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

입력 2022.11.01 (07:00) 수정 2022.11.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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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화석 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쓰자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농어촌 지역에 집중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KBS는 최근 전남지역 농어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의 모순과 피해를 살펴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
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을 가른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
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
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 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

2030년까지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한 독일.2030년까지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한 독일.

■재생에너지에도 적용되는 ‘압축 성장’의 부작용

흔히 한국이 겪는 여러 문제의 기원을 '압축 성장'에서 찾곤 한다. 민주주의든 경제 발전이든, 이른바 '선진국'들이 오랜 기간 걸쳐 이뤄낸 성과를 단기간에 따라잡으려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분야도 같은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탄소 중립'이나 '탈원전', '재생에너지' 등의 용어가 화두로 떠오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에너지 전환을 준비해 온 유럽 등과는 대조적이다.

실제 세계 각국의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은 평균치를 내도 10%가량인데, 우리나라는 5%가 되지 않는다. 뒤처진 만큼 급격한 변화가 요구된다. 세계적 기준을 따라가려면 급하게 뛰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넘어지는 일도 잦을 수밖에 없다. 지난 3차례의 기사에서 전한 것처럼 농어촌이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급격한 변화가 갖고 온 ‘압축 성장’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독일도 태양광에 농지 면적 감소…‘영농형 태양광’으로 공존 꾀해

비슷한 길을 먼저 밟은 국가들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재생에너지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1990년대 '탄소세'를 도입했고, '10만 가구 태양광 정책'을 통해 이른 시기부터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왔다. 2000년에는 재생에너지법을 제정했다. 2010년에는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문자 그대로 ‘에너지 전환’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목표치를 갈수록 높여 2030년까지 전력 수요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채운다는 계획도 내놨다.

진통이 없는 건 아니다. 독일도 현실적인 문제로 도시보다는 농지에 다수의 태양광 발전소를 세워야 했다. 경작지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농민 반발도 있었다. 베언하드 크리스켄 독일 농업인협회 사무총장은 "농지는 태양광발전소 등을 설치하기 최적 조건이어서 재생에너지 사업이 많이 추진되고 있다"라며 "농지 면적이 줄어드는 것은 독일 농업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독일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해법 가운데 하나는 태양광 패널 아래에서 작물을 키우는 '영농형 태양광'이다. 농지 잠식을 막고 전력과 식량 생산의 공존을 꾀하는 방식이다. 실제 독일에서 영농형 태양광 실증 사업을 해 본 결과, 일조량 감소로 작물 수확량이 10%가량 줄어들긴 했다. 그러나 폭염이나 우박 같은 재해에는 오히려 더 강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독일의 한 영농형 태양광 업체 대표이사인 페터 슈룸 씨는 "땅과 농경지가 무한하지 않은 상황에서 에너지와 식량의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가능하면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독일 'KNE', 갈등 중재 전문 기관…지자체에는 갈등 해결 전문가

'영농형 태양광'이 기술적인 돌파구라면, 행정적인 장치도 존재한다. 독일에는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갈등을 중재하는 전문 기관이 존재한다. 이름은 '자연 보호와 에너지 전환 역량 강화센터', 줄여서 KNE다. 2016년 독일 환경부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여기에는 전문 교육을 마친 조정관 수십 명이 일한다.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주민, 농·어업인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갈등 전문 중개기관 ‘KNE’.독일의 재생에너지 갈등 전문 중개기관 ‘KNE’.

독일 KNE 조정관이 말하는 갈등 해결의 열쇳말은 '대화'다. 특히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단계의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티나 베어 KNE 다이얼로그 디자이너는 "주민 수용성을 성공적으로 얻는 방법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모든 당사자가 참여하고 대화하는 것"이라며 "KNE가 모든 갈등을 직접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독일은 지방자치단체에도 갈등 해결 전문가가 있다. 독일 지자체의 '지역 재생에너지 매니저'는 발전소의 입지 선정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 등까지 다양한 분야에 의견을 내는 역할을 한다. 그 의견이란 곧 지역민들의 생각이다. 지역의 여론과 사정을 사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토마스 리펏 독일 지역 재생에너지 매니저는 "갈등 예방을 위한 핵심 요소는 아주 간단하다"라며 "지방자치단체가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하고, 모두가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례를 우리나라에 단순 적용하기는 어렵다. 농지를 둘러싼 갈등의 경우, 독일 농민들은 땅을 소유한 경우가 많으나 우리나라 농민들은 대다수가 임차농이라는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특정 지역과 계층에만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식으로 전환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탄소 없는 섬' 목표 제주, 풍력발전 인허가권 가져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제주도는 재생에너지에 한해서는 '먼저 온 미래'다. 제주도는 2012년 일찌감치 '탄소 없는 섬'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8%까지 올라왔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제주 역시 현재도 풍력이나 태양광과 관련한 여러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풍력 발전단지 지구 지정제도를 도입한 제주.풍력 발전단지 지구 지정제도를 도입한 제주.

그러나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인허가 제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제주의 경우 풍력발전에 한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가 내주는 발전사업 허가 권한을 제주특별자치도가 갖고 있다. 2007년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자치단체로 인허가권이 넘겨진 것이다. 제주도는 여기에 '풍력 발전단지 지구 지정 제도'를 만들어, 미리 입지를 정하고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놨다. 난개발을 막고 지역사회로 이익을 환원하자는 취지다. 현재 제주에서는 추자도에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와 관련해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제도가 얼마나 기능을 발휘할지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전남, 재생에너지 공영화 조례 전국 첫 제정

재생에너지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른 전라남도에서는 재생에너지의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의 조례가 지난 21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됐다. 이름은 '재생에너지 공영화와 공존을 위한 조례'다. 지자체와 공공기관, 지역사회가 지역의 재생에너지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공영성과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독일처럼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조항도 담겨 있다.

더 이상 농어촌을 파괴하는 형태로,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로 재생에너지 사업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과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문제는 민간 사업자가 아닌 지자체가 나서야 할 일인데, 이제까지 지자체는 주로 인허가를 중심으로 일했고 갈등 관리는 민간 사업자에게 맡겼다"라며 "앞으로는 지자체가 갈등 관리에 발 벗고 나서야 하며, 정부와 지자체가 사업과 입지 타당성을 검토하는 '계획 입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산 전원’ 노력의 한 사례로 고속도로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소가 꼽힌다.‘분산 전원’ 노력의 한 사례로 고속도로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소가 꼽힌다.

땅값 탓만 하며 발전소를 모두 시골로 보낼 게 아니라, 대도시의 남는 땅이나 공장 지붕 같은 곳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최대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전기를 쓰는 지역의 부근에 발전소를 촘촘히 만드는 개념은 '분산 전원'이라고 불린다. 분산 전원이야말로 태양광발전소 같은 재생에너지의 특징이기도 하다. 원전이나 화력 같은 기존 에너지는 큰 규모의 땅과 설비가 필요하지만, 태양광은 패널만 있으면 전력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민성 광주에너지전환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해상 풍력단지처럼 커다란 대안도 중요하겠지만 도시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재생에너지의 소규모 분산 전원 역할을 활용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의 길은?

올여름 수도권에 내린 '역대급' 폭우, 유럽을 덮친 폭염과 가뭄. 기후 위기는 이제 막연한 위협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 됐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기업이 쓰는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RE100' 캠페인의 영향력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한 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취재진이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도 에너지 전환을 반대하지 않았다. 기후 위기라는 현실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지, 농어촌 희생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의 방향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의 답은 무엇일까. 최근 제정된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공영화 조례의 한 대목은 그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의견에 부합되고, 자연환경·생태계 및 생활환경과 조화되며,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지역사회에 환원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사업 공영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 3조 1항)

[연관 기사]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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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
    • 입력 2022-11-01 07:00:29
    • 수정2022-11-01 14:52:40
    취재K
<strong>화석 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쓰자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농어촌 지역에 집중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KBS는 최근 전남지역 농어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의 모순과 피해를 살펴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strong><br /><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을 가른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br /><strong>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 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strong><br />
2030년까지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한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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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이 겪는 여러 문제의 기원을 '압축 성장'에서 찾곤 한다. 민주주의든 경제 발전이든, 이른바 '선진국'들이 오랜 기간 걸쳐 이뤄낸 성과를 단기간에 따라잡으려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분야도 같은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탄소 중립'이나 '탈원전', '재생에너지' 등의 용어가 화두로 떠오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에너지 전환을 준비해 온 유럽 등과는 대조적이다.

실제 세계 각국의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은 평균치를 내도 10%가량인데, 우리나라는 5%가 되지 않는다. 뒤처진 만큼 급격한 변화가 요구된다. 세계적 기준을 따라가려면 급하게 뛰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넘어지는 일도 잦을 수밖에 없다. 지난 3차례의 기사에서 전한 것처럼 농어촌이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급격한 변화가 갖고 온 ‘압축 성장’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독일도 태양광에 농지 면적 감소…‘영농형 태양광’으로 공존 꾀해

비슷한 길을 먼저 밟은 국가들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재생에너지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1990년대 '탄소세'를 도입했고, '10만 가구 태양광 정책'을 통해 이른 시기부터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왔다. 2000년에는 재생에너지법을 제정했다. 2010년에는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문자 그대로 ‘에너지 전환’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목표치를 갈수록 높여 2030년까지 전력 수요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채운다는 계획도 내놨다.

진통이 없는 건 아니다. 독일도 현실적인 문제로 도시보다는 농지에 다수의 태양광 발전소를 세워야 했다. 경작지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농민 반발도 있었다. 베언하드 크리스켄 독일 농업인협회 사무총장은 "농지는 태양광발전소 등을 설치하기 최적 조건이어서 재생에너지 사업이 많이 추진되고 있다"라며 "농지 면적이 줄어드는 것은 독일 농업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해법 가운데 하나는 태양광 패널 아래에서 작물을 키우는 '영농형 태양광'이다. 농지 잠식을 막고 전력과 식량 생산의 공존을 꾀하는 방식이다. 실제 독일에서 영농형 태양광 실증 사업을 해 본 결과, 일조량 감소로 작물 수확량이 10%가량 줄어들긴 했다. 그러나 폭염이나 우박 같은 재해에는 오히려 더 강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독일의 한 영농형 태양광 업체 대표이사인 페터 슈룸 씨는 "땅과 농경지가 무한하지 않은 상황에서 에너지와 식량의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가능하면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독일 'KNE', 갈등 중재 전문 기관…지자체에는 갈등 해결 전문가

'영농형 태양광'이 기술적인 돌파구라면, 행정적인 장치도 존재한다. 독일에는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갈등을 중재하는 전문 기관이 존재한다. 이름은 '자연 보호와 에너지 전환 역량 강화센터', 줄여서 KNE다. 2016년 독일 환경부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여기에는 전문 교육을 마친 조정관 수십 명이 일한다.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주민, 농·어업인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갈등 전문 중개기관 ‘KNE’.
독일 KNE 조정관이 말하는 갈등 해결의 열쇳말은 '대화'다. 특히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단계의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티나 베어 KNE 다이얼로그 디자이너는 "주민 수용성을 성공적으로 얻는 방법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모든 당사자가 참여하고 대화하는 것"이라며 "KNE가 모든 갈등을 직접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독일은 지방자치단체에도 갈등 해결 전문가가 있다. 독일 지자체의 '지역 재생에너지 매니저'는 발전소의 입지 선정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 등까지 다양한 분야에 의견을 내는 역할을 한다. 그 의견이란 곧 지역민들의 생각이다. 지역의 여론과 사정을 사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토마스 리펏 독일 지역 재생에너지 매니저는 "갈등 예방을 위한 핵심 요소는 아주 간단하다"라며 "지방자치단체가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하고, 모두가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례를 우리나라에 단순 적용하기는 어렵다. 농지를 둘러싼 갈등의 경우, 독일 농민들은 땅을 소유한 경우가 많으나 우리나라 농민들은 대다수가 임차농이라는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특정 지역과 계층에만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식으로 전환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탄소 없는 섬' 목표 제주, 풍력발전 인허가권 가져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제주도는 재생에너지에 한해서는 '먼저 온 미래'다. 제주도는 2012년 일찌감치 '탄소 없는 섬'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8%까지 올라왔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제주 역시 현재도 풍력이나 태양광과 관련한 여러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풍력 발전단지 지구 지정제도를 도입한 제주.
그러나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인허가 제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제주의 경우 풍력발전에 한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가 내주는 발전사업 허가 권한을 제주특별자치도가 갖고 있다. 2007년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자치단체로 인허가권이 넘겨진 것이다. 제주도는 여기에 '풍력 발전단지 지구 지정 제도'를 만들어, 미리 입지를 정하고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놨다. 난개발을 막고 지역사회로 이익을 환원하자는 취지다. 현재 제주에서는 추자도에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와 관련해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제도가 얼마나 기능을 발휘할지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전남, 재생에너지 공영화 조례 전국 첫 제정

재생에너지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른 전라남도에서는 재생에너지의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의 조례가 지난 21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됐다. 이름은 '재생에너지 공영화와 공존을 위한 조례'다. 지자체와 공공기관, 지역사회가 지역의 재생에너지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공영성과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독일처럼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조항도 담겨 있다.

더 이상 농어촌을 파괴하는 형태로,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로 재생에너지 사업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과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문제는 민간 사업자가 아닌 지자체가 나서야 할 일인데, 이제까지 지자체는 주로 인허가를 중심으로 일했고 갈등 관리는 민간 사업자에게 맡겼다"라며 "앞으로는 지자체가 갈등 관리에 발 벗고 나서야 하며, 정부와 지자체가 사업과 입지 타당성을 검토하는 '계획 입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산 전원’ 노력의 한 사례로 고속도로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소가 꼽힌다.
땅값 탓만 하며 발전소를 모두 시골로 보낼 게 아니라, 대도시의 남는 땅이나 공장 지붕 같은 곳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최대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전기를 쓰는 지역의 부근에 발전소를 촘촘히 만드는 개념은 '분산 전원'이라고 불린다. 분산 전원이야말로 태양광발전소 같은 재생에너지의 특징이기도 하다. 원전이나 화력 같은 기존 에너지는 큰 규모의 땅과 설비가 필요하지만, 태양광은 패널만 있으면 전력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민성 광주에너지전환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해상 풍력단지처럼 커다란 대안도 중요하겠지만 도시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재생에너지의 소규모 분산 전원 역할을 활용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의 길은?

올여름 수도권에 내린 '역대급' 폭우, 유럽을 덮친 폭염과 가뭄. 기후 위기는 이제 막연한 위협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 됐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기업이 쓰는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RE100' 캠페인의 영향력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한 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취재진이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도 에너지 전환을 반대하지 않았다. 기후 위기라는 현실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지, 농어촌 희생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의 방향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의 답은 무엇일까. 최근 제정된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공영화 조례의 한 대목은 그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의견에 부합되고, 자연환경·생태계 및 생활환경과 조화되며,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지역사회에 환원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사업 공영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 3조 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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