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누구냐 넌!’…극우성향 멜로니 총리, “친 EU·반푸틴”

입력 2022.10.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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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첫 극우 총리',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등의 평가가 나왔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2일 취임했다.

그동안 이탈리아 총리가 자주 바뀌었지만 이번처럼 여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다. 멜로니 총리가 무솔리니가 세운 국가파시스트당(PNF)의 후예로 불리는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로 총선에서 승리하고 이탈리아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 '이탈리아형제들(당)'이 선두로 치고 나오자 미국과 유럽연합(EU)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EU를 창립한 유럽 3위의 경제 대국 이탈리아가 EU에서 균열을 일으킬 수 있고 함께 정권을 잡은 우파연합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나 살비니 동맹당 대표의 행보로 볼 때 '반 푸틴'이라는 서방 동맹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조르자 멜로니 신임 총리가 25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하원에서 신임안 표결에 앞서 첫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조르자 멜로니 신임 총리가 25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하원에서 신임안 표결에 앞서 첫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 멜로니 취임 연설에서 '서방동맹 약한 고리' 우려 불식

그러나 이런 우려는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고 있다. 멜로니 대표는 선거기간 동안 강조했던 '친 EU 친 NATO' 약속을 지키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25일 하원에서 밝힌 국정 연설에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계속 지지할 것"이고 "푸틴의 에너지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파시즘을 포함해 반민주적인 정권에 대해 동정이나 친밀감을 느낀 적도 없다"고도 밝히고 이런 우려를 제기한 국내외 비판자들을 향해 "이런 태도는 이탈리아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며 비난했다. 멜로니 총리의 행보를 읽을 수 있는 장관 임명에서도 관심이 컸던 외교장관과 재무장관에 모두 친 EU 성향의 인물을 배치했다.

서방은 안도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와의 첫 통화를 만족해하며 멜로니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고 자신도 멜로니를 키이우에 초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EU 정상들도 멜로니 총리 취임을 축하하고 동맹을 이어가자고 말하고 있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멜로니 총리의 동거인으로 퍼스트 젠틀맨 된 방송인 안드레아 잠브루노 (멜로니 페이스북 캡처)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멜로니 총리의 동거인으로 퍼스트 젠틀맨 된 방송인 안드레아 잠브루노 (멜로니 페이스북 캡처)

멜로니 총리는 유럽의 다른 우파 정치인들처럼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 견해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성 소수자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 때문에 인권단체들과 대립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극우 정권 탄생이 서방 동맹의 '약한 고리'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는 일단 가라앉았다.

무솔리니 숭배자로 알려진 이탈리아 새 상원의장 이그나치오 라 루사무솔리니 숭배자로 알려진 이탈리아 새 상원의장 이그나치오 라 루사

■ 이탈리아 정계 '극우·친 푸틴' 인사들 약진

그렇다고 경계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멜로니 정권을 둘러싼 주요 인물들이 극우 성향과 '친 푸틴'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 푸틴 행보로 유명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살비니 동맹당 대표가 연정 파트너로 멜로니 정부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파연합이 장악한 이탈리아 의회에서 상원의장에 '무솔리니 숭배자'로 알려진 이그나치오 라 루사가 선출됐고 한때 푸틴 대통령을 '서방의 빛'이라고 칭송했던 동맹당 소속 로렌초 폰타나가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멜로니 총리의 '친 EU' 발언이 전임 드라기 총리처럼 전폭적인 EU 지지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강한 이탈리아 재건'을 주창하는 멜로니 총리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강화할 경우 국가 부채율이 높은 이탈리아와 '긴축 재정'을 펼쳐야 하는 EU· 유럽중앙은행과 엇박자를 내며 갈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EU를 탈퇴하지는 않겠지만 EU 체제 내부의 적극적인 비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 멜로니 총리의 탄생이 EU 체제를 비판하며 유럽에서 꾸준히 힘을 얻어가고 있는 다른 우파 정당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우파연합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전진 이탈리아 대표)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 대표)사진 왼쪽부터 우파연합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전진 이탈리아 대표)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 대표)

이탈리아 정부의 향후 행보는 여전히 흥미롭다. 새 정부가 앞으로 내놓을 구체적인 정책들이 과연 멜로니 총리가 취임 연설에서 밝힌 내용들과 얼마나 일치할지, 또 눈높이가 제각각인 우파 연합이 멜로니 총리와의 허니문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단합하는 모습을 보일지, 정권의 먼 변방에서 일약 수권정당과 총리직을 차지한 멜로니와 '이탈리아형제들'이 국정 운영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지, 세계의 눈과 귀가 로마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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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누구냐 넌!’…극우성향 멜로니 총리, “친 EU·반푸틴”
    • 입력 2022-10-28 09:00:13
    특파원 리포트

'2차 대전 이후 첫 극우 총리',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등의 평가가 나왔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2일 취임했다.

그동안 이탈리아 총리가 자주 바뀌었지만 이번처럼 여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다. 멜로니 총리가 무솔리니가 세운 국가파시스트당(PNF)의 후예로 불리는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로 총선에서 승리하고 이탈리아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 '이탈리아형제들(당)'이 선두로 치고 나오자 미국과 유럽연합(EU)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EU를 창립한 유럽 3위의 경제 대국 이탈리아가 EU에서 균열을 일으킬 수 있고 함께 정권을 잡은 우파연합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나 살비니 동맹당 대표의 행보로 볼 때 '반 푸틴'이라는 서방 동맹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조르자 멜로니 신임 총리가 25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하원에서 신임안 표결에 앞서 첫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 멜로니 취임 연설에서 '서방동맹 약한 고리' 우려 불식

그러나 이런 우려는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고 있다. 멜로니 대표는 선거기간 동안 강조했던 '친 EU 친 NATO' 약속을 지키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25일 하원에서 밝힌 국정 연설에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계속 지지할 것"이고 "푸틴의 에너지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파시즘을 포함해 반민주적인 정권에 대해 동정이나 친밀감을 느낀 적도 없다"고도 밝히고 이런 우려를 제기한 국내외 비판자들을 향해 "이런 태도는 이탈리아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며 비난했다. 멜로니 총리의 행보를 읽을 수 있는 장관 임명에서도 관심이 컸던 외교장관과 재무장관에 모두 친 EU 성향의 인물을 배치했다.

서방은 안도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와의 첫 통화를 만족해하며 멜로니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고 자신도 멜로니를 키이우에 초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EU 정상들도 멜로니 총리 취임을 축하하고 동맹을 이어가자고 말하고 있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멜로니 총리의 동거인으로 퍼스트 젠틀맨 된 방송인 안드레아 잠브루노 (멜로니 페이스북 캡처)
멜로니 총리는 유럽의 다른 우파 정치인들처럼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 견해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성 소수자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 때문에 인권단체들과 대립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극우 정권 탄생이 서방 동맹의 '약한 고리'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는 일단 가라앉았다.

무솔리니 숭배자로 알려진 이탈리아 새 상원의장 이그나치오 라 루사
■ 이탈리아 정계 '극우·친 푸틴' 인사들 약진

그렇다고 경계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멜로니 정권을 둘러싼 주요 인물들이 극우 성향과 '친 푸틴'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 푸틴 행보로 유명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살비니 동맹당 대표가 연정 파트너로 멜로니 정부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파연합이 장악한 이탈리아 의회에서 상원의장에 '무솔리니 숭배자'로 알려진 이그나치오 라 루사가 선출됐고 한때 푸틴 대통령을 '서방의 빛'이라고 칭송했던 동맹당 소속 로렌초 폰타나가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멜로니 총리의 '친 EU' 발언이 전임 드라기 총리처럼 전폭적인 EU 지지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강한 이탈리아 재건'을 주창하는 멜로니 총리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강화할 경우 국가 부채율이 높은 이탈리아와 '긴축 재정'을 펼쳐야 하는 EU· 유럽중앙은행과 엇박자를 내며 갈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EU를 탈퇴하지는 않겠지만 EU 체제 내부의 적극적인 비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 멜로니 총리의 탄생이 EU 체제를 비판하며 유럽에서 꾸준히 힘을 얻어가고 있는 다른 우파 정당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우파연합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전진 이탈리아 대표)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 대표)
이탈리아 정부의 향후 행보는 여전히 흥미롭다. 새 정부가 앞으로 내놓을 구체적인 정책들이 과연 멜로니 총리가 취임 연설에서 밝힌 내용들과 얼마나 일치할지, 또 눈높이가 제각각인 우파 연합이 멜로니 총리와의 허니문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단합하는 모습을 보일지, 정권의 먼 변방에서 일약 수권정당과 총리직을 차지한 멜로니와 '이탈리아형제들'이 국정 운영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지, 세계의 눈과 귀가 로마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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