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국산화한 수소차 핵심기술…재취업 노린 연구원이 빼돌려

입력 2022.11.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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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에서 수소연료전지 연구를 맡았던 A 씨. 2020년 8월, 정년퇴임을 4개월여 앞두고 수소전기차 핵심부품 견본을 몰래 빼돌리다 검찰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GDL이라 불리는 종이 두께의 탄소섬유 한 장이었는데, 현대차가 어렵게 국산화에 성공한 부품이었다. A 씨는 자신이 퇴직 후 취업하려던 부품 업체에 그 견본을 그대로 넘겼다.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려고 국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셈이다.

현대차의 '넥소'. 2018년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수소전기차다. 이후 도요타 '미라이', 혼다 '클래리티' 등이 후발주자로 나왔지만, 현대차 점유율이 여전히 절반을 훌쩍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 연료전지 핵심 부품 'GDL'… 현대차 국산화 성공

수소전기차의 심장은 연료전지다. 연료전지에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물로 바꾸고, 이때 나오는 에너지를 전기로 저장해 차를 굴린다. 연료전지는 수소 이온을 통과시키는 막과 반응을 돕는 촉매층, 공기가 흐를 수 있도록 하는 GDL(Gas Diffusion Layer) 등을 켜켜이 쌓은 '스택'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GDL은 현대차가 국산화에 어려움을 겪던 대표적 핵심부품이다.

현재 도로를 달리는 넥소는 연료전지에 독일 업체의 GDL이 쓰였다. 출시할 때는 국내에서 GDL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잇장과 비슷하지만, 연료전지 전체 단가 중 2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현대차는 마침내 2020년 한 협력업체와 GDL 국산화에 성공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A 씨가 이 제품의 견본을 빼돌렸다.

연료전지 내부 반응 과정. ‘GDL’을 통해 수소와 산소가 퍼지고 내부에서 반응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현대차가 현재 ‘넥소’에 쓰고 있는 GDL 제조업체의 영상 캡처. [출처: SGL 유튜브]연료전지 내부 반응 과정. ‘GDL’을 통해 수소와 산소가 퍼지고 내부에서 반응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현대차가 현재 ‘넥소’에 쓰고 있는 GDL 제조업체의 영상 캡처. [출처: SGL 유튜브]

■ 어렵게 개발한 기술, 재취업 협상 카드로…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 박진성)에 따르면 A 씨는 총 6건의 GDL 견본을 빼돌렸다. 2020년 8월에 1개, 9월에 5개를 차례대로 빼냈는데, 옆 팀에 '실험을 위해 필요하다'며 이를 건네받아 반납·폐기하지 않고 몰래 가져나온 거로 파악됐다. 특히, 9월에 넘긴 제품에는 현대차가 내구성 강화를 위해 업계 최초로 첨가한 금속물질이 포함돼 있었다.

A 씨는 빼돌린 GDL 견본을 자동차 부품업체 B사에 넘겼다. 이 업체도 현대차의 1차 협력업체인데, 자체 생산보다는 글로벌 부품업체의 국내 유통을 주로 맡고 있다. GDL 분야에서 세계 4위권인 미국 업체의 국내 총판도 맡고 있다.

A 씨는 당시 퇴직 후 이 회사로 옮기기 위해 조건을 협상하던 중이었다. 현대차와 다른 협력업체가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이직을 위한 '카드'로 쓴 셈이다. 견본을 넘겨받은 B사는 곧바로 이를 미국 업체로 유출했다.

■ 검찰 "미국 업체, 최근 비슷한 첨가물 적용 정황"

검찰은 미국 업체가 넘겨받은 견본품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최근 이 회사 GDL에서 현대차가 최초로 첨가했던 물질이 적용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설계도나 제조법 전체가 넘어가지 않고, 개발단계의 제품만 넘어가더라도 이른바 '역설계'를 통해 소재와 형태, 화학적 조성 등 중요한 기술적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A 씨는 또 퇴직을 한 달여 앞둔 11월 현대차의 GDL 사양 비교표, 첨가물 함량 정보까지 빼내 해당 업체에 넘기기도 했다. 검찰은 A 씨를 산업기술 유출·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또 A 씨로부터 견본과 기술자료를 넘겨받아 미국 업체로 유출한 B사 임직원 2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누설 등)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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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렵게 국산화한 수소차 핵심기술…재취업 노린 연구원이 빼돌려
    • 입력 2022-11-09 08:00:29
    취재K


현대자동차에서 수소연료전지 연구를 맡았던 A 씨. 2020년 8월, 정년퇴임을 4개월여 앞두고 수소전기차 핵심부품 견본을 몰래 빼돌리다 검찰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GDL이라 불리는 종이 두께의 탄소섬유 한 장이었는데, 현대차가 어렵게 국산화에 성공한 부품이었다. A 씨는 자신이 퇴직 후 취업하려던 부품 업체에 그 견본을 그대로 넘겼다.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려고 국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셈이다.

현대차의 '넥소'. 2018년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수소전기차다. 이후 도요타 '미라이', 혼다 '클래리티' 등이 후발주자로 나왔지만, 현대차 점유율이 여전히 절반을 훌쩍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 연료전지 핵심 부품 'GDL'… 현대차 국산화 성공

수소전기차의 심장은 연료전지다. 연료전지에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물로 바꾸고, 이때 나오는 에너지를 전기로 저장해 차를 굴린다. 연료전지는 수소 이온을 통과시키는 막과 반응을 돕는 촉매층, 공기가 흐를 수 있도록 하는 GDL(Gas Diffusion Layer) 등을 켜켜이 쌓은 '스택'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GDL은 현대차가 국산화에 어려움을 겪던 대표적 핵심부품이다.

현재 도로를 달리는 넥소는 연료전지에 독일 업체의 GDL이 쓰였다. 출시할 때는 국내에서 GDL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잇장과 비슷하지만, 연료전지 전체 단가 중 2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현대차는 마침내 2020년 한 협력업체와 GDL 국산화에 성공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A 씨가 이 제품의 견본을 빼돌렸다.

연료전지 내부 반응 과정. ‘GDL’을 통해 수소와 산소가 퍼지고 내부에서 반응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현대차가 현재 ‘넥소’에 쓰고 있는 GDL 제조업체의 영상 캡처. [출처: SGL 유튜브]
■ 어렵게 개발한 기술, 재취업 협상 카드로…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 박진성)에 따르면 A 씨는 총 6건의 GDL 견본을 빼돌렸다. 2020년 8월에 1개, 9월에 5개를 차례대로 빼냈는데, 옆 팀에 '실험을 위해 필요하다'며 이를 건네받아 반납·폐기하지 않고 몰래 가져나온 거로 파악됐다. 특히, 9월에 넘긴 제품에는 현대차가 내구성 강화를 위해 업계 최초로 첨가한 금속물질이 포함돼 있었다.

A 씨는 빼돌린 GDL 견본을 자동차 부품업체 B사에 넘겼다. 이 업체도 현대차의 1차 협력업체인데, 자체 생산보다는 글로벌 부품업체의 국내 유통을 주로 맡고 있다. GDL 분야에서 세계 4위권인 미국 업체의 국내 총판도 맡고 있다.

A 씨는 당시 퇴직 후 이 회사로 옮기기 위해 조건을 협상하던 중이었다. 현대차와 다른 협력업체가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이직을 위한 '카드'로 쓴 셈이다. 견본을 넘겨받은 B사는 곧바로 이를 미국 업체로 유출했다.

■ 검찰 "미국 업체, 최근 비슷한 첨가물 적용 정황"

검찰은 미국 업체가 넘겨받은 견본품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최근 이 회사 GDL에서 현대차가 최초로 첨가했던 물질이 적용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설계도나 제조법 전체가 넘어가지 않고, 개발단계의 제품만 넘어가더라도 이른바 '역설계'를 통해 소재와 형태, 화학적 조성 등 중요한 기술적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A 씨는 또 퇴직을 한 달여 앞둔 11월 현대차의 GDL 사양 비교표, 첨가물 함량 정보까지 빼내 해당 업체에 넘기기도 했다. 검찰은 A 씨를 산업기술 유출·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또 A 씨로부터 견본과 기술자료를 넘겨받아 미국 업체로 유출한 B사 임직원 2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누설 등)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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