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론은 정치 공방…비확산 규범 지켜야”

입력 2022.10.25 (10:01) 수정 2022.10.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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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12일 전술핵운용부대에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조선중앙통신)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12일 전술핵운용부대에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조선중앙통신)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맞서 한국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핵무장론'이 본격적으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급격히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고, 핵 선제 타격 조건을 아예 법으로 못 박으면서, 위협이 실제로 '체감'된다는 여론이 높아진 겁니다.

1991년 철수한 미군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의견부터, 이제는 한국도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집권 여당 정치인들도 공공연히 핵무장을 거론합니다. '눈에는 눈, 핵에는 핵'을 말하는 핵무장, 북핵 위협을 막을 효과적 대안일까요?

어제(24일) 국립외교원과 한국 핵정책학회 등이 공동 주최한 '글로벌 중추 국가를 위한 한국의 비확산·원자력 외교' 토론회에선, 현재의 핵무장 논의가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 공방에 가깝단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핵무장론, 정치 공방에 가까워…북한과 같은 나라 될 것"

토론자로 참여한 김영준 국방대학교 교수는 "현재의 핵무장론은 정쟁이 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협조 가능성을 제외한 채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같은 핵무장론은 미국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가능성이 없으며, 분노 표출식 논의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김 교수는 주한미군의 갑작스러운 감축 등 미국의 안보 공약이 흔들릴 경우를 대비해, 핵무장을 실현할 과학기술 능력과 유사시 이를 지지할 미국 내 지한파를 육성할 필요는 있다고 했습니다.

신동익 전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IAEA 대표 겸임)는 "핵무장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위험하고 단순한 생각"이라면서, 핵무장에는 거대한 손실이 따른다는 점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신 대사는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규범을 깨고 나간다면, 우리가 쌓아 올린 정당성과 신뢰성은 무너지고 우리가 설 땅은 사라진다"면서 "북한과 공히 똑같은 '불량 국가'로 낙인찍히고, 각종 제재로 인해 대규모 정치·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미국과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카이스트 핵 비확산교육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임만성 교수(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대한민국은 핵 위협 앞에 놓여 있는데도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동시에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원자력 기술을 가진 국가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면서 "이같은 강점을 살려 원자력 산업 활성화와 비확산을 동시에 잘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달 26일 미 핵추진 항공모함 레이건함이 한미 연합해상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지난달 26일 미 핵추진 항공모함 레이건함이 한미 연합해상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핵무장, 국익에 이득 안 돼…김정은에 타격 위치 알려주나"

외교부 2차관을 지낸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층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천 수석은 "남북한에 통일된 것이 하나 있다면 '핵무기 숭배 사상'"이라며,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현재의 핵무장론은 "득실을 분석한 합리적 토론이 아니고, 혹세무민이나 미신, 과대망상, 포퓰리즘"이라고 직격했습니다.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안에 핵무장이 가능하다'거나, 핵을 갖고 있어야 북한의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겁니다.

천 수석은 그러면서 "핵무장은 종합적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나라를 지킬 방법이 핵무장밖에 없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미국의 대북 억지력은 부족하지 않고, 한국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억지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서도 "눈에 보이는 핵만 믿고, 물속에 있는 핵(미국의 핵잠수함)은 안 믿는 인식이 문제"라며 "전술핵을 배치된 곳을 타격하라고 김정은에게 알려주는 셈인데, 이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국민 70%가 핵무장 찬성한다는데...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에서 핵무장 찬성 여론이 높은 이유가 단순히 북한의 위협 때문만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의 정기 조사에 따르면, 2022년 핵무장 찬성 여론은 70.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조사에선 왜 핵무장에 찬성하는지도 자세히 물었는데,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3명 중 1명 수준이었습니다. (32.1%)

동시에, 비슷한 수의 응답자가 '핵 주권을 확보해야 해서'(33.7%), '핵무장을 하면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높아져서'(33.4%)라는 이유로 핵무장에 찬성했습니다.

전 교수는 "'핵은 주권'이라는 생각은 60~70년대 논리"라면서 "핵 비확산이 보편화 된 시대에는 적절하지 않은 인식인데도, 우리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간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현재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나 신규 원전 건설 부지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핵무장에 필요한 시설이나 전술핵을 수용할 장소를 찾는 것 역시 또 다른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거란 분석도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정치 공방에 가까운 핵무장론에 편승하기보다는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지키며 북한이 핵을 사용하기 어렵도록 일관된 외교적·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용섭 전 한국핵정책학회장은 핵보유국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도 밝혔습니다.

한 전 회장은 "미국은 한국이 비핵화 기조를 유지하는 대가로 확실하게 확장억제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중국은 북한과 파키스탄 등에 핵 개발을 지원하는 등 핵보유국의 책임을 하나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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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5 10:01:22
    • 수정2022-10-25 11:40:23
    취재K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12일 전술핵운용부대에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조선중앙통신)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맞서 한국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핵무장론'이 본격적으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급격히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고, 핵 선제 타격 조건을 아예 법으로 못 박으면서, 위협이 실제로 '체감'된다는 여론이 높아진 겁니다.

1991년 철수한 미군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의견부터, 이제는 한국도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집권 여당 정치인들도 공공연히 핵무장을 거론합니다. '눈에는 눈, 핵에는 핵'을 말하는 핵무장, 북핵 위협을 막을 효과적 대안일까요?

어제(24일) 국립외교원과 한국 핵정책학회 등이 공동 주최한 '글로벌 중추 국가를 위한 한국의 비확산·원자력 외교' 토론회에선, 현재의 핵무장 논의가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 공방에 가깝단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핵무장론, 정치 공방에 가까워…북한과 같은 나라 될 것"

토론자로 참여한 김영준 국방대학교 교수는 "현재의 핵무장론은 정쟁이 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협조 가능성을 제외한 채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같은 핵무장론은 미국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가능성이 없으며, 분노 표출식 논의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김 교수는 주한미군의 갑작스러운 감축 등 미국의 안보 공약이 흔들릴 경우를 대비해, 핵무장을 실현할 과학기술 능력과 유사시 이를 지지할 미국 내 지한파를 육성할 필요는 있다고 했습니다.

신동익 전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IAEA 대표 겸임)는 "핵무장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위험하고 단순한 생각"이라면서, 핵무장에는 거대한 손실이 따른다는 점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신 대사는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규범을 깨고 나간다면, 우리가 쌓아 올린 정당성과 신뢰성은 무너지고 우리가 설 땅은 사라진다"면서 "북한과 공히 똑같은 '불량 국가'로 낙인찍히고, 각종 제재로 인해 대규모 정치·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미국과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카이스트 핵 비확산교육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임만성 교수(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대한민국은 핵 위협 앞에 놓여 있는데도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동시에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원자력 기술을 가진 국가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면서 "이같은 강점을 살려 원자력 산업 활성화와 비확산을 동시에 잘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달 26일 미 핵추진 항공모함 레이건함이 한미 연합해상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핵무장, 국익에 이득 안 돼…김정은에 타격 위치 알려주나"

외교부 2차관을 지낸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층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천 수석은 "남북한에 통일된 것이 하나 있다면 '핵무기 숭배 사상'"이라며,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현재의 핵무장론은 "득실을 분석한 합리적 토론이 아니고, 혹세무민이나 미신, 과대망상, 포퓰리즘"이라고 직격했습니다.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안에 핵무장이 가능하다'거나, 핵을 갖고 있어야 북한의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겁니다.

천 수석은 그러면서 "핵무장은 종합적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나라를 지킬 방법이 핵무장밖에 없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미국의 대북 억지력은 부족하지 않고, 한국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억지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서도 "눈에 보이는 핵만 믿고, 물속에 있는 핵(미국의 핵잠수함)은 안 믿는 인식이 문제"라며 "전술핵을 배치된 곳을 타격하라고 김정은에게 알려주는 셈인데, 이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국민 70%가 핵무장 찬성한다는데...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에서 핵무장 찬성 여론이 높은 이유가 단순히 북한의 위협 때문만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의 정기 조사에 따르면, 2022년 핵무장 찬성 여론은 70.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조사에선 왜 핵무장에 찬성하는지도 자세히 물었는데,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3명 중 1명 수준이었습니다. (32.1%)

동시에, 비슷한 수의 응답자가 '핵 주권을 확보해야 해서'(33.7%), '핵무장을 하면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높아져서'(33.4%)라는 이유로 핵무장에 찬성했습니다.

전 교수는 "'핵은 주권'이라는 생각은 60~70년대 논리"라면서 "핵 비확산이 보편화 된 시대에는 적절하지 않은 인식인데도, 우리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간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현재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나 신규 원전 건설 부지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핵무장에 필요한 시설이나 전술핵을 수용할 장소를 찾는 것 역시 또 다른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거란 분석도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정치 공방에 가까운 핵무장론에 편승하기보다는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지키며 북한이 핵을 사용하기 어렵도록 일관된 외교적·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용섭 전 한국핵정책학회장은 핵보유국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도 밝혔습니다.

한 전 회장은 "미국은 한국이 비핵화 기조를 유지하는 대가로 확실하게 확장억제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중국은 북한과 파키스탄 등에 핵 개발을 지원하는 등 핵보유국의 책임을 하나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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