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9.19 군사합의’ 운명은?

입력 2022.11.04 (16:52) 수정 2022.11.04 (16:5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현지시간 3일 오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연례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개최됐습니다. 매년 한미 국방장관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안보 상황을 평가하고, 공동 대책을 수립하는 자리입니다.

통상적으로 회의 뒤에는 두 장관이 공동 성명을 발표합니다. 성명의 앞부분에는 주요 안보 상황에 대한 평가가 언급됩니다. 이번 성명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지난해 성명과 비교해 볼 때 '9.19 군사합의'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양 장관은 한반도에서의 정전협정,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해 남북 군사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조치들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 전쟁 위험 감소와 접경지역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였다고 평가하였다.

-53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2021년 12월 2일)

이종섭 장관은 북한의 반복적인 방사포 사격 등「9·19 군사합의위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양 장관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방사포 및 해안포 사격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 및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부과할 것을 촉구하였다.

-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2022년 11월 4일)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에 기여하는 존재였다가, 1년 만에 우려를 자아내는 대상이 됐습니다.

■ "북한, 지난 한 달간 9.19 위반 '최소' 12번"

'9.19 합의' 위반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14일입니다. 이날 새벽 시간대 북한이 황해도와 강원도에서 동·서해상으로 포병 사격을 했는데, 군 당국이 공식적으로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발표했습니다.


9.19 군사합의의 목적은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접경 지역에 일종의 완충 구역을 설정해 두고 그곳에서의 군사 행위를 금지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쏜 포가 이 완충 구역 안으로 떨어지면서 합의를 위반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어젯밤(3일)까지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포 사격과 NLL 이남을 겨냥한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이어갔고, 합의 위반 횟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달 14일 이전까지 국방부가 공식 인정했던 북한의 합의 위반 행위는 2건 (2019년 11월 23일 창린도 해안포 사격, 2020년 5월 3일 중부전선 GP 총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4주 사이 합의 위반 횟수가 12차례까지 급증한 것입니다. 군은 이 12차례도 '공식'이 아닌 '최소' 횟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9.19 합의를 맺었던 지난 정권과 현 정권 간 해석의 차이가 읽히는 대목인데요. 현 정권에서는 포 사격 등이 아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도 9.19 합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공식' 대신 '최소'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군사합의 '파기'되나?..."파기 선언은 다른 문제"

북한이 잇달아 합의를 위반하고 있는 만큼 합의가 유명무실하고, 더 나아가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합의서를 정의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9.19 합의'가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라고 평가합니다. 다만 파기를 선언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말합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파기를 선언하게 되면 북한이 위험한 도발을 하더라도 그에 대해 비난할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며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게끔 자제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서도 9.19 합의가 준수돼야 한다는 요구가 아직 있고, 과거의 합의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는 것도 대외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설 전 육군 군사연구소장도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북한이 9.19 합의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 것은 전략적 포석이 있을 것"이라며 "상황이 바뀌면 다시 9.19 합의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남북 간) 한 번 약속해놓으면, 정권이 바뀌거나 상황이 바뀌더라도 같은 틀에 따라 남북 관계를 재조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인포그래픽:김서린 / 대문사진:박수연)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1년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9.19 군사합의’ 운명은?
    • 입력 2022-11-04 16:52:07
    • 수정2022-11-04 16:58:06
    취재K

현지시간 3일 오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연례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개최됐습니다. 매년 한미 국방장관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안보 상황을 평가하고, 공동 대책을 수립하는 자리입니다.

통상적으로 회의 뒤에는 두 장관이 공동 성명을 발표합니다. 성명의 앞부분에는 주요 안보 상황에 대한 평가가 언급됩니다. 이번 성명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지난해 성명과 비교해 볼 때 '9.19 군사합의'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양 장관은 한반도에서의 정전협정,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해 남북 군사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조치들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 전쟁 위험 감소와 접경지역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였다고 평가하였다.

-53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2021년 12월 2일)

이종섭 장관은 북한의 반복적인 방사포 사격 등「9·19 군사합의위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양 장관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방사포 및 해안포 사격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 및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부과할 것을 촉구하였다.

-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2022년 11월 4일)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에 기여하는 존재였다가, 1년 만에 우려를 자아내는 대상이 됐습니다.

■ "북한, 지난 한 달간 9.19 위반 '최소' 12번"

'9.19 합의' 위반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14일입니다. 이날 새벽 시간대 북한이 황해도와 강원도에서 동·서해상으로 포병 사격을 했는데, 군 당국이 공식적으로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발표했습니다.


9.19 군사합의의 목적은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접경 지역에 일종의 완충 구역을 설정해 두고 그곳에서의 군사 행위를 금지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쏜 포가 이 완충 구역 안으로 떨어지면서 합의를 위반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어젯밤(3일)까지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포 사격과 NLL 이남을 겨냥한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이어갔고, 합의 위반 횟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달 14일 이전까지 국방부가 공식 인정했던 북한의 합의 위반 행위는 2건 (2019년 11월 23일 창린도 해안포 사격, 2020년 5월 3일 중부전선 GP 총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4주 사이 합의 위반 횟수가 12차례까지 급증한 것입니다. 군은 이 12차례도 '공식'이 아닌 '최소' 횟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9.19 합의를 맺었던 지난 정권과 현 정권 간 해석의 차이가 읽히는 대목인데요. 현 정권에서는 포 사격 등이 아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도 9.19 합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공식' 대신 '최소'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군사합의 '파기'되나?..."파기 선언은 다른 문제"

북한이 잇달아 합의를 위반하고 있는 만큼 합의가 유명무실하고, 더 나아가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합의서를 정의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9.19 합의'가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라고 평가합니다. 다만 파기를 선언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말합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파기를 선언하게 되면 북한이 위험한 도발을 하더라도 그에 대해 비난할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며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게끔 자제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서도 9.19 합의가 준수돼야 한다는 요구가 아직 있고, 과거의 합의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는 것도 대외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설 전 육군 군사연구소장도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북한이 9.19 합의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 것은 전략적 포석이 있을 것"이라며 "상황이 바뀌면 다시 9.19 합의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남북 간) 한 번 약속해놓으면, 정권이 바뀌거나 상황이 바뀌더라도 같은 틀에 따라 남북 관계를 재조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인포그래픽:김서린 / 대문사진:박수연)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