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뒤 현장에서 사라지는 운전자들…뭘 믿고?

입력 2022.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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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에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 미조치 현장 모습지난 21일에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 미조치 현장 모습

평일 대낮, 광주광역시청 앞 대로에서 외제 차 1대가 인도로 돌진했습니다. 차량은 인도 턱을 올라서 철제 울타리를 부딪친 뒤 멈춰 섰습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은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사고가 난 건, 지난 21일 낮 12시쯤입니다. 사고 직후 30대 운전자 A씨는 차를 버리고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운전자를 조사하기 위해 차량 번호판을 조회하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A씨의 휴대 전화는 꺼져 있었습니다.

사라진 A씨가 다시 나타난 시각은 다음 날 밤 10시, 사고 뒤 약 34시간 만입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고, 두려움에 현장을 벗어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1일에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 미조치 현장 모습지난 21일에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 미조치 현장 모습

광주에서는 앞서 지난 7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30대 남성 B씨가 몰던 차량이 앞서가던 차량을 들이받아 2명이 다치는 사고였습니다. B씨는 자신의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사고 발생 30시간 만에 나타났습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 운전자 B씨는 몇 달 전 음주 사고를 내고 재판 중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에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하면 이른바 '뺑소니'로 간주 됩니다. 도로교통법 제54조에는 "주행 중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는 경찰관에 교통사고 사실을 신고하고 피해자에게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알려줘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무거운 처벌이지만, 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교통사고 미조치 사례는 2019년부터 3년간 전국에서 2만 2천 39건을 기록할 정도로 꾸준하게 발생했습니다.

■ 잠적하는 운전자…빠른 검거는 어려운 상황

운전자의 교통사고 미조치 현장 이탈 시점은 대부분 사고 직후입니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해 차량 번호를 조회합니다. 차주에게 연락하거나 주거지에 찾아가 확인하지만, 사고를 낸 운전자는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차량을 운전했다면, 달아난 운전자를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체포하거나 통신이나 금융 기록을 확인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도 긴급 상황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경찰이 도주 운전자만 쫓아다닐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게, 현실적인 어려움입니다.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경찰은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지역경찰입니다. 지역경찰은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강력범죄와 각종 치안 민원까지 담당합니다.

■ 사고 미조치 악용하는 사례…법 적용과 처벌 강화 필요

전문가들은 사고 후 미조치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고 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현장을 이탈하지 않는다"며, "도주 운전자들은 무면허나 음주운전 등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차를 버리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술을 마시고 사고를 낸 뒤 달아났다면, 이른바 '음주운전 뺑소니'로 특정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강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 경우를 피하려고 음주 운전 사고를 낸 운전자가 몸에 알코올 성분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벌기 위해 잠적한다는 겁니다. 긴 시간 잠적했다가 나오면 음주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점이 나오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음주 대사체'를 활용한 감정 방법을 개발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혈액에서 음주 대사체를 채취해 72시간 동안 술을 마셨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경찰도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경찰은 음주측정기처럼 구체적인 알코올 농도 수치는 나오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김정규 교수는 "관련 수사 결과와 판례들이 범죄자들 사이에서 정보교류가 된다"며, "차를 버리고 달아난 게 오히려 낫다는 정보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적극적인 법 적용과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또 "무게가 2톤가량 되는 승용차가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충돌하는 것은 '미사일'과 다름없다"며, "교통 범죄가 가진 잠재적인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강력범죄처럼 다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고 후 미조치는 교통 체증과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범죄인 만큼, 강력한 법 적용과 처벌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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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사고 뒤 현장에서 사라지는 운전자들…뭘 믿고?
    • 입력 2022-10-26 07:00:15
    취재K
지난 21일에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 미조치 현장 모습
평일 대낮, 광주광역시청 앞 대로에서 외제 차 1대가 인도로 돌진했습니다. 차량은 인도 턱을 올라서 철제 울타리를 부딪친 뒤 멈춰 섰습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은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사고가 난 건, 지난 21일 낮 12시쯤입니다. 사고 직후 30대 운전자 A씨는 차를 버리고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운전자를 조사하기 위해 차량 번호판을 조회하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A씨의 휴대 전화는 꺼져 있었습니다.

사라진 A씨가 다시 나타난 시각은 다음 날 밤 10시, 사고 뒤 약 34시간 만입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고, 두려움에 현장을 벗어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1일에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했던 교통사고 후 미조치 현장 모습
광주에서는 앞서 지난 7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30대 남성 B씨가 몰던 차량이 앞서가던 차량을 들이받아 2명이 다치는 사고였습니다. B씨는 자신의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사고 발생 30시간 만에 나타났습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 운전자 B씨는 몇 달 전 음주 사고를 내고 재판 중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에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하면 이른바 '뺑소니'로 간주 됩니다. 도로교통법 제54조에는 "주행 중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는 경찰관에 교통사고 사실을 신고하고 피해자에게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알려줘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무거운 처벌이지만, 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교통사고 미조치 사례는 2019년부터 3년간 전국에서 2만 2천 39건을 기록할 정도로 꾸준하게 발생했습니다.

■ 잠적하는 운전자…빠른 검거는 어려운 상황

운전자의 교통사고 미조치 현장 이탈 시점은 대부분 사고 직후입니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해 차량 번호를 조회합니다. 차주에게 연락하거나 주거지에 찾아가 확인하지만, 사고를 낸 운전자는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차량을 운전했다면, 달아난 운전자를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체포하거나 통신이나 금융 기록을 확인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도 긴급 상황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경찰이 도주 운전자만 쫓아다닐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게, 현실적인 어려움입니다.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경찰은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지역경찰입니다. 지역경찰은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강력범죄와 각종 치안 민원까지 담당합니다.

■ 사고 미조치 악용하는 사례…법 적용과 처벌 강화 필요

전문가들은 사고 후 미조치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고 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현장을 이탈하지 않는다"며, "도주 운전자들은 무면허나 음주운전 등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차를 버리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술을 마시고 사고를 낸 뒤 달아났다면, 이른바 '음주운전 뺑소니'로 특정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강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 경우를 피하려고 음주 운전 사고를 낸 운전자가 몸에 알코올 성분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벌기 위해 잠적한다는 겁니다. 긴 시간 잠적했다가 나오면 음주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점이 나오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음주 대사체'를 활용한 감정 방법을 개발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혈액에서 음주 대사체를 채취해 72시간 동안 술을 마셨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경찰도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경찰은 음주측정기처럼 구체적인 알코올 농도 수치는 나오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김정규 교수는 "관련 수사 결과와 판례들이 범죄자들 사이에서 정보교류가 된다"며, "차를 버리고 달아난 게 오히려 낫다는 정보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적극적인 법 적용과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또 "무게가 2톤가량 되는 승용차가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충돌하는 것은 '미사일'과 다름없다"며, "교통 범죄가 가진 잠재적인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강력범죄처럼 다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고 후 미조치는 교통 체증과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범죄인 만큼, 강력한 법 적용과 처벌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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