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신호에도 “모른다”는 미 연준 의장

입력 2022.11.06 (08:01) 수정 2022.11.0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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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4차례 연속 0.75%P 자이언트 스텝으로 인상해 연 3.75~4.00%로 올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나라 기준금리보다 1%P 앞서게 됐죠. 파월 연준 의장은 한술 더 떠서 “최종금리 수준은 지난번 예상한 것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연 5% 이상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물가를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겁니다.

■ 경기침체가 올지 누구도 모른다?

짧은 기간에 금리를 많이 올리면 당연히 경기는 하강합니다. 얼마나 떨어지느냐의 문제인데, 시장에선 대체로 경기침체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준 의장은 '경기침체'를 자신의 입으로 인정하기 싫은가 봅니다. 파월 의장은 경기침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누구도 경기침체가 올지 안 올지 알지 못한다"면서 "경기침체가 온다면 얼마나 심할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시간 2일, 파월 미 연준 의장 4연속 자이언트 스텝 기준금리 인상 뒤 기자회견(AFP=연합)현지 시간 2일, 파월 미 연준 의장 4연속 자이언트 스텝 기준금리 인상 뒤 기자회견(AFP=연합)

파월 의장의 말처럼 과연 누구도 경기침체가 올지 알 수 없을까요? 적어도 미 연준 안에는 경기침체 신호가 보이는지, 온다면 언제 오는지를 분석해내고 파악해 내는 많은 고급 인력들이 모여있는데도 말이죠.

사실 미국은 기술적 의미에서 경기침체에 이미 빠졌었죠. 지난 1·2분기 GDP성장률이 각각 -1.6%, -0.6% 역성장을 보이며 '경기침체'라는 단어가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실업률은 3%대로 여전히 완전고용에 가깝게 안정적이고 구인건수도 한달 1,000만 건 이상으로 시장 전망보다 더 많이 일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3분기 개인소비는 2분기 2%보다는 증가폭이 둔화됐지만 1.4% 증가하며 여전히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지금 경기침체가 왔다고 하기엔 고용과 소비에서 지표상 양호한 게 보입니다.

미국에선 경기침체를 전미경제연구소, NBER 이라는 곳에서 공식적으로 판단합니다. 단순히 GDP 성장률 숫자만 보는 게 아니라 실업률, 개인 소득·소비, 산업생산과 무역수지, 경기 후퇴의 깊이·범위·지속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경기침체 진입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선 경기침체 시작 지점이 아니라 지나고 난 뒤에야 '경기침체' 판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지나고 난 뒤에 경기침체를 판단하면 정부나 금융기관, 기업 심지어 개인들에게도 의미가 없죠. 미리 위기를 알고 있어야 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기침체가 언제 오는지를 알아내려고 저마다 분석을 하고, 이번처럼 파월 미 연준 의장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 곳곳에 나타나는 경기침체 신호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파월 의장은 정말로 경기침체 시기를 "모르겠다"고 할 만큼 판단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적어도 경기침체로 보이는 각종 신호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경제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는 여러가지 지표가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게 바로 장단기 국채 사이의 금리 역전 현상입니다.

10년짜리 장기국채는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기 상황에서는 2년이나 3개월물 국채보다 수익률이 높아야겠죠. 그래야 돈이 몰릴테니까요. 그런데 시장에서 앞으로 경기가 침체된다고 예상하면 10년물 수익률은 경기침체를 반영해서 하락합니다. 대신 단기물인 3개월물과 2년물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치솟게 되고 이게 역전되는 순간이 오는데, 미국 국채시장을 보면 장단기 금리가 역전 된 뒤에 항상 경기침체가 나타났다는 거죠.


위 그래프에서 보면 세로로 음영된 구간이 경기침체 구간입니다. 1991년 걸프전 위기, 2001년 닷컴버블 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경기침체 구간입니다. 파란색은 10년물과 2년물, 붉은색은 10년물과 3개월물 국채 금리 차이인데, 모두 공통적으로 경기침체 몇달 전 두 금리간 역전이 발생해 마이너스로 내려간 게 눈에 띕니다.

바로 직전인 2020년 1월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도 2019년 5월 10년물과 3개월물 국채 금리가 역전되기 시작해 9월 3일 최고 -0.51%까지 벌어졌습니다. 2년물도 잠깐이긴 하지만 역전됐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 당시 경기침체 때부터 지금까지 10년물과 2년물 장단기 금리역전 발생 뒤 경기침체까지 걸린 간을 보면 짧게는 7개월, 평균적으로 1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이번 장단기금리 역전 시기에 대입할 경우 지난 7월 10년물과 2년물간 금리 역전이 발생했으니까 빠르면 내년 2월, 평균으로 보면 내년 12월에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는 얘깁니다.

뉴욕타임스는 1960년대 이후 10년물과 3개월물간 국채 금리가 역전된 뒤 6~15개월 안에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분석대로라면 지난달 10년-3개월 국채금리 역전이 발생했으니까 이르면 내년 4월, 늦어도 2024년 1월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70년간 경기침체의 평균 기간은 10개월이었습니다. 물론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과거에 대입해보면 그렇다는 거죠.

■ 경기선행지수도 경기침체 경고등

또 하나의 지표는 미국 콘퍼런스보드에서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입니다. 향후 경기를 전망하는 지수로 고용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실업보험 청구건수와 제조업 신규수주, 주택착공 허가 등 10개 항목을 기초로 지수를 만듭니다. 경제학자들이 보는 주요 지표는 아니지만 특히 금리인상 시기에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서 이코노미스트들이 인용하곤 하는 지표입니다.

미국의 9월 경기선행지수는 전달보다 0.4% 하락했는데 6개월 연속입니다. 과거 추세를 보면 경기선행지수가 이 정도 기간 하락하면 대부분 이후 언젠가 경기침체가 닥쳤습니다.


위 그래프는 경기선행지수를 기초로 한 경기선행지수 6개월 증가율인데, 콘퍼런스보드는 0%일 때 경고 신호를 보내고 마이너스(-) 4%에 경기침체 신호를 보냅니다. 바로 지난 9월 경기침체 신호가 켜진 겁니다. 그래프에서 과거 2000년과 2008년, 2020년 6개월 증가율이 -4%에 도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침체(음영된 부분)가 닥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콘퍼런스 보드의 애태먼 오질디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LEI(경기선행지수)가 9월에 다시 하락했고 최근 몇 달간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은 연말 이전에 경기 침체가 점점 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향후 경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다양한 지표가 있는데 예를들어 미국의 10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8로 경기수축 기준 50 밑으로 더 떨어져서 서비스업이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4달 연속 서비스업은 위축되고 있는 겁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합친 10월 합성 PMI도 48.2로 전달보다 더 위축됐습니다. 신규사업의 위축, 타이트한 고금리 금융상황이 수요를 밀어 내리는 중입니다.

미국 경제의 핵심축은 누가 뭐래도 소비입니다. GDP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이기 때문이죠. 지난 3분 미국 GDP는 플러스로 돌아섰고 개인소비지출도 1.4%를 기록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좋지 않습니다. 가구나 자동차 같은 오래 쓰는 내구재는 -0.8%, 음식이나 옷 같은 비내구재도 -1.4%를 기록했습니다. 집에서 쓰는 것부터 차근차근 줄여나가고 있는 겁니다.

경제성장의 주요 요인인 민간투자도 지난 3분기 -8.5%로 특히 부동산이 안 좋은 게 눈에 띕니다. 건물 투자 -15.3%, 주택 투자도 -26.4%로 나타나 향후 부동산이 미국 경제를 끌어내릴 주요 변수로 작용할 듯 합니다. 실제로 미국 주택가격을 알 수 있는 케이스-쉴러 주택가격지수도 상승세를 마감하고 7월부터 연속 하락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 국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택가격 하락이 경기침체와 맞물리게 되면 그 충격은 배가 됩니다.

■ 파월 의장은 말 안 하는 것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21일 "(추측이지만) 경기침체가 2024년 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고,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도 "인플레이션이 고착되는 경제 전망에서 실질적 경기침체 없이 전망을 바꾸는 건 매우 어렵다. 나는 미국이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진영에 속한다"며 경기침체를 전망했습니다.

JP모건 앤 컴퍼니의 회장 제이미 다이먼 역시 지난달 10일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이미 경기침체에 빠진 상태이고, 미국 경제는 앞으로 6~9개월 안에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금리인상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경영인과 경제 전문가들이 내년 미국의 경기침체를 전망하고 있지만, 파월 미 연준 의장은 "모르겠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말 안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인 듯 싶습니다. 연준 의장 입에서 '경기침체'라는 단어가 나왔다간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있을테고, 또 하나는 경기침체가 아닌 경기둔화 혹은 부드러운, 살짝 지나가는 경기침체를 욕심내고 있기 때문일테죠.

이번 기준금리 인상 뒤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이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연착륙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자 "(길이) 좁아졌지만 여전히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미국 통화정책의 최전선에 있는 파월 의장으로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할 테지만, 지난해 급등하는 물가 상승에도 "일시적 현상"이라며 일축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현재의 모습이 그닥 신뢰가 가질 않습니다.

지난해 3월, 3년 만에 가장 빠른 물가 상승세가 나타났지만 파월 의장은 당시 "이번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다. 자체 해결이 예상되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변화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었죠. 그러다 세월만 보내고 올 3월이 돼서야 뒤늦게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큰 폭의 금리인상입니다. 경기가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굽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당시에 상황만 제대로 파악해서 기준금리를 조금씩 올렸더라면 지금같은 위기감은 없었겠죠. 파월 의장이 경기침체에 대해 "나는 몰라" 대신에 "누구도 모른다"고 말한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인포그래픽: 김서린/대문사진:원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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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침체 신호에도 “모른다”는 미 연준 의장
    • 입력 2022-11-06 08:01:45
    • 수정2022-11-06 08:18:47
    세계는 지금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4차례 연속 0.75%P 자이언트 스텝으로 인상해 연 3.75~4.00%로 올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나라 기준금리보다 1%P 앞서게 됐죠. 파월 연준 의장은 한술 더 떠서 “최종금리 수준은 지난번 예상한 것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연 5% 이상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물가를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겁니다.

■ 경기침체가 올지 누구도 모른다?

짧은 기간에 금리를 많이 올리면 당연히 경기는 하강합니다. 얼마나 떨어지느냐의 문제인데, 시장에선 대체로 경기침체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준 의장은 '경기침체'를 자신의 입으로 인정하기 싫은가 봅니다. 파월 의장은 경기침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누구도 경기침체가 올지 안 올지 알지 못한다"면서 "경기침체가 온다면 얼마나 심할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시간 2일, 파월 미 연준 의장 4연속 자이언트 스텝 기준금리 인상 뒤 기자회견(AFP=연합)
파월 의장의 말처럼 과연 누구도 경기침체가 올지 알 수 없을까요? 적어도 미 연준 안에는 경기침체 신호가 보이는지, 온다면 언제 오는지를 분석해내고 파악해 내는 많은 고급 인력들이 모여있는데도 말이죠.

사실 미국은 기술적 의미에서 경기침체에 이미 빠졌었죠. 지난 1·2분기 GDP성장률이 각각 -1.6%, -0.6% 역성장을 보이며 '경기침체'라는 단어가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실업률은 3%대로 여전히 완전고용에 가깝게 안정적이고 구인건수도 한달 1,000만 건 이상으로 시장 전망보다 더 많이 일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3분기 개인소비는 2분기 2%보다는 증가폭이 둔화됐지만 1.4% 증가하며 여전히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지금 경기침체가 왔다고 하기엔 고용과 소비에서 지표상 양호한 게 보입니다.

미국에선 경기침체를 전미경제연구소, NBER 이라는 곳에서 공식적으로 판단합니다. 단순히 GDP 성장률 숫자만 보는 게 아니라 실업률, 개인 소득·소비, 산업생산과 무역수지, 경기 후퇴의 깊이·범위·지속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경기침체 진입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선 경기침체 시작 지점이 아니라 지나고 난 뒤에야 '경기침체' 판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지나고 난 뒤에 경기침체를 판단하면 정부나 금융기관, 기업 심지어 개인들에게도 의미가 없죠. 미리 위기를 알고 있어야 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기침체가 언제 오는지를 알아내려고 저마다 분석을 하고, 이번처럼 파월 미 연준 의장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 곳곳에 나타나는 경기침체 신호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파월 의장은 정말로 경기침체 시기를 "모르겠다"고 할 만큼 판단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적어도 경기침체로 보이는 각종 신호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경제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는 여러가지 지표가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게 바로 장단기 국채 사이의 금리 역전 현상입니다.

10년짜리 장기국채는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기 상황에서는 2년이나 3개월물 국채보다 수익률이 높아야겠죠. 그래야 돈이 몰릴테니까요. 그런데 시장에서 앞으로 경기가 침체된다고 예상하면 10년물 수익률은 경기침체를 반영해서 하락합니다. 대신 단기물인 3개월물과 2년물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치솟게 되고 이게 역전되는 순간이 오는데, 미국 국채시장을 보면 장단기 금리가 역전 된 뒤에 항상 경기침체가 나타났다는 거죠.


위 그래프에서 보면 세로로 음영된 구간이 경기침체 구간입니다. 1991년 걸프전 위기, 2001년 닷컴버블 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경기침체 구간입니다. 파란색은 10년물과 2년물, 붉은색은 10년물과 3개월물 국채 금리 차이인데, 모두 공통적으로 경기침체 몇달 전 두 금리간 역전이 발생해 마이너스로 내려간 게 눈에 띕니다.

바로 직전인 2020년 1월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도 2019년 5월 10년물과 3개월물 국채 금리가 역전되기 시작해 9월 3일 최고 -0.51%까지 벌어졌습니다. 2년물도 잠깐이긴 하지만 역전됐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 당시 경기침체 때부터 지금까지 10년물과 2년물 장단기 금리역전 발생 뒤 경기침체까지 걸린 간을 보면 짧게는 7개월, 평균적으로 1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이번 장단기금리 역전 시기에 대입할 경우 지난 7월 10년물과 2년물간 금리 역전이 발생했으니까 빠르면 내년 2월, 평균으로 보면 내년 12월에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는 얘깁니다.

뉴욕타임스는 1960년대 이후 10년물과 3개월물간 국채 금리가 역전된 뒤 6~15개월 안에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분석대로라면 지난달 10년-3개월 국채금리 역전이 발생했으니까 이르면 내년 4월, 늦어도 2024년 1월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70년간 경기침체의 평균 기간은 10개월이었습니다. 물론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과거에 대입해보면 그렇다는 거죠.

■ 경기선행지수도 경기침체 경고등

또 하나의 지표는 미국 콘퍼런스보드에서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입니다. 향후 경기를 전망하는 지수로 고용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실업보험 청구건수와 제조업 신규수주, 주택착공 허가 등 10개 항목을 기초로 지수를 만듭니다. 경제학자들이 보는 주요 지표는 아니지만 특히 금리인상 시기에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서 이코노미스트들이 인용하곤 하는 지표입니다.

미국의 9월 경기선행지수는 전달보다 0.4% 하락했는데 6개월 연속입니다. 과거 추세를 보면 경기선행지수가 이 정도 기간 하락하면 대부분 이후 언젠가 경기침체가 닥쳤습니다.


위 그래프는 경기선행지수를 기초로 한 경기선행지수 6개월 증가율인데, 콘퍼런스보드는 0%일 때 경고 신호를 보내고 마이너스(-) 4%에 경기침체 신호를 보냅니다. 바로 지난 9월 경기침체 신호가 켜진 겁니다. 그래프에서 과거 2000년과 2008년, 2020년 6개월 증가율이 -4%에 도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침체(음영된 부분)가 닥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콘퍼런스 보드의 애태먼 오질디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LEI(경기선행지수)가 9월에 다시 하락했고 최근 몇 달간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은 연말 이전에 경기 침체가 점점 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향후 경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다양한 지표가 있는데 예를들어 미국의 10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8로 경기수축 기준 50 밑으로 더 떨어져서 서비스업이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4달 연속 서비스업은 위축되고 있는 겁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합친 10월 합성 PMI도 48.2로 전달보다 더 위축됐습니다. 신규사업의 위축, 타이트한 고금리 금융상황이 수요를 밀어 내리는 중입니다.

미국 경제의 핵심축은 누가 뭐래도 소비입니다. GDP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이기 때문이죠. 지난 3분 미국 GDP는 플러스로 돌아섰고 개인소비지출도 1.4%를 기록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좋지 않습니다. 가구나 자동차 같은 오래 쓰는 내구재는 -0.8%, 음식이나 옷 같은 비내구재도 -1.4%를 기록했습니다. 집에서 쓰는 것부터 차근차근 줄여나가고 있는 겁니다.

경제성장의 주요 요인인 민간투자도 지난 3분기 -8.5%로 특히 부동산이 안 좋은 게 눈에 띕니다. 건물 투자 -15.3%, 주택 투자도 -26.4%로 나타나 향후 부동산이 미국 경제를 끌어내릴 주요 변수로 작용할 듯 합니다. 실제로 미국 주택가격을 알 수 있는 케이스-쉴러 주택가격지수도 상승세를 마감하고 7월부터 연속 하락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 국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택가격 하락이 경기침체와 맞물리게 되면 그 충격은 배가 됩니다.

■ 파월 의장은 말 안 하는 것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21일 "(추측이지만) 경기침체가 2024년 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고,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도 "인플레이션이 고착되는 경제 전망에서 실질적 경기침체 없이 전망을 바꾸는 건 매우 어렵다. 나는 미국이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진영에 속한다"며 경기침체를 전망했습니다.

JP모건 앤 컴퍼니의 회장 제이미 다이먼 역시 지난달 10일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이미 경기침체에 빠진 상태이고, 미국 경제는 앞으로 6~9개월 안에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금리인상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경영인과 경제 전문가들이 내년 미국의 경기침체를 전망하고 있지만, 파월 미 연준 의장은 "모르겠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말 안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인 듯 싶습니다. 연준 의장 입에서 '경기침체'라는 단어가 나왔다간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있을테고, 또 하나는 경기침체가 아닌 경기둔화 혹은 부드러운, 살짝 지나가는 경기침체를 욕심내고 있기 때문일테죠.

이번 기준금리 인상 뒤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이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연착륙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자 "(길이) 좁아졌지만 여전히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미국 통화정책의 최전선에 있는 파월 의장으로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할 테지만, 지난해 급등하는 물가 상승에도 "일시적 현상"이라며 일축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현재의 모습이 그닥 신뢰가 가질 않습니다.

지난해 3월, 3년 만에 가장 빠른 물가 상승세가 나타났지만 파월 의장은 당시 "이번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다. 자체 해결이 예상되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변화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었죠. 그러다 세월만 보내고 올 3월이 돼서야 뒤늦게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큰 폭의 금리인상입니다. 경기가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굽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당시에 상황만 제대로 파악해서 기준금리를 조금씩 올렸더라면 지금같은 위기감은 없었겠죠. 파월 의장이 경기침체에 대해 "나는 몰라" 대신에 "누구도 모른다"고 말한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인포그래픽: 김서린/대문사진:원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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