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관리 중요해졌다지만…“방재 공무원 줄줄이 퇴사”

입력 2022.11.01 (08:01) 수정 2022.11.0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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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충북 괴산 지진 그리고 대구 동성로 화재까지.지난 주말, 연달아 이어진 재난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마음 편치 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올해는 유독 여러 재난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 울진에선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여의도 면적의 약 80배에 해당하는 산림이 불탔고, 여름엔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강남이 물에 잠겼습니다. 곧이어 태풍 '힌남노'로 포항의 한 아파트에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로 대형화하고 있는 자연재난과 산불, 폭발 등 사회재난에 대한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전문 인력의 필요성 역시 높아졌습니다. 이미 행정안전부와 개별 지자체는 재난관리를 담당하는 '방재안전 직렬' 공무원을 채용하고 있는데, 해당 공무원들 중 공직을 떠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동기 20여 명 중 4~5명만 남고 모두 퇴사"

경북의 한 시군 안전총괄 부서에 소속돼 방재안전 직렬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A씨. 지방직 공무원 선발 시험에 1년을 매달려 합격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자체 소속 방재 직렬 공무원 1명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이 굉장히 많습니다. 초반엔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산하에 재난안전관리본부가 있어서 그 본부 소속 직원만 해도 인원이 많은데, 지자체의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A씨에 따르면 5년 사이에 한 부서에서 근무하던 5명이 퇴사했습니다.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항상 현장으로 차출될 수 있다는 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순환근무도 거의 불가능해서 평생 같은 부서에만 있어야 합니다. 5년을 근무했는데, 결국 사직했습니다.

제가 시험에 붙었던 해, 경북 내 전체 방재안전 직렬에만 20여 명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동기는 4~5명 정도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과중한 업무량‧낮은 처우에 높은 퇴직률

지난 2013년 행정안전부는 방재안전직렬을 신설해 그 다음 해부터 해당 직렬 공무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재안전 분야 전담 공무원을 양성해 여러 재난에 대응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취지가 무색하게도 퇴직률은 상당했습니다. 지난 2017년 행정안전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재안전직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률은 11.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체 지방공무원 조기 퇴직률 0.8%에 비하면 14배나 많은 수치였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업무량과 낮은 처우가 꼽힙니다. 행정안전부가 전국 방재직 공무원 1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단 13%만이 '직무에 만족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직무만족도가 낮은 이유로는 '업무량 과중(39%)', '낮은 처우(23%)', '잦은 비상근무(1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채용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인사상 불이익도 존재했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실제 한 지방자치단체 방재안전 직렬 9급 공무원은 같은 시기에 채용된 다른 직렬 직원보다 10개월 더 늦게 승진한 사례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난관리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한 결과라고 비판합니다.

방기성 경운대 교수(전 국민안전처 안전정책실장)는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마다 정부는 재난관리 부서를 신설했지만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인력을 채워넣는 식으로 자리를 메우곤 했다." 면서 "재난 부서의 몸집은 불어났을지 몰라도 정작 전문 인력은 소수만 채용해 조직의 질적 팽창은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방 교수는 "방재안전 직렬의 정원을 늘리면 다른 직렬의 정원이 줄어 저항이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재직렬 인원은 소수로 계속 유지된다. 재난부서의 부족한 인력은 결국 순환 근무로 올라온 타 직렬 인원들로 채워지는 것"으로, "전문 포병으로 이뤄져야 할 포병부대에 보병들까지 배치한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재난 관련 조직의 질적 변화는 요원해진 상황. 재난관리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지침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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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 관리 중요해졌다지만…“방재 공무원 줄줄이 퇴사”
    • 입력 2022-11-01 08:01:08
    • 수정2022-11-01 08:22:40
    취재K

1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충북 괴산 지진 그리고 대구 동성로 화재까지.지난 주말, 연달아 이어진 재난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마음 편치 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올해는 유독 여러 재난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 울진에선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여의도 면적의 약 80배에 해당하는 산림이 불탔고, 여름엔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강남이 물에 잠겼습니다. 곧이어 태풍 '힌남노'로 포항의 한 아파트에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로 대형화하고 있는 자연재난과 산불, 폭발 등 사회재난에 대한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전문 인력의 필요성 역시 높아졌습니다. 이미 행정안전부와 개별 지자체는 재난관리를 담당하는 '방재안전 직렬' 공무원을 채용하고 있는데, 해당 공무원들 중 공직을 떠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동기 20여 명 중 4~5명만 남고 모두 퇴사"

경북의 한 시군 안전총괄 부서에 소속돼 방재안전 직렬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A씨. 지방직 공무원 선발 시험에 1년을 매달려 합격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자체 소속 방재 직렬 공무원 1명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이 굉장히 많습니다. 초반엔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산하에 재난안전관리본부가 있어서 그 본부 소속 직원만 해도 인원이 많은데, 지자체의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A씨에 따르면 5년 사이에 한 부서에서 근무하던 5명이 퇴사했습니다.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항상 현장으로 차출될 수 있다는 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순환근무도 거의 불가능해서 평생 같은 부서에만 있어야 합니다. 5년을 근무했는데, 결국 사직했습니다.

제가 시험에 붙었던 해, 경북 내 전체 방재안전 직렬에만 20여 명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동기는 4~5명 정도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과중한 업무량‧낮은 처우에 높은 퇴직률

지난 2013년 행정안전부는 방재안전직렬을 신설해 그 다음 해부터 해당 직렬 공무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재안전 분야 전담 공무원을 양성해 여러 재난에 대응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취지가 무색하게도 퇴직률은 상당했습니다. 지난 2017년 행정안전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재안전직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률은 11.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체 지방공무원 조기 퇴직률 0.8%에 비하면 14배나 많은 수치였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업무량과 낮은 처우가 꼽힙니다. 행정안전부가 전국 방재직 공무원 1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단 13%만이 '직무에 만족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직무만족도가 낮은 이유로는 '업무량 과중(39%)', '낮은 처우(23%)', '잦은 비상근무(1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채용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인사상 불이익도 존재했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실제 한 지방자치단체 방재안전 직렬 9급 공무원은 같은 시기에 채용된 다른 직렬 직원보다 10개월 더 늦게 승진한 사례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난관리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한 결과라고 비판합니다.

방기성 경운대 교수(전 국민안전처 안전정책실장)는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마다 정부는 재난관리 부서를 신설했지만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인력을 채워넣는 식으로 자리를 메우곤 했다." 면서 "재난 부서의 몸집은 불어났을지 몰라도 정작 전문 인력은 소수만 채용해 조직의 질적 팽창은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방 교수는 "방재안전 직렬의 정원을 늘리면 다른 직렬의 정원이 줄어 저항이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재직렬 인원은 소수로 계속 유지된다. 재난부서의 부족한 인력은 결국 순환 근무로 올라온 타 직렬 인원들로 채워지는 것"으로, "전문 포병으로 이뤄져야 할 포병부대에 보병들까지 배치한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재난 관련 조직의 질적 변화는 요원해진 상황. 재난관리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지침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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