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지하철, 이태원 떠올라”…‘밀집 불안’에 시달리는 시민들

입력 2022.11.02 (07:01) 수정 2022.11.02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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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6시 50분경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 안. 국회의사당역에서 당산역 방향으로 가는 객차 내 모습으로, 집중 퇴근 시간대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음에도 많은 승객들이 밀집해 탑승해 있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신승민 기자)지난달 31일 오후 6시 50분경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 안. 국회의사당역에서 당산역 방향으로 가는 객차 내 모습으로, 집중 퇴근 시간대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음에도 많은 승객들이 밀집해 탑승해 있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신승민 기자)

■ "가슴 눌리고 허리 꺾일 정도"…'이태원 데자뷔' 느끼는 승객들

"오늘도 출근길에 사람들이 많이 타서 가슴이 눌릴 정도였어요. 손잡이 잡고 겨우 버텨서 가는데, 이태원 사고 생각이 나더라고요. 나보다 체격이 작은 사람들은 더 심한 압박감을 느끼겠구나…. 승객들을 분산시켜 탑승케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봐요."
- 중년 남성 이모씨 / 어제(지난 1일) 출근길(9호선 여의도역)

"불안감이요? 지하철 탈 때 항상 느끼죠. 이태원 사고 현장처럼 비탈길은 아니더라도 사람에 밀려 들어가는 건 똑같잖아요. 더 이상 탑승할 공간이 없는데도 허리가 꺾일 정도로 밀고 들어오니까 '이태원 데자뷔'를 느낄 수밖에요. 열차 증편(增便)을 하든지, 맨 마지막에 탑승하려는 사람을 제지하든지,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회사원 김모씨 / 그제(지난달 31일) 퇴근길(9호선 국회의사당역)

출퇴근하기 위해, 나들이 가는 길에 남녀노소 수시로 이용하는 대중교통. 특히 해가 갈수록 행선지와 노선 구간이 다양화하는 서울 지하철은 수도권 시민 전체의 발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침저녁으로 승객이 붐빌 때면 '만원(滿員) 지하철'을 타는 것은 다반사. 때로는 제대로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해 숨이 찰 정도로 답답한 상황에서, 타고 내리는 인파에 떠밀려 승객 간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탑승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어진 공간'에 뒤늦게 밀고 들어오다 '끼임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데요.

최근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시민들은 익숙하게 여겼던 열차 내 '과밀(過密·인구 등이 한곳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것) 현상'을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에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에서, 이제는 '밀집(密集)의 정도가 지나치면 안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20분경,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여의도역 방향 승강장에 퇴근길 열차 탑승을 대기하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신승민 기자)지난달 31일 오후 6시 20분경,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여의도역 방향 승강장에 퇴근길 열차 탑승을 대기하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신승민 기자)

■ "밀치고, 피하고, 소리치고"…혼잡도 높은 '9호선' 출퇴근길

'2021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노선 가운데 9호선(개화역↔신논현역: 1단계 구간 기준)의 최대 혼잡도는 2019년 169%(여의도역→노량진역), 2020년 179%(노량진역→동작역), 2021년 185%(노량진역→동작역)였습니다. 혼잡도는 '여유(80% 이하)·보통(80%~130%)·주의(130%~150%)·혼잡(150% 이상)' 등 4단계로 나뉘는데, 9호선의 혼잡도는 근 3년간 최고 단계 기준을 초과한 상태입니다.

혼잡한 9호선 열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소회를 듣기 위해, 이틀에 걸쳐 당산역-국회의사당역-여의도역 구간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10분경, 퇴근 무렵 기자가 방문한 9호선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는 직장인들이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당산역과 그 반대편 여의도역 방향 열차를 타기 위해 양 옆으로 늘어선 승객들의 줄은 승강장 한복판을 가로질러 서로 맞닿을 듯이 길었는데요.

이윽고 여의도역 방향 일반 열차가 도착하자 시민들의 탑승이 시작됐고, 금세 객차 안은 '만원(滿員)'이 됐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간신히 차내에 들어선 몇몇 승객들은 밀려나지 않기 위해 출입문 쪽 긴 손잡이를 잡거나 찻간 벽면을 짚은 채로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40분경,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여의도역 방향 일반 열차가 도착하자 승강장에 줄지어 선 시민들은 차례대로 탑승했다. 사진은 열차 출발 직전 객차 안이 만원으로 붐비는 장면, 차내 공간이 부족해 나중에 탄 승객들은 겨우 서 있는 모습이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신승민 기자)지난달 31일 오후 6시 40분경,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여의도역 방향 일반 열차가 도착하자 승강장에 줄지어 선 시민들은 차례대로 탑승했다. 사진은 열차 출발 직전 객차 안이 만원으로 붐비는 장면, 차내 공간이 부족해 나중에 탄 승객들은 겨우 서 있는 모습이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신승민 기자)

■ 승객들, 일상적으로 "압박감 느낀다"

승강장에서 만난 승객 손모씨는 "열차 안이 너무 복잡해 일부러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다닌다"며 "승객들끼리 서로 '밀지 말라'고 소리치는 걸 보고 '사람이 더 몰리면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80대 할머니 이모씨는 "균형을 잡지 못해 출입문 쪽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데, 차 안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마저도 힘들다"며 "그래서 객차에 사람이 붐비면 탈 만한 공간이 있어도 보내고, 승강장에서 기다렸다가 간다"고 말했습니다.

남녀 직장 동료 고모씨와 구모씨는 "사람이 너무 밀집한 어느날인가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한 승객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승객 과밀에 답답함을 더 느끼게 되는 것 같다"며 "늦게 탑승하는 사람들은 '안에는 공간이 아직 남아 있다'고 여기고 서 있는 승객들을 계속 밀치는데 그때마다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오후 7시경 당산역에서 만난 나모씨는 "이번 이태원 사고를 보면서 지하철이 많이 걱정됐다"며 "키가 조그만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9호선 탈 때마다 사람이 붐비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중간에 내린다더라. 답답함을 많이 느껴 잠시 앉았다 쉬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손수레에 짐을 싣고 가던 할머니 신모씨는 "9호선에서는 사람이 특히 많은 게 '급행' 열차다. 출퇴근 시간 때 급행 열차는 아예 탈 생각도 안 한다"며 "좀 늦겠다 싶으니 다음에 오는 차를 안 기다리고 새치기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내릴 때 복잡해 서로 힘든데도 무조건 밀고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 "다른 노선, 만원 버스도 '소싸움 하듯' 아찔…외국의 '퍼스널 스페이스' 중요성 느껴져"

물론 '승객 과밀'은 비단 9호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지하철 노선과 버스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현상인데요. 할아버지 승객 최모씨는 "1·2·3·5호선도 열차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을 때가 있다"며 "조금 있다가 가면 될 것을, 백팩 멘 등으로 막 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들어찬 ‘만원 버스’에 승객들이 잇따라 탑승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지하철뿐 아니라 (사람이 많은) 버스 안에서도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고 안전 문제를 지적했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 출처=연합뉴스)이미 사람들이 많이 들어찬 ‘만원 버스’에 승객들이 잇따라 탑승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지하철뿐 아니라 (사람이 많은) 버스 안에서도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고 안전 문제를 지적했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 출처=연합뉴스)

한 네티즌은 지난달 30일 트위터에 쓴 글에서 "1~2호선으로 출퇴근하면서 가끔 폐가 눌린 것처럼 숨이 잘 안 쉬어질 때가 있었다"며 "그때는 '이게 직장인의 출퇴근 길이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진짜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이번 이태원 사고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 5~10분 간격으로 다음 열차가 금방 들어오는데 꼭 이번 열차를 타겠다고 소싸움 하듯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며 "문만 닫히면 끝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의 안전을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이제 경각심 좀 가졌으면 좋겠다"고 털어놨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글을 쓴 네티즌은 "예전에는 광역버스 안에서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며 "외국을 다녀와 보니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사람의 신체를 둘러싼 개인 공간 영역)'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됐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인구 밀집도가 높은 편이기도 하지만, 대중교통 안에서 승객이 많으면 다른 사람을 밀거나 어깨를 치고 가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게 더 문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전문가 "'인구 편중'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진 우리…'재난 상황'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지자체 해결 노력해야"

전문가들은 대중교통 이용 시 승객 과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밀집 현상'에 대해, 관할 당국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 문제'로 경각심을 가지고 '제도적 대안 마련이나 각자의 생활 패턴 변화'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인구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그 안에서도 교통 등이 발달해 한 공간에 운집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우리는 어느새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많이 익숙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재난 상황으로 이어지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만큼,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고민이 동시에 필요한 문제"라고 조언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저녁,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역 부근 골목길. 몇몇 언론 기자들의 찰영 외에, 경찰의 삼엄한 현장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신승민 기자)지난달 31일 저녁,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역 부근 골목길. 몇몇 언론 기자들의 찰영 외에, 경찰의 삼엄한 현장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신승민 기자)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만원 지하철 등 현장은 실제로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공포감이 들 정도다. 일상이 되다보니 (그동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심각성을 느끼고 해결에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한편 앞서 9호선 각 역 승강장에서 인터뷰에 응한 승객들은 '객차 내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 관할 기관에서 '열차 증편 또는 일명 커트맨(과거 푸시맨과 달리, 무리한 열차 탑승을 막고 승강장 질서 유지에 나서는 안전 요원) 배치 강화'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주길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대책이 있는지를 묻는 KBS의 질의에 '서울시메트로9호선' 측은, "혼잡도 완화를 위해 2024년부터 운행 열차(6량) 대수를 45개에서 53개 편성으로 8개 더 늘릴 예정이다. 열차는 현재 제작 중"이라면서 "또한 출퇴근 혼잡 및 승객 안전 관리를 위해 실시간 CCTV 모니터링, 직원 순회 점검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이태원 사고처럼 인파가 몰리는 대규모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서울시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각 역 안전요원 배치' '주요 역 열차 무정차 통과' '추가 열차 투입 및 연장 운행'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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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붐비는 지하철, 이태원 떠올라”…‘밀집 불안’에 시달리는 시민들
    • 입력 2022-11-02 07:01:02
    • 수정2022-11-02 07: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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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6시 50분경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 안. 국회의사당역에서 당산역 방향으로 가는 객차 내 모습으로, 집중 퇴근 시간대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음에도 많은 승객들이 밀집해 탑승해 있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신승민 기자)
■ "가슴 눌리고 허리 꺾일 정도"…'이태원 데자뷔' 느끼는 승객들

"오늘도 출근길에 사람들이 많이 타서 가슴이 눌릴 정도였어요. 손잡이 잡고 겨우 버텨서 가는데, 이태원 사고 생각이 나더라고요. 나보다 체격이 작은 사람들은 더 심한 압박감을 느끼겠구나…. 승객들을 분산시켜 탑승케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봐요."
- 중년 남성 이모씨 / 어제(지난 1일) 출근길(9호선 여의도역)

"불안감이요? 지하철 탈 때 항상 느끼죠. 이태원 사고 현장처럼 비탈길은 아니더라도 사람에 밀려 들어가는 건 똑같잖아요. 더 이상 탑승할 공간이 없는데도 허리가 꺾일 정도로 밀고 들어오니까 '이태원 데자뷔'를 느낄 수밖에요. 열차 증편(增便)을 하든지, 맨 마지막에 탑승하려는 사람을 제지하든지,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회사원 김모씨 / 그제(지난달 31일) 퇴근길(9호선 국회의사당역)

출퇴근하기 위해, 나들이 가는 길에 남녀노소 수시로 이용하는 대중교통. 특히 해가 갈수록 행선지와 노선 구간이 다양화하는 서울 지하철은 수도권 시민 전체의 발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침저녁으로 승객이 붐빌 때면 '만원(滿員) 지하철'을 타는 것은 다반사. 때로는 제대로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해 숨이 찰 정도로 답답한 상황에서, 타고 내리는 인파에 떠밀려 승객 간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탑승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어진 공간'에 뒤늦게 밀고 들어오다 '끼임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데요.

최근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시민들은 익숙하게 여겼던 열차 내 '과밀(過密·인구 등이 한곳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것) 현상'을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에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에서, 이제는 '밀집(密集)의 정도가 지나치면 안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20분경,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여의도역 방향 승강장에 퇴근길 열차 탑승을 대기하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신승민 기자)
■ "밀치고, 피하고, 소리치고"…혼잡도 높은 '9호선' 출퇴근길

'2021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노선 가운데 9호선(개화역↔신논현역: 1단계 구간 기준)의 최대 혼잡도는 2019년 169%(여의도역→노량진역), 2020년 179%(노량진역→동작역), 2021년 185%(노량진역→동작역)였습니다. 혼잡도는 '여유(80% 이하)·보통(80%~130%)·주의(130%~150%)·혼잡(150% 이상)' 등 4단계로 나뉘는데, 9호선의 혼잡도는 근 3년간 최고 단계 기준을 초과한 상태입니다.

혼잡한 9호선 열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소회를 듣기 위해, 이틀에 걸쳐 당산역-국회의사당역-여의도역 구간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10분경, 퇴근 무렵 기자가 방문한 9호선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는 직장인들이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당산역과 그 반대편 여의도역 방향 열차를 타기 위해 양 옆으로 늘어선 승객들의 줄은 승강장 한복판을 가로질러 서로 맞닿을 듯이 길었는데요.

이윽고 여의도역 방향 일반 열차가 도착하자 시민들의 탑승이 시작됐고, 금세 객차 안은 '만원(滿員)'이 됐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간신히 차내에 들어선 몇몇 승객들은 밀려나지 않기 위해 출입문 쪽 긴 손잡이를 잡거나 찻간 벽면을 짚은 채로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40분경,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 여의도역 방향 일반 열차가 도착하자 승강장에 줄지어 선 시민들은 차례대로 탑승했다. 사진은 열차 출발 직전 객차 안이 만원으로 붐비는 장면, 차내 공간이 부족해 나중에 탄 승객들은 겨우 서 있는 모습이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신승민 기자)
■ 승객들, 일상적으로 "압박감 느낀다"

승강장에서 만난 승객 손모씨는 "열차 안이 너무 복잡해 일부러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다닌다"며 "승객들끼리 서로 '밀지 말라'고 소리치는 걸 보고 '사람이 더 몰리면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80대 할머니 이모씨는 "균형을 잡지 못해 출입문 쪽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데, 차 안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마저도 힘들다"며 "그래서 객차에 사람이 붐비면 탈 만한 공간이 있어도 보내고, 승강장에서 기다렸다가 간다"고 말했습니다.

남녀 직장 동료 고모씨와 구모씨는 "사람이 너무 밀집한 어느날인가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한 승객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승객 과밀에 답답함을 더 느끼게 되는 것 같다"며 "늦게 탑승하는 사람들은 '안에는 공간이 아직 남아 있다'고 여기고 서 있는 승객들을 계속 밀치는데 그때마다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오후 7시경 당산역에서 만난 나모씨는 "이번 이태원 사고를 보면서 지하철이 많이 걱정됐다"며 "키가 조그만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9호선 탈 때마다 사람이 붐비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중간에 내린다더라. 답답함을 많이 느껴 잠시 앉았다 쉬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손수레에 짐을 싣고 가던 할머니 신모씨는 "9호선에서는 사람이 특히 많은 게 '급행' 열차다. 출퇴근 시간 때 급행 열차는 아예 탈 생각도 안 한다"며 "좀 늦겠다 싶으니 다음에 오는 차를 안 기다리고 새치기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내릴 때 복잡해 서로 힘든데도 무조건 밀고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 "다른 노선, 만원 버스도 '소싸움 하듯' 아찔…외국의 '퍼스널 스페이스' 중요성 느껴져"

물론 '승객 과밀'은 비단 9호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지하철 노선과 버스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현상인데요. 할아버지 승객 최모씨는 "1·2·3·5호선도 열차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을 때가 있다"며 "조금 있다가 가면 될 것을, 백팩 멘 등으로 막 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들어찬 ‘만원 버스’에 승객들이 잇따라 탑승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지하철뿐 아니라 (사람이 많은) 버스 안에서도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고 안전 문제를 지적했다. (초상권 보호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진 출처=연합뉴스)
한 네티즌은 지난달 30일 트위터에 쓴 글에서 "1~2호선으로 출퇴근하면서 가끔 폐가 눌린 것처럼 숨이 잘 안 쉬어질 때가 있었다"며 "그때는 '이게 직장인의 출퇴근 길이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진짜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이번 이태원 사고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 5~10분 간격으로 다음 열차가 금방 들어오는데 꼭 이번 열차를 타겠다고 소싸움 하듯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며 "문만 닫히면 끝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의 안전을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이제 경각심 좀 가졌으면 좋겠다"고 털어놨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글을 쓴 네티즌은 "예전에는 광역버스 안에서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며 "외국을 다녀와 보니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사람의 신체를 둘러싼 개인 공간 영역)'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됐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인구 밀집도가 높은 편이기도 하지만, 대중교통 안에서 승객이 많으면 다른 사람을 밀거나 어깨를 치고 가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게 더 문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전문가 "'인구 편중'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진 우리…'재난 상황'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지자체 해결 노력해야"

전문가들은 대중교통 이용 시 승객 과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밀집 현상'에 대해, 관할 당국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 문제'로 경각심을 가지고 '제도적 대안 마련이나 각자의 생활 패턴 변화'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인구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그 안에서도 교통 등이 발달해 한 공간에 운집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우리는 어느새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많이 익숙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재난 상황으로 이어지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만큼,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고민이 동시에 필요한 문제"라고 조언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저녁,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역 부근 골목길. 몇몇 언론 기자들의 찰영 외에, 경찰의 삼엄한 현장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신승민 기자)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만원 지하철 등 현장은 실제로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공포감이 들 정도다. 일상이 되다보니 (그동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심각성을 느끼고 해결에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한편 앞서 9호선 각 역 승강장에서 인터뷰에 응한 승객들은 '객차 내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 관할 기관에서 '열차 증편 또는 일명 커트맨(과거 푸시맨과 달리, 무리한 열차 탑승을 막고 승강장 질서 유지에 나서는 안전 요원) 배치 강화'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주길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대책이 있는지를 묻는 KBS의 질의에 '서울시메트로9호선' 측은, "혼잡도 완화를 위해 2024년부터 운행 열차(6량) 대수를 45개에서 53개 편성으로 8개 더 늘릴 예정이다. 열차는 현재 제작 중"이라면서 "또한 출퇴근 혼잡 및 승객 안전 관리를 위해 실시간 CCTV 모니터링, 직원 순회 점검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이태원 사고처럼 인파가 몰리는 대규모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서울시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각 역 안전요원 배치' '주요 역 열차 무정차 통과' '추가 열차 투입 및 연장 운행'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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