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식량’된 커피믹스…회사는 ‘신중’

입력 2022.11.0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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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식품인 줄 알았더니 '재난 식량'이었다. 봉화 생존 광부들이 밥처럼 먹었다는 커피믹스 얘기다.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맥심)이 81% 차지한다. 남양유업(프렌치카페) 점유율은 7% 정도다. 기적적인 생환 스토리 덕분인걸까. 어제(7일) 두 회사 주가는 상승 마감했다. 전 거래일보다 동서식품은 3.07%, 남양유업은 1.47% 올라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일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들지난 4일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들

■ 커피믹스 회사는 '신중'

재난 상황에서 특정 제품이 주목받는 상황은 간혹 나온다.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했을 때, 암흑 속에서 특수 형광물질의 '타이멕스' 시계를 찬 사람을 따라 무사히 탈출했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11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 씨는 첫마디가 "콜라 마시고 싶다"여서, 당시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가 40상자를 선물로 보냈다.

"커피믹스 선물 보내주세요", "광고 CF 모델로 하면 안 되나요"라는 게 일부 네티즌 반응이다. 하지만 동서식품은 신중한 입장이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생존에 도움이 됐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회복을 하시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로 사회적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섣부른 '재난 마케팅'처럼 비춰질까 염려하는 시선도 있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맥심 모카골드(왼쪽)과 프렌치카페  [각 사 홈페이지]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맥심 모카골드(왼쪽)과 프렌치카페 [각 사 홈페이지]

■ "커피믹스, 자칫 '트라우마' 일으킬 수도"

자칫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생존 광부들은 심한 스트레스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커피믹스가 다 떨어진 순간, 큰 절망감을 느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고 직후엔 생존 수단이었던 커피믹스만 봐도 당시 감정이 떠오르며 불안·공황 증세가 올 수도 있다"라면서 "다만, 환자 80% 정도는 3~6개월이 지나면 탈감작(脫感作, 면역학적으로 반응이 없는 상태) 효과가 이뤄지며 뇌가 자연스럽게 불안을 치유한다"라고 설명했다.

■ 한국인의 발명품이지만 우리 껀 아냐

커피믹스는 2017년 특허청 설문조사에서 '한국을 빛낸 발명품' 5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때 시장 규모가 1조 원이 넘었지만, 점점 위축되고 있다. 저가 커피전문점 제품과 편의점 커피 등 대체품이 많아진 탓이다. 또 캡슐커피머신 하나쯤 두는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캡슐커피 시장은 2,000억 원대를 넘어섰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도 어렵다. '맥심' 브랜드는 동서식품 것이 아니다. 50:50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 미국 크래프트푸드사의 등록 상표다. 동서식품이 로열티를 주고 사용하는 브랜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수출이 안 된다. 반면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는 미국과 중국, 호주 등 9개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 IMF 때 전환점

커피믹스는 1976년 처음 출시됐다. 사각형 봉지에 담긴 모양으로, 당시엔 아웃도어용이었다. 커피는 고급 제품이란 인식이 강했고, 부유층이 낚시나 캠핑 등을 가서 먹는 음료에 가까웠다. 당시 CF 광고에서도 그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1982년(왼쪽)과 1991년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CF 광고 [KBS 자료]1982년(왼쪽)과 1991년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CF 광고 [KBS 자료]

전환점을 맞은 건 1997년 외환위기 때다. 한 포장 안에 프림과 설탕이 모두 들어있어 회사 입장에선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또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커피 타 줄 직원들이 줄어들면서, 일정한 맛을 보장하는 커피믹스가 사무실에서 각광을 받게 됐다.

■ 건강 해치는 줄만 알았는데

커피믹스는 화학첨가물로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카제인나트륨'은 하루 섭취 허용량이 제한되지 않을 정도로 안전성이 입증된 첨가물이다. 2012년 '화학적 합성품' 논란이 일자 당시 식약청이 무해하다고 인정했다. 극한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칼로리와 영양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도 이번에 증명됐다.

하지만 모든 식품이 다 그렇듯 과다섭취는 좋을 게 없다. 커피믹스 한 봉엔 설탕 5~6g이 들어있다. 한국소비자원은 당류 함량이 높은 커피믹스 제품을 하루 2잔 마셔도 WHO 1일 권고량의 30% 수준을 섭취하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대문사진 : 배동희)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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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식량’된 커피믹스…회사는 ‘신중’
    • 입력 2022-11-08 11:42:10
    취재K

기호 식품인 줄 알았더니 '재난 식량'이었다. 봉화 생존 광부들이 밥처럼 먹었다는 커피믹스 얘기다.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맥심)이 81% 차지한다. 남양유업(프렌치카페) 점유율은 7% 정도다. 기적적인 생환 스토리 덕분인걸까. 어제(7일) 두 회사 주가는 상승 마감했다. 전 거래일보다 동서식품은 3.07%, 남양유업은 1.47% 올라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일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들
■ 커피믹스 회사는 '신중'

재난 상황에서 특정 제품이 주목받는 상황은 간혹 나온다.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했을 때, 암흑 속에서 특수 형광물질의 '타이멕스' 시계를 찬 사람을 따라 무사히 탈출했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11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 씨는 첫마디가 "콜라 마시고 싶다"여서, 당시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가 40상자를 선물로 보냈다.

"커피믹스 선물 보내주세요", "광고 CF 모델로 하면 안 되나요"라는 게 일부 네티즌 반응이다. 하지만 동서식품은 신중한 입장이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생존에 도움이 됐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회복을 하시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로 사회적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섣부른 '재난 마케팅'처럼 비춰질까 염려하는 시선도 있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맥심 모카골드(왼쪽)과 프렌치카페  [각 사 홈페이지]
■ "커피믹스, 자칫 '트라우마' 일으킬 수도"

자칫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생존 광부들은 심한 스트레스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커피믹스가 다 떨어진 순간, 큰 절망감을 느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고 직후엔 생존 수단이었던 커피믹스만 봐도 당시 감정이 떠오르며 불안·공황 증세가 올 수도 있다"라면서 "다만, 환자 80% 정도는 3~6개월이 지나면 탈감작(脫感作, 면역학적으로 반응이 없는 상태) 효과가 이뤄지며 뇌가 자연스럽게 불안을 치유한다"라고 설명했다.

■ 한국인의 발명품이지만 우리 껀 아냐

커피믹스는 2017년 특허청 설문조사에서 '한국을 빛낸 발명품' 5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때 시장 규모가 1조 원이 넘었지만, 점점 위축되고 있다. 저가 커피전문점 제품과 편의점 커피 등 대체품이 많아진 탓이다. 또 캡슐커피머신 하나쯤 두는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캡슐커피 시장은 2,000억 원대를 넘어섰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도 어렵다. '맥심' 브랜드는 동서식품 것이 아니다. 50:50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 미국 크래프트푸드사의 등록 상표다. 동서식품이 로열티를 주고 사용하는 브랜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수출이 안 된다. 반면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는 미국과 중국, 호주 등 9개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 IMF 때 전환점

커피믹스는 1976년 처음 출시됐다. 사각형 봉지에 담긴 모양으로, 당시엔 아웃도어용이었다. 커피는 고급 제품이란 인식이 강했고, 부유층이 낚시나 캠핑 등을 가서 먹는 음료에 가까웠다. 당시 CF 광고에서도 그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1982년(왼쪽)과 1991년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CF 광고 [KBS 자료]
전환점을 맞은 건 1997년 외환위기 때다. 한 포장 안에 프림과 설탕이 모두 들어있어 회사 입장에선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또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커피 타 줄 직원들이 줄어들면서, 일정한 맛을 보장하는 커피믹스가 사무실에서 각광을 받게 됐다.

■ 건강 해치는 줄만 알았는데

커피믹스는 화학첨가물로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카제인나트륨'은 하루 섭취 허용량이 제한되지 않을 정도로 안전성이 입증된 첨가물이다. 2012년 '화학적 합성품' 논란이 일자 당시 식약청이 무해하다고 인정했다. 극한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칼로리와 영양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도 이번에 증명됐다.

하지만 모든 식품이 다 그렇듯 과다섭취는 좋을 게 없다. 커피믹스 한 봉엔 설탕 5~6g이 들어있다. 한국소비자원은 당류 함량이 높은 커피믹스 제품을 하루 2잔 마셔도 WHO 1일 권고량의 30% 수준을 섭취하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대문사진 : 배동희)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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