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중국 새 지도부가 첫 방문지로 ‘옌안’에 간 까닭은?

입력 2022.10.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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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기를 막 시작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새 최고 지도부와 함께 27일 산시(陝西)성 옌안을 방문했습니다. 시 주석과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등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16∼22일 열린 20차 당 대회를 거쳐 상무위원으로 유임되거나 새로 선출됐습니다.

■ 중국 새 최고 지도부 첫 방문지 옌안, 황토 고원의 험지

시진핑 3기 지도부는 지난 23일 내·외신 기자와의 대면식을 통해 처음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나흘 만에 단체로 지방 나들이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옌안은 중국 중부 황토 고원에 자리한 험지입니다. 중국의 새 최고 지도부는 출범 직후 첫 방문지로 왜 이런 곳을 선택했을까요?…

옌안은 마오쩌둥이 이끌던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 군대의 추적을 피해 이동한 이른바 대장정의 종착지입니다. 공산당은 1935년 이곳에 자리 잡은 뒤 항일 투쟁, 국공 내전의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 대장정 종착지 옌안…중국 공산당의 '혁명 성지'

시 주석 일행은 1945년 중국 공산당 7차 당 대회가 열렸던 장소와 마오쩌둥의 옛집 등을 둘러보고 옌안혁명기념관도 들러 전시물을 관람했습니다.

옌안은 사실 시진핑 일가와도 관련 깊습니다. 우선, 시 주석의 부친인 '혁명 원로' 시중쉰 전 부총리의 근거지였습니다. 20대 초반 현지 소비에트 주석이던 시중쉰은 대장정 끝에 도착한 중앙 홍군에게 지휘권을 넘겼습니다. 국공 내전 시기 이 지역을 포함한 서북 5개 성의 당·정·군을 이끌어 '서북왕'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중쉰은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 반당 분자로 몰려 유배를 당합니다. 이때 14살 시진핑이 하방한 곳이 옌안입니다. 이후 7년을 보내며 기층 민중의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와신상담의 시기였습니다.

시 주석은 7차 당 대회가 열렸던 현장에서 직접 옌안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7년 동안 옌안에서 살고 일해 이곳에 대한 애정이 깊다. 나의 아버지도 여기서 일했다. 그래서 이곳에 친숙하다. 7년 동안 '지식 청년'으로서 옌안의 농부들과 함께 일하고 살았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7차 당 대회 장소와 혁명 사적지들을 둘러봤다."

시 주석이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 나이에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 '혁명 성지'에서 정치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하방됐지만 당과 체제에 반감을 품고 도전하기보다는 당의 역사와 지방에 대한 이해를 키우며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 '혁명과 인연의 땅'에서 던진 메시지는?

시 주석은 또 옌안 시절 중국 공산당이 군사적 포위와 경제적 봉쇄로 여건이 매우 어려웠지만 마오쩌둥의 호소에 따라 현지인들과 군대가 생산 운동을 펴고 항일 전선을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원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자력갱생과 고군분투 정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주도의 안보 포위망과 공급망 배제에 맞서는 정신 무장을 주문했다는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더불어 집권 3기를 '혁명 성지'에서 시작하며 마오쩌둥 후계자로서의 정당성과 공산당 영도를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20차 당 대회를 거치며 밝힌 대로 사회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중국식 현대화'의 길을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시 주석이 본인 집안과 관련 깊은 곳을 방문해 자신의 권위와 위상을 부각시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시 주석은 5년 전 19차 당 대회를 통해 집권 2기를 출범할 때는 최고 지도부를 이끌고 상하이와 저장성의 공산당 유적을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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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9 08: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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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기를 막 시작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새 최고 지도부와 함께 27일 산시(陝西)성 옌안을 방문했습니다. 시 주석과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등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16∼22일 열린 20차 당 대회를 거쳐 상무위원으로 유임되거나 새로 선출됐습니다.

■ 중국 새 최고 지도부 첫 방문지 옌안, 황토 고원의 험지

시진핑 3기 지도부는 지난 23일 내·외신 기자와의 대면식을 통해 처음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나흘 만에 단체로 지방 나들이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옌안은 중국 중부 황토 고원에 자리한 험지입니다. 중국의 새 최고 지도부는 출범 직후 첫 방문지로 왜 이런 곳을 선택했을까요?…

옌안은 마오쩌둥이 이끌던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 군대의 추적을 피해 이동한 이른바 대장정의 종착지입니다. 공산당은 1935년 이곳에 자리 잡은 뒤 항일 투쟁, 국공 내전의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 대장정 종착지 옌안…중국 공산당의 '혁명 성지'

시 주석 일행은 1945년 중국 공산당 7차 당 대회가 열렸던 장소와 마오쩌둥의 옛집 등을 둘러보고 옌안혁명기념관도 들러 전시물을 관람했습니다.

옌안은 사실 시진핑 일가와도 관련 깊습니다. 우선, 시 주석의 부친인 '혁명 원로' 시중쉰 전 부총리의 근거지였습니다. 20대 초반 현지 소비에트 주석이던 시중쉰은 대장정 끝에 도착한 중앙 홍군에게 지휘권을 넘겼습니다. 국공 내전 시기 이 지역을 포함한 서북 5개 성의 당·정·군을 이끌어 '서북왕'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중쉰은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 반당 분자로 몰려 유배를 당합니다. 이때 14살 시진핑이 하방한 곳이 옌안입니다. 이후 7년을 보내며 기층 민중의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와신상담의 시기였습니다.

시 주석은 7차 당 대회가 열렸던 현장에서 직접 옌안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7년 동안 옌안에서 살고 일해 이곳에 대한 애정이 깊다. 나의 아버지도 여기서 일했다. 그래서 이곳에 친숙하다. 7년 동안 '지식 청년'으로서 옌안의 농부들과 함께 일하고 살았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7차 당 대회 장소와 혁명 사적지들을 둘러봤다."

시 주석이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 나이에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 '혁명 성지'에서 정치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하방됐지만 당과 체제에 반감을 품고 도전하기보다는 당의 역사와 지방에 대한 이해를 키우며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 '혁명과 인연의 땅'에서 던진 메시지는?

시 주석은 또 옌안 시절 중국 공산당이 군사적 포위와 경제적 봉쇄로 여건이 매우 어려웠지만 마오쩌둥의 호소에 따라 현지인들과 군대가 생산 운동을 펴고 항일 전선을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원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자력갱생과 고군분투 정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주도의 안보 포위망과 공급망 배제에 맞서는 정신 무장을 주문했다는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더불어 집권 3기를 '혁명 성지'에서 시작하며 마오쩌둥 후계자로서의 정당성과 공산당 영도를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20차 당 대회를 거치며 밝힌 대로 사회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중국식 현대화'의 길을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시 주석이 본인 집안과 관련 깊은 곳을 방문해 자신의 권위와 위상을 부각시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시 주석은 5년 전 19차 당 대회를 통해 집권 2기를 출범할 때는 최고 지도부를 이끌고 상하이와 저장성의 공산당 유적을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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