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강진희, 우국지사 이상재 그리고 매국노 이완용

입력 2022.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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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분별도〉, 청운 강진희, 1888, 종이에 수묵, 28cmx34cm, 간송미술관 ⓒ간송미술문화재단〈화차분별도〉, 청운 강진희, 1888, 종이에 수묵, 28cmx34cm, 간송미술관 ⓒ간송미술문화재단

■조선 화가가 그린 최초의 미국 풍경화

기차 두 대가 나란히 연기를 내뿜으며 선로를 달립니다. 아래 왼쪽엔 교회 건물이 우뚝 솟아 있죠. 처음 미국 땅을 밟은 화가의 눈에 가장 충격적이고도 인상적이었을 두 장면을 한 화면에 그린 게 아니었을까. 서양 종이에 먹으로 그린 이 특별한 풍경화의 제목은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해석하자면 '기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 입니다.

청운 강진희(菁雲 姜璡熙, 1851~1919)는 구한말의 서화가이자 전각가였습니다. 강진희가 미국 풍경화를 그릴 수 있었던 건 1887년 6월 박정양이 초대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돼 미국 워싱턴으로 부임해 갈 때 수행원, 즉 박정양의 수행비서로 함께 미국에 다녀온 덕분입니다.

강진희는 미국에서 한 청나라 사람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 인연을 기념하는 의미로 둘의 그림을 한 데 묶은 화첩을 꾸몄죠.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미사묵연-화초청운잡화합벽(美槎墨緣-華初菁雲襍畵合璧)』입니다. 위에 소개한 <화차분별도>가 바로 이 화첩에 들어 있는데, 화첩 첫 장에 '1888년 워싱턴 주미 조선공관에서 그렸다'고 적혀 있어서 그림을 그린 시기와 장소가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 1888년, 28.2×41.5cm, 연세대학교 동은의학박물관. KBS 뉴스화면 캡처.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 1888년, 28.2×41.5cm, 연세대학교 동은의학박물관. KBS 뉴스화면 캡처.

■강진희와 이상재의 끈끈한 인연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을 촬영한 이 사진에서 뒷줄 가운데 키가 가장 크고 훤칠한 인물이 바로 강진희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앞줄 가장 왼쪽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인물. 훗날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나게 될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1850~1927) 선생입니다. 이상재는 당시 3등 서기관으로 미국 출장길에 동행합니다.

1887년 미국에 갈 당시 우리 나이로 강진희가 서른일곱, 이상재가 서른여덟로 둘이 한 살 터울이기도 했죠. 첫 미국 공사관원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머나먼 미국 출장길에 함께했으니 둘의 관계는 틀림없이 각별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그림을 최근 미술사 연구가 황정수 씨가 발굴해 KBS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습니다.

[다시보기] [단독]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에게 그려준 ‘병풍 그림’ 무더기 발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4989

KBS가 병풍 형태로 꾸며본 강진희의 그림 7점KBS가 병풍 형태로 꾸며본 강진희의 그림 7점

새로 발굴된 자료는 강진희의 그림 7점과 글씨 2점 등 모두 9점입니다. 크기로 보아 병풍용으로 추정해볼 수 있어서, 취재 과정에서 글씨를 뺀 그림 7점을 위 사진처럼 만들어 봤습니다. 이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괴석(怪石,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돌) 그림에 적힌 글씨가 이 사료의 가치를 더없이 높여줍니다.


순서대로 읽어봅니다. 월남(月南)은 영락없이 이상재 선생의 호(號)입니다. 강진희와 같은 시대에 살며 인연을 맺은 사람 중에 같은 호를 사용한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그다음 두 글자는 더더욱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승선(承宣)은 조선 시대에 승정원(承政院) 승지(承旨)를 가리키는 별칭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상재 선생이 1894년 승정원 우부승지에 임명됐으므로, 월남이 이상재 선생이라는 건 명명백백합니다.

그다음 대인(大人)은 상대를 높여 존중하는 표현이고, 훈상(勛賞)은 바친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그림은 강진희가 이상재에게 그려준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듯 정성껏 그림을 그려 선물했을 정도니 두 사람의 인연이 끈끈했음을 이토록 확실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또 있을까요.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완용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완용

■초대 주미공사일행 사진에 등장하는 문제적 인물

다시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을 찍은 사진을 보면, 이상재 선생 바로 옆에 '문제적 인물'이 앉아 있습니다. 훗날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李完用, 1858~1926)입니다. 이완용은 이상재보다 나이가 몇 살 어렸지만, 당시 1등 서기관으로 현재의 참사관급에 해당하는 실무 총책임자였습니다. 심지어 이완용은 나중에 주미대리공사로 1889년 6월부터 1890년 9월까지 미국에 다시 갔고,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후에도 관료로 승승장구합니다.

열강의 간섭과 압력 속에서 서양국가로는 처음으로 조약을 맺은 미국에 외교관을 보내 조선이 자주국임을 알리고자 했던 조선. 그 역사적 임무를 띤 공사 일행에 함께한 이상재와 이완용. 훗날 항일과 친일로, 애국과 매국으로 갈리게 될 운명을 그들은 과연 짐작이나 했을까요. 이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상재가 미국 출장길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미국서간〉이상재가 미국 출장길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미국서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되는 <갓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갔던 이야기)> 전은 박정양이 초대 주미전권공사로 파견된 바로 그 시기를 다양한 기록과 유물로 보여줍니다. 강진희의 그림 <화차분별도>는 물론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을 찍은 사진, 올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이상재의 기록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 정보
제목: 갓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갔던 이야기)
기간: 2022년 12월 13일(화)까지
장소: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전시품: 회화, 사진, 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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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 강진희, 우국지사 이상재 그리고 매국노 이완용
    • 입력 2022-10-27 06:00:18
    취재K
〈화차분별도〉, 청운 강진희, 1888, 종이에 수묵, 28cmx34cm, 간송미술관 ⓒ간송미술문화재단
■조선 화가가 그린 최초의 미국 풍경화

기차 두 대가 나란히 연기를 내뿜으며 선로를 달립니다. 아래 왼쪽엔 교회 건물이 우뚝 솟아 있죠. 처음 미국 땅을 밟은 화가의 눈에 가장 충격적이고도 인상적이었을 두 장면을 한 화면에 그린 게 아니었을까. 서양 종이에 먹으로 그린 이 특별한 풍경화의 제목은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해석하자면 '기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 입니다.

청운 강진희(菁雲 姜璡熙, 1851~1919)는 구한말의 서화가이자 전각가였습니다. 강진희가 미국 풍경화를 그릴 수 있었던 건 1887년 6월 박정양이 초대 주미 전권공사로 임명돼 미국 워싱턴으로 부임해 갈 때 수행원, 즉 박정양의 수행비서로 함께 미국에 다녀온 덕분입니다.

강진희는 미국에서 한 청나라 사람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 인연을 기념하는 의미로 둘의 그림을 한 데 묶은 화첩을 꾸몄죠.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미사묵연-화초청운잡화합벽(美槎墨緣-華初菁雲襍畵合璧)』입니다. 위에 소개한 <화차분별도>가 바로 이 화첩에 들어 있는데, 화첩 첫 장에 '1888년 워싱턴 주미 조선공관에서 그렸다'고 적혀 있어서 그림을 그린 시기와 장소가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 1888년, 28.2×41.5cm, 연세대학교 동은의학박물관. KBS 뉴스화면 캡처.
■강진희와 이상재의 끈끈한 인연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을 촬영한 이 사진에서 뒷줄 가운데 키가 가장 크고 훤칠한 인물이 바로 강진희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앞줄 가장 왼쪽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인물. 훗날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나게 될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1850~1927) 선생입니다. 이상재는 당시 3등 서기관으로 미국 출장길에 동행합니다.

1887년 미국에 갈 당시 우리 나이로 강진희가 서른일곱, 이상재가 서른여덟로 둘이 한 살 터울이기도 했죠. 첫 미국 공사관원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머나먼 미국 출장길에 함께했으니 둘의 관계는 틀림없이 각별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그림을 최근 미술사 연구가 황정수 씨가 발굴해 KBS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습니다.

[다시보기] [단독]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에게 그려준 ‘병풍 그림’ 무더기 발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4989

KBS가 병풍 형태로 꾸며본 강진희의 그림 7점
새로 발굴된 자료는 강진희의 그림 7점과 글씨 2점 등 모두 9점입니다. 크기로 보아 병풍용으로 추정해볼 수 있어서, 취재 과정에서 글씨를 뺀 그림 7점을 위 사진처럼 만들어 봤습니다. 이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괴석(怪石,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돌) 그림에 적힌 글씨가 이 사료의 가치를 더없이 높여줍니다.


순서대로 읽어봅니다. 월남(月南)은 영락없이 이상재 선생의 호(號)입니다. 강진희와 같은 시대에 살며 인연을 맺은 사람 중에 같은 호를 사용한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그다음 두 글자는 더더욱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승선(承宣)은 조선 시대에 승정원(承政院) 승지(承旨)를 가리키는 별칭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상재 선생이 1894년 승정원 우부승지에 임명됐으므로, 월남이 이상재 선생이라는 건 명명백백합니다.

그다음 대인(大人)은 상대를 높여 존중하는 표현이고, 훈상(勛賞)은 바친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그림은 강진희가 이상재에게 그려준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듯 정성껏 그림을 그려 선물했을 정도니 두 사람의 인연이 끈끈했음을 이토록 확실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또 있을까요.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완용
■초대 주미공사일행 사진에 등장하는 문제적 인물

다시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을 찍은 사진을 보면, 이상재 선생 바로 옆에 '문제적 인물'이 앉아 있습니다. 훗날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李完用, 1858~1926)입니다. 이완용은 이상재보다 나이가 몇 살 어렸지만, 당시 1등 서기관으로 현재의 참사관급에 해당하는 실무 총책임자였습니다. 심지어 이완용은 나중에 주미대리공사로 1889년 6월부터 1890년 9월까지 미국에 다시 갔고,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후에도 관료로 승승장구합니다.

열강의 간섭과 압력 속에서 서양국가로는 처음으로 조약을 맺은 미국에 외교관을 보내 조선이 자주국임을 알리고자 했던 조선. 그 역사적 임무를 띤 공사 일행에 함께한 이상재와 이완용. 훗날 항일과 친일로, 애국과 매국으로 갈리게 될 운명을 그들은 과연 짐작이나 했을까요. 이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상재가 미국 출장길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미국서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되는 <갓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갔던 이야기)> 전은 박정양이 초대 주미전권공사로 파견된 바로 그 시기를 다양한 기록과 유물로 보여줍니다. 강진희의 그림 <화차분별도>는 물론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을 찍은 사진, 올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이상재의 기록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 정보
제목: 갓쓰고 米國에 公使 갓든 이약이(갓 쓰고 미국에 공사 갔던 이야기)
기간: 2022년 12월 13일(화)까지
장소: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전시품: 회화, 사진, 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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