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저축은행 사태’ 기시감…레고랜드 발 부동산PF 후폭풍

입력 2022.10.27 (10:55) 수정 2022.10.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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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시장과 채권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 50조 원+ α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발표했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3일 이 같이 발표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부동산 PF 시장 불안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임을 다시 한번 확약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추 부총리가 굳이 '지자체'를 언급한 것은 이젠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바로 강원도 때문입니다.

■ 강원도가 쏘아 올린 '불신'의 공…채권시장 '휘청'

부동산PF는 지난달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발언을 시작으로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바로 춘천 중도에 있는 대규모 놀이시설 레고랜드 관련입니다.

레고랜드 건설 자금은 부동산PF를 통해 조달했는데, 그 자금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부동산PF란 통상 기업의 신용이나 담보를 통해 자금을 빌려오는 대신 부동산 개발 사업의 성공 가능성과 미래 현금흐름을 토대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입니다. 한마디로 레고랜드 건설에 돈을 빌려줘도 들어올 돈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자까지 쳐서 잘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 아래 투자자들이 돈을 빌려줬던 거죠.


순서대로 들여다보겠습니다. 강원도 산하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레고랜드 건설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여기에서 건설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곳에서 증권사를 통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 원어치를 발행했는데 이걸 강원도가 채무 보증해줬습니다. 강원도가 보증을 해주니 신용도도 최고인 'A1'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돈을 레고랜드 건설을 위한 초기 자금으로 썼던 거죠.

통상 기업어음은 정해진 날짜에 어음 종이를 가져가면 돈을 받죠. ABCP는 단순한 기업어음이 아니라 대출채권을 담보로 해서 유동화 된 금융상품을 만들어 만기일 전에 채권시장에서 단기로 거래되도록 한 걸 말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그걸 강원도가 채무보증 해주다 보니까 채권시장에선 국가가 보증해주는 국채처럼 인식했습니다. 그만큼 믿을 수 있단 말이죠. 레고랜드 ABCP에 10개 증권사와 1개 자산운용사가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혔습니다. 지난달 말 ABCP의 만기가 도래했지만 강원중도개발공사는 토지매각 작업 등에 차질을 빚고 돈이 부족해지자 이걸 갚지 못했습니다. 그럼 채무 보증을 한 강원도가 대신 갚거나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데 강원도가 쉽게 말해 "우리는 지금 돈 못 갚아"식으로 나와버린 겁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모든 운영과 자금 집행이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 법원의 승인 아래 이뤄지게 된다"면서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를 회생 신청해 법원의 판단을 먼저 받겠다고 한 겁니다. 강원도가 보증한 ABCP를 부도 처리한 거죠. 채권시장은 유례없는 자치단체의 채무보증 거부에 패닉에 빠졌습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채권시장에 혼란이 일자 지난 21일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고 "예산을 편성해 늦어도 내년 1월 29일까지 강원도가 보증채무 2,050억 원을 상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시장은 충격을 받은 뒤였습니다. 그리고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오늘(27일) 강원도는 채무 상환 기간을 한 달 더 앞당겨 "올해 12월 15일까지 보증채무를 갚겠다"고 수정 발표했습니다.

강원도의 ABCP 부도 처리 이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채권시장에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레고랜드 발 파장으로 부산교통공사가 500억 원어치 채권을 발행하려 했지만 실패해 발행을 포기했고, 한국도로공사도 실패했습니다. 증권사들이 둔촌주공아파트 사업비 조달을 위해 8,000억여 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생을 시도했지만 역시 투자자를 찾지 못해 보증을 선 시공사업단이 금액을 나눠서 상환해야 할 상황입니다 . 채권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모두 위기의식을 느낀 거죠.

■ 10년간 늘어난 부동산 PF 대출 어쩌나?

그렇지 않아도 금리 인상에 따라 회사채, CP 할 것 없이 채권금리가 올라가던 와중에 레고랜드 사태까지 터지면서 기업들은 더 돈을 조달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금리를 높여줘도 돈이 모이질 않는 겁니다. 지난해 8월 0.97%였던 91일물 CP금리는 올 8월 말 3.07%로 올랐고, 지난 19일 4.02%로 급등하며 2009년 1월 말 이후 처음으로 4%를 넘겼습니다. 단기자금을 빌리는 데 4배 이상 돈이 더 들게 된 겁니다.

정부가 지난 23일 50조 원+ α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25일 4.45%, 26일엔 4.51%로 상승했습니다. 여전히 못 믿겠다는 겁니다. 반면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정부 대책 발표 뒤에 조금씩 하락하며 단기물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아직은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관심은 부동산 PF 대출과 관련된 위험성입니다. 경기침체 우려 속에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반기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2조 2,000억 원으로 2014년 이후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연평균 14.9%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 증권을 합하면 부동산PF 관련 규모는 15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면 붉은색 비은행권 PF 대출 잔액이 2013년 이후 급증하는 게 보이죠? 가계대출을 규제하자 비은행권은 사업 다각화와 대체투자를 위해 부동산 개발 투자에 빠르게 뛰어든 겁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제1금융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고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에 대한 PF 규제도 강화되다 보니 다른 비은행권으로선 기회라고 여겼을 겁니다.

특히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익스포저 비율, 다시 말해서 PF 대출과 연관된 자금(직접 대출과 PF 채무보증, 부동산 펀드 등)이 얼마나 되느냐를 보면 현재의 부동산 PF 위험에 노출된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은행과 저축은행은 PF 대출 부실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0년보다 크게 줄어들었지만, 보험사 ,여신금융전문회사, 증권사는 크게 늘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증권사의 익스포저 비율은 2010년 4.7%에서 올해 6월 기준 38.7%로 눈에 띄게 늘었고, 카드사를 뺀 캐피털사 등 여신금융전문회사도 61.5%에서 84.4%로 증가했습니다.

■ 채무보증 열 올린 증권사…"돈 들어올 때가 좋았지"

특히 금융권에선 최근 빠르게 부동산 PF에 자금을 대고 있는 증권사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증권사가 신용을 보강해 이달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ABCP 같은 단기 PF 유동화 증권 잔액은 6조 7,000억 원, 11월 말에는 10조 7,000억원에 달합니다.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 부동산 PF 증권 규모는 모두 합쳐 34조 원입니다. 그나마 앞서 레고랜드는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했지만, 상당수의 부동산 PF 유동화 증권은 증권사가 채무보증을 했습니다. 채무보증(신용보강)을 해주면 높은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2013년 말 5조 9,000억 원이었던 증권사의 채무보증 액수는 올해 6월 기준 24조 9천억 원으로 4.2배 증가했습니다. 증권사에 따라 10배 이상 채무보증을 늘린 곳도 있습니다. 건설경기 호황기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자칫하다간 증권사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부동산시장 침체기엔 더 그렇습니다.

NICE신용평가가 금융업권의 부동산PF 익스포저를 질적으로 분석한 결과 증권사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업계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증권사는 특히 PF 투자지역의 74%가 수도권이 아닌 지방과 해외여서 부동산개발사업 부실 시 위험도가 가장 높았고, 돈을 가장 늦게 받는 상환 중·후순위 비중도 40%로 업계 중 가장 높았습니다. 이 가운데 자기자본 1조 원 미만의 증권사는 중·후순위가 70%에 달해 위기 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 정부 지원으로 위험 잠재울 수 있나?

정부의 긴급 유동성 투입 결정으로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지자체가 보증했던 채무상환을 제때 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부동산 호황기 급증한 부동산 PF 위험성이 여전하다는 점은 시장에 불안감으로 남아있습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연구실장은 지난 25일 KBS 1TV '뉴스라인'에 출연해 "(현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급한 불은 해소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많은 대책을 통해서 비우량 회사채라든가, 또 가장 많이 얘기가 나오고 있는 부동산 PF관련 어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다만 이게 급한 불은 껐지만, 경기침체, 고금리, 고물가 이런 악조건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한 뒤에도 금융사별로 PF 대출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담당자를 불러 위험도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달 말까지 시나리오별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규제 완화나 관련 업계에 돈을 쏟아부어 부실한 기업이 다시 연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부실의 부피만 더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부터는 부실한 대출과 기업을 골라내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 황보창 연구위원은 지난 25일 방송 인터뷰에서 "문제는 이런 신용경색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부분의 신용위험으로 인해 건전한 일반 회사들의 신용위험까지 전이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걸 막으려면 빨리 부실을 표면에 드러내고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일본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털어낼 것은 빨리 털어내고 가는 것이 핵심적인 상황으로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2011년 1월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부터 시작해 2년 동안 24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고객들의 돈 200억 원을 인출해 불법 밀항하려다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물론 10여 년 전 그런 사태까지 가지 말아야겠지만, 당시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2년 전부터 부동산PF 위기감은 정말 컸습니다. 2년 동안 지속적인 위기 지적과 정부의 대책 마련, 업계의 부실 털어내기가 있었지만, 결말은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부실한 PF 대출을 끝까지 안고 가기 보다는 정부와 업계의 조사를 거쳐 부실은 털어내고 위기의 확산을 막는데 대책의 초점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그래픽: 김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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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전 ‘저축은행 사태’ 기시감…레고랜드 발 부동산PF 후폭풍
    • 입력 2022-10-27 10:55:41
    • 수정2022-10-27 11:29:12
    취재K

'레고랜드' 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시장과 채권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 50조 원+ α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발표했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3일 이 같이 발표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부동산 PF 시장 불안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임을 다시 한번 확약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추 부총리가 굳이 '지자체'를 언급한 것은 이젠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바로 강원도 때문입니다.

■ 강원도가 쏘아 올린 '불신'의 공…채권시장 '휘청'

부동산PF는 지난달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발언을 시작으로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바로 춘천 중도에 있는 대규모 놀이시설 레고랜드 관련입니다.

레고랜드 건설 자금은 부동산PF를 통해 조달했는데, 그 자금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부동산PF란 통상 기업의 신용이나 담보를 통해 자금을 빌려오는 대신 부동산 개발 사업의 성공 가능성과 미래 현금흐름을 토대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입니다. 한마디로 레고랜드 건설에 돈을 빌려줘도 들어올 돈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자까지 쳐서 잘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 아래 투자자들이 돈을 빌려줬던 거죠.


순서대로 들여다보겠습니다. 강원도 산하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레고랜드 건설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여기에서 건설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곳에서 증권사를 통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 원어치를 발행했는데 이걸 강원도가 채무 보증해줬습니다. 강원도가 보증을 해주니 신용도도 최고인 'A1'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돈을 레고랜드 건설을 위한 초기 자금으로 썼던 거죠.

통상 기업어음은 정해진 날짜에 어음 종이를 가져가면 돈을 받죠. ABCP는 단순한 기업어음이 아니라 대출채권을 담보로 해서 유동화 된 금융상품을 만들어 만기일 전에 채권시장에서 단기로 거래되도록 한 걸 말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그걸 강원도가 채무보증 해주다 보니까 채권시장에선 국가가 보증해주는 국채처럼 인식했습니다. 그만큼 믿을 수 있단 말이죠. 레고랜드 ABCP에 10개 증권사와 1개 자산운용사가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혔습니다. 지난달 말 ABCP의 만기가 도래했지만 강원중도개발공사는 토지매각 작업 등에 차질을 빚고 돈이 부족해지자 이걸 갚지 못했습니다. 그럼 채무 보증을 한 강원도가 대신 갚거나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데 강원도가 쉽게 말해 "우리는 지금 돈 못 갚아"식으로 나와버린 겁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모든 운영과 자금 집행이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 법원의 승인 아래 이뤄지게 된다"면서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를 회생 신청해 법원의 판단을 먼저 받겠다고 한 겁니다. 강원도가 보증한 ABCP를 부도 처리한 거죠. 채권시장은 유례없는 자치단체의 채무보증 거부에 패닉에 빠졌습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채권시장에 혼란이 일자 지난 21일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고 "예산을 편성해 늦어도 내년 1월 29일까지 강원도가 보증채무 2,050억 원을 상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시장은 충격을 받은 뒤였습니다. 그리고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오늘(27일) 강원도는 채무 상환 기간을 한 달 더 앞당겨 "올해 12월 15일까지 보증채무를 갚겠다"고 수정 발표했습니다.

강원도의 ABCP 부도 처리 이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채권시장에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레고랜드 발 파장으로 부산교통공사가 500억 원어치 채권을 발행하려 했지만 실패해 발행을 포기했고, 한국도로공사도 실패했습니다. 증권사들이 둔촌주공아파트 사업비 조달을 위해 8,000억여 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생을 시도했지만 역시 투자자를 찾지 못해 보증을 선 시공사업단이 금액을 나눠서 상환해야 할 상황입니다 . 채권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모두 위기의식을 느낀 거죠.

■ 10년간 늘어난 부동산 PF 대출 어쩌나?

그렇지 않아도 금리 인상에 따라 회사채, CP 할 것 없이 채권금리가 올라가던 와중에 레고랜드 사태까지 터지면서 기업들은 더 돈을 조달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금리를 높여줘도 돈이 모이질 않는 겁니다. 지난해 8월 0.97%였던 91일물 CP금리는 올 8월 말 3.07%로 올랐고, 지난 19일 4.02%로 급등하며 2009년 1월 말 이후 처음으로 4%를 넘겼습니다. 단기자금을 빌리는 데 4배 이상 돈이 더 들게 된 겁니다.

정부가 지난 23일 50조 원+ α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25일 4.45%, 26일엔 4.51%로 상승했습니다. 여전히 못 믿겠다는 겁니다. 반면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정부 대책 발표 뒤에 조금씩 하락하며 단기물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아직은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관심은 부동산 PF 대출과 관련된 위험성입니다. 경기침체 우려 속에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반기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2조 2,000억 원으로 2014년 이후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연평균 14.9%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 증권을 합하면 부동산PF 관련 규모는 15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면 붉은색 비은행권 PF 대출 잔액이 2013년 이후 급증하는 게 보이죠? 가계대출을 규제하자 비은행권은 사업 다각화와 대체투자를 위해 부동산 개발 투자에 빠르게 뛰어든 겁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제1금융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고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에 대한 PF 규제도 강화되다 보니 다른 비은행권으로선 기회라고 여겼을 겁니다.

특히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익스포저 비율, 다시 말해서 PF 대출과 연관된 자금(직접 대출과 PF 채무보증, 부동산 펀드 등)이 얼마나 되느냐를 보면 현재의 부동산 PF 위험에 노출된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은행과 저축은행은 PF 대출 부실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0년보다 크게 줄어들었지만, 보험사 ,여신금융전문회사, 증권사는 크게 늘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증권사의 익스포저 비율은 2010년 4.7%에서 올해 6월 기준 38.7%로 눈에 띄게 늘었고, 카드사를 뺀 캐피털사 등 여신금융전문회사도 61.5%에서 84.4%로 증가했습니다.

■ 채무보증 열 올린 증권사…"돈 들어올 때가 좋았지"

특히 금융권에선 최근 빠르게 부동산 PF에 자금을 대고 있는 증권사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증권사가 신용을 보강해 이달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ABCP 같은 단기 PF 유동화 증권 잔액은 6조 7,000억 원, 11월 말에는 10조 7,000억원에 달합니다.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 부동산 PF 증권 규모는 모두 합쳐 34조 원입니다. 그나마 앞서 레고랜드는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했지만, 상당수의 부동산 PF 유동화 증권은 증권사가 채무보증을 했습니다. 채무보증(신용보강)을 해주면 높은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2013년 말 5조 9,000억 원이었던 증권사의 채무보증 액수는 올해 6월 기준 24조 9천억 원으로 4.2배 증가했습니다. 증권사에 따라 10배 이상 채무보증을 늘린 곳도 있습니다. 건설경기 호황기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자칫하다간 증권사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부동산시장 침체기엔 더 그렇습니다.

NICE신용평가가 금융업권의 부동산PF 익스포저를 질적으로 분석한 결과 증권사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업계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증권사는 특히 PF 투자지역의 74%가 수도권이 아닌 지방과 해외여서 부동산개발사업 부실 시 위험도가 가장 높았고, 돈을 가장 늦게 받는 상환 중·후순위 비중도 40%로 업계 중 가장 높았습니다. 이 가운데 자기자본 1조 원 미만의 증권사는 중·후순위가 70%에 달해 위기 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 정부 지원으로 위험 잠재울 수 있나?

정부의 긴급 유동성 투입 결정으로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지자체가 보증했던 채무상환을 제때 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부동산 호황기 급증한 부동산 PF 위험성이 여전하다는 점은 시장에 불안감으로 남아있습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김광석 연구실장은 지난 25일 KBS 1TV '뉴스라인'에 출연해 "(현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급한 불은 해소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많은 대책을 통해서 비우량 회사채라든가, 또 가장 많이 얘기가 나오고 있는 부동산 PF관련 어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다만 이게 급한 불은 껐지만, 경기침체, 고금리, 고물가 이런 악조건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한 뒤에도 금융사별로 PF 대출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담당자를 불러 위험도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달 말까지 시나리오별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규제 완화나 관련 업계에 돈을 쏟아부어 부실한 기업이 다시 연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부실의 부피만 더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부터는 부실한 대출과 기업을 골라내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 황보창 연구위원은 지난 25일 방송 인터뷰에서 "문제는 이런 신용경색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부분의 신용위험으로 인해 건전한 일반 회사들의 신용위험까지 전이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걸 막으려면 빨리 부실을 표면에 드러내고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일본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털어낼 것은 빨리 털어내고 가는 것이 핵심적인 상황으로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2011년 1월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부터 시작해 2년 동안 24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고객들의 돈 200억 원을 인출해 불법 밀항하려다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물론 10여 년 전 그런 사태까지 가지 말아야겠지만, 당시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2년 전부터 부동산PF 위기감은 정말 컸습니다. 2년 동안 지속적인 위기 지적과 정부의 대책 마련, 업계의 부실 털어내기가 있었지만, 결말은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부실한 PF 대출을 끝까지 안고 가기 보다는 정부와 업계의 조사를 거쳐 부실은 털어내고 위기의 확산을 막는데 대책의 초점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그래픽: 김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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