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샹젤리제에 선보인 ‘과부의 눈물’…한국 영화 ‘찐팬’을 만나다

입력 2022.11.0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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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한 복합상영관을 빌려 열리는 <파리한국영화제>. 아직 코로나 팬데믹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만 명 넘는 프랑스 영화팬들이 다녀갈 정도로 코로나 이전의 인기를 회복했다. 올해로 벌써 17회를 맞은 파리한국영화제, 초창기에는 프랑스 교민과 아시아 변방 영화에 눈을 뜬 소수의 프랑스 영화팬들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한국 영화는 이른바 요즘 가장 핫한 주류 영화로 대접받으며 다양한 프랑스 영화팬들이 다녀가는 영화제로 발돋움했다.

제 17회 파리한국영화제 공식 포스터제 17회 파리한국영화제 공식 포스터

영화제가 개최된 샹젤리제 〈퓌블리시스〉 영화관 안과 밖의 모습영화제가 개최된 샹젤리제 〈퓌블리시스〉 영화관 안과 밖의 모습

10월 25일 시작해 8일간 진행된 영화제엔 모두 68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됐고 개막작 <인생은 아름다워>와 폐막작 <행복의 나라>는 물론, <자백> <둠둠> <외계+인 1부> <비상선언> 등은 연일 매진 사례를 이어가며 프랑스에서 한국 영화의 높은 인기를 확인했다. 폐막일에 맞춰 열린 임상수 감독과의 만남 자리에도 수많은 프랑스 영화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에서 취재진의 호기심을 끈 것은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의 <과부의 눈물 (The Widow, 1955)>과 이후 한국 여성감독의 계보를 이은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 (1962)> 등 한국인들에게도 생소한 고전 영화가 올려진 것이다. 아니 프랑스인들이 이런 영화를 왜 보지? 영화제 측은 한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겠다는 좌우명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영화를 누가 볼까 의아했다.

영화 〈과부의 눈물〉 상영 후 관객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영화 〈과부의 눈물〉 상영 후 관객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국내 극장에서도 단 한 번 올려졌다는 영화 <과부의 눈물>에는 약 50여 명,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에는 100명 남짓한 관객들이 찾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일찌감치 한국 영화에 눈을 뜬 프랑스 영화팬들로 한국의 고전 영화, 그것도 초창기 여성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어 영화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제가 거듭하면서 이제는 파리한국영화제에 올릴 작품들을 순수 프랑스인들이 선택한다는 점이었다.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면서 자원봉사자로서 파리한국영화제의 수석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프랑스인 다비드 트레들러 씨를 만났다. 그는 10년 전 이 영화제에 관객으로 왔다가 한국 영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곧바로 ‘한국 영화제에서 일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해 영화제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파리한국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다비드 트레들러파리한국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다비드 트레들러

다비드 트레들러씨는 취재진에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있기 전 한국의 영화 역사 일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프랑스인은 영화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익숙하다”고 말하는 트레들러씨는 일반 프랑스 영화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화를 가져오는 것이 영화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고 이는 다양한 관심사로 퍼져나가는 연쇄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제가 당장 유행하는 영화를 너머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균형과 조화는 문화의 지속성에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음악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문화상품이 됐다. 최근 한류 행사는 더는 ‘한국인 친구에 이끌려오는 행사’가 아니고 ‘남녀노소 다양한 현지인들이 스스로 찾아와 그들의 방식으로 즐기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관객과의 만남 행사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관객과의 만남 행사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한류를 알리는 것’이 아니고 한류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 문화를 그들이 알아서 즐기도록 돕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 대세가 된 BTS와 봉준호 영화는 알리지 않아도 알아서 본다. 한국 문화의 '찐팬'들이 싫증이 나지 않도록 우리의 다양한 콘텐츠를 공급해주고 그들이 스스로 갖고 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부의 눈물> 상영 후 만난 관객 기욤 보쿠씨는 이런 ‘충성스러운’ 팬 중 한 명이다. 그는 영화제의 모든 영화를 관람하면서 모르던 분야의 장르를 발견해가는 것이 큰 기쁨이라며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제 관련 인스타그램 팬 계정을 개설해 무임 홍보대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료조사:지다해

파리한국영화제 폐막식에서 주최자와 자원봉사자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파리한국영화제 폐막식에서 주최자와 자원봉사자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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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샹젤리제에 선보인 ‘과부의 눈물’…한국 영화 ‘찐팬’을 만나다
    • 입력 2022-11-05 14:12:23
    특파원 리포트

매년 가을,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한 복합상영관을 빌려 열리는 <파리한국영화제>. 아직 코로나 팬데믹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만 명 넘는 프랑스 영화팬들이 다녀갈 정도로 코로나 이전의 인기를 회복했다. 올해로 벌써 17회를 맞은 파리한국영화제, 초창기에는 프랑스 교민과 아시아 변방 영화에 눈을 뜬 소수의 프랑스 영화팬들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한국 영화는 이른바 요즘 가장 핫한 주류 영화로 대접받으며 다양한 프랑스 영화팬들이 다녀가는 영화제로 발돋움했다.

제 17회 파리한국영화제 공식 포스터
영화제가 개최된 샹젤리제 〈퓌블리시스〉 영화관 안과 밖의 모습
10월 25일 시작해 8일간 진행된 영화제엔 모두 68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됐고 개막작 <인생은 아름다워>와 폐막작 <행복의 나라>는 물론, <자백> <둠둠> <외계+인 1부> <비상선언> 등은 연일 매진 사례를 이어가며 프랑스에서 한국 영화의 높은 인기를 확인했다. 폐막일에 맞춰 열린 임상수 감독과의 만남 자리에도 수많은 프랑스 영화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에서 취재진의 호기심을 끈 것은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의 <과부의 눈물 (The Widow, 1955)>과 이후 한국 여성감독의 계보를 이은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 (1962)> 등 한국인들에게도 생소한 고전 영화가 올려진 것이다. 아니 프랑스인들이 이런 영화를 왜 보지? 영화제 측은 한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겠다는 좌우명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영화를 누가 볼까 의아했다.

영화 〈과부의 눈물〉 상영 후 관객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국내 극장에서도 단 한 번 올려졌다는 영화 <과부의 눈물>에는 약 50여 명,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에는 100명 남짓한 관객들이 찾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일찌감치 한국 영화에 눈을 뜬 프랑스 영화팬들로 한국의 고전 영화, 그것도 초창기 여성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어 영화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제가 거듭하면서 이제는 파리한국영화제에 올릴 작품들을 순수 프랑스인들이 선택한다는 점이었다.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면서 자원봉사자로서 파리한국영화제의 수석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프랑스인 다비드 트레들러 씨를 만났다. 그는 10년 전 이 영화제에 관객으로 왔다가 한국 영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곧바로 ‘한국 영화제에서 일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해 영화제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파리한국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다비드 트레들러
다비드 트레들러씨는 취재진에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있기 전 한국의 영화 역사 일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프랑스인은 영화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익숙하다”고 말하는 트레들러씨는 일반 프랑스 영화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화를 가져오는 것이 영화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고 이는 다양한 관심사로 퍼져나가는 연쇄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제가 당장 유행하는 영화를 너머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균형과 조화는 문화의 지속성에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음악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문화상품이 됐다. 최근 한류 행사는 더는 ‘한국인 친구에 이끌려오는 행사’가 아니고 ‘남녀노소 다양한 현지인들이 스스로 찾아와 그들의 방식으로 즐기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관객과의 만남 행사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한류를 알리는 것’이 아니고 한류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 문화를 그들이 알아서 즐기도록 돕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 대세가 된 BTS와 봉준호 영화는 알리지 않아도 알아서 본다. 한국 문화의 '찐팬'들이 싫증이 나지 않도록 우리의 다양한 콘텐츠를 공급해주고 그들이 스스로 갖고 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부의 눈물> 상영 후 만난 관객 기욤 보쿠씨는 이런 ‘충성스러운’ 팬 중 한 명이다. 그는 영화제의 모든 영화를 관람하면서 모르던 분야의 장르를 발견해가는 것이 큰 기쁨이라며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제 관련 인스타그램 팬 계정을 개설해 무임 홍보대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료조사:지다해

파리한국영화제 폐막식에서 주최자와 자원봉사자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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