 진짜 나이 처먹고...니가 경비로서 그러면 뭘 한 게 있어?"]

두 달 전 녹음된 이 대화는 경비원을 향한 폭언이었습니다.

비슷한 경험담을 여전히 곳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피해 경비원 D 씨/음성변조 : "저는 그냥 죄인 같이 말만 듣고, 이 사람(술 취한 입주민)은 갑질하는 식으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현행법은 이런 경우 사업주가 보호 조치를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에 말해봐도 소용없다고 합니다.

[피해 경비원 D 씨/음성변조 : "빨리 합의를 하라는 등, 동대표 회장 한테도 문자 보내고 소장한테도 문자 보내...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도저히 있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단기고용' 신분인 경비원들에겐 신고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비원 E 씨/음성변조 : "(갑질당해도) 신고를 못하죠. 바로 쫓겨나는데요. 단기계약을 해가지고 석달이면 계약 안 하려고 하는데."]

변화가 없는 건 아닙니다.

언론 보도 이후 지자체와 주민들의 노력으로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경비실의 에어컨 사용량을 통제하려다 구설에 올랐던 이 아파트는, 1년 새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박구순/서울 노원구 아파트 경비원 : "(올해는) 아끼지 말고 충분히 쓰라 그랬어. 내가 저기 있을 때는 많이 쓰면 막 뭐라 그러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는 입주민들도 늘고 있습니다.

[관리원 F 씨/음성변조 : "주민들이 성금을 또 한 초소에 갖다 놓고... 대다수는 좋아요."]

결국은 '나와 같은 이웃'으로 바라보려는 입주민들이 의식 변화가, '제도'보다 중요한 해법일지 모릅니다.

KBS 뉴스 황다예입니다.

촬영기자:황종원/영상편집:신남규/그래픽:김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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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비원인지 발렛기사인지”…경비원법 1년, 변화는 더디다
    • 입력 2022-10-21 21:51:35
    • 수정2022-10-21 22: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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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故 최희석/아파트 경비원/2020년 : "맞아본 것 생전 처음입니다. 막냇동생 같은 사람이 협박하고 때리고 감금시켜 놓고. 강력히 처벌해주세요. 저같이 억울하게 당하다가 죽는 사람이 없이."]

2년 전, 입주민의 갑질과 폭행을 견디다 숨진 故 최희석 씨 목소리입니다.

그 뒤 대책 논의가 시작됐고, 이른바 '경비원 갑질방지법'이 시행됐습니다.

오늘(21일)로 꼭 1년입니다.

본래 업무 말고 대리 주차나 택배 배달 같은 잡무를 시키면 안 되고, 어기면 과태료가 최대 천 만 원입니다.

그 사이 갑질 피해를 신고하고 나선 경비원들도 두 배정도 늘었는데 실제 과태료 처분까지 이어진 사례는 찾기 힘듭니다.

신고는 했는데 처벌은 없는 법,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황다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주차난이 심한 서울 강남의 아파트, 출근 시간대 주차면 앞뒤로, 2중·3중 평행 주차된 차들이 빼곡합니다.

한 대가 나가려면, 많게는 서너 대까지 옮겨야 하는 상황.

그 일은 곧, 경비원들 몫입니다.

이렇게 하루 평균 서른 대 가량을 대신 운전해야 하고, 귀가하는 입주민이 요구할 땐 '대리 주차'까지 해줘야 합니다.

[관리원 A 씨/음성변조 : "준발렛이라 봐야죠. 준발렛. 자리가 있으면 넣으시는 분도 있고, 안 넣으시는 분도 있고."]

'경비원 갑질 방지법'에 따르면 모두 금지된 일, 그런데 왜 버젓이 계속되고 있을까?

[관리원 B 씨/음성변조 : "(경비원 신분이 아니라) '관리원'으로 돼 있거든요. '경비원'은 (주차 업무) 못 하게 돼 있어가지고, 좀 변칙으로 해서 '관리원'..."]

경비원에서 관리원으로 법적 신분을 바꾸는, '우회' 방식을 이용한 겁니다.

'관리원'은 일반 근로자라 업무 제약이 없고, 아파트 측은 이걸 근거로 주차 등의 업무를 시킵니다.

대신 일반 근로자라면 '주 52시간제'가 적용되고 의무 휴식도 제공해야 하는데, 그건 또, 보장이 안 됩니다.

[관리원 C 씨/음성변조 : "출퇴근 시간 제일 바쁜데, 여기 같이 있으면서 휴게시간이라고 못합니다, 그럴 수 있겠어요?"]

막말과 욕설은 좀 사라졌을까?

[아파트 입주민/음성변조 : "당신 뭐하는 거야 누구 월급 받아, 내 월급 받아 안 받아, 내가 ×× 갑질하는 거야? ×××가 이거 진짜 나이 처먹고...니가 경비로서 그러면 뭘 한 게 있어?"]

두 달 전 녹음된 이 대화는 경비원을 향한 폭언이었습니다.

비슷한 경험담을 여전히 곳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피해 경비원 D 씨/음성변조 : "저는 그냥 죄인 같이 말만 듣고, 이 사람(술 취한 입주민)은 갑질하는 식으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현행법은 이런 경우 사업주가 보호 조치를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에 말해봐도 소용없다고 합니다.

[피해 경비원 D 씨/음성변조 : "빨리 합의를 하라는 등, 동대표 회장 한테도 문자 보내고 소장한테도 문자 보내...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도저히 있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단기고용' 신분인 경비원들에겐 신고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비원 E 씨/음성변조 : "(갑질당해도) 신고를 못하죠. 바로 쫓겨나는데요. 단기계약을 해가지고 석달이면 계약 안 하려고 하는데."]

변화가 없는 건 아닙니다.

언론 보도 이후 지자체와 주민들의 노력으로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경비실의 에어컨 사용량을 통제하려다 구설에 올랐던 이 아파트는, 1년 새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박구순/서울 노원구 아파트 경비원 : "(올해는) 아끼지 말고 충분히 쓰라 그랬어. 내가 저기 있을 때는 많이 쓰면 막 뭐라 그러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는 입주민들도 늘고 있습니다.

[관리원 F 씨/음성변조 : "주민들이 성금을 또 한 초소에 갖다 놓고... 대다수는 좋아요."]

결국은 '나와 같은 이웃'으로 바라보려는 입주민들이 의식 변화가, '제도'보다 중요한 해법일지 모릅니다.

KBS 뉴스 황다예입니다.

촬영기자:황종원/영상편집:신남규/그래픽:김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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