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반 담임 선생님의 이름은 ‘비밀’?…“과도한 정보 보호”

입력 2022.11.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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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이름은 옆 반 학부모에게 비공개 정보, 비밀일까요?

최근 대구에선 초등학생 자녀의 옆 반 담임 교사 이름을 알려달라는 정보공개 청구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학교는 '비공개'라고 답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 "정보 주체가 동의하지 않아 해당 정보를 비공개함"

대구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모는 최근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해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부모는 자녀의 괴롭힘 사건에 대해, 가해 학생의 담임인 A 교사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A 교사와도 면담하게 됐습니다.

학부모는 마주한 A 교사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를 떠나,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 보고 마주 앉은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되돌아왔습니다. "제 이름 알아서 뭐하시게요?"

학부모는 이어진 교감 선생님과의 대화 때, A 교사가 문을 열고 선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다시 말했다고 합니다. 학부모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전화 통화도 아니고 학부모와 교사 자격으로 만나 대화하는데 이름을 알려줄 수 없다니, 휴대전화 번호나 집 주소 등 개인 정보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고작 선생님 이름이 비밀이라니요."

학부모 측
"학부모를 이렇게밖에 생각 안 하시나. 그게 신뢰의 문제인 거잖아요. 저희는 학교에 아이를 믿고 맡긴 입장이다 보니까. 이름도 얘기 안 해주시는 선생님에게 어떻게 우리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요?"

결국, 이 학부모는 교사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비공개 결정. 이름 공개 논란은 다음 단계인 행정심판으로 넘어갔고, 그 결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당 학교와 교육 당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직무 수행 관련 해석과 본인의 비동의를 이유로 이름을 비공개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이름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원래 학교 방문 목적이었던 학폭 관련 상담은 충분히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2-XX반 담임'이라고 소개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보공개법과 본인의 비동의를 이유로 선생님 이름을 ‘비공개’ 결정했습니다.정보공개법과 본인의 비동의를 이유로 선생님 이름을 ‘비공개’ 결정했습니다.

■ 학부모와 교사의 불신…'무너지는' 교실

교사의 이름 비공개는 단순한 촌극일까요? 아니면 학부모와 교사 간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일까요?

먼저, 개인정보 보호라는 사회 변화 흐름 속에 학교 외부인이 선생님 이름을 아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졸업생을 위한 '스승 찾기' 같은 서비스는 사라졌고, 많은 학교는 자율 판단에 따라 학교 홈페이지에 교사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 정보가 사칭 등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고, 보험 권유에 이용되는 등 각종 부작용도 크다는 이유에서입니다. 2020년부터는 인사발령 사항도 공개되지 않습니다.

교사들의 교권 보호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교권 추락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학부모는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대구교사노조가 지난 5월 교사 천백여 명을 대상으로 '교직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대상(중복 답변 허용)'을 물었는데, 1위가 학생(75.9%)이고, 2위가 학부모(73.1%)였습니다.

학부모에 의한 스트레스 원인은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 및 무관심(68.7%)', '과도한 민원으로 인한 어려움(60.1%)', '수업권 침해 및 과도한 간섭(31.6%)'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학부모 관련 교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대부분 교사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더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일부 담임 교사들은 학교 시스템을 통해 학부모에게 전달할 뿐, 그 밖의 소통이나 개인정보 노출을 꺼립니다. 학교폭력 담당 등 학부모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한 업무의 교사들은 업무 전용 전화기를 쓰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보를 보호합니다.

하지만 소수의 '별난' 부모가 정도를 넘어 교권을 침해하듯, 일부 교사들의 자기 보호도 정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교사와 학부모는 더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과 오해는 커졌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특별했던 '사제의 정'은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기능적 관계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름 비공개 논란은 이런 흐름의 연장 선상에서 벌어진 게 아닐까요?

학부모 측
"만나서 서로 얼굴을 마주 봤고 그런 상황에서 서로 신뢰가 쌓였으면... 솔직히 이제는 이름 공개 하나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사람에 대한 예의인 거고.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의 신뢰의 문제인 거죠. 서로 선을 지켜주셨으면..."

'공교육 위기'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닙니다만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간 불신과 오해는 공교육의 위기를 더욱 키울 겁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고민과 합리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후기
취재가 시작된 이후 학교 측은 학부모 측에 전화를 걸어 교사 A 씨의 이름을 알려줬습니다.
한편 학교 측이 비공개 이유로 들었던 정보공개법은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ㆍ직위'가 공개대상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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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반 담임 선생님의 이름은 ‘비밀’?…“과도한 정보 보호”
    • 입력 2022-11-08 17:32:48
    취재K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이름은 옆 반 학부모에게 비공개 정보, 비밀일까요?

최근 대구에선 초등학생 자녀의 옆 반 담임 교사 이름을 알려달라는 정보공개 청구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학교는 '비공개'라고 답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 "정보 주체가 동의하지 않아 해당 정보를 비공개함"

대구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모는 최근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해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부모는 자녀의 괴롭힘 사건에 대해, 가해 학생의 담임인 A 교사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A 교사와도 면담하게 됐습니다.

학부모는 마주한 A 교사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를 떠나,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 보고 마주 앉은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되돌아왔습니다. "제 이름 알아서 뭐하시게요?"

학부모는 이어진 교감 선생님과의 대화 때, A 교사가 문을 열고 선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다시 말했다고 합니다. 학부모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전화 통화도 아니고 학부모와 교사 자격으로 만나 대화하는데 이름을 알려줄 수 없다니, 휴대전화 번호나 집 주소 등 개인 정보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고작 선생님 이름이 비밀이라니요."

학부모 측
"학부모를 이렇게밖에 생각 안 하시나. 그게 신뢰의 문제인 거잖아요. 저희는 학교에 아이를 믿고 맡긴 입장이다 보니까. 이름도 얘기 안 해주시는 선생님에게 어떻게 우리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요?"

결국, 이 학부모는 교사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비공개 결정. 이름 공개 논란은 다음 단계인 행정심판으로 넘어갔고, 그 결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당 학교와 교육 당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직무 수행 관련 해석과 본인의 비동의를 이유로 이름을 비공개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이름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원래 학교 방문 목적이었던 학폭 관련 상담은 충분히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2-XX반 담임'이라고 소개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보공개법과 본인의 비동의를 이유로 선생님 이름을 ‘비공개’ 결정했습니다.
■ 학부모와 교사의 불신…'무너지는' 교실

교사의 이름 비공개는 단순한 촌극일까요? 아니면 학부모와 교사 간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일까요?

먼저, 개인정보 보호라는 사회 변화 흐름 속에 학교 외부인이 선생님 이름을 아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졸업생을 위한 '스승 찾기' 같은 서비스는 사라졌고, 많은 학교는 자율 판단에 따라 학교 홈페이지에 교사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 정보가 사칭 등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고, 보험 권유에 이용되는 등 각종 부작용도 크다는 이유에서입니다. 2020년부터는 인사발령 사항도 공개되지 않습니다.

교사들의 교권 보호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교권 추락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학부모는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대구교사노조가 지난 5월 교사 천백여 명을 대상으로 '교직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대상(중복 답변 허용)'을 물었는데, 1위가 학생(75.9%)이고, 2위가 학부모(73.1%)였습니다.

학부모에 의한 스트레스 원인은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 및 무관심(68.7%)', '과도한 민원으로 인한 어려움(60.1%)', '수업권 침해 및 과도한 간섭(31.6%)'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학부모 관련 교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대부분 교사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더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일부 담임 교사들은 학교 시스템을 통해 학부모에게 전달할 뿐, 그 밖의 소통이나 개인정보 노출을 꺼립니다. 학교폭력 담당 등 학부모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한 업무의 교사들은 업무 전용 전화기를 쓰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보를 보호합니다.

하지만 소수의 '별난' 부모가 정도를 넘어 교권을 침해하듯, 일부 교사들의 자기 보호도 정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교사와 학부모는 더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과 오해는 커졌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특별했던 '사제의 정'은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기능적 관계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름 비공개 논란은 이런 흐름의 연장 선상에서 벌어진 게 아닐까요?

학부모 측
"만나서 서로 얼굴을 마주 봤고 그런 상황에서 서로 신뢰가 쌓였으면... 솔직히 이제는 이름 공개 하나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사람에 대한 예의인 거고.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의 신뢰의 문제인 거죠. 서로 선을 지켜주셨으면..."

'공교육 위기'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닙니다만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간 불신과 오해는 공교육의 위기를 더욱 키울 겁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고민과 합리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후기
취재가 시작된 이후 학교 측은 학부모 측에 전화를 걸어 교사 A 씨의 이름을 알려줬습니다.
한편 학교 측이 비공개 이유로 들었던 정보공개법은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ㆍ직위'가 공개대상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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