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동물병원 ‘펜타닐’ 처방 증가가 마약 오·남용과 관계있다?

입력 2022.10.27 (07:00) 수정 2022.10.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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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 처방 급증"
-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마약류 취급자 중 수의사에 대한 최근 6년간 행정처분 건수 현격히 증가"
-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현영·인재근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 주요 내용입니다. 최근 동물병원에서 처방하는 '펜타닐 패치'가 눈에 띄게 증가해 오·남용의 가능성이 크고 더러는 마약처럼 쓰일 수도 있다며 정부에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펜타닐은 말기 암 등으로 고통이 극심한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통제입니다. 헤로인보다 중독성이 100배나 강해 의료기관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처방해야 합니다.

두 의원이 이런 자료를 낸 이유는 최근 수년간 젊은 층 사이에서 펜타닐이 '대체 마약'으로 남용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일반 병·의원에서 펜타닐을 구해 투약한 마약 사범은 2019년 2명에서 2020년에는 49명, 2021년에는 42명으로 급증했습니다. 2021년은 펜타닐 패치를 병·의원에서 다량 처방받아 투약하거나 판매한 10대 42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힌 경우였습니다.

KBS  뉴스7(2021.05.20.)KBS 뉴스7(2021.05.20.)

그런데 두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관리·감독 대상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반 병·의원이 아닌 동물병원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두 의원은 최근 수년간 동물병원에서의 펜타닐 패치 처방이 크게 늘었고 비슷한 시기 마약류관리법 위반에 따른 수의사 행정처분 건수가 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가 나가자 동물병원이 새로운 '대체 마약' 유통처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댓글이 다수 달렸습니다. 반면 일부 누리꾼들은 "일반병원이 문제인데 괜한 동물병원을 문제 삼는다"라거나 "의원실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젊은 층의 마약 중독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만큼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가능성을 지적한 의원들 주장이 타당한지, 일부 누리꾼 우려대로 동물병원의 펜타닐 처방 증가가 정말 마약 오·남용과 관계가 있는지 따져봤습니다.

■ 동물병원 펜타닐 패치 처방, 왜 늘어났나?

신현영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5월 이후 지난해까지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는 꾸준히 늘었습니다. 의원실은 특히 지난해 처방 건수가 2019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018년 2,000여 건에 머물던 처방 건수가 이듬해 5,000여 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오지만 2018년 데이터는 상반기 수치가 누락돼 단순비교가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눈에 띄게 늘어난 처방 건수가 심상치 않다며 동물병원에 대한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신 의원 측 주장입니다.

그런데 보도자료에는 처방이 증가한 이유가 담겨 있진 않았습니다. 타당한 처방에 따른 단순 증가일 경우 증가 건수 만으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건 무리한 주장일 수 있기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과연 처방 건수 증가 요인은 뭘까요?

해당 데이터를 제공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반려동물 산업을 관장하는 농식품부와 동물·마약 관련 단체 등을 통해 확인해 봤지만 동물병원에서 펜타닐 처방 건수가 증가한 이유를 분석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대신 그 원인을 추정해볼 수 있는 '정황'은 있었습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순히 처방 건수만 가지고 마치 동물병원 전체가 문제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건 온당치 않다"면서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증가의 요인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반려동물이 많아지다보니 동물병원 진료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에는 반려동물도 오래 살거든요. 노령화 추세가 이어지다보니까 중증 질환도 많아졌어요. 거기에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늘어나면서 동물 치료할 때 진통제 처방 같은 통증 관리가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추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 대한수의사회 관계자

아직 국내 반려동물과 동물 의료에 대한 데이터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근거는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추정치'나 유관 데이터를 통해 위 설명과 같은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농식품부가 발간한 '2021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펜타닐 처방이 2배 넘게 증가한 2018~2019년 반려동물(반려견·반려묘)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까지 소폭 늘던 반려동물 수는 지난해엔 100만 마리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반려동물이 감소했음에도 같은 기간 동물병원에서 펜타닐 패치 처방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이는 반려동물 노령화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 전체 수가 줄었다고 해도 노령화가 심화되면 동물병원 진료와 통증 처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반려동물 노령화는 얼마나 심화됐을까요? 반려동물 전체에 대한 연령 데이터는 없지만, 반려견에게서 노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근거는 있습니다. 견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반려견의 경우 7세 이상이면 '노령견'으로 분류됩니다.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이 최근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반려견 나이 현황'에 따르면 2019년 9세 이상 반려견이 78만 7,000여 마리에서 2021년엔 114만 6,000여 마리로 크게 늘었습니다. 반려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어 10마리 중 4마리꼴로 9세 이상 노령견인 셈입니다.


다만, 노견(老犬) 진료 건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취합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아 그 부분까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노견이 많아진만큼 진료 건수가 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동물권은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 등을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기본적으로 가진다'는 개념입니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리서치가 3월 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물권에 동의한다는 응답자가 79%에 달했습니다. 농식품부의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는 동물보호법을 인지하고 있다는 국민이 2019년 56%에서 2021년 63%로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현영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여러 맥락을 고려해 제도의 사각지대를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희가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만 가지고 오·남용의 우려가 높다고 본 건 아닙니다. 의료기관의 처방은 소폭 줄어드는 데 반해서 동물병원 처방이 크게 늘어나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것이고요. 펜타닐 패치가 동물용 마약류로 지정된 게 아닌데 사용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 신현영 민주당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펜타닐 패치는 신 의원 설명대로 동물용 마약류로 지정돼 있진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수의사들이 사람용으로 지정된 펜타닐 패치를 동물에게 처방하고 있는데 불법은 아니라서 이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을 함께 촉구했다는 설명입니다.

■ 수의사 행정처분은 왜 늘었을까?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 증가와 함께 중요한 문제로 제기됐던 부분은 동물병원의 마약류 관리 체계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료기관보다 못해 오·남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은 관리 체계 부실로 인해 최근 6년간(2017~2022.9) 마약류관리법 위반에 따른 수의사 행정처분 건수가 늘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인재근 의원실 자료 재구성. 일부 항목에서 2019년을 전후로 위반 건수가 두 자릿수대로 늘었다.인재근 의원실 자료 재구성. 일부 항목에서 2019년을 전후로 위반 건수가 두 자릿수대로 늘었다.

위 표를 보면 2019년을 전후로 위반내용에 따라 한 자릿수였던 행정처분 건수가 두 자릿수대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혹시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18~2019년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가 2배 넘게 증가했던 결과와 연관돼 있는 걸까요?

식약처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도입에 따른 여파일 뿐 펜타닐 패치가 '대체 마약'으로 활용되고 있는 정황을 보여주는 결과는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새 시스템 도입 후 1년가량 처벌이 유예되면서 2019년 이후 행정처분 건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은 동물병원이 자체적으로 기록해 보관하던 진료기록부와 마약류 관리대장 등을 국가 시스템에 입력해 저장하는 방식으로, 2018년 5월 18일부터 사용이 의무화됐습니다. 마약류 의약품의 제조부터 유통, 사용 내역 전반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도록 관리·감독 방안이 대폭 강화된 것입니다. 일반 병·의원과 동물병원은 물론 도·소매업자, 연구자 등 마약류를 취급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갑작스런 시스템 변화로 인한 현장의 혼선을 막기 위해 2019년 6월 30일까지 적응 계도기간을 운영했습니다. 아주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면 해당기간에 행정처분을 유예해줬어요. NIMS 도입 전에는 동물병원이 관련 기록을 자체 보관했기 때문에 특별히 현장 적발되지 않으면 속속들이 알 수가 없었던 거고요. 그런 이유로 2019년 이후 통계에 잡히는 행정처분 건수가 많아진 겁니다."
- 식약처 마약관리과 관계자

경찰청에 확인해본 결과 지금까지 동물병원을 통해 구한 펜타닐 패치를 대체 마약으로 활용하다 적발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사례였습니다.

■ 동물병원이 '사람병원'에 비해 관리·감독 취약?

신현영·인재근 의원실은 동물병원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반 의료기관에 비해 마약류 취급을 관리·감독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신현영 의원실은 그 근거로 식약처가 마약류 진통제의 적절한 처방을 유도하고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사전알리미' 제도의 대상에 동물병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사전알리미는 식약처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의 처방 정보를 분석해 안전사용기준을 벗어나 처방한 의사에게 서면 통보하는 제도인데, 그 대상이 인체용 의약품에 맞춰져 있습니다.

인재근 의원실은 일반 병원의 경우 처방전과 진료기록부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식약처의 이중관리·감독이 가능하지만 동물병원은 NIMS 단일 관리 체계에 머물러 있어 관리·감독에 취약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식약처와 수의사 측은 NIMS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동물병원이 사전알리미 대상은 아니지만, NIMS로 보고된 마약류 취급정보 데이터를 분석해 의심되는 점검 대상을 수시로 선정합니다. 이와 별도로 마약류 사용을 허가하는 관할 지자체에서도 동물병원 등에 대해 정기적 점검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 식약처 서면 답변 내용

"사람병원과 동물병원이 기본적으로 똑같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혹시라도 과다처방이 의심되면 관계 부처에서 공무원이 나와서 확인을 합니다. 온·오프라인으로 관련 기록을 다 확인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현 시스템에서도 사람병원과 똑같이 동물병원 관리가 가능합니다."
- 대한수의사회 관계자

동물병원이 일반 병원에 비해 관리·감독에 취약한지는 엄밀히 말하면 '평가의 영역'이라서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동물병원의 마약류 취급이 일반 병원에 비해 취약해 실제로 문제가 된 경우를 찾기 어려운 반면, 펜타닐 패치 불법 이용 사례가 주로 일반 병원에서 적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병원이 특히 취약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동물병원 펜타닐 처방 증가가 마약 오·남용과 관계있다고 볼 수는 없어

팩트체크K는 이런 점을 고려해 동물병원의 펜타닐 처방 증가가 마약 오·남용과 연관돼 있는지에 대해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합니다. 최근 6년간 '업무목적 외 취급'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수의사 수가 수년째 한 명도 없고 경찰에 접수된 관련 사건도 없습니다.

인재근 의원실이 공개한 수의사 행정처분 현황 내용 중 일부 발췌(전체 표는 본문 참고)인재근 의원실이 공개한 수의사 행정처분 현황 내용 중 일부 발췌(전체 표는 본문 참고)

동물병원의 펜타닐 처방 증가는 살펴본 대로 다양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범죄가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해 '대체로 사실이 아님'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해당 기사만 보고 동물병원이 위험하다거나 범죄의 온상이 될 것처럼 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국정감사를 통해 의원들이 문제로 지적한 취지 자체는 살려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각에서 문제 제기를 위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본격적인 문제가 터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점검해보는 노력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참에 반려동물, 동물의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동물의료 정책 수립에 필요한 데이터를 하루빨리 축적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취재지원: 강혜림 SNU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kangnews.hi@gmail.com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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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동물병원 ‘펜타닐’ 처방 증가가 마약 오·남용과 관계있다?
    • 입력 2022-10-27 07:00:10
    • 수정2022-10-27 16:28:43
    팩트체크K

"동물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 처방 급증"
-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마약류 취급자 중 수의사에 대한 최근 6년간 행정처분 건수 현격히 증가"
-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현영·인재근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 주요 내용입니다. 최근 동물병원에서 처방하는 '펜타닐 패치'가 눈에 띄게 증가해 오·남용의 가능성이 크고 더러는 마약처럼 쓰일 수도 있다며 정부에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펜타닐은 말기 암 등으로 고통이 극심한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통제입니다. 헤로인보다 중독성이 100배나 강해 의료기관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처방해야 합니다.

두 의원이 이런 자료를 낸 이유는 최근 수년간 젊은 층 사이에서 펜타닐이 '대체 마약'으로 남용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일반 병·의원에서 펜타닐을 구해 투약한 마약 사범은 2019년 2명에서 2020년에는 49명, 2021년에는 42명으로 급증했습니다. 2021년은 펜타닐 패치를 병·의원에서 다량 처방받아 투약하거나 판매한 10대 42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힌 경우였습니다.

KBS  뉴스7(2021.05.20.)
그런데 두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관리·감독 대상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반 병·의원이 아닌 동물병원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두 의원은 최근 수년간 동물병원에서의 펜타닐 패치 처방이 크게 늘었고 비슷한 시기 마약류관리법 위반에 따른 수의사 행정처분 건수가 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가 나가자 동물병원이 새로운 '대체 마약' 유통처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댓글이 다수 달렸습니다. 반면 일부 누리꾼들은 "일반병원이 문제인데 괜한 동물병원을 문제 삼는다"라거나 "의원실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젊은 층의 마약 중독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만큼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가능성을 지적한 의원들 주장이 타당한지, 일부 누리꾼 우려대로 동물병원의 펜타닐 처방 증가가 정말 마약 오·남용과 관계가 있는지 따져봤습니다.

■ 동물병원 펜타닐 패치 처방, 왜 늘어났나?

신현영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5월 이후 지난해까지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는 꾸준히 늘었습니다. 의원실은 특히 지난해 처방 건수가 2019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018년 2,000여 건에 머물던 처방 건수가 이듬해 5,000여 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오지만 2018년 데이터는 상반기 수치가 누락돼 단순비교가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눈에 띄게 늘어난 처방 건수가 심상치 않다며 동물병원에 대한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신 의원 측 주장입니다.

그런데 보도자료에는 처방이 증가한 이유가 담겨 있진 않았습니다. 타당한 처방에 따른 단순 증가일 경우 증가 건수 만으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건 무리한 주장일 수 있기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과연 처방 건수 증가 요인은 뭘까요?

해당 데이터를 제공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반려동물 산업을 관장하는 농식품부와 동물·마약 관련 단체 등을 통해 확인해 봤지만 동물병원에서 펜타닐 처방 건수가 증가한 이유를 분석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대신 그 원인을 추정해볼 수 있는 '정황'은 있었습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순히 처방 건수만 가지고 마치 동물병원 전체가 문제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건 온당치 않다"면서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증가의 요인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반려동물이 많아지다보니 동물병원 진료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에는 반려동물도 오래 살거든요. 노령화 추세가 이어지다보니까 중증 질환도 많아졌어요. 거기에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늘어나면서 동물 치료할 때 진통제 처방 같은 통증 관리가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추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 대한수의사회 관계자

아직 국내 반려동물과 동물 의료에 대한 데이터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근거는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추정치'나 유관 데이터를 통해 위 설명과 같은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농식품부가 발간한 '2021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펜타닐 처방이 2배 넘게 증가한 2018~2019년 반려동물(반려견·반려묘)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까지 소폭 늘던 반려동물 수는 지난해엔 100만 마리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반려동물이 감소했음에도 같은 기간 동물병원에서 펜타닐 패치 처방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이는 반려동물 노령화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 전체 수가 줄었다고 해도 노령화가 심화되면 동물병원 진료와 통증 처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반려동물 노령화는 얼마나 심화됐을까요? 반려동물 전체에 대한 연령 데이터는 없지만, 반려견에게서 노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근거는 있습니다. 견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반려견의 경우 7세 이상이면 '노령견'으로 분류됩니다.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이 최근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반려견 나이 현황'에 따르면 2019년 9세 이상 반려견이 78만 7,000여 마리에서 2021년엔 114만 6,000여 마리로 크게 늘었습니다. 반려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어 10마리 중 4마리꼴로 9세 이상 노령견인 셈입니다.


다만, 노견(老犬) 진료 건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취합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아 그 부분까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노견이 많아진만큼 진료 건수가 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동물권은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 등을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기본적으로 가진다'는 개념입니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리서치가 3월 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물권에 동의한다는 응답자가 79%에 달했습니다. 농식품부의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는 동물보호법을 인지하고 있다는 국민이 2019년 56%에서 2021년 63%로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현영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여러 맥락을 고려해 제도의 사각지대를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희가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만 가지고 오·남용의 우려가 높다고 본 건 아닙니다. 의료기관의 처방은 소폭 줄어드는 데 반해서 동물병원 처방이 크게 늘어나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것이고요. 펜타닐 패치가 동물용 마약류로 지정된 게 아닌데 사용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 신현영 민주당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펜타닐 패치는 신 의원 설명대로 동물용 마약류로 지정돼 있진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수의사들이 사람용으로 지정된 펜타닐 패치를 동물에게 처방하고 있는데 불법은 아니라서 이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을 함께 촉구했다는 설명입니다.

■ 수의사 행정처분은 왜 늘었을까?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 증가와 함께 중요한 문제로 제기됐던 부분은 동물병원의 마약류 관리 체계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료기관보다 못해 오·남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은 관리 체계 부실로 인해 최근 6년간(2017~2022.9) 마약류관리법 위반에 따른 수의사 행정처분 건수가 늘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인재근 의원실 자료 재구성. 일부 항목에서 2019년을 전후로 위반 건수가 두 자릿수대로 늘었다.
위 표를 보면 2019년을 전후로 위반내용에 따라 한 자릿수였던 행정처분 건수가 두 자릿수대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혹시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18~2019년 동물병원의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가 2배 넘게 증가했던 결과와 연관돼 있는 걸까요?

식약처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도입에 따른 여파일 뿐 펜타닐 패치가 '대체 마약'으로 활용되고 있는 정황을 보여주는 결과는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새 시스템 도입 후 1년가량 처벌이 유예되면서 2019년 이후 행정처분 건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은 동물병원이 자체적으로 기록해 보관하던 진료기록부와 마약류 관리대장 등을 국가 시스템에 입력해 저장하는 방식으로, 2018년 5월 18일부터 사용이 의무화됐습니다. 마약류 의약품의 제조부터 유통, 사용 내역 전반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도록 관리·감독 방안이 대폭 강화된 것입니다. 일반 병·의원과 동물병원은 물론 도·소매업자, 연구자 등 마약류를 취급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갑작스런 시스템 변화로 인한 현장의 혼선을 막기 위해 2019년 6월 30일까지 적응 계도기간을 운영했습니다. 아주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면 해당기간에 행정처분을 유예해줬어요. NIMS 도입 전에는 동물병원이 관련 기록을 자체 보관했기 때문에 특별히 현장 적발되지 않으면 속속들이 알 수가 없었던 거고요. 그런 이유로 2019년 이후 통계에 잡히는 행정처분 건수가 많아진 겁니다."
- 식약처 마약관리과 관계자

경찰청에 확인해본 결과 지금까지 동물병원을 통해 구한 펜타닐 패치를 대체 마약으로 활용하다 적발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사례였습니다.

■ 동물병원이 '사람병원'에 비해 관리·감독 취약?

신현영·인재근 의원실은 동물병원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반 의료기관에 비해 마약류 취급을 관리·감독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신현영 의원실은 그 근거로 식약처가 마약류 진통제의 적절한 처방을 유도하고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사전알리미' 제도의 대상에 동물병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사전알리미는 식약처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의 처방 정보를 분석해 안전사용기준을 벗어나 처방한 의사에게 서면 통보하는 제도인데, 그 대상이 인체용 의약품에 맞춰져 있습니다.

인재근 의원실은 일반 병원의 경우 처방전과 진료기록부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식약처의 이중관리·감독이 가능하지만 동물병원은 NIMS 단일 관리 체계에 머물러 있어 관리·감독에 취약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식약처와 수의사 측은 NIMS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동물병원이 사전알리미 대상은 아니지만, NIMS로 보고된 마약류 취급정보 데이터를 분석해 의심되는 점검 대상을 수시로 선정합니다. 이와 별도로 마약류 사용을 허가하는 관할 지자체에서도 동물병원 등에 대해 정기적 점검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 식약처 서면 답변 내용

"사람병원과 동물병원이 기본적으로 똑같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혹시라도 과다처방이 의심되면 관계 부처에서 공무원이 나와서 확인을 합니다. 온·오프라인으로 관련 기록을 다 확인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현 시스템에서도 사람병원과 똑같이 동물병원 관리가 가능합니다."
- 대한수의사회 관계자

동물병원이 일반 병원에 비해 관리·감독에 취약한지는 엄밀히 말하면 '평가의 영역'이라서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동물병원의 마약류 취급이 일반 병원에 비해 취약해 실제로 문제가 된 경우를 찾기 어려운 반면, 펜타닐 패치 불법 이용 사례가 주로 일반 병원에서 적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병원이 특히 취약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동물병원 펜타닐 처방 증가가 마약 오·남용과 관계있다고 볼 수는 없어

팩트체크K는 이런 점을 고려해 동물병원의 펜타닐 처방 증가가 마약 오·남용과 연관돼 있는지에 대해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합니다. 최근 6년간 '업무목적 외 취급'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수의사 수가 수년째 한 명도 없고 경찰에 접수된 관련 사건도 없습니다.

인재근 의원실이 공개한 수의사 행정처분 현황 내용 중 일부 발췌(전체 표는 본문 참고)
동물병원의 펜타닐 처방 증가는 살펴본 대로 다양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범죄가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해 '대체로 사실이 아님'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해당 기사만 보고 동물병원이 위험하다거나 범죄의 온상이 될 것처럼 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국정감사를 통해 의원들이 문제로 지적한 취지 자체는 살려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각에서 문제 제기를 위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본격적인 문제가 터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점검해보는 노력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참에 반려동물, 동물의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동물의료 정책 수립에 필요한 데이터를 하루빨리 축적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취재지원: 강혜림 SNU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kangnews.hi@gmail.com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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